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그룹은 지난 2004년 LG그룹에서 분할 독립한 이후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그룹 자산은 43조원으로, 재계 순위 7위로 뛰어 올랐다. 이는 GS그룹의 핵심 축인 GS칼텍스, GS리테일과 GS샵의 유통, GS건설 등이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다지며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룹 출범 당시, 내부 살림과 조언자 역할에 머물던 허씨 가문이 GS그룹을 잘 이끌 것인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허씨 가문을 대표해 그룹을 이끌고 있는 허창수 회장이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GS가 이제 향후 100년을 지탱할 지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두에 선 허 회장은 앞으로는 종전보다 더 빠른 템포로 혁신하고 또 혁신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녹색성장 분야에서 성장 기회 찾아라...

신성장동력 발굴 위해 모든 자원 풀가동

“앞으로 5년은 그룹 출범 이후 두 번째 맞는 5개년으로 향후 100년을 좌우할 GS의 틀이 자리 잡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제 궤도 위에서 본격적인 성장 모멘텀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 7월 GS임원모임에서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계열사 CEO를 비롯한 150여명의 임원들에게 한 주문이다. 허 회장의 이 말은 ‘GS가 이제 궤도에 들어섰다’는 뜻과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안정적인 그룹 경영의 틀 위에서 새로운 먹을거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의 말대로 GS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섰다. 2004년 출범 당시 18조7000억원이던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43조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매출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는 50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GS그룹은 지주회사인 (주)GS를 중심으로 GS칼텍스·GS리테일·GS샵·GS EPS·GS글로벌·GS스포츠 등 자회사, GS건설 등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자산 규모 기준으로 재계 7위다. 주력 사업은 GS칼텍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사업부문, GS리테일과 GS샵을 중심으로 한 유통 사업부문, GS건설 중심의 건설 사업부문으로 나뉜다.

기존사업 경쟁력 제고와 신성장동력 발굴 동시 추진

GS그룹은 출범 이후 국내외의 여러 가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 매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에너지, 유통, 건설을 중심으로 기존 주력 사업 분야에서의 경쟁력 제고와 미래의 지속성장의 원천이 될 신수종사업을 동시에 추진했기 때문이다.

허창수 회장은 그동안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사업모델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았다. 실제 허 회장은 “연구개발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차차세대의 연구개발 전략까지 미리미리 수립해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끈기 있게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력 사업에서의 경쟁력 제고를 살펴보면 에너지 분야에서는 정제시설 및 고도화시설에 대한 적시적인 투자로 생산 경쟁력을 높였다. 유통 분야에서는 편의점과 홈쇼핑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신수종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고, 건설 분야에서도 석유화학 플랜트 부분을 대폭 강화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는 기존 주력사업 강화를 위해 정유시설 고도화 등 시설투자와 함께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해 왔다. GS칼텍스는 기존 설비의 개선 작업과 신규 증설을 통해 원유 정제 능력을 2010년 현재 75만 배럴로 증가시켰다. 또 지난 2007년 1조5000억원이 투자된 1일 6만1000배럴 생산 규모의 제2중질유분해시설이 본격 가동됨에 따라 기존 9만4000배럴의 제1중질유분해시설을 포함해 고도화설비 비율은 13%에서 21%로 높아졌다. 특히 지난 2008년부터 2조6000억원이 투입된 제3중질유분해시설이 올 하반기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가게 되면 고도화 비율은 28.7%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도화 설비 생산능력이다.

GS칼텍스는 여기서 생산된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의 절반 이상을 중국, 일본, 인도 등에 수출한다. 지난 2004년 매출액의 47%를 차지하던 수출 비중은 지난해 57%까지 치솟았다.

일찌감치 중국시장 진출을 추진한 것도 미래 신 시장을 겨냥한 포석이다. GS칼텍스는 2006년부터 중국 산둥성 지역을 중심으로 주유소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GS칼텍스 랑방소료유한공사를 통해 복합PP(폴리프로필렌) 제품을 중국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유통 분야에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다. 경쟁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백화점과 마트 부문은 과감히 매각했다. 편의점(GS25)과 슈퍼마켓(GS슈퍼마켓) 등 업계 1~2위의 강점이 있는 사업에만 주력하겠다는 판단에서다.

GS리테일은 편의점과 슈퍼마켓에 역량을 집중해 내실을 더욱 다지고 신사업에 적극 나서고, 공격적인 점포 오픈을 통해 점포수를 5000점으로 끌어올리며, 주류전문형 편의점, 베이커리형 편의점 등 새로운 형식의 점포를 늘리고 차별화 상품을 강화할 계획이다.

GS리테일은 2004년 그룹 출범 이후 외형과 내실에서 모두 큰 발전을 이뤄냈다. 이 회사의 2009년 매출액은 4조3870억원으로 2004년 2조7903억원보다 57.2%가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1479억원으로 출범 당시 769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GS25는 점포수 4000개를 돌파했고, GS슈퍼마켓은 업계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991억원의 영업이익을 시현한 GS샵 역시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미래 사업 준비와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GS울산방송, GS강남방송, 디앤샵의 경영권을 차례로 인수하는 한편 T커머스, M커머스 등 뉴미디어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지난 3월에는 홈쇼핑 업계 최초로 스마트폰으로 GS샵의 모든 상품을 검색하고 주문할 수 있는 모바일 웹 서비스도 개시했다.

