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수석 부회장 현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식음료부 총괄 디렉터,현 와인인문학 연구소 소장정하봉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수석 부회장 현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식음료부 총괄 디렉터,현 와인인문학 연구소 소장 사진 정하봉

‘7만7675t’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국내에서 ‘국민 주류’로 손꼽히는 소주와 맥주를 제치고 와인이 가장 많이 수입한 주종 1위에 2년 연속 올랐다(2021년 기준). 와인 유통 채널이 확대되고 종류나 가격 면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고급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와인은 이미 대중화된 지 오래다. 여기에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대신 식도락(食道樂)으로 대리만족하는 분위기, 가성비를 따지기보다 신선한 자극을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과거에는 접하지 못했던 독특한 와인들도 국내에 많이 수입되고 있다. 

국내 와인 수입 규모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와인 수입 규모는 2017년 2억1004만달러(약 2743억원)에서 2020년 3억3002만달러(약 4310억원), 2021년에는 5억5981만달러(약 7311억원)로 급증했다. 

정하봉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수석 부회장은 “와인 수입 규모가 역대치를 달성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선택지 때문”이라면서 “최근에는 와이너리의 철학과 스토리를 음미하며 마실 수 있는 ‘내추럴 와인(natural wine)’, 동유럽 등 생소한 지역의 와인 등도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조선’은 6월 15일 정 부회장과 와인 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 한남동의 한 내추럴 와인 바에서소비뇽블랑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 추천한, 가볍게 즐기기 좋은 내추럴 와인. 전효진 기자
서울 한남동의 한 내추럴 와인 바에서소비뇽블랑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게 추천한, 가볍게 즐기기 좋은 내추럴 와인. 사진 전효진 기자

와인이 ‘국민 술’인 맥주와 소주를 넘보고 있다.
“와인 수입 규모가 역대치였던 2021년은 와인 시장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회식 등 획일화된 주류 소비문화가 제한됐고 개인의 취향을 한껏 반영할 수 있는 술을 선택하는 경향이 늘었다. 와인은 다양성과 종류 면에서 다변화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맛을 내는 변수들이 와인에서는 각양각색이다 보니 이러한 매력이 와인 시장을 성장시킨 요인이라 생각한다. 와인을 더욱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신흥 소비층으로 떠오른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역시 와인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MZ 세대의 주류 소비 특징은 무엇인가.
“이들은 일상생활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활발하게 공유한다. 선택을 통해 개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향의 소비자들은 술을 선택할 때도 역시 내 취향을 잘 반영하는지, 나만의 스타일대로 마실 수 있는지 고민한다. 최근 5년 사이에 내추럴 와인 붐(boom)이 일어나고 있다. 와인의 라벨이 독특한 게 많고, 무엇보다 와이너리의 철학이 투영된 독특한 스타일의 와인이 탄생한다. 한남동이나 성수동에는 내추럴 와인 바(bar)가 많이 생기고 있고, MZ 세대는 이곳에서 본인이 선택하고 마신 술을 SNS에 인증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술의 개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자연주의’ 바람이 와인 업계에 불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5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단어였는데, 최근 유명한 파인 다이닝 식당의 와인 리스트에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기존 ‘컨벤셔널 와인(관습적으로 만든 와인)’과 달리 살충제, 제초제를 치지 않고 발효 과정과 병입 과정에서 와인의 산화를 막는 무수아황산을 아예 첨가하지 않는다. 모든 포도는 사람이 손으로 직접 따야 하며 인공 배양한 효모도 쓰지 않는다. 자연적인 방법을 고수하다 보니 다소 시거나 밍밍할 수 있지만, 와이너리의 생산 철학을 생각하며 마시다 보면 금방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사이에서 내추럴 와인은 와인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내고 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달라.
“최근에 와인을 선택할 때 가성비나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를 따지며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산 와이너리의 철학을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미 와인을 접해본 상황에서 보다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것이다. 프랑스 남부지역의 한 와이너리는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와인을 만들었고 와이너리는 태초에 어떻게 시작됐는지 스토리를 알고 나서 마시다 보면 금세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프랑스, 미국, 칠레 외에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한 와인 수입도 늘고 있는데.
“소믈리에를 시작한 2002년도에 비해서 지금의 와인 시장은 아예 다른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와인은 이미 대중화됐다. 이런 가운데 와인을 기존에 접해본 사람 사이에서 좀 더 새롭고 독특한 와인에 대한 니즈(needs)가 생겼다. 스위스뿐 아니라 조지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생산된 와인도 국내 유통되고 있다. 한국의 와인 시장은 양에서 깊이를 추구하는 ‘버전 2’의 성숙기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홈 파티가 대세다. 손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품종은 어떤 것인가.
“여전히 레드 와인이 많이 소비되고 있지만, 최근 2년 사이에 화이트 와인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독일의 리슬링 화이트 와인, 뉴질랜드의 소비뇽블랑 등 가볍게 와인만 마시기에도 적절한 성격의 화이트 와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이후 와인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오프라인 시장(리테일)에서 그동안 와인 판매가 많았다. 엔데믹 이후에는 호텔, 고급 레스토랑 등의 와인 판매율이 점점 증가할 것이다. 집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생길 것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워싱턴주, 뉴질랜드 등 그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한데 모은 다양한 이벤트를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전효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