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1917’의 한 장면. 사진 IMDB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1917’의 한 장면. 사진 IMDB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2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 개시를 선언한 이후, 세계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다. 러시아의 폭격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 도시들은 폐허가 됐고, 독일 등 인접 국가는 군비 증강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쟁 포화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안보만이 아니다. 경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 루블화는 서방의 경제 제재 여파로 지난 3주간(3월 14일 기준) 32% 폭락했다. 러시아 증시는 우크라이나 침공일인 2월 25일 이후 계속 폐장된 상태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하면서 러시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이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진 3월 6일 국제 유가는 2008년 이래 1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해 ‘제3차 오일쇼크’ 우려마저 나왔다. 

전쟁의 포화가 경제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이 발발하면 우선 경제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불확실성은 소비 및 투자 심리를 위축시켜 실물 경제 타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정부 지출이 늘어 경제가 급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글로벌 경제에 블랙스완(예상 못한 위기)이 될까. ‘이코노미조선’이 전쟁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는 기획을 한 배경이다. 


곡물, 석유 급등…하이퍼인플레 부를까

국제통화기금(IMF)은 3월 5일 성명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밀, 다른 곡물의 상품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면서, “전 세계가 물가 상승 충격을 받을 것이고 각국 정부는 식료품과 연료비 지출률이 높은 빈곤층에 대한 재정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달 대비 7.9% 상승한 것으로 예측됐으며, 이는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다. 

그렇다면 전쟁이 야기한 최악의 인플레이션(인플레)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초 독일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꼽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1921년 6월부터 1924년 1월 사이, 독일은 약 10억 배에 달하는 물가 상승을 겪었다. 전쟁 자원 조달을 목적으로 통화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통화량(유동성)이 늘어나면 현금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실물 가치는 상승한다. 전쟁 인플레의 또 다른 요인은 생산 시설 파괴로 인한 기업의 생필품 공급 능력 저하다. 1920년대 초 독일에선 엄청난 가격표를 감당하기 위해 역사상 최고액권인 1조마르크 지폐가 발행되기도 했다. 

경제 제재와 자원의 무기화도 전쟁 인플레를 유발한다. 제4차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1973년 오일쇼크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 속 물가 상승)을 유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석유·가스 등 자원 대국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러시아 침공 이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베네수엘라, 유가 전쟁 승자 되나

미국은 3월 8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독자 제재를 발표하기에 앞서 3월 5일 베네수엘라로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만났다. 모자란 원유 수요를 베네수엘라산 원유로 충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베네수엘라가 막대한 반사 이익을 얻으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 나라가 치르는 막대한 전쟁 피해는 때때로 다른 나라의 이득으로 작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자국 영토가 전쟁에 휩싸이지 않은 덕에 생산 시설을 보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대규모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한 유럽 국가에 무기와 상품을 팔아 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은 전쟁으로 초토화가 된 반면, 미국은 전쟁 직후 전 세계 GNP(국민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일본 역시 한국전 발발 당시 전쟁 특수를 누렸다. 일본 경제안정본부에 따르면, 한국전 발발 직후 1년 동안 일본이 누린 경제적 이익은 3억1500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제망이 과거보다 훨씬 더 촘촘해진 오늘날엔 과거와 같은 전쟁 특수가 발생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여성 근로자가 군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과 경제는 긴밀한 상호 관계를 보여왔다. 사진 셔터스톡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여성 근로자가 군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과 경제는 긴밀한 상호 관계를 보여왔다. 사진 셔터스톡

전쟁 경제의 명(明)과 암(暗)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세계의 제재는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러시아의 GDP(국내총생산)는 최대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며(유라시아그룹 자료), 세계 11위권 규모의 러시아 경제 파탄은 전 세계에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각에선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후폭풍을 연상케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전쟁이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일시 부양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 경제분석국(BEA) 자료에 의하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직전인 1940년 미국의 GDP 성장률은 8.8%였다. 그런데 일본의 진주만 습격 이후 미국이 참전을 결정한 1941년엔 GDP 성장률이 17.7%로 1년 사이에 약 9%포인트 성장했다.

군 징집으로 실업률이 크게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 BBC에 따르면,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1933년 독일 실업자 수는 역대 최고인 610만 명에 달했다. 국민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실업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이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에 돌입하면서 실업률 역시 대폭 떨어졌다. 월터 갈렌슨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1939년 당시 독일 실업률은 2% 미만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였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전쟁 시 정부의 지출 급증은 막대한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991년 걸프전 당시 미 정부 부채 증가율은 전쟁 전 6.8%에서 전쟁 후 10.8%로, 4%포인트 높아졌다. 


plus point

한반도 전쟁, 글로벌 공급망 직격탄

남북한 대치 상태에 있는 한국은 언제나 전쟁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영국 글로벌 컨설팅 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는 2017년 자체 분석 리포트를 통해 “한국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약 7000억달러(약 879조9000억원)가 소멸되고, 이는 (2016년 기준) 전 세계 GDP(75조3000억달러)의 1%가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한국은 지역 및 글로벌 제조 공급망과 긴밀하게 통합돼 있어 한반도 전쟁은 곧바로 세계 경제의 충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점유율은 37%로 2020년 기준 세계 1위다. 또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1년 매출 기준 70%를 점유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으로 LCD와 반도체 생산이 멈추면 세계 전자 제품 가격은 최소 두 배 이상 폭등하고, 그 여파로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져 각국 중앙은행은 높아진 인플레 압력 때문에 금리 인상 압박을 심하게 받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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