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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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남성 직원 A씨는 자신보다 어린 여성 B씨가 상급자로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B씨를 괴롭혀 왔다. 다른 직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B씨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하는가 하면, B씨를 제외한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어 업무를 공유하며 B씨를 따돌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보다 열세 살 어린 남성 신입 직원 C씨에게 걸핏하면 욕설을 퍼붓고, 회식 자리에서 만취해 C씨를 폭행하기도 했다.

일반 기업에 근무하는 D 직원은 팀장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일방적으로 신고하고 병가를 냈다. 회사에서 D 직원이 제출한 녹취록을 조사한 결과, 괴롭힘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병가를 연장하며 막무가내로 “팀장을 징계해 달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10여 건이나 사내 고발을 했다.

사기업 E 부장은 최근 들어온 신입 직원 F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바쁜 일이 있어 다른 부원들이 모두 늦게까지 근무할 때도 혼자만 빠지거나 근무 태만으로 다른 동료들이 그의 일을 떠맡아야 하는 것까지도 아직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보고서의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며 “다음부터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지적했을 때, “그럼 처음부터 그냥 부장님이 쓰지 그러셨어요?”라는 F 사원의 말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어느 조직이든 이런 문제 사원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조직 혁신 및 조직 행동 분야의 권위자인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007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내가 또라이 제로 법칙에 대해 쓰는 이유(Why I Wrote The No Asshole Rule)’라는 칼럼을 게재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어느 조직이건 간에 항상 ‘또라이(asshole)’라고 불릴 만한 이상한 직원들이 있기 마련이며, 이들이 다른 직원들에게 횡포를 일삼고, 결과적으로 조직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내용이 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칼럼의 인기에 힘입어 서튼 교수는 같은 해 이 주제를 확장한 저서 ‘또라이 제로 조직(The No Asshole Rule)’을 출간했다.

서튼 교수가 소위 ‘또라이’로 분류한 문제 사원의 종류는 다양하다. 한국에서 ‘갑질 상사’로 분류되는 다른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 자신의 일을 상습적으로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 직원들의 사기를 바닥까지 꺾어버리는 사람…. 서튼 교수는 어떤 종류이든 간에 ‘조직 문화와 성과에 악영향을 끼치는 자’를 또라이로 정의했다. 저서에 따르면, 직원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일시적인 또라이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성과 변화가 동반된다면, 공인된 또라이(certified asshole)는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반성과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직원이 진짜 또라이다. 이들은 스스로가 조직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자신의 또라이 기질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다.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악당,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직장의 골칫덩이)’이다. 사무실(office)과 악당(villain)을 합친 신조어인 오피스 빌런은 용어만 다를 뿐 서튼 교수가 정의한 ‘또라이’와 맥을 같이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9년 6월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의 제거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그만큼 국적과 문화를 막론하고 문제 사원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기구(Workplace Bullying Institute)는 지난해 미국 직장인 7300만 명이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bullying)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설립자인 게리 나미에(Gary Namie) 사회심리학 박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미국 일터에서 유행병처럼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선 지난 2020년 프리티 파텔(Priti Patel) 당시 내무 장관이 직장 내 갑질 대상자로 지목돼 경질될 뻔한 일이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직원들에 따르면, 파텔 전 장관은 수시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과로한 공무원들이 장관과의 회의를 마친 뒤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BBC는 지난 8월 “재택 근무가 보편화한 이후 줌(Zoom) 화상 회의 링크를 공유하지 않거나 메신저 단체방에서 특정 직원을 끼워주지 않는 식의 원격 괴롭힘(remote bullying)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대면하지 않으면 괴롭힘이 사라진다는 선입견은 잘못됐다”고 보도했다.

‘권력’과 ‘괴롭힘’을 합친 ‘파워하라(power+harassment)’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일본은 지난 3월 경제 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가 ‘파워하라 대국 일본’이라는 특집 기사를 냈을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이 큰 사회 이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들어간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최근 인사 관리 전문기업 인크루트는 조직에서 골치를 앓고 있는 다양한 오피스 빌런 유형을 제시했다. 오피스 빌런에는 ‘갑질·막말형’ ‘라떼 이즈 홀스형(걸핏하면 ‘나 때는 말이야’ 라는 말로 훈수를 두는 상사 유형)’ 등 위계질서가 엄격한 한국 조직 문화에서 전형적인 기피 사원들 외에도 ‘재택근무 유령형(재택근무를 하면서 문자·메시지에 일절 응답 안 하는 유형)’ ‘핑거 프린세스형(공주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는 유형)’ 같은 다양한 새로운 유형이 포함됐다. ‘업무 지상주의’ 성향이 강한 기성세대 직원들과 개인주의와 워라밸(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직원들의 문제점이 골고루 반영된 결과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인사관리 스타트업 원티드랩 대표가 술자리 직원 폭행으로 1년간 연봉을 반납하기로 하는 등 오피스 빌런은 꾸준한 조직 문화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오피스 빌런을 기획한 이유다.

오피스 빌런을 묵과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조직에 입히는 손해 때문이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각종 연구를 보면 오피스 빌런을 방치할 경우 다른 직원에게 전염되는 식으로 회사 내 부정적 영향이 커져 유능한 직원의 퇴사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서튼 교수는 ‘HBR’에 게재한 논문에서 한 또라이 직원으로 인한 분노 통제 교육 비용, 다른 직원들의 시간 외 추가 수당 비용, 피해 직원 심리 보상 등을 포함한 ‘총또라이 비용(TCJ·Total Cost of Jerks)’을 산출한 결과, 그 한 명으로 인해 추가 지출된 비용이 무려 16만달러(약 2억3300만원)였다고 밝혔다.

드물지만 빌런으로 인한 조직 내 불화는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는 수준의 오피스 빌런은 드물지만, 수가 적다고 가볍게 보면 안 된다”면서 “회사를 나간 뒤에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 행위를 회사 탓으로 돌리면서 회사와 동료 직원들을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예를 든 A 사원 경우도 직장이 그의 태도를 문제 삼아 면직 처분을 내리자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오피스 빌런에 대한 대책은 부실한 상황이다. 일단 피해 직원들이 신고하지 않을 경우 누가 빌런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만약 빌런이 유능한 직원일 경우, 그에 대한 조직의 제재가 소극적인 경우도 많다. 

한편 빌런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지원 대책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작년 10월 노동 시민사회단체 ‘직장갑질119’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진료·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한 응답이 32.6%로, 일반 직장인들 응답률(29.8%)보다 높았다.


plus point

새로운 조직 문제, 조용한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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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정해진 업무 외의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업무관(觀)을 일컫는 것으로, 회사에 ‘올인’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워라밸(work-life balance)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직장과 일에 대한 열의을 잃었다는 점에선 워라밸보다 부정적인 성격이 강하다.

중국에서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탕핑(躺平)주의’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탕핑주의 신봉자들은 취업, 승진, 내 집 마련 등 예전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삶의 과정에 아무런 의욕이 없다.

조용한 사직, 탕핑주의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열심히 일해도 더 이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거나 상사의 불법적인 업무 지시나 부당한 처우에 시달린 젊은 직장인들의 번아웃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근무 태만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세련된 신조어라는 이들도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앤서니 클로츠(Anthony Klotz) 매니지먼트 부문 교수는 “조용한 사직은 젊은 세대의 문화로 포장됐으나 일탈과 근무 태만, 업무 부실 등의 이름으로 수십 년간 있어 온 트렌드”라고 일축했다.

오윤희·이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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