스웨덴 혼성 4인조 팝 그룹 아바(ABBA)의 새 앨범 ‘아바 보이지(ABBA Voyage)’ 이미지. 모두 70대인 그들은 오는 11월 40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내년에 디지털 아바타 공연을 한다. 사진 아바
스웨덴 혼성 4인조 팝 그룹 아바(ABBA)의 새 앨범 ‘아바 보이지(ABBA Voyage)’ 이미지. 모두 70대인 그들은 오는 11월 40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내년에 디지털 아바타 공연을 한다. 사진 아바

“하나둘, 하나둘, 왼쪽 어깨 더 올리시고요, 허리도 꼿꼿이 세워주세요.”

9월 7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시니어 모델 학원 ‘클럽 패밀리 모델스(CFM)’ 연습실. 99㎡(약 30평) 남짓한 공간이 아이돌 연습실처럼 삼면이 거울로 둘러싸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십여 명의 시니어 모델 지망생이 워킹 수업에 한창이었다. 패셔너블한 캡을 쓴 여성, 성순애씨의 나이는 77세. 꼿꼿하고 날씬한 뒷모습만 봐서는 믿기 힘든 나이다. 당당한 포즈로 워킹 연습을 마친 성씨는 “삼 남매를 키운 주부로 평생을 살다가 활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 2년째 이 학원에 다니고 있다”라며 “워킹 수업이 없는 날은 룸바 댄스도 배운다. 건강도 챙기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내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웃었다.

시니어 모델 워킹 수업과 시니어 뮤지컬 배우 수업을 병행하는 이 학원에는 현재 26명의 수강생이 등록돼 있다. 눈처럼 흰머리의 김나무(74) 클럽 패밀리 모델스 대표는 낯이 익었다. 본인을 영화배우 출신 패션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수강생은 모두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며 “시니어 바잉 패션쇼(현장에서 의류를 보고 바로 구입하는 쇼)를 기획하고 있는데 그만큼 시니어 모델의 인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시니어 모델이 주목받은 것은 수년 전 모델 김칠두(66)씨가 인기를 끌면서다. 순댓국집 사장이었던 그는 노년 특유의 중후한 멋스러움으로 연예계 안팎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날 학원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직업은 주부부터 호텔 사장, 전직 모델 등으로 다양했다. 이곳에 모여 땀을 흘리는 사연은 다양했지만,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이 순간을 즐겨라. 제일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이는 활력 있는 삶을 사는 뉴 시니어(新노년) 전성시대의 한 사례다. 뉴 시니어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64년생) 중에서 활력 있는 삶을 사는 노년을 뜻한다. 해외에서는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활력 있는 노년)라는 표현도 흔하게 쓰인다. 뉴 시니어는 여유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소비와 투자 활동을 한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욕구와 부족하지 않은 경제력이 맞물려 두각을 보인다. 유튜브에서 활발히 경제특강 방송을 하는 윤순봉 전 삼성서울병원 사장, SK하이닉스 사장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청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는 오세용 스마트 브루어리 대표, 은퇴 후 평생 모은 수만 장의 엘피(LP)를 판매하는 음반 숍을 차리고 클래식 음악 작가로도 활동 중인 유재후 전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파리지점장 등은 은퇴 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해외 사례도 많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혼성 4인조 팝 그룹 ‘아바(ABBA)’는 40년 만에 신곡을 발표하고 11월 5일 새 앨범 ‘아바 보이지(ABBA Voyage)’를 발매한다고 9월 2일 선언했다. 아바 멤버 4명은 모두 70대다.

장난감 소개 유튜브 채널 ‘그랜드 일루전스(Grand Illusions)’ 운영자인 영국의 팀 로웻(Tim Rowett) 할아버지는 1942년생이다. 흰머리의 인자한 표정으로 평생 모은 2만여 개 장난감을 소개하는 그의 채널 구독자는 약 203만 명이다. 일본의 게임 유튜버 모리 하마코(森浜子) 할머니는 1930년생이다. 직접 게임하며 게임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게이머 그랜마(Gamer Grandma)’를 운영하고 있다. 구독자 수는 52만 명이 넘는다. 세계 최고령 게임 유튜버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그는 40년간 꾸준히 게임을 하고 있다.

허승하 유튜브 문화·트렌드 매니저는 “시니어 크리에이터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오랜 기간 자신이 즐겼던 취미를 주제로 공유하는 노하우와 푸근함과 연륜 쌓인 조언이 젊은층에도 잘 먹힌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경우 라이브커머스 분야에서 시니어 세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백발의 리자치(립스틱 오빠라 불리는 중국 대표 뷰티 인플루언서)’라는 별명이 붙은 1941년생 왕비윈이 대표적이다. 왕비윈뿐만 아니라 장쑤젠, 판치양 등 시니어 모델도 최근 라이브커머스에서 주목받고 있다.


9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클럽 패밀리 모델스(CFM)’ 연습실에서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이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김혜빈 인턴기자
9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클럽 패밀리 모델스(CFM)’ 연습실에서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이 워킹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김혜빈 인턴기자
영화배우 출신 패션 디자이너인 김나무(맨 왼쪽) CFM 대표가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영화배우 출신 패션 디자이너인 김나무(맨 왼쪽) CFM 대표가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김문관 기자

2025년 한국 초고령 사회 진입

기업이 활력 있는 뉴 시니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고령화 현상과 이들의 높은 구매력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15.7%로 2025년이면 이 수치가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자산이 가장 많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통계청 가계 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가구주 연령대별 순자산 보유액은 50대 가구주가 3억9419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 가구주가 3억5817만원으로 두 번째였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퇴직, 은퇴를 끝이 아닌 제2의 출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과거엔 은퇴 시기인 환갑을 생의 마지막 시기로 봤지만, 지금은 누구도 60세에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 노년기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가 희석됐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대다수 시니어가 여생을 소일거리를 하며 보내거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면, 뉴 시니어는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등산, 골프,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며 자신만의 패션 코드를 갖고 외적인 젊음을 추구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들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기 위한 ‘웰에이징(well aging)’을 추구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계의 경우 2000년대 초부터 이 시장을 주목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이 소비 여력이 있는 뉴 시니어 계층을 직접적인 소비 주체로 인식하고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자사 제품 및 서비스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미 관련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고령자 친화 산업 시장 규모는 2010년 30조원대에서 지난해 12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55세 이상 액티브시니어 여가 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5234억달러(약 614조원)로 추산됐으며 2020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4.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데이터브리지 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노인 요양 시장 규모는 2020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7% 성장해 2027년에는 1조9440만달러(약 228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의 만성 질환 증가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인생은 왜 50부터 반등하는가(The Happi-ness Curve·2021)’ 저자인 조너선 라우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고의 값어치가 있는 특허는 주로 55세 이상의 발명가에게서 나온다”라며 “진정한 인생의 행복은 사회적 부(富)가 쌓인 50세 이후에 누릴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코노미조선’이 활력 있는 삶을 사는 뉴 시니어에 주목한 이유다.

김문관 기자, 김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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