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6층 키덜트존 내 마블 컬렉션 매장. 사진 HDC아이파크몰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6층 키덜트존 내 마블 컬렉션 매장. 사진 HDC아이파크몰

9월 13일 오후 7시 30분 키덜트(kidult·장난감 선호 등 어린이 취향 가진 성인) 메카로 불리는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6층 키덜트존. 아이언맨·스파이더맨 등 마블 영화 캐릭터 피규어와 굿즈(기획 상품)를 판매하는 마블 컬렉션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블 피규어는 현재 키덜트족의 최애 상품 중 하나. 매장 관계자는 “지난 7월 마블 시리즈 영화 토르 개봉 후 출시한 토르 캐릭터 피규어와 엽서가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바로 옆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로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캐릭터 스토어 ‘도토리숲’과 다양한 건담 프라모델 로봇을 판매하는 ‘건담 베이스’도 키덜트족이 꼭 찾는 곳이다. 건담 베이스에는 ‘매진’이라고 적힌 프라모델 제품이 많았다. 매장 관리자는 “대부분 제품을 한정 판매한다”며 “인기 제품은 출시 당일 또는 하루 만에 모두 팔린다”고 했다. HDC아이파크몰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마블, 건담, 레고 등 키덜트존 내 브랜드의 총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이날 눈에 띄는 건 또 있었다. 바로 고객층이었다. 키덜트존을 찾은 고객 대부분이 20~30대였다. 연인, 남자 친구들, 어린아이와 함께 온 부모 등. 키덜트존 내 매장 관리자들은 “우리 매장 고객의 80% 이상은 20대 이상의 성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주춤했던 완구 등 캐릭터 시장이 키덜트 시장 성장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특히 소수 마니아층에 국한됐던 키덜트 시장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 키덜트족은 오타쿠(특정 분야에 심취한 마니아)로 불리며 사교성이 결여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이들은 집에서 홀로 장난감·만화 등을 수집했다. 그러나 개인의 취미와 여가생활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공유하며 즐기는 신(新)키덜트족이 소비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동심(童心)을 지닌 이른바 ‘어른이 문화’가 뒷받침된 키덜트 시장의 성장은 완구 등 전통적으로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산업뿐 아니라 가전, 명품, 식품 등 성인들이 소비하는 제품을 만드는 산업에도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떠오른 키덜트를 집중 분석한 배경이다. 


레고·셔터스톡
사진 레고·셔터스톡

조카 대신 ‘나’를 위해 장난감 사는 키덜트족

키덜트 상품 대부분은 캐릭터 IP(지식재산)를 기반으로 제작된다. 영화 및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 로봇 등 완구는 물론 의류, 문구, 뷰티용품 등 다양하다. 키덜트 시장 규모를 캐릭터 시장과 연결해 보는 이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 시장은 2015년 10조원을 넘어선 후 2019년 12조5668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이후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2020년 12조2180억원으로 전년 대비 2.7% 위축됐지만, 2021년 12조2581억원으로 0.3% 증가하며 성장세로 돌아섰다. 배경엔 키덜트 시장의 성장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2021년 캐릭터 구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녀나 조카 선물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구매’를 하는 20~50대 비율이 2019년 65.6%, 2020년 75.4%, 2021년 76%로 상승했다. 

