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창립자 겸 회장현 세계 정책 연구소 선임 연구원, 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최연소 교수 사진 유라시아그룹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창립자 겸 회장 현 세계 정책 연구소 선임 연구원, 전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최연소 교수 사진 유라시아그룹

올해 1월 글로벌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매년 초 발간하는 ‘세계 10대 지정학적 리스크’ 보고서에서 올해 최대 위험 요인 가운데 하나로 러시아를 꼽았다. 보고서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벼랑 끝(knife-edge)에 섰다”면서, “작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인근에 점진적으로 병력을 보강한 것은 유럽의 안보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 “러시아의 이 같은 의지가 미국 및 서방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경우, 러시아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나온지 한 달 남짓한 2월 24일(현지시각),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등 세 지역에 대한 동시 공격을 감행했다. 전쟁이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세계의 관심은 향후 이 전쟁이 글로벌 경제와 외교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에 쏠려 있다.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Ian Bremmer) 회장은 3월 8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전쟁의 승부와 관계없이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의 경제와 정치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신냉전 등 세계적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레머는 정치 발전과 국가 안보가 세계 시장 및 투자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세계적인 정치·경제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창립자 겸 회장이다. 정부, 사회, 안보, 경제 등 네 개 분야에서 정치적 충격 흡수 능력을 평가해 산정한 ‘세계 정치 위험 지수(GPRI)’를 개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다음은 브레머 회장과 일문일답.


3월 4일(현지시각) 러시아 전쟁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 장관과 우르줄라 폰 데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 EPA연합
3월 4일(현지시각) 러시아 전쟁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토니 블링컨(왼쪽) 미 국무 장관과 우르줄라 폰 데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사진 EPA연합

서방의 경제 제재가 러시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서방의 제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북한·이란·베네수엘라 같은 ‘왕따 국가(pariah states)’와 달리, 러시아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스템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은 러시아를 굉장히 위태롭게 할 것이다. 러시아 GDP(국내총생산)가 10%가량 줄어들고, 이는 소비재와 중간재 부족으로 이어져 결국엔 러시아 국내 생산 문제로 귀결된다. 국내 생산 부족은 물자 부족을 악화시켜 물가가 급등하는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경제 제재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를 바꾸는 데 ‘효과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잠재적 경제 손실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굴하지 않고 있으니까.”

왜 푸틴은 물러서지 않나.
“글쎄. 푸틴이 경제적 손익계산서를 따져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건 아니라고 본다. 전쟁이 푸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서방의 제재가 미적지근하다고 가정했을 경우에도 이 정도 규모의 군사 작전과 유럽에서 두 번째 큰 나라(우크라이나)를 장기 점유하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 순수한 손실이다. 우크라이나 공격엔 이데올로기적, 안보적 목적과 푸틴의 사명감이 동시에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국제 사회가 이 정도로 반발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각각 분열된 행동을 취하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관계 설정,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 병력 철수로 인한 잡음에 정신이 없고, 논란의 여지없이 유럽의 리더 역할을 했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작년에 사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EU의 ‘전략적 자주’를 내세우며 미국과 거리 두기를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방의 반응은 푸틴 예상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이젠 물러날 수 없다.”

중국은 어떤 액션을 취할까.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다. 그 편이 경제·에너지·기술 측면에서 중국에 훨씬 이득이 될 테니까. 러시아와 가깝다는 것을 강조해 서방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것, 그로 인해 글로벌 경제 무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중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중국과 서방의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푸틴은 국지전을 택하겠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짧게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서방 원조, 러시아의 군사 능력 등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고사하고 일부 지역조차 쉽게 점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정치와 명분상 이유로) 쉽게 물러나지도 않을 것이다. 대치 상황이 장기화하면 앞서 언급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의 효과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전쟁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는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는가.
“석유·가스 산업의 타격과 그로 인한 연쇄 반응 등이 즉각적 여파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본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 국가의 에너지 정책 방향과 투자를 (청정에너지 쪽으로) 돌리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유럽 국가는 이미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에 들어갔다. 장기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자원 수출에서 얻는) 수익과 지정학적 레버리지(영향력)를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긴다면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이 더 높아질까?
“전쟁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고, 러시아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전쟁에 이기더라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예속시킬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반(反)러시아 정서는 강해지고, 서방의 대응은 강경해질 것이며, 러시아 경제는 파탄 나고, 경제는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러시아로선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지는 게임이다. 이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푸틴은 예측하기 힘든 인물이고, 전 세계 핵무기의 절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냉전 이후 그 어떤 때보다 힘이 실리고, 체계적이 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무기력했던 나토가 이제야 비로소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이 동맹의 뚜렷한 목적성과 사명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하드파워(소프트파워와 대비되는 군사·경제력)의 중요성에 눈뜬 EU엔 이 동맹이 더욱 절실하다. 적어도 현재까지로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유럽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계속 남을 수 있을지는 2024년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번 전쟁이 신(新)냉전의 시초가 될 수도 있을까.
“러시아 대(對) 미국 및 EU 연합이라는 신냉전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 냉전보다 더 위험하기도 하고, 덜 위험하기도 하다. 덜 위험한 이유는 현재 러시아의 경제력, 지정학적 영향력이 구소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축됐기 때문이다. 반면 더 위험한 이유는 유럽 내에서 직접적 군사 충돌 위험을 줄여줄 가드레일, 이를테면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이나 항공 자유화 조약(Open Skies Agreement)이 조약 폐기와 러시아의 탈퇴 등으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사이버 전쟁과 하이브리드 전쟁에선 미국과 얼추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사이버·하이브리드전에 쓰이는 무기는 1차 냉전 때 쓰였던 그 어떤 무기보다 유용성이 뛰어나고 적을 교란시키는 능력이 탁월해 훨씬 위험할 수 있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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