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혼집을 구한 직장인 전영은(29)씨는 매주 집들이를 열고 있다. 집들이 때마다 감바스부터 촙스테이크, 트러플 크림 리소토, 마라샹궈 등 고급 레스토랑에서 볼 법한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 손님마다 “요리하기 안 힘드냐”고 묻지만 영은씨가 이 모든 걸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0분 남짓. 재료가 손질돼 들어가 있는 밀키트(Meal Kit·손질된 식재료, 양념이 포함된 음식 세트) 덕이었다. 전날 마켓컬리에서 밀키트와 데워먹는 간편식 몇 개만 주문해 놓으면 집들이 준비는 끝이다.

영은씨는 곧 있을 크리스마스 홈파티도 밀키트 등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간편식) 제품만 믿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집콕’이지만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을 내고 싶어 이미 밀키트 전문 업체 프레시지의 ‘크리스마스 패밀리 파히타 세트’와 마이셰프의 ‘허챠밍 바닐라빈 뱅쇼’를 주문해놨다. 이처럼 바쁜 직장인, 1인 가구를 비롯한 소(小) 가구,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활력 있는 노년), 여기에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 모두 HMR을 당연하게 찾는 시대가 됐다.

HMR 선호 현상은 비단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다양한 ‘레디밀(Ready Meal)’ 제품이 사랑받고 있다. 한국보다 HMR 세계에 일찍 발을 들인 셈이다. 레디밀은 밀키트보다 간편한 형태로, 조리 과정 없이 데우기만 하면 되는 제품을 말한다. 1971년 개발된 ‘원조 HMR’인 닛신식품의 세계 최초 컵라면 ‘컵누들’도 일본 제품이다.

중국에서도 HMR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링허우(80后)’와 ‘지우링허우(90后)’로 불리는 1980~90년대생을 중심으로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2021년 초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티몰(T-MALL)에서 발표한 ‘춘절 식품 톱 10’에 따르면 HMR 관련 식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16배 증가했다.


“2023년 글로벌 HMR 시장 176조 규모”

이미 시대적 흐름이 돼버린 HMR은 팬데믹을 만나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외식이 줄어들면서 매끼 재료 손질부터 시작하는 요리가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HMR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이동민 강릉원주대 식품가공유통학과 교수는 “HMR에 편견이 있던 소비자도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HMR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편리함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HMR 시장은 2023년 1462억달러(약 176조17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닛신식품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컵라면 등 가정 내 HMR 소비가 증가하자 2020년 4~6월에는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배 늘어난 120억엔(약 1200억원)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도 팬데믹이 HMR 시장 성장을 빨라지게 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피플세이의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중 48%가 밀키트 서비스를 경험해봤으며 83%는 밀키트가 식당 방문을 줄이는 요인이 된다고 답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세계 최대 식품 브랜드인 네슬레는 2020년 미국 밀키트 배송 스타트업인 프레실리(freshly)를 15억달러(약 1조8075억원)에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팬데믹이 HMR 시장 성장을 도왔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0년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4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6년보다 약 89% 증가한 규모다. 국내에선 최근 5년간 HMR 관련 특허출원 건수가 연평균 7.3%씩 늘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상반기에만 32% 증가했다.

온라인 시장도 HMR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팬데믹으로 외출이 제한되자 편리한 온라인 쇼핑이 HMR의 주 구매처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식품 시장 조사기관인 이노바마켓 인사이트 글로벌에 따르면, 2020년 팬데믹 이후 레디밀 구매처로 온라인 소매점 이용이 늘었다고 답한 소비자가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가공식품을 주로 온라인에서 산다는 비중이 2018년 2.4%에서 2020년 11.4%로 늘었다. 새벽 배송 시장에 뛰어든 유통 업체가 늘어난 것도 HMR 배송의 질을 높였다.


