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끝도 없이 줄지어 달리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의 아침 출근길 풍경이다. 이륜차들의 질주가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질서 정연하게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요즘 베트남 경제를 보는 것 같다. 베트남은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지난해 6.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 목표치(6.2%)를 웃도는 성장이다. 풍부한 저임 노동력을 갖추고 있는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투자 유망 국가다. 매년 임금이 급등하고 ‘경착륙’ 위험까지 제기되고 있는 중국에 실망한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호치민 시내는 ‘활력’ 그 자체였다. 베트남의 경제산업 중심지인 호치민 거리는 밤낮없이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들로 넘쳐났다.

요즘 베트남에서 가장 ‘핫(hot)’한 기업 중 하나가 효성의 베트남 법인이다. 효성은 ‘베트남 붐’이 일기 이전인 2007년부터 베트남에 투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다.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 결과 2014년 현지 법인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며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1%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2월 22일 호치민 시내에서 한 시간 남짓 차량으로 이동하자 동나이성 년짝공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효성 베트남 법인이 자리잡은 곳이다. 이곳에는 효성의 핵심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스틸코드 등의 생산 공장이 있다. 공장 입구에 다가서자 베트남 젊은이 4~5명이 모여 담벼락 게시판에 붙어있는 효성 베트남 법인 채용공고를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가 찾은 이날 현지 직원 채용 면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베트남 법인 인사 총무를 담당하는 강진철 과장은 “베트남은 연초에 일제히 성과급을 지급하기 때문에 성과급을 받은 직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효성은 현지인들이 꼭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다.



베트남 년짝공장에서는 연간 5만t의 스판덱스와 10만t의 타이어코드를 생산한다. <사진 : 효성>

잘나가는 효성 스판덱스의 비밀 ‘극소수만 알아’

효성은 지난해 경기 침체 속에서도 1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이런 효성의 해외 법인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이 베트남 법인이다. 효성의 공장 부지는 축구장 90개 크기(97만㎡)로 년짝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 중 첫번째, 공단 전체로는 두번째로 넓은 규모다. 이 중 스판덱스 공장은 7만7000㎡, 타이어코드 공장은 16만7000㎡다.

여기에서 베트남 수출의 1%를 차지한다는 효성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스판덱스는 연간 5만t(전 세계 수요의 10%), 타이어코드는 10만t(전 세계 수요의 25%)을 생산한다. 베트남에서 생산된 스판덱스는 25%가 베트남 내수로 소비되고 나머지는 모두 수출된다. 타이어코드의 경우도 90% 이상이 전 세계로 수출된다.

베트남 법인의 성과는 효성에 로열티 수입까지 올려주고 있다.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 제품 판매량이 커지면 이 품목에 대한 자체 기술을 가진 효성의 기술료 수입도 늘어난다. 효성은 세계에서 4번째로 자체 기술을 확보했고 시장에서는 스판덱스 원사(품명 크레오라)를 가장 많이 팔고 있다. 기술이 있으니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효성 베트남 공장의 시스템은 한국 구미공장을 모델로 삼았다. 현지에서 채용한 인원은 5000여명이다. 공장이 주야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니 1700명 정도가 공단 안에 있는 셈이다. 공장 안이 북적거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람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실을 늘리는 스판덱스 생산설비 앞에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강 과장은 “모든 생산 시설은 자동화 돼 있어 직원들은 기계실, 정비실 쪽에 많다”고 귀띔했다.

스판덱스 기술의 핵심은 원료 배합 비율이다. 스판덱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솔벤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PTMG(폴리테트라메틸렌글리콜)와 MDI(메틸렌 디 피 페닐렌 이소시아네이트)의 중합 반응과 솔벤트의 용해 작업을 거치고, 이게 서로 섞이면서 실이 된다. 모든 기계는 효성이 세팅해 놓은 비율대로 실을 뽑아낸다. 이렇게 해서 스판덱스가 탄생한다.

효성이 자랑하는 고부가가치 섬유의 비밀을 풀고 싶었다. “다른 회사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계속 물어보니, 법인 관계자는 “(배합 비율은) 회사에서도 몇 명만 알고 있는 영업 비밀”이라고 말했다.

물리 실험실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현지 직원들이 가느다란 스판덱스 실을 반복해서 늘였다 줄였다 하고 있었다. 스판덱스는 기존 고무실에 비해 3배 강하면서도 원래 길이보다 5~8배 늘어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원상회복률이 97%나 될 정도로 인장력이 뛰어나다. 실험실의 베트남 현지 직원들은 실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스판덱스의 인장력을 검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판덱스 원사는 동그란 형태로 감겨 포장된다. 제품은 같은 공단 안에 있는 중국 업체에도 팔린다. 한 직원은 “우스갯소리로 그냥 옆집으로 던진다고 한다. 우리 제품이 같은 공단 내에서 소비되니 득이 많다”며 웃었다.