GS건설은 EPC(설계·구매·시공)를 기반으로 가스, 발전, 환경 등 기존 전략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사업의 실행력을 강화했다. GS건설은 지난 2007년 처음으로 수주액 10조원을 돌파한 이래 2008년 12조2300억원, 2009년 약 13조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급성장했다. 올해에는 전년대비 10% 정도 증가한 14조1000억원의 수주액과 매출액 7조6000억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GS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영역으로의 진출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지난 2005년 11월에는 기존 에너지 관련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LG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민자 발전 사업자인 LG에너지를 인수하고 사명을 GS EPS로 바꿨다. 2008년 7월에는 GS자산운용을 설립하면서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5월에는 그룹의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GS글로벌의 전신인 (주)쌍용을 인수하기도 했다. GS글로벌은 그룹 내 계열사가 가지고 있는 자원개발 및 SOC 역량, 브랜드 인지도를 기반으로 하여 향후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녹색에서 성장 기회 찾아라” 주문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은 2004년 LG에서 GS로 분리한 뒤 허창수 회장이 경영진에게 끊임없이 강조한 경영 이념이다. 올 초 허 회장은 GS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신성장동력의 발굴을 꼽았다.

GS의 핵심 주력 사업은 에너지 사업으로 그룹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것이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룹 매출이 에너지 부분에 너무 집중돼 있어 성장한계에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GS그룹은 GS칼텍스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숙명적”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이 신성장동력 발굴에 모든 자원을 풀가동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GS의 미래가 ‘녹색’에 달려 있다는 것이 허 회장의 판단이다. 지난 8월27일 ‘GS 최고 경영자 회의’중에 그가 한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많은 경쟁기업들이 녹색성장을 전략적 화두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진정한 성장 기회를 포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만 그 자체로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고 현실성 있는 성장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자체 역량을 감안한 전략적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다소 산만해 보이는 녹색성장에 대한 대응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러한 허 회장의 주문에 따라 GS는 ‘신에너지와 환경’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나가고 있다. 2차전지, 연료전지, 수소스테이션, 그린홈, 스마트그리드, 녹색물류 혁신 등 녹색성장을 위한 신기술 개발과 폐기물 에너지화·바이오연료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투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GS는 이러한 신성장동력의 발굴을 위해 2006년 이후 매년 2조원 이상의 투자를 지속해 왔다. 올해에는 GS칼텍스의 제3중질유분해탈황시설 건설, 유전개발 사업 등 에너지 부문에 1조2000억원, GS리테일의 편의점·슈퍼마켓 점포 확장 및 점포 리뉴얼과 GS샵의 해외 사업 강화를 위해 유통부문에 9000억원, GS건설의 개발 사업 등에 2000억원을 투자했다.

신성장동력 발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면서 GS그룹의 신사업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CEO직속으로 ‘신 사업부’를 설립해 신에너지와 신소재 등에서 새로운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고 이 분야의 연구개발에 집중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연료전지 관련 노하우를 토대로 가정용 연료전지와 상업시설용 연료전지의 상용화에 주력하는 한편 차세대 2차전지인 박막전지, 2차전지의 일종인 전기이중층커패시터(ELDC)용 탄소소재 개발, 바이오연료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에는 폐기물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합성가스를 에너지로 회수하는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에도 진출했다.

민자 발전 자회사인 GS EPS는 녹색 성장 트렌드에 대응해 바이오매스 발전사업, CDM(청정개발 체계)사업,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등 미래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성장 동력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GS건설은 녹색성장사업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녹색뉴딜사업 및 원전사업에 참여한다. 또 신재생에너지, 저탄소 교통 인프라, 그린홈, 스마트그리드 등 새로운 그린 비즈니스를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올해 다른 건설사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수주한 신 울진 원자력 사업을 바탕으로 향후 해외 원자력 사업 진출에도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GS리테일은 2004년부터 녹색물류의 중요성을 깨닫고 IT와 공급망관리(SCM) 체계를 기반으로 녹색물류 혁신을 추진해왔다. 탄소저감을 기본으로 하는 녹색물류는 곧 에너지절감, 비용절감을 뜻한다. GS리테일은 녹색물류를 통해 물류 효율화 등 경쟁력을 배가한다는 계획이다.

해외사업 강화도 성장 동력의 주요 축

해외사업의 역량 강화도 미래 성장 동력의 주요 축이다. 허 회장은 최근 인도 등 해외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협소한 국내 시장만으로는 GS가 의도하는 수준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 먹히는 실효성 있는 사업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시장 발굴을 위한 GS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일치감치 중국시장에 진출한 GS칼텍스는 올 초 인도 뭄바이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윤활유 제품의 해외진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GS칼텍스는 윤활유 완제품의 수출비중을 2014년 50%까지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GS리테일, GS샵, GS건설 등도 내실 경영을 기반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GS샵은 지난해 11월 국내 홈쇼핑 사업자로는 처음으로 인도 시장 진출을 성사시켰다. 글로벌 유통기업의 격전지인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신흥국가로의 진출도 적극 모색 중이다.

