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히켈런던정경대 국제불평등연구소 방문선임연구원현 바르셀로나 자치대 환경과학기술연구소 교수,현 유엔(UN)인간개발보고서 통계 자문위원회 위원,현 학술지 세계 개발(World Development) 부편집장 사진 알렉산더 코긴(Alexander Coggin)
제이슨 히켈런던정경대 국제불평등연구소 방문선임연구원현 바르셀로나 자치대 환경과학기술연구소 교수,현 유엔(UN)인간개발보고서 통계 자문위원회 위원,현 학술지 세계 개발(World Development) 부편집장 사진 알렉산더 코긴(Alexander Coggin)

세계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는 동안 지구 곳곳에는 이상 징후가 생겼다. 빈곤과 불평등이 증가하고, 온난화와 환경 오염으로 광범위한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 모든 산업, 모든 국가에서 경제가 늘 성장해야 하고, 이것이 인류 번영의 필요 조건이라는 명제가 너무나 당연시돼 왔지만, 현실에선 GDP(국내총생산) 성장과 인간의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구를 구하는 탈성장(Less is More)’의 저자인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이제는 GDP를 우상 숭배시하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현재 런던정경대(LSE) 방문선임연구원인 히켈은 유엔(UN)인간개발보고서 통계 자문위원회, 유럽 그린 뉴딜 자문위원회, 하버드 랜싯 배상재분배정의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히켈과의 일문일답.


지속적인 경제 저성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까.
“그렇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나 코로나19 같은) 단기적 이유도 있고, 장기적 이유도 있다. 저성장은 정치적 담론에 영향을 끼친다. 각국 정부는 성장의 압박에 짓눌려서 어떻게든 다시 과거와 같은 수준의 고성장을 달성하려고 발버둥 치고, 이는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끼친다. 성장 위주 정책은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늘어난 에너지 수요는 우리가 탈(脫)탄소화로 나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탈탄소화를 더욱 빨리 이루기 위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주장과 정반대로 말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포스트 성장 경제(post-growth economy)로 전환해야 한다.”

1972년 로마클럽의 발주로 MIT가 발표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자원의 고갈로 100년 안에 성장이 한계에 도달한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은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 그러니 과학 기술에 힘입어 성장을 계속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성장에 일종의 한계점이라는 게 존재하고, 언제가 될지 몰라도 우리가 어느 순간에는 그 한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가 아니라, 성장 자체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리의 성장 위주 노력이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성장은 이미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뿐 아니라 산림 황폐화, 생물다양성 손실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인들은 녹색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과 효율성이 GDP 성장과 자원·에너지 사용을 분리해 GDP는 영원히 성장하는 반면에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어들 거라고 말이다. 멋진 이야기이지만, 경험적 근거가 희박하다. 아무리 효용성이 뛰어난 기술이라 하더라도 GDP 성장과 자원 사용이 분리돼(decoupled) 각각 성공적으로 이뤄질 거라는 증거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GDP를 성장시키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는 있다. 실제로 몇몇 나라에서 그러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온실가스 배출은 파리기후협약의 목표치만큼 빨리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각국 정부가 여전히 성장만을 위주로 하고, 성장은 에너지 사용을 필요로 하고, 그 결과 탈탄소화를 이루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성장이 멈출까’를 추측하지 말고 우리의 생태계와 균형을 잡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성장의 한계점을 설정해야 한다.”

경제 선진국들이 스스로 성장의 고삐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엔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한 개발도상국에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공평하지 않은가.
“아무도 저성장 국가에 성장을 멈추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과도한 성장을 지양(degrowth)하라는 요구는 이른바 경제 선진국을 향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저개발 국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부유한 국가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 추구는 생태계 파괴를 일으켰고, 가난한 국가가 그로 인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성장 지양은 지구상 모든 국가의 정의(justice)를 위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성장 추구 모델은 저성장 국가에는 효과가 없다. 저성장 국가의 빈곤율은 여전히 높고, 국민 상당수가 기본적인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남반구 저개발 국가에 부과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여러 (대형 글로벌) 기업에 자원 공급망을 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성장 추구를 지양하고 자원 사용을 줄이기 위해 상품의 소유권(ownership)에서 사용권(usership)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사회에 필수적이지 않은 산업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실업 문제가 발생할 텐데.
“우리 사회에 파괴적이거나, 혹은 꼭 필요하지 않은 산업 분야의 규모를 축소하자는 주장엔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실업 문제를 우려해 적극적인 조처를 하려 하지 않고 있다. 생태경제학적으로 보자면 해결법은 명확하다. 불필요한 노동력과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이 필요한 일자리의 배분을 더욱 공평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업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설치, 주택 개조, 생태계 복원 등의 분야에 공공 일자리를 보장함으로써 실업률 고민을 해결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생태적 전환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어떤 분야가 성장이 필요하고, 어떤 분야가 성장을 지연·축소해도 무방한가.
“이제까지 우리는 어떤 분야든 관계없이 언제, 어느 때건 모든 산업 분야가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혔었다. 우리가 실제로 그것들을 필요로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삶에 진정 필요로 하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 즉 성장해야 하는 분야(재생에너지, 헬스케어, 대중교통)와 반드시 성장할 필요가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 논의해 봐야 할 시점에 왔다. 후자는 패스트패션, 음식물 소비, 광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곧 구식이 될 게 틀림없는 유행을 타는 물건(planned obsolescence) 등이 해당한다.”

GDP 성장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나.
“나는 과학자다. 경험적인 증거에 근거하면 그 증거는 둘을 동시에 이룩하는 것이 실현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이미 경제적 부(富)를 이룩한 나라에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더 이상 경제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웰빙과 복지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생산하느냐이며, 국민이 생필품을 가질 수 있는지, 소득이 얼마나 골고루 잘 분배되는지 여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것은 성장이 아니라 보편적 공공 서비스, 직업 안정성, 공평한 소득 분배다.”


plus point

GDP를 대신하는 또 다른 지표를 찾아

지난 2008년 프랑스의 ‘경제 실적과 사회 진보 측정을 위한 위원회’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 등 석학을 초빙해 18개월 연구한 끝에 ‘GDP는 틀렸다(한국 번역본 제목)’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경제 성장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 GDP의 한계에 대한 지적은 과거부터 많이 있어 왔다. GDP나 GNI(국민총소득)가 국가의 경제 규모 수준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일반 국민 생활 수준을 측정하는 데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공사를 시행했다가 부수는 것을 반복하면 공사와 복구 비용이 반영돼 GDP는 상승한다. 무의미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 GDP 수치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제이슨 히켈 연구원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GDP 대신 한 나라 삶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GPI(Genuine Progress Indicator·GNP, GDP의 대안으로 등장한 하나의 지표로 인간과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시장 외 활동과 환경 오염 등의 항목을 포함해 측정함)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GPI는 성장의 대가로 치르는 사회·생태학적 부정적 요인들을 성장에서 제외시킨다.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 예를 들어 더 나은 임금, 더 나은 헬스케어, 오염되지 않은 토양, 자원 사용의 감소 등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표 대시보드(dashboard)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는 GDP를 올리면서 당면한 여러 과제가 마치 마법처럼 사라지기를 맹목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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