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볼래스 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미시간대, 브라운대 석·박사, 휴스턴대 경제학교수 및 학과장, 경제 성장·발전 및 거시경제가주요 연구 분야
디트리히 볼래스 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미시간대, 브라운대 석·박사, 휴스턴대 경제학교수 및 학과장, 경제 성장·발전 및 거시경제가주요 연구 분야 사진 디트리히 볼래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26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작년보다 2.9% 낮은 3.2%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전망 역시 밝지 않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 경제 성장률은 올해보다도 더 떨어질 것이라고 IMF는 내다봤다. 성장률 둔화 비상등이 켜지자 각국 정부는 경제 대책을 세우는 데 분주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성장률 둔화가 단순히 미·중 무역 전쟁,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 때문일까?

‘성장의 종말(Fully Grown)’ 저자인 디트리히 볼래스(Dietrich Vollrath) 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인적 자본 감소 등으로 인해 21세기 들어 이미 성장률은 둔화되는 추세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성장률 저하를 비극적 사태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제로 성장에 가까운 저성장은 경제 고도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 결과이며,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담은 ‘성장의 종말’은 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 등 유력지가 추천했고,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20년 올해의 베스트 도서’에 올랐다. 

 

 

현 수준의 낮은 경제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나.
“그렇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은 단기적인 요인이 아닌 장기적 요인이다. 인구 성장 둔화와 (상품에서) 서비스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고, 이를 되돌릴 이유는 희박하다. 이런 상황이 바뀐다고 해도 성장률을 (현 상황에서) 크게 끌어올릴 가능성은 작다. 한국은 수십 년간 고도성장을 이룩한 흥미로운 사례다. 따라서 향후 한국의 성장률이 (1960~2000년대에 비해) 낮을 거라는 사실은 ‘더욱’ 명확하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견인하는 것은 혁신인데, 지속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 신제품, 혁신 프로세스를 만들어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엔 한국이 선진국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인프라와 자본을 구축하면서 매우 빨리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 한국도 경제 선진국 반열에 들어왔고 다른 모든 선진국과 같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됐다.”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를 저출산에 따른 인적 자본(human capital) 성장 둔화라고 봤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기술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 인적 자본 성장 감소를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건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상황을 크게 바꾸지는 못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인간 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해 왔다. 산업용 로봇을 도입해 생산라인에서 인력을 대체하고 상품을 더욱 저렴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상품에 덜 지출하고, 서비스에 더 많이 지출하게 됐다. 예를 들어 사람 대신 로봇을 패스트푸드점 점원으로 고용하면 인건비가 줄어 패스트푸드 가격은 더욱 저렴해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남는 돈으로 뭘 할까? 평일엔 간편하게 로봇 패스트푸드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더라도 주말엔 여윳돈으로 인간이 손수 마련하는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수동으로 만든 상품,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기계가 매뉴얼대로 만드는 상품·서비스에 비해 프리미엄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인간을 매개로 하는 상품은 생산성이 매우 낮을 것이고(이것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한다), 로봇이 생산하는 저렴한 물건보다 지출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로봇의 도입이 경제 성장에 상당한 이득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확신하기 어렵다.”

책에서 상품 가격이 저렴해지면 사람들은 상품으로 집을 가득 채우다가 점차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늘리고, 이러한 (상품에서) 서비스로의 전환은 인적 자본 감소와 함께 성장 둔화의 주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상품 생산 증가율보다 대체로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학자 윌리엄 보멀(William Baumol)은 1960년대에 산업에 따른 생산성 증가율을 처음으로 연구했다. 그는 논문에서 현악 4중주를 예로 들었다. 뮤지션들이 두 배 빠른 속도로 곡을 연주해서 예정된 시간의 절반에 콘서트를 빨리 마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걸 원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악 4중주를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고 하더라도 고객들이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성을 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서비스는 상품과 달리 고객에게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급 레스토랑이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고객들을 닦달해서 30분 만에 내보낼 순 있겠지만, 비싼 돈을 낸 고객들은 느긋하게 음식과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상품만큼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어렵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IMF가 저성장을 예고할 때마다 호들갑을 떠는데, 당신은 책에서 성장 둔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저성장의 부작용은 없는가.
“성장 둔화는 부채나 정부 지출 등 재정적 문제를 고려할 때 의미 있고 중요하다. 정부가 그에 따라 필요한 과세나 차입 비율을 조정해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성장 둔화의 부작용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애플 워치나 핏빗(Fitbit)은 사용자가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내가 걸은 걸음 수가 내 건강 상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내가 평소보다 덜 걸었을 수도 있는데, 그 원인은 아파서였을 수도 있고, 여행 중이거나 기구 착용을 잊어 먹어서였을 수도 있다. 저성장 역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률 수치에만 목매다는 것은 내가 걸은 걸음 수에만 신경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에서 주로 성장 한계에 다다른 선진국 경제를 다뤘다. 개발도상국의 전망은 어떤가? 선진국의 성장 한계가 개발도상국엔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그 질문은 ‘선진국의 인구 감소와 상품에서 서비스로의 전환이 개발도상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선진국 GDP(국내총생산)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고 해도 상품에 대한 수요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섬유 등 여러 제조 분야에서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재료와 노동력으로 만든 상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만약 AI나 로봇이 그 노동력을 대신한다면 그건 개발도상국의 수출 기회를 뺏는 일이 될 것이다. 반면 선진국에선 줄어드는 인구 감소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이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양국 경제에 모두 도움이 된다.” 

장기적 저성장 시대에 성장률만 중시하는 기존 시각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사람들은 GDP 성장률(혹은 1인당 GDP 성장률)을 경제적 성과나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보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이는 건강을 평가하기 위해 만보기 걸음 수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GDP 성장률은 복지와 행복에 관한 ‘모든 것’을 측정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잣대가 존재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의료 서비스 접근 용이성을 의미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겐 휴가 일수나 일의 존엄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는 단순한 성장률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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