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big government is over)”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연단 아래에 조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현재,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의 호언장담을 완전히 뒤집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3월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경기 부양안인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 법안에 서명했다. 약 1조9000억달러(약 2100조원) 규모인 이 법안은 성인 1인당 현금 1400달러(약 157만원)를 지급하는 한편, 실업 급여를 연장하고 코로나19로 붕괴된 학교의 정상화를 돕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법인세율을 기존 21%에서 28%로 올리고, 연간 45만달러 이상 고소득자 세율을 37%에서 39.6%로 높이려 했지만, 2021년 10월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바이든이 (큰 정부 옹호론자였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정부 지출 증대뿐 아니라 규제의 칼끝이 날카로워지는 것도 큰 정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5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역대 최대 행정 조직(18부 5처 18청)을 가진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작고 유능한 정부’를 선언했다.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작은 정부’를 선언한 새 정부의 밑그림은 어떤 식으로 투영될까. 또한 정부 예산 규모로 큰 정부를 정의하는 미국과 한국이 생각하는 큰 정부는 개념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20년 국내에서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가 1515건으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여전히 정부 힘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걸 큰 정부의 폐해로 비판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코노미조선’이 큰 정부를 주제로 기획 특집을 하게 된 배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발생은 미국 외에도 많은 나라가 ‘큰 정부’를 지향하려는 움직임으로 연결된다. 시장 조사 전문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독일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이 2019년 45%에서 2020년 50.8%로 1년 사이에 5.8%포인트 상승했다. 프랑스는 2020년 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61.8%로 최근 1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21년에도 60.1%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올해 1월 시정 연설에서 “과도한 시장 의존이 불공정한 분배를 불러왔고, 경쟁과 효율성에 대한 맹신은 중장기적 투자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향후 큰 정부로 선회할 것을 예고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11월 ‘큰 정부의 승리(The Triumph of Big Government)’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긴급 대출과 보조금 등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 지출한 비용은 전 세계 GDP의 16% 수준인 17조달러(약 2경1267조원)”라며, “(작은 정부를 옹호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봤더라면, 놀라서 눈이 튀어나왔을 법한 액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렇듯 세계가 큰 정부로 방향을 트는 것은 새롭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 위기 때마다 으레 큰 정부가 대두됐다고 지적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왔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경제 철학이 1929년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동안 지속됐던 큰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져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거대 정부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파악했다. 거대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세금이 필요한데, 이로 인해 개인과 기업의 부담이 커져 결국 경제가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본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 지출 삭감과 소득세 대폭 인하,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레이건이 추진한 경제 정책)’로 미국 경제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 뒤로 한동안 잊혔던 큰 정부가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어 코로나19라는 유례 없는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을 맞아 다시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2020년 WEF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열렬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해왔던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코로나19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는 사실은 작은 정부에 대한 회의론으로 이어졌다”며 “코로나19는 연대보다 경쟁을, 사회복지보다 경제 성장을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에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엔 자유시장을 옹호했던 밀턴 프리드먼의 시대가 저물고, ‘적극적인 정부 역할론’을 주장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밝힌 것이다.

큰 정부 반대론자들은 과도한 정부 지출이 국가 채무 증가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역대 최대인 71조2000억원의 재정 적자를 냈고, 국가예산정책처가 집계하는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4월 11일 무렵 국가 채무가 100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2022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2021년보다 1%포인트 낮은 3%로 나타나 막대한 정부 지출 대비 성장률은 부실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정 적자 외에도 중국 사례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 감소 및 ‘빅 브러더(big brother·감시 사회)’ 도래 역시 큰 정부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가 ‘작은 정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 환경에서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데 따른 반작용이 정부의 역할 강화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진보적 싱크탱크 ‘센추리 재단(The Century Foundation)’의 제프 매드릭(Jeff Madrick) 이사는 NYT 칼럼에서 “큰 정부가 성장을 해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서 “(큰 정부에 대한) 미국의 근거 없는 반감은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plus point

Interview 존 도나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위기 때마다 등장한 큰 정부, 이번에도 예외 아냐”

오윤희 기자

존 도나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전 클린턴 행정부 차관보, 전 미 노동부 고문 사진 존 도나휴
존 도나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전 클린턴 행정부 차관보, 전 미 노동부 고문 사진 존 도나휴

정부는 경제가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 딜(New Deal)’ 정책으로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대통령 집권기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정부 주도 경기 부양 정책 및 시장 규제 정책을 펼치려고 했다가 월가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존 도나휴(John Donahue)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4월 1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현재 같은 위기 상황에서 큰 정부론이 대두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혀 놀랍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도나휴 교수와 일문일답.


최근 전 세계가 큰 정부 시대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앞으로도 계속될까.
“위기는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경제적 위기, 유럽 내에서의 전쟁이 정부에 더 많은 권위를 실어준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큰 정부 시대’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여부는 위기가 지속되느냐, 약해지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 개입은 시장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향후 몇 년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팬데믹이나 전쟁이 없는 한, 자유시장에 기반한 정책이 몇 년 내에 되돌아 오리라고 생각한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바이든의 실험은 성공할까.
“미국의 친시장적인 태도는 다른 나라보다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며, 현 상황은 정부가 더 많은 개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의 큰 정부 실험에 대한 성패 여부는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이 지속되느냐, 바뀌냐에 따라 달리 감지(perceived)될 것이다. 내가 굳이 ‘감지’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사람들은 대체로 경제 정책이 불러오는 실제 파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미국 사회의 취약함을 노출시켜 결과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역시 코로나19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부상(浮上)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향후 50년간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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