베트남은 성장 여지도 크고 임금도 중국보다 저렴해 투자가치가 크다. 효성은 지난해 추가 투자를 결정하고 공장을 증설 중이다. <사진 : 허욱 기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재에서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효성 타이어코드

베트남 타이어코드 공장의 ‘마더플랜트(Mother Plant)’는 한국 울산 공장이다. 울산 공장의 공정과 시스템이 베트남으로 옮겨졌다. 베트남 공장은 타이어코드의 최초 원재료(Raw Chip)도 울산에서 가지고 온다. 원재료 생산부터 타이어코드 완제품까지 만들어내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오직 효성뿐이다. 같은 시스템이 베트남에서도 구현된다.

울산공장의 제조 기술을 베트남에 이식하기 위해 효성은 매년 50회 이상 공장 간 지원 회의를 열고 있다고 한다. 품질 균일화를 전담하는 부서도 있다. 공정 전문가가 1년에 3번 베트남 공장을 찾아 표준 사양대로 공정이 이뤄지는지 점검한다. 베트남 현지 직원 일부는 생산 기술과 공정 관리 역량을 키우기 위해 매년 울산공장에서 연수를 받는다.

타이어코드는 자동차 타이어의 안전성과 내구성, 주행 성능을 높이기 위한 섬유 보강재다. 자동차 안전과 성능에 직결되는 소재다. 따라서 전 세계 타이어 회사와 타이어코드 공급 계약을 맺으려면 승인 과정에만 3년이 걸린다. 대신 한번 신뢰를 얻으면 타이어 회사와의 파트너십이 계속 이어진다.

효성 관계자는 “효성 타이어코드는 타이어회사의 까다로운 승인을 받기에 앞서 연구소, 공장 자체 평가검증 시스템 등을 통해 철저한 내부 평가를 거친다. 해외 신설 공장에서 생산한 타이어코드라도 비교적 빨리 타이어회사의 승인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45%에 이르는 효성의 독보적인 세계 시장 점유율은 품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타이어코드 공장 안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굉음이 났다. 방사기 돌아가는 소리였다. 방사기에서 꿰어진 실은 연직기 앞으로 이동한다. 연직기는 수 천 가닥의 실을 모아 넓적한 천으로 만든다. 짜여진 천은 또 다음 공정으로 이동한다. 누런 접착제를 바르고 건조 과정을 거쳐 돌돌 말린 형태의 완제품으로 탄생한다. 광활한 타이어코드 공장이지만 직원들은 대부분 제품 검수실과 실험실 등에 몰려 있었다.


베트남 효성의 미래, 2020년 스판덱스 점유율 50% 목표

타이어코드 원재료를 뒤섞는 70m 높이 중합탑에 올라가니 사방으로 펼쳐진 년짝공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효성 베트남 법인 바로 근처에는 동나이 법인 공장을 짓고 있었다. 효성은 베트남에 추가 투자를 하기로 결정하고 작년 4월 년짝공단에 동나이 법인을 새로 설립했다. 동나이 법인 부지는 22만6600㎡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는 물론 연간 2만t 생산 규모 나일론 원사 공장 기둥이 한창 올라가는 중이었다.

효성은 2007년 미래를 내다보고 베트남 투자 결정을 했듯이 최근 베트남에 추가로 공장을 짓고 있다. 이은배 구매담당 부장은 “중국 시장의 경우 현지 업체 수도 많고 시장도 포화 직전이라 스판덱스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면서 “반면 베트남은 성장 여지도 크고 임금도 중국보다 저렴해 투자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효성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스판덱스 시장에서 2020년 점유율 5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베트남 현지 직원들과 효성의 융화가 남은 과제다. 효성 베트남 법인에서 6년째 근무 중인 레 티 탄 빈(29, 여) 총무2과 과장은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베트남 사람들이 적응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지금은 업무량도 늘었고 직원들에게 내가 업무 속도 증가를 요청하는 입장이 됐다”며 웃었다.

권기수 효성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은 유교 문화 영향을 받았고 교육열도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닮은 부분이 있다”며 “효성은 베트남에서 미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한 오너 리스크 해소가 과제

지난해 최고 실적을 낸 효성이 올해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오너 리스크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1월 15일 조석래 효성 회장과 조현준 효성 사장이 각각 탈세와 횡령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앞서 검찰은 2014년 1월 조석래 회장을 분식회계, 탈세, 횡령, 배임, 위법 배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현준 사장에 대해선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1심 판결에서 조 회장의 혐의 중 탈세 1358억원만을 인정하고 횡령과 배임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 조 사장에 대해선 횡령 혐의만을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조 회장의 건강상태를 감안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IMF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이고 개인이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실형이 선고돼 안타깝다”며 “추후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IMF 외환위기 당시 효성물산을 법정관리에 넣어 정리하고자 했지만 정부와 금융권의 강요에 정리하지 못하고 합병하면서 떠안은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최고경영진의 불법 혐의가 인정되면서 오너 리스크가 효성의 장밋빛 전망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경영진의 부재 등으로 투자 계획 집행 등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아들 간 갈등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은 지난해 형 조현준 사장을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계열사를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을 내는 등 20여건의 소송을 냈다.

허욱 조선비즈 산업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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