GS건설도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GS건설은 그동안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집중돼 있던 플랜트 건설공사 수주 무대를 싱가포르, UAE, 이란, 오만 등지로 다변화했다. 올해 UAE에서 국내 플랜트 공사 수주 역사상 최대인 31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는 등 잇단 대형 공사 수주로 총 69억달러 규모의 해외공사 수주고를 달성했다.

지난해 인수한 GS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해외 사업 시너지도 기대된다. GS글로벌은 연내 해외자원 개발과 신재생에너지 사업, 플랜트 사업에도 뛰어든다.

구ㆍ허 양가의 ‘아름다운 동행과 이별’

인화·역할 분담의 미학…….분리됐어도 협력 지속

서울 역삼동 GS타워 23층 허창수 회장의 집무실 앞에는 추상화가 걸려 있다. 2004년 LG에서 분리될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선물한 그림이다. 같은 크기의 두 개의 그림이 하나를 이루는 이 그림은 두 그룹의 변함없는 신뢰를 상징하는 것이다.

기업은 한 집안에서 경영해도 규모가 커지고 대를 넘기면 크고 작은 분란이 불거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LG는 두 핏줄이 기업을 이끌면서도 좀처럼 ‘잡음’이 새나오지 않았다.

1947년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한 이래 57년 동안 구씨와 허씨 일가는 대를 이어 끈끈한 동반자로 사업을 꾸려왔고, 아름답게 헤어졌다.

구씨와 허씨의 동업관계가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양가가 서로를 깍듯이 예우하며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둔 인화’를 철저하게 지켜온 데 있었다. 즉, 사전에 충분한 합의를 거쳐 원칙을 정하고, 정해진 원칙을 지키며 결과에 대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가의 인화정신은 3대에 걸쳐 변함없이 LG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고, 이는 1995년 2월 구본무 LG회장의 취임 당시에도 나타났다.

구본무 회장의 취임과 함께 당시 구자경 회장은 물론 그룹의 창업세대라 할 수 있는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LG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창업고문으로 물러나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젊은 경영자들의 활동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구자경 회장의 뜻에 구ㆍ허 양가의 창업세대 경영자들이 기꺼이 동의하고 ‘동반퇴진’한 것이다. 한창 경영활동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경영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양가의 창업세대가 뜻을 같이 한 것이다. 양가 특유의 화합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가의 화합정신은 지난 2002년 7월 허준구 회장이 79세를 일기로 작고했을 때도 잘 나타났다. 당시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은 ‘허씨 상가’가 아니라 ‘허씨ㆍ구씨 양가의 상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씨 집안사람들도 자기 일처럼 빈소를 지켰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5일장 내내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일본 출장길에 올랐던 구본무 회장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해 조문하기도 했다.

또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때에도 양가 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잡음 없이 합의에 이른 것도 그 사례다.

두 가문의 성공적인 동업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화’ 외에도 몇 가지 ‘룰’이 있다. 해방 이듬해, 젊은 사업가 구인회에게 자본을 투자한 만석꾼 허만정씨는 훗날 자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 할테니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

그 아들 세대인 고 허준구 LG건설(현 GS건설) 명예회장과 구자경 LG명예회장은 50년을 한 직장에서 부대낀 둘도 없는 동지요 친구였고 허물없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였지만 회사에서 허 회장은 구 회장에게 더없이 깍듯했다.

나이는 허 회장이 두 살이 더 많았고 LG에 몸담은 것도 4년 먼저였지만 한 발짝도 구 회장 앞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구본무 LG회장에 대한 허창수 회장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허 회장도 구 회장이 참석하는 그룹행사는 물론 국내외 산업현장 방문을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구 회장 역시 허 회장을 예우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중요 사항을 항상 허 회장과 자리를 같이 해 보고 받았다. 구ㆍ허 양가에는 이렇듯 ‘역할분담의 미학’이 있었다. 구씨 가문은 대개 사업 확장, 공장건설 등 바깥일을 담당하면서 경영을 주도했고, 숫자에 밝은 허씨 가문은 재무, 영업 등 안살림에 주력했다. 사업을 키우며 경영을 주도한 것은 구씨 가문이었지만, 기업이라는 생명체에 피를 돌게 한 것은 허씨 가문이었던 것이다.

양가 간 동업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칙은 양가 간 철저하고 엄격한 재산 배분이다. 처음부터 각자의 지분을 철저하게 관리하면 아무리 많은 형제들이 경영에 참여해도 분란의 소지가 없어진다. 이러한 원칙은 지난 LG와 GS의 회사분할 과정에서도 분할비율(65:35)은 지켜졌다.

그룹 관계자는 “양가의 인화와 동업의 정신은 그동안에도 지속돼 왔다”며 “사업시너지를 위한 협력관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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