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록 하이퍼리즘 대표 서울대 경영학, 전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심사역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오상록 하이퍼리즘 대표 서울대 경영학, 전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심사역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2월 2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바로 옆에 있는 한 빌딩. 피부과와 치과가 자리 잡고 있고 미용실, 약국, 피자 가게 등이 입주해 있는 이 건물 6층에 들어서니 20명이 조금 넘는 직원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헐렁한 티셔츠 등이 영락없이 흔히 ‘프로젝트’라 불리는 대규모 과제를 하고 있는 공대생으로 보였다. 유리창 너머로는 서울대 신공학관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어렴풋이 보였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예비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가 넘는 비상장 기업)’으로 꼽히는 가상자산 투자 회사 하이퍼리즘의 모습이다. 이전에 이 사무실은 매쉬코리아, 헤이딜러(피알앤디컴퍼니), 포티투마루 등이 입주해 있었다.

투자 전략을 짜는 회의를 끝내고 만난 오상록 대표는 하이퍼리즘에 대해 “고빈도매매(HFT)를 기본으로 다양한 퀀트(계량분석) 전략을 통해 암호화폐 등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 오 대표는 2018년 1월 이원준 대표와 함께 창업했다. 오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 등 사모펀드 업계에서 일했다. 같은 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재학 시절부터 스타트업 창업을 계속했었다.

이 대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은 국경 없는 미래의 금융 시장”이라며 “전통적인 금융 산업이 하기 어려운 글로벌 진출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 시장이 전 세계를 묶었듯 디지털 자산도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기술력과 뛰어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충분히 경쟁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공대생 분위기를 풍겼던 임직원들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나 수학과를 졸업했고, 국제 수학·물리·정보올림피아드 입상자도 다수였다.

하이퍼리즘은 국내 가상자산 투자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로 꼽힌다. 수학이나 공학을 기반으로 한 퀀트 투자 기법을 활용해 가상자산에 투자한다. 본사는 일본에 있고 7개국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아 매매한다. 대기업, 슈퍼리치가 자신의 자산 운용을 위해 설립한 패밀리오피스, 벤처캐피털(VC), 가상자산 회사 등이 고객이다. 2018년 1월 설립돼 벌써 5년 차 기업이다. 초기 자금을 카카오가 댔다. 이후 시리즈A 투자는 VIP자산운용,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스프링캠프가 했고, 시리즈B 투자는 해시드, 위메이드, 코코네, 삼성넥스트, GS퓨처스를 비롯해 미국 코인베이스가 참가했다. 시리즈C 투자 유치도 준비 중인데, 기업 가치는 80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암호화폐를 대상으로 한 퀀트 기법 운용이 사업 모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전통적인 금융투자 업계에서 사용되는 퀀트 투자 기법 그리고 고빈도매매를 암호화폐 시장에 적용한 것이다. 시장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전통적인 퀀트 기법과는 세세한 점이 다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를 통해 암호화폐 가격 등락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게 목표다. 1년이 52주인데, 그 가운데 1~2주를 제외하면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사업 방식에서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기관투자자들, 즉 기업이나 금융사의 자금을 위탁받아 매매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개인들이 암호화폐 투자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은 기관투자자가 대표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거래량의 60%를 차지한다.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가격 움직임이 큰 암호화폐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회사를 찾아 돈을 맡기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본다. 전문 운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진입 장벽이 좀 있다. 상당한 인력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상자산 사업자 인증을 받은 전문 위탁매매 회사는 하이퍼리즘뿐이다.”

어떻게 해서 창업하게 됐나.
“처음에는 퀀트 기반 펀드에 관심이 있었다. 현재 미국 자본시장 모습이 3~5년 뒤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해왔다. 미국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운용사 다수가 퀀트 기반이었다. 창업 여건도 나쁘지 않다고 봤다. 미국 MIT와 비교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 수준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재능 있는 공학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게 관건인 퀀트 운용사 입장에서 기회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던 중에 암호화폐를 접하고 사업 방향을 바꿨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창업하더라도 글로벌로 진출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뛰어난 자산운용사라도 한국 밖으로 나가기 힘들다. 능력의 문제보다 자본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호화폐라는 건 국경 없는 시장이었다. 한국이나 베트남에서도 실력만 있다면 세계 1, 2등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2017년 이 대표와 창업 준비에 나섰다.”

본사가 일본에 있다. 이유가 있나.
“2017년 창업 준비 당시 암호화폐 위탁 매매와 관련한 법규가 있는 곳이 일본이어서다. 한 일본 은행으로부터 투자받게 되는 등 일본계 자금이 들어온 것도 고려했다. 하이퍼리즘은 일본, 한국, 홍콩에 사무소가 있다. 현재 고객 절반이 한국의 기업 고객이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이 일본, 미국, 홍콩,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등 6개국에 있다.”

해외 고객 비중이 높다. 한국 스타트업인데 해외에서 돈을 맡기는 이유가 있는가.
“기본적으로 암호화폐 사업은 인터넷 사업이다. 한국인이 미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미국인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듯 투자자들이 가장 좋은 회사를 찾아간다. 자본시장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모든 회사는 처음부터 글로벌 회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금융 산업이 규제 산업이고 고객과 관계가 중요했다면, 암호화폐 기반의 디지털 금융 산업은 프로덕트(제품)가 중요한 첨단 제조업에 가깝다.”

기술력과 인력의 질을 강조한다. 가상자산 시장이 성숙해도 하이퍼리즘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영역이라 최고 수준의 인재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현재 엔지니어들은 서울대 수학과나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이들인데, 기존 금융 시장의 퀀트에 대해서 배웠던 이들은 아니다. 중앙집중화한 거래소가 아니고 개인 간(P2P) 거래이기 때문에 시장 구조가 다르고,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다르다. 가격 형성, 자본 조달 등 작동되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 시스템을 짜야 한다. 암호화폐 기반의 탈중앙화 금융 시장의 퀀트 회사가 학습하고 구축한 시스템적인 우위가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1~2년 전부터 디파이(DeFi·탈중앙 금융) 등 암호화폐 기반 금융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망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앞으로 모든 금융 회사가 암호화폐화할 거라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은 새로운 인터넷이다. 그리고 탈중앙화 거래소가 늘어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암호화폐 지갑을 가진 사람 수가 2002년 이메일 계정을 가진 사람 수보다 더 많다. 기술적인 수용성이 높기 때문에 관련 상품, 서비스, 기술도 이메일보다 빠르게 확산할 것이다.”

조귀동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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