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가 만든 매트리스에 여성 모델이 앉아 있다. 사진 캐스퍼
캐스퍼가 만든 매트리스에 여성 모델이 앉아 있다. 사진 캐스퍼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25년 전 등장해 국민 유행어가 된 광고 카피다. 침대는 어쩌면 정말 과학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매트리스에 눕느냐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캐스퍼(Casper)’는 사람들의 잠자리를 받쳐준 지 이제 4년 된 미국의 스타트업이다. 사업 모델은 간단하다. 온라인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매트리스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빠르게 무료 배송하고, 100일간 고객이 사용해본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거해간다. 소비자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판매 시작 단 한 달 만에 100만달러(약 1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창업 후 2017년까지의 매출액은 총 6억달러(약 6600억원)를 넘는다. CNN은 “캐스퍼가 매트리스 산업을 뒤흔들었다”라고 했다.

매트리스는 소재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침대엔 스프링 매트리스를 사용한다. 최근엔 스프링을 각각 부직포로 포장해 소음이 적고 동침하는 옆 사람이 움직여도 흔들림이 적은 ‘포켓 스프링 매트리스’를 많이 쓴다. 인간의 체형을 기억하는 메모리폼은 주로 베개를 만드는 데 쓰이지만 매트리스 소재로도 쓰인다. 충격 완화 기능이 뛰어나 척추 통증이 심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라텍스 매트리스도 있다. 천연, 합성 또는 두 가지를 혼합한 발포 고무 소재로 만든 것이다. 메모리폼 소재와 성질은 비슷하지만 탄성이 더 강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은 조금 약하다.

캐스퍼의 매트리스는 메모리폼과 라텍스를 