미국의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지난 6월 ‘완구 산업이 완구를 사랑하는 키덜트를 사랑한다’는 기사에서 “미국의 2021년 완구 판매가 286억달러(약 40조원)로 팬데믹 전인 2019년 대비 37% 늘었는데 이는 키덜트 덕분”이라고 분석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실제 액션 피규어 판매가 전년 대비 23.7% 급증했다. 미국완구협회의 2021년 조사에서도 완구 구매 성인의 58%가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고 응답했다. 영국 ‘토이월드매거진’은 지난해 ‘키덜트 시장 성년이 되다’란 기사에서 영국에서 반다이남코의 12세 이상 겨냥 블루라벨 반다이 스피릿츠 판매가 5년간 500% 늘었다고 전했다. 키덜트들이 좋아하는 건담 프라모델 로봇을 제작·판매하는 반다이남코는 2021년 글로벌 매출이 전년 대비 6.2% 증가한 76억8000만달러(약 10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반다이남코는 올해 10월 일본 현지에서 5년 만에 새로운 건담 TV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관련 건담 프라모델 로봇을 선보일 예정이다. 키덜트 시장 성장에 힘입어 세계 캐릭터 시장은 2020년 2816억달러(약 397조원)에서 2025년 3593억달러(약 506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카 완구에 눈독 들이는 키덜트 시장이 뜨는 배경에는 향수(鄕愁) 수요 증가가 꼽힌다. 어릴 적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된 이후 구매 여력을 갖추면서, 관련 캐릭터, 굿즈 등을 구매하는 것이다. 장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키덜트 상품이 뜨는 이유다. 1965년 영국에서 방영을 시작한 SF 인형극 썬더버드 캐릭터 상품이 지난해에 새로 출시되고, 1970년 일본 TV 전파를 탄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팬을 위한 ‘도라에몽 미래 백화점’은 키덜트족의 성지로 꼽힌다.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 있는 이 매장에선 도라에몽 애니메이션, 피규어 등을 전시·판매한다. 어린아이는 물론 성인도 열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과 원피스도 각각 1979년, 1997년 첫 방영을 했다. 


OTT 영향과 ‘MZ 키덜트’의 등장

팬데믹 이후 골치 아픈 현실을 피해 동심의 공간에서 안식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심리도 반영됐다. 특히 거리 두기 탓에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자가 급증한 것도 키덜트 시장 성장에 기여했다. 키덜트 문화는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영화, 애니메이션이 OTT에 공개되면, 이후 사람들이 그 캐릭터, 굿즈 등을 구매하며 즐기는 형태다. 지난해 귀멸의 칼날, 올해 1월 짱구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을 때 관련 캐릭터 상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키덜트 시장 유입도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MZ 키덜트’다. 이들은 남들이 사지 않는 캐릭터 등을 구매하고 수집한다. 특히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구매한 캐릭터 상품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사람들과 공유하며 즐긴다. 남들 눈치 보느라 조용히 수집하던 마니아 스타일의 키덜트와는 다르다. MZ 키덜트들은 때로는 캐릭터 상품에 웃돈을 얹어 리셀(Resell·재판매)을 한다. 한창완 세종대 창의소프트학부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는 “과거 키덜트족이 단순 소비형이었다면, 현재는 비즈니스형 키덜트족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릭터 다양화도 키덜트 시장 성장의 주요 요인이다. 특히 카카오프렌즈·포켓몬스터(포켓몬) 등 작고 귀여운 캐릭터 피규어와 굿즈가 20~30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기존 남성 중심의 키덜트 시장에서 고객층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몬스터볼 열쇠고리, 세일러문 파우치 등이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기업들도 키덜트 공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아동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완구 업체가 적극적이다. 마텔은 성인 고객을 잡기 위해 BMW·크라이슬러 등 완성차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미니카 ‘핫 휠’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고, 바비 인형 등 자사 브랜드 완구를 기반으로 한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도 출시하고 있다. 레고는 인테리어 소품부터 명화, 예술 등 아트와 식물 같은 자연까지 제품군 테마를 다양화했다.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레고 꽃다발이 대표적이다. 완구 등 캐릭터 업계만이 아니다. 가전, 명품, 식품 등 소비재 업계도 키덜트 마케팅에 공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MZ 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잔망 루피’ 캐릭터를 담은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AI 스페셜 에디션’을, 구찌는 디즈니 캐릭터 미키마우스를 활용한 티셔츠, 가방 등을 선보였다. SPC삼립은 지난 2월 포켓몬 캐릭터 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을 동봉한 포켓몬 빵을 출시하며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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