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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쯤 경과한 지난 3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푸틴이 글로벌 경제를 죽일까(Will Putin Kill the Global Economy?)’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칼럼에서 현재 경제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위기가 고조되던 1970년대와 비교하는 많은 이의 주장을 반박하며 “오히려 1914년과 닮아 있다”고 했다. 당시는 영국 산업혁명 이후 철도와 증기선, 전신(電信)의 발달로 세계 무역이 크게 증가하던 때였다. 하지만 그해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세계화는 막을 내렸고, 각국은 1920~30년대 대공황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탈세계화에 직면해 있다”고 썼다.

실제로 세계화의 후퇴 양상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세계 GDP(국내총생산) 대비 무역 비중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61%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세를 걷고 있다. 미국은 재닛 옐런 재무 장관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직접 우방국들에 ‘프렌드 쇼어링(friend shoring·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고, 최근엔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판매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탈세계화 조짐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존재해 왔다.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자국 중심주의 신호탄을 쏘았고, 이듬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 쌓았고, 뒤이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세계 경제를 이어주던 글로벌 공급망마저 마비됐다. 트럼프의 뒤를 이은 조 바이든 대통령도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구매)’ 정책을 앞세우며 중국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게리 허프바우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CNBC에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화의 종언을 고하는) 시대의 전환점일 수 있다”고 했다.

세계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왔던 세계화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주된 이유로 전문가들은 경제 쇠퇴와 미·중 간 패권 다툼을 꼽는다. 글로벌 경제는 2009~2010년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은 규제 완화, 민영화, 관세 인하 등 세계화로 인한 번영을 누리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의 가성비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세계 무대에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던 미국에 이는 특히 심각한 문제였다. 중국은 2015년 핵심 부품과 자재의 국산화율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려 10대 핵심 산업에서 세계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중국 제조(Made in China) 2025’ 전략을 발표하며 미국에 패권 경쟁을 예고했다. 이에 미국은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The Lexus and the Olive Tree)’에서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이라고 표현한 세계화의 대가를 벗어던졌고, 미·중 양대 경제권의 싸움은 탈세계화를 본격화시켰다.

이렇듯 세계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탈세계화가 글로벌 경제에 미칠 여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첫 번째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이제껏 학계는 세계화가 물가를 낮춘다는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여 왔다. 무역장벽이 낮으면 기업이 더욱 저렴한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물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탈세계화는 물가를 올릴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지금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에 대규모 경제 제재를 내린 미국 등 서방 국가에 ‘천연가스 무기화’로 대응했다. 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에 원유를 공급하는 카스피 송유관을 차단하는 바람에 유럽 지역 내 가스·전기 요금은 이미 전년 대비 네 배 이상 치솟았다. 유럽연합(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타격을 입어 헝가리는 9월 빵값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77% 올랐고, 크로아티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폴란드·슬로바키아 등도 30% 넘게 빵 가격이 상승했다. 세계 팜유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가 4월 식량 안보를 우려해 팜유 수출을 제한한 탓에 팜유 가격은 같은 달 50% 이상 오르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화의 후퇴로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최대 2%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치·외교에 미칠 파장도 무시할 순 없다. 미국이 프렌드 쇼어링을 강조하며 우방국과의 공조를 단단히 하는 한편,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세계가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어 대립했던 과거 냉전 시대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 기후 문제 등 다자간 협약이 필요한 시급한 문제에 대한 대책 공조가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특히 저개발 국가는 빅(Big) 2 경제권의 다툼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 경제가 미·중 두 개의 블록으로 분리될 경우 미국은 GDP가 1% 감소하는 데 그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7%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세계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문제다. 미국은 현재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반도체 기술 보호를 위해 한국·일본·대만 등으로 구성된 ‘칩(Chip) 4 동맹’ 결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 가는 국가는 중국이기 때문에 한국은 양국의 눈치를 봐야 할 딜레마에 빠졌다. ‘세계화’라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각자가 스스로 생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를 맞아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코노미조선’이 탈세계화를 기획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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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 중국 떠나는 기업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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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흐름 속에서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제조업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고강도 ‘제로 코로나’ 정책과 미·중 갈등으로 중국을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컨설팅업체 커니의 ‘2021 리쇼어링(reshoring·생산 기지 본국 회귀)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미국 제조기업 79%가 3년 내 중국에 있는 생산 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거나 이미 복귀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수입 공산품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24.3%에서 2021년 20.1%로 감소했다. 실제로 애플은 올해 초 중국 내 공급망이 흔들려 피해를 본 이후 자사 제품의 약 90%를 생산하는 중국의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시장조사업체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중국 본토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1만2706개로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지난 2년 동안 중국을 떠난 일본 기업도 94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제조사인 아이리스오야마는 최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던 생활용품 일부를 일본 공장으로 이관하기 시작했다. 캐논과 파나소닉도 중국에 있는 일부 공장을 일본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중국에 신규 진출한 국내 기업은 34개에 그쳤다. 이는 중국 진출이 본격화된 1992년 1분기(23개) 이후 3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던 2021년 1분기(53개)와 비교해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미 국내 기업 일부는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다. 삼성SDI와 LG전자는 2021년 중국 내 공장을 각각 두 개씩 폐쇄했고,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도 중국 저장성의 닝보 조선소에서 철수한 바 있다.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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