춘추 전국 시대 HMR 시장, 필살기 경쟁

국내 HMR 시장은 2022년에는 5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나날이 높아지는 HMR 인기와 더불어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른바 ‘HMR 춘추 전국 시대’다. 대형 식품제조사는 물론 플랫폼 등 유통사와 외식 업체까지 가세하고 있다. CJ제일제당·풀무원·신세계푸드·SPC삼립·동원·롯데푸드 등 국내 식품 대기업은 최근 HMR 개발 부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인력을 늘리는 등 핵심 사업으로 HMR을 택하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전사 기준으로 최근 3년간 HMR 연구개발에 1500억원을 투자했으며, 신세계푸드는 매년 매출의 약 0.7%(약 90억원)를 HMR 기술 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식품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면사랑은 수년간 매년 100억원 이상을 연구개발과 기계·설비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은 직접 유명 셰프를 초청하기도 하고 특허를 내면서 ‘어떻게 하면 맛집과 같은 맛을 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기업은 대부분 사내에 HMR 전문 셰프를 두고 자체 개발한 레시피와 식품공학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박경리 신세계푸드 식품유통개발팀 팀장은 “셰프의 조리 기술을 적용해 상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아예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출시하는 RMR(레스토랑 간편식)을 찾는 소비자가 늘자 각 기업은 프리미엄 HMR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기업은 HMR을 먹으면서도 건강을 챙기려는 소비자 수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령 풀무원은 식물성 지향 사업에 집중해 ‘정면’이나 ‘두부텐더’ 등 HMR 비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윤명랑 풀무원 냉장 FRM 및 건면 마케팅 담당 상무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사람들이 HMR 중에서도 건강한 음식을 찾는데, 풀무원의 원물 가공 기술로 첨가물이나 합성 향, 조미료 등을 쓰지 않고도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내외 식품 기업은 어떻게 HMR 제품을 발전시켜 무한 경쟁에 돌입한 HMR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HMR 제품 개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내외 기업의 노력과 식품 연구자들의 HMR 시장 전망을 소개한다.


plus point

[Interview] 윤찬석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부장
“HMR 포장지에 신선도·안전성·기능성 추가…일본 의존 아쉬워”

이다비 기자

윤찬석 한국식품산업 클러스터진흥원 부장 독일 뮌헨공대 식품포장학박사, 전 독일 프라운호퍼 식품포장 및 공정 연구소(Fraunhofer IVV) 연구원, 전 CJ제일제당 포장 연구센터 개발팀장 / 사진 윤찬석
윤찬석 한국식품산업 클러스터진흥원 부장
독일 뮌헨공대 식품포장학박사, 전 독일 프라운호퍼 식품포장 및 공정 연구소(Fraunhofer IVV) 연구원, 전 CJ제일제당 포장 연구센터 개발팀장 / 사진 윤찬석

HMR 제품 포장지는 단순 디자인에 그치지 않는다. 포장지는 HMR 내용물의 신선도나 조리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다. 이로 인해 식품 기업은 HMR 맛을 극대화하고, 환경호르몬 등 포장재에 있을 수 있는 유해물질을 줄이기 위한 소재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식품 포장재 전문가 윤찬석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 부장은 12월 6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HMR 포장재 시장을 진단, 분석했다.

최근 HMR 포장 시장 특징은.
“HMR 소비가 증가해 포장 폐기물이 늘었다. 더불어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으로 인해 친환경 포장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포장업계는 감량, 재활용, 대체 소재(생분해) 등 다양한 방식의 환경친화적 포장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HMR 포장에는 여러 기술이 쓰인다. 국내 포장 기술력은 어느 단계인가.
“HMR 식품 포장은 유통 중 선도 유지, 조리 품질 향상과 편의성 등에서 혁신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식품 포장 기술은 소재, 기능설계, 친환경(재활용·감량·대체재), 안전평가 등 핵심 기술이 모두 충족돼야 우수하다. 특히 포장재 소재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장기 유통과 편의성을 확보하려면 포장재의 산소와 수분 차단성, 내열성 등이 꼭 필요하다. 다만 국내에는 고차단성 소재 기술이 부족해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햇반 등 즉석밥은 상온 장기유통을 위해 산소 차단이 필요해 일본으로부터 에틸렌비닐알코올(EVOH)을 100%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만약 일본에서 수출을 금지하면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 또 기능설계 부문에서는 HMR 내용물 상태와 콜드 체인 유통 상태에서 개봉하지 않고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지시계 기술 등이 중요해졌다.”

HMR 포장재가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도 있다.
“이는 포장 기술 중 내용물 안전성에 해당한다. 식품 포장재에는 합성수지, 종이, 금속 등 다양한 소재가 쓰인다. HMR 제품은 최근 포장째 전자레인지에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고온에 포장재가 노출되면 포장재에 잔류하는 유해물질이 식품으로 옮겨간다. 이를 방지하려면 건강 관점에서 국내 식품 포장 관련 법규를 체계화하고 관리 기술을 키워야 한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부터 포장재를 식품첨가물로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허용 물질 목록 기준 체계로 포장재 성분을 관리하고 있다.”

HMR 포장 시장의 전망은.
“폐기물 저감, 안전성 확보, 기능성이 부각될 전망이다. 앞으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고품질 포장이 나올 것이다. 다만 이를 따라가려면 원가가 오른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에게 이 같은 제품 가격 상승 요인이 소비자 안전을 위한 것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다비·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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