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 현 지속 가능 번영 연구센터 소장,전 영국 정부 지속 가능 개발위원회 경제위원 사진 팀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 현 지속 가능 번영 연구센터 소장,전 영국 정부 지속 가능 개발위원회 경제위원 사진 팀 잭슨

20세기 이후 우리는 글로벌 경제 성장을 당연한 현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한 믿음에 처음으로 타격을 입힌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졌고, 뒤이어 오랜 경기 침체가 찾아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됐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은 수준의 성장이 가능할까. 세계 인구가 90억 명이 되는 2040년 이후, 우리가 과거 50여 년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경제 규모는 2050년까지 현재의 15배 이상(1950년의 75배) 팽창해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저서 ‘성장 없는 번영(Prosperity without Growth)’과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Post Growth)’에서 이 같은 질문을 제기했던 팀 잭슨(Tim Jackson) 영국 서리(Surrey)대 교수는 7월 20일 ‘이코노미조선’과 화상 인터뷰에서 “그건 가능하지 않은 일일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잭슨 교수는 생태경제학자이자, 지속 가능 번영 연구센터(CUSP·Centre for the Understanding of Sustainable Prosperity) 소장이다. ‘성장 없는 번영’은 17개 국어로 번역됐고, 2010년 파이낸셜타임스(FT)가 꼽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향후 몇 년간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가,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필연적 결과인가.
“둘 다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졌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질수록 경제 성장률이 둔화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실제로 지금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선진국에선 이미 40~50년 전부터 성장의 둔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영국의 경우, 노동 생산성은 1960년대에 최고점을 찍었다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이미 제로에 도달했다. 생산성, 특히 노동 생산성 둔화는 모든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성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나.
“우리는 상품과 재화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상품에서 서비스로 눈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상품에서 서비스로의 전환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려 경제 성장 기회를 감소시킨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자원의 고갈이다. 이건 그간 과도한 성장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물인데,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주고 지구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마도 머잖아 글로벌 경제 성장은 결국 필연적으로 종착점에 도달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성장이 멈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부(富)와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당신은 자본주의가 결핍과 욕망을 부추겨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풍요는 무엇인가.
“독창성, 창의성, 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 가족, 친구, 건강한 환경 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은 물질적 풍요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건 어느 일정한 한계선까지만 가능하다. 진정한 풍요로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은 포스트 성장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비전 중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소비 시장을 만들기 위한 투자에만 집중해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포스트 성장 시대엔 기존의 투자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무엇이 필수적인가(essential)를 따져서 정말 필수적인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투자가 무엇일까. 주주들의 배당금을 최대로 만들기 위한 투자, 금융 버블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한 투자일까. 실제로 이러한 투자가 1980년대 이후 계속되어 오다가 한계점에 도달해 터진 것이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끊임없이 이윤을 늘리기 위한 투자, 무턱대고 생산성을 늘리기 위한 투자는 더 이상 미래의 풍요를 보장할 수 없다. 건강·복지·연금 등 평범한 중산층들이 양질의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와 같은 성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더는 과거 같은 방식의 투자를 계속할 수 없다. 고갈돼 가는 자원을 채취하거나 오늘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군비 경쟁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노동 생산성을 추구해 온 문화도 바뀌어야 할까.
“일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이미 거의 60년 전에 이와 관련한 주장을 펼쳤다.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생산자는 적은 수의 고용자로부터 가능한 한 최대한의 아웃풋(output·결과물)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비를 절감하며, 생산자의 이윤을 증진하려 한다. 한마디로 생산자는 직원 없이 아웃풋을 창출하려 하고, 직원은 일을 일종의 희생이라고 간주해서 가능한 한 적게 일하려고 한다. 양측 모두 일은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인간 행동에 관한 중요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일을 통해 사회 활동을 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쫓기거나 일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우리는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과 가치를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우리로 하여금 간호사, 사회복지사, 청소부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했다. 그전까지는 사회에서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직업적 안정성이 낮고,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 이들이 사실은 가장 가치 있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를 지켜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변화의 시작점은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들의 가치에 대한 적절한 보수·처우를 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받는 월급이 가치에 비해 너무 낮지 않은지, 사회적 권리는 잘 지켜지고 있는지, 작업장 환경이 너무 열악하지 않은지. 단순히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가치 있는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의 처우 개선을 통해 이 분야의 업무 질을 개선해야 한다. 투자 방식의 변화가 기존의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깨닫고 투자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 문화의 변화 역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우리의 고정 관념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전 미국 연준 의장 헨리 월리치(Henry Wallich)는 “성장은 균등한 소득의 대체재(growth is a substitute for equality of income)”라고 했다. 부의 재분배보다 성장을 견인해 빈곤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더 쉬운 방법 아닌가.
“그 말은 1970년대까지는 작동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사회 최고 부유층은 매년 6%씩 꾸준히 성장한 반면, 최하위층 실질 소득은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단 경제 성장을 해 놓으면 부가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린다’는 가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 상태에서 부는 톱다운(top-down)이 아니라 보텀업(bottom-up)으로 이동하고 있다.”

GDP(국내총생산) 대신 무엇으로 한 나라의 경제와 사회 발전을 측정할 수 있나.
“기대 수명률, 공정한 분배, 유아 건강 상태, 영아 사망률 등 그 사회의 웰빙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는 매우 많다. 경제 성장의 수치가 아니라, 이러한 자료들이 그 사회의 성숙도와 진보 수준을 말해줄 것이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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