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르메스와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가 만든 비건 가방 ‘빅토리아 백’. 마이코웍스2 힐튼 런던 뱅크사이드 호텔의 비건 스위트 객실. 힐튼 호텔앤리조트 3 뷰티 브랜드 러쉬의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 러쉬코리아 4 구찌의 목재 펄프 소재 스니커즈 ‘데메트라’. 구찌
1. 에르메스와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가 만든 비건 가방 ‘빅토리아 백’. 사진 마이코웍스
2. 힐튼 런던 뱅크사이드 호텔의 비건 스위트 객실. 사진 힐튼 호텔앤리조트
3. 뷰티 브랜드 러쉬의 동물실험 반대 캠페인. 사진 러쉬코리아
4. 구찌의 목재 펄프 소재 스니커즈 ‘데메트라’. 사진 구찌

2021년 3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식물성 소재 가죽으로 만든 가방 ‘빅토리아 백’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출시일이나 가격 등 세부 정보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명품 브랜드에서도 최상위로 꼽히는 에르메스가 식물성 소재 가방을 만들 거라는 소식은 전 세계 패션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간 에르메스를 대표했던 가방은 ‘악어백’이다. 대표 제품 ‘켈리백’이나 ‘버킨백’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악어는 약 두세 마리로 알려져 있다. 에르메스는 이 가죽을 자체 생산하기 위한 악어 농장도 이미 여럿 소유했으며, 심지어 2020년 11월에는 호주에 새 악어 농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혀 전 세계 동물보호단체와 비건(Vegan·채식주의자) 운동가들로부터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그런 에르메스가 전혀 뜻밖의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3년간에 걸친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 ‘마이코웍스(MycoWorks)’와 에르메스의 독점 협업으로 이뤄졌다. 마이코웍스는 버섯에 기생하는 곰팡이 뿌리에서 채취한 균사체를 이용해 ‘실바니아(Sylvania)’라는 이름의 비건 가죽을 개발했다. 실바니아 가죽은 촉감과 내구성이 일반 동물성 가죽과 비슷하지만, 이산화탄소 등 온난화 물질 배출량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르메스가 당장 모든 제품에서 동물 가죽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동물 가죽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의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비건 패션(가죽, 모피, 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패션)’으로 변화 움직임이 낯설지만은 않다. 이미 구찌, 샤넬, 프라다, 버버리 등 많은 명품 브랜드가 모피 사용을 중단했으며, 나아가 새로운 식물성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구찌는 목재 펄프 소재의 스니커즈 ‘데메트라’를 출시했고, 루이비통은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 플라스틱 ‘바이오폴리’와 재활용 고무·섬유·나일론 등 소재를 함께 활용해 만든 ‘찰리’ 스니커즈를 판매했다. 이뿐만 아니라 아디다스, H&M, 노스페이스, 헤지스, 구호 등 국내외 기존 패션 브랜드도 잇따라 비건 제품을 출시했다. 이 밖에 브랜드 탄생부터 ‘지속 가능’ 패션 철학을 고집해온 세이브더덕, 올버즈 등을 비롯해 식물성 소재 섬유나 가죽 개발 스타트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기류의 배경에는 비건 패션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는 2020년 8월 발표한 자료에서 2019년 약 3969억달러(약 473조원) 규모였던 전 세계 비건 여성용 패션 시장이 2020년 이후부터 연평균 13.6% 가파르게 성장해 2027년에는 1조956억달러(약 1306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건, 식습관에서 삶의 전반으로

과거 ‘비건’은 육류는 물론 계란, 생선, 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 이 단어는 식습관뿐만 아니라 패션, 뷰티, 여행 등 삶의 전반에서 동물 보호의 가치를 실현하는 의미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를 반영한 철학이자 신념인 ‘비거니즘(veganism)’ 확산과 함께 비건이 이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비거니즘’은 영국 단체 ‘비건 협회(Vegan Society)’ 공동 설립자인 도널드 왓슨과 도로시 왓슨이 만든 용어다. 이들은 비거니즘을 ‘최대한 가능하고 현실적 범위에서 모든 형태의 동물 착취를 지양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책 ‘비건 세상 만들기–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안내서’를 쓴 벨기에 비건 운동가 토바이어스 리나르트는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비건 운동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비거니즘의 확산 기류는 다양한 산업계의 변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비건 관련 산업을 뜻하는 ‘비거노믹스(vegan과 economics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 범위는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기획한 배경이다. 식품 업계는 대체육, 대체 우유 등 식물성 먹거리 개발에 적극적이다. 뷰티 업계에서는 소위 ‘클린 뷰티’ ‘비건 뷰티’를 표방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이들은 화장품 제조·가공 단계에서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며, 동물실험에 반대한다. 벤틀리, 볼보, 벤츠, 현대차 등 굴지의 국내외 자동차 브랜드들은 차내 마감재로 사용할 식물성 소재 가죽 개발을 선언했다. 여행 업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호텔들은 객실 내 인테리어와 소품을 식물성 소재로 사용한 비건 객실을 선보이고 채식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비거니즘 열풍의 이유는 뭘까. 기후 변화, 동물 복지, 식량난 등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인식 향상,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따른 가치관 변화, 새로운 소비 주류층으로 떠오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미닝아웃(meaning out·가치관이나 신념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행위) 성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부각 등이 꼽힌다. 벤저민 보이어 ESCP 기업가정신학부 교수는 “비거니즘이 보편화할수록 단순히 ‘비건’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다”며 “소비자들은 동물과 사람,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윤리적 소비’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황영희 한국비건인증원 대표
“신제품 출시 전부터 비건 인증 문의 기업 늘어”

이소연 기자

황영희 한국비건인증원 대표 한양대 박사 수료,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근무 사진 한국비건인증원
황영희 한국비건인증원 대표 한양대 박사 수료,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근무 사진 한국비건인증원

한국비건인증원은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정한 국내 최초의 비건 인증 기관이다. 인증원에서 비건 인증을 받은 제품 수는 2018년 13개에서 매년 적게는 227개, 많게는 759개까지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신규 인증 제품이 역대 최대치인 1257개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조선’은 2월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의 황영희 한국비건인증원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떻게 인증하나.
“국내외 기업의 비건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생활용품, 소비재 완제품의 베이스가 되는 원료의 제조·가공·조리 단계에서 동물 유래 원재료가 포함되지 않았는지 여부를 심사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식물성 원료만이 포함된 제품에 비건 인증을 부여한다. 소비자는 세부 원재료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비건 제품을 선택할 수 있게 돕고, 기업은 자신의 비건 제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게 한다.”

어떤 기업이 비건 인증을 신청하나. 
“더욱 전문적인 인증제도를 통해 자사 제품이 비건임을 소비자에게 증명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문을 두드린다. 각 제품의 제조 기업에서 자사 제품을 비건이라고 표시할 수 있지만, 기업마다 그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제삼자가 이를 인증하는 시스템을 통해 신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거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비건 원료도 있다. 이런 경우 인증원의 인증을 통해 전체 원료에 대한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산업 사슬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등 전문 제조 기업, 마케팅 및 브랜딩을 주로 하는 판매 기업, 유통기업 등으로 더욱 분업화되면서 이들 기업은 비건 원료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인증원을 찾는다.” 

비건 제품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이전에는 인증원에 자사 제품이 비건에 해당하는지를 문의하는 기업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신제품 출시 전 단계부터 아예 비건 제품을 개발하고 기획하기 위한 문의도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는 음식점, 학교 급식실, 군대 등 모든 공공장소에서 비거니즘을 추구하는 사람이 방해받지 않도록 사회적 기반이 구축될 것이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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