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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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디지털 자산 경제의 발전과 과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직후인 2월 26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 트위터에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지갑 주소를 공개하고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개인 대 개인(P2P) 방식으로 운영되는 탈중앙화거래소(DEX) 유니스와프는 다른 암호화폐를 자동으로 비트코인·이더리움으로 바꿔서 기부할 수 있는 솔루션을 공개했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 장관 등은 이 솔루션을 SNS를 통해 알렸다. 

2월 28일까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다른 비정부 기관(NGO)이 암호화폐로 모금한 금액은 2300만달러(약 280억원)가량이다.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 석방 기금 마련을 위해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를 판매한 그룹이 190만달러(약 23억원)의 판매 수익을 기부했다. 일종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인 ‘우크라이나 DAO’도 활발히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은행 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 러시아 배제에 나섰지만, 암호화폐가 구멍을 만들면서 러시아발 암호화폐 보유가 급증했다. 중국인이 세운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러시아 사람의 거래를 막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미국 등이 별도 암호화폐 제재 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게 됐다. 다른 한편에선 우크라이나 기부 캠페인을 빙자한 사기도 기승을 부린다. 익명성과 중앙통제를 거부하는 디지털 자산 경제가 각국 정부의 주권과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암호화폐만 디지털 자산 아냐…디커플링 본격화”

2021년 11월 6만7553달러(약 8200만원)까지 갔던 비트코인 가격(미국 코인데스크 기준)은 2022년 1월 23일 3만5071달러(약 4300만원)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이더리움도 4811달러(약 590만원)에서 2442달러(약 300만원)까지 급락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축소하자 변동성이 크고 리스크가 높은 자산인 암호화폐도 된서리를 맞았다. 

암호화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안 화폐’나 ‘디지털 금’으로 간주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금융자산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다. 미국 S&P500 주가지수 등락과 비트코인 주간 수익률 간의 상관관계는 2015~20 19년 0.06에 불과했던 반면, 2020~2021년에는 0.237로 증가했다. 상관관계는 두 변수가 어느 정도 연관되는지 측정한 값으로, 0이면 관련이 전혀 없고 1이면 똑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은 가격 급락에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암호화폐 기반의 금융 서비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들을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미들웨어), NFT, DAO 등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 리서치 회사 메사리는 지난해 말 발간한 ‘크립토 디시스 2022(Crypto Thesis 2022)’에서 “디지털 자산은 분야별로 다른 가치 생성 요인(value driver)을 갖고 있다”며 “암호화폐와 다른 디지털 자산 간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새로운 인터넷인 ‘웹3.0’으로의 전환은 비가역적(非可逆的)이다”라며 “관련 산업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그것이 암호화폐 기반 금융상품이나 NFT 시장의 성장 시대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탈중앙화거래소 FTX다. 미국 MIT를 졸업한 샘 뱅크먼 프리드(1992년생)가 2019년 설립한 곳으로, 암호화폐와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취급한다. 암호화폐 기반 금융 서비스는 대개 플랫폼이 발행한 토큰(디지털 증서)을 이용한 자동화된 ‘투표’ 방식으로 운용된다. 암호화폐 간 대차 거래에 따르는 수익률 산정과 정산도 자동시장조성자(AMM)라는 알고리즘이 맡는다. 금융공학에 기반을 둔 방식도 적극 사용된다. 암호화폐를 업체에 예치하고 고정된 대가를 받는 이른바 ‘이자 농사(yield farming)’의 경우 원자재 선물옵션을 매도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그 대가 중 일부를 주식연계 워런트(ELW)로 받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암호화폐 가격 하락과 상관없이 수익을 내는 투자자들이 등장한 이유다. FTX의 기업 가치는 320억달러(약 39조23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7년 세르게이 나자로프가 설립한 체인링크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외부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미들웨어 서비스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그 안에서만 정보가 움직이는 일종의 폐쇄 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있다. 주가, 금리, 원자재 가격, 날씨 등 금융 시장의 주요한 정보를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전달받을 수 있다면 보험이나 파생금융상품 등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체인링크가 공략하는 지점이다. 


美 FRB, “암호화폐가 초래할 시스템 리스크 크다”

문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이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규제받지 않는 반면, 유동성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를 우려한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6월 달러화 등 실물 자산에 그대로 연계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살쾡이 같은 스테이블코인 길들이기’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19세기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었을 때 상업은행들이 알아서 발행하던 은행권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봤다. 약간의 지급준비금을 가지고 행하는 일종의 ‘신용창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과 동일한 수준의 지급준비 여력을 갖추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암호화폐를 이용해 대형 IT 회사가 금융시장을 장악할 위험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인 암호화폐 시장 거품론 논란만 바라보면 암호화폐 넘어 예고되는 거대한 메가트렌드를 놓칠 수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암호화폐 기반 비즈니스 탐구에 나선 배경이다. 

기존의 규제 체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프리마베라 디 필리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암호화폐를 비롯해 디지털 자산을 규제하려고 할 때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 자산이 교환 기능이 있는 전자상품권, 금융투자상품, 의결권, 당사자 간 계약 등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존 법률 중 어떤 것을 적용할지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귀동·이정수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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