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경 MBK 파트너스 부사장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전 모건스탠리 프로퍼타이즈 코리아 상무, 전 안진회계법인 시니어 사진 MBK 파트너스
이인경 MBK 파트너스 부사장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대 경영대학원 석사, 전 모건스탠리 프로퍼타이즈 코리아 상무, 전 안진회계법인 시니어 사진 MBK 파트너스

“자신 없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인데도 ‘하고 싶지 않다’며 본인을 속이지 마세요. 고민될 때는 눈 딱 감고 ‘예스’라고 외치세요.”

1월 19일 서울 광화문 MBK 파트너스 본사에서 만난 이인경 부사장은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여성 불모지인 자본시장 업계의 유리천장을 뚫었다고 해서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를 풍길 것이란 예상은 착각이었다. 그는 “남자들을 따라 하지 말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고, 내 정체성을 유지하며 항상 도전하라”고 했다.

이 부사장은 미국 ‘포브스’가 뽑은 ‘2021년 아시아 파워 비즈니스우먼 20인’ 중 한 명이다. 여성 임원 비율이 5% 이하인 한국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2020년 임원급인 파트너로 승진하며 반향을 일으킨 점이 주목받았다. 그녀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 파트너스의 17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 파트너이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추고, 130여 곳의 국내외 출자자(LP)와 원활히 소통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처음부터 높은 자리를 좇아온 것은 아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보험사에 취직한 뒤 결혼을 했다. ‘아이 키울 때쯤 일을 그만둬야지’하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은 어느 날 같은 건물에서 일하던 회계사들을 보면서 깨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목표는 무엇일까’라고 자문하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우선, 회계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준비할 방법을 몰라 경영대학원부터 진학했다. 학업 도중 임신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처음부터 육아와 함께해야 했던 회계사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그의 도전은 부동산 투자회사를 거쳐 사모펀드 업계에 닿게 했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버티는 자가 이긴다’는 말을 기억하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1991년부터 일했다. 일하며 힘들었던 점은.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들이 가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아 여자 선배가 없었다. 출산하고 취직한 회계법인에는 여성이 10% 정도뿐이었다. 회계사들은 팀을 짜서 일하고 업무량이 많다 보니 편한 사람이랑 일하는 걸 좋아했는데, 여성들과 일한 경험이 많지 않아 여성을 팀원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특히 나는 기혼자에 아이 엄마라고 하니 얼마나 더 불편했겠나. 자연스레 원하는 일을 맡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선배들에게 혼나고 배우며 성장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혼자 일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은 고민 끝에 남자 선배한테 ‘멘토가 되어주세요’ 했더니 상당히 난처해하더라. 큰 충격을 받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여성이 일하고 있고, 기업문화도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멘토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은 적극적으로 여자 후배를 챙겨주고 조언해줘야 한다. 후배들도 어려움이 있다면 혼자 앓지 말고 찾아가서 물어보라.”

육아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커리어 공백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 같다. 과거보다 여성들의 근무환경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여성들이 일하려면 다른 여성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 그렇지만 육아가 힘들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든 시간을 버틴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고, 서로 의지하고 극복했으면 한다. 물론 ‘여성이 꼭 일해야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인데도 상황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속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리 포기해서 영원히 후회하지 말고, 둘 다 도전해보라.”

사모펀드 업계에도 변화가 있나. 여성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물론이다. 국내에서도 ‘여성 인력을 더욱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는 등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 사실 국내에서 사모투자 운용업은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통과하면서 시작돼, 역사가 짧다. 그만큼 업계에 대한 인지도도 낮다.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고 경력직으로 뽑는 경우가 많아 특정 출신에 편중되고 여성이 많지 않았다.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다 보니, 성향이 비슷한 남성을 뽑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여성들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물론, 투자 부문에서 균형감이 중요해지면서 여성 인력들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다. 소비재나 서비스업, 헬스케어 등 여성이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산업이 성장해 투자처가 다양해진 것뿐만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도 이유다. 가까운 사례로, ‘위미노믹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캐시 마추이(Kathy Matsui) 전 골드만삭스 일본 부대표는 지난해 ESG 가치를 강화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는 펀드를 결성했다. 사모투자 업계에서도 여성들이 활약할 수 있는 경계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여성 사외이사가 늘었다. 어떻게 보나.
“긍정적이지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한 명이 이사회에 들어갔다고 해서 기업을 바꾸기는 어렵다. 많은 학자는 여성이 조직 내에서 30%를 넘어서야 조직과 소통 방식, 인사평가 방식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더 많은 여성 임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 개정안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개정법에 따라 여성 사외이사를 늘리기 위해서는 선행돼야 하는 것이 있다. 중간급 여성 관리자를 키워야 하므로, 기업의 문화와 제도, 경영자들의 인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업들이 법에서 요구하는 이상으로 자격 있는 여성들을 이사회에 영입해 의미 있는 다양성이 확보됐으면 한다.”

여성들이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여성들은 자신을 많이 낮추는 편이다. 자신감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덜 유능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능력이 있으니까 기회도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져라. 물론 자신감을 논하기 전 실력을 쌓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또 여성들은 도움을 주고받는 데 인색한 경향이 있는데, 이 부분도 바꿔나가면 좋을 것 같다. 자기 일만 신경 쓰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 같이 잘돼야 조직이 잘된다고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는 시야를 길러라.”

여성이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사회나 기업이 도와줘야 할 부분은.
“당연히 육아 문제다. 육아는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업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할 때 눈치를 보게 만들지 말고, 다시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여성을 뽑는 건 손해’라는 인식을 갖지 않게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다. 어려울 때 회사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여성들이 나중에 회사 조직에 배로 갚을 거다. 여성을 억지로 뽑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리더로 나아갈지, 중간 관리직에 머무를지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리더가 되면 일과 삶의 균형이 흐트러진다거나, 아이에게 지금보다 더 신경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포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중간 관리자는 영원히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리더가 되면 불합리한 건 고쳐야 한다고 말할 수 있고, 비즈니스에서 방향을 제시할 기회도 많아진다. 상사의 지시를 따를 때보다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다. 그간 발휘하지 못했던 능력을 펼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손들지 않으면 기회는 다른 사람한테 넘어간다는 걸 기억하라.”

마지막으로 여성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기회가 있다면 예스라고 외쳐라. 실패할까 봐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지 말아라. 도전하지 못한 건 평생 한이 되지만, 도전했다가 실패한 건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다. 도전은 개인을 성장시키는 걸 넘어, 인생을 충만하고 즐겁게 만든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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