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합성수지를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하는 중소 석유화학 기업 A는 올 들어 생산량을 크게 줄였다.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상하이 봉쇄로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1위인 상하이항이 멈추고 상하이를 오가는 중국 국내외 물류가 마비되면서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져 공장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A사 관계자는 “상하이항 물류 적체로 수입사가 제품을 받기까지 시간이 3~4배 더 걸리고, 검역·통관도 더 까다로워졌다”며 “중국 고객사들도 수시 봉쇄와 격리 조치로 일할 사람이 부족해 공장을 정상 수준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1994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월별 기준 28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 온 한국의 대중(對中)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5~6월 두 달 연속 적자를 냈다. 중국으로 수출한 것보다 수입한 게 더 많았단 뜻이다.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는 6월까지 3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13년 하루 평균 1억7000만달러(약 2280억원)로 역대 최대 대중 무역 흑자를 기록한 한·중 교역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1992년 수교 후 30년간 47배 팽창한 한·중 교역이 질적으로 이상 신호를 보낸 걸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2013년 628억달러(약 84조2700억원)의 사상 최대 대중 무역 흑자는 팬데믹 직전인 2019년 289억달러(약 38조7800억원)로 반토막 난 상태였다. 중국이 수입에 의존하던 자본재까지 자체 조달하는 이른바 홍색 공급망 구축이 가속화하면서 대중 수출의 호시절이 이미 지나간 것이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세계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에 중간재를 대며 동반 성장해온 한국의 대중 교역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1970~80년대만 해도 수출에서 대미 수출 비중이 30~50%를 차지했다. 한·중 수교 초기 가죽·섬유·종이 등을 주로 수출하다가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로 반도체, 합성수지, 디스플레이, 석유 제품, 무선통신 기기 등 중간재 수출로 확장하며 2003년 대중 수출이 대미 수출을 추월했다. 2018년엔 총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6.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25.3%로 소폭 내려갔지만 대미 수출 비중(14.9%)을 크게 웃돈다. 특히 대중 수입 비중도 22.5%로 한국의 개별 수입 품목 중 중국산 비율이  80%가 넘는 게 1850개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요소수 부족 사태처럼 한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경제는 중국 경기 둔화 충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수시 봉쇄와 격리, 이동 통제 위주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한 대가로 올 2분기(4~6월) 중국 경제 성장률(0.4%)은 겨우 마이너스를 면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 수출은 4월과 6월 두 달이나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중국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낮아질 경우, 한국 경제 성장률은 0.10~0.15%포인트 하락하는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반면 중국 경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한국이 중국 교역량에서 6%(2021년)를 차지하는 3대 교역국이긴 하지만, 중국 전체 수입에서 한국 비중은 2019년까지 7년간 1위였다가 2020년부터 2위로 떨어졌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표 기업의 상황은 중국 내 작아진 한국의 위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현재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 미만이다. 2013년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에 달했으나, 2019년 4분기 0%대로 추락한 후 지금껏 1%를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9월 광둥성 후이저우에 있던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제조 공장도 폐쇄했다. 산시성 시안의 반도체 공장이 그나마 삼성의 영향력을 지켜주고 있지만, 반도체 굴기를 추진 중인 중국 정부의 견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현대차의 중국 사업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대차는 2002년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합작사(베이징현대) 설립 후, 2013년 중국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했다. 2016년엔 114만 대를 팔며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중 수교 후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기업으로 꼽히며 ‘현대 속도’란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뒤늦은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전기차 출시와 주한 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이후 반한 정서까지 겹치며 판매량이 급감했다. 2021년 판매량은 38만5000대(점유율 1.81%)로 추락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 첫 공장인 베이징 1공장을 중국 전기차 제조사 리샹에 매각한 데 이어, 중국 내륙 충칭 공장 가동도 중단했다. 최근 몇 년간 LG그룹은 베이징 시내 트윈타워를 싱가포르 국부 펀드에, SK그룹은 베이징빌딩을 중국 보험사에 매각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브랜드의 부상, 중국 자체 공급망 강화 등으로 소비재뿐 아니라 소재·부품·자본재 분야에서 한국 브랜드의 중국 내 판매 위축 우려가 있다”며 “한·중 산업 관계는 공급망을 통한 상호 분업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되고, 정부 차원에서도 육성이 필요한 핵심 산업이 겹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2001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한 양국의 기업은 각각 11개로 같았지만 2021년엔 중국이 135개로 한국(15개)의 9배에 달했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미래 성장 동력을 상징하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수도 6월 말 기준 중국이 175개로 한국(14개)의 12.5배 수준이다.

미·중 패권 다툼 격화도 한·중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시작한 무역전쟁이 기술 패권 경쟁과 탈중국 공급망 구축으로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다.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과 지난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중국의 러시아 지지는 효율보다 안정에 중점을 두는 글로벌 공급망의 대조정을 재촉한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중국 견제 차원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물자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며 한국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배제 성격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발표했다. 이어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미국·서유럽 군사 동맹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한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며 북핵 대응을 위해 군사·안보 협력 재개에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중국은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 ‘중국 포위망 참여’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중 연대가 구체화할 경우, 중국과 긴장·대립이 커질 수도 있다. 북핵 문제와 교역 등에서 중국과 협력 역시 필요하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한·중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외교 정책의 최대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코노미조선’이 8월 24일로 수교 30주년이 되는 한·중 관계가 변곡점을 맞이하는 현실과 미래 방향을 짚어보는 기획을 한 배경이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과 관계에서 공정, 상호 존중, 상호 이익, 평등의 원칙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가 친중 굴종 외교를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7월 19일 중국에 부임한 정재호 신임 주중 대사는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여러 기회와 도전 요인을 품고 있다”며 “중국과 상호 존중을 실천하고, 공동 이익에 기반한 협력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양국 관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베이징=김남희 조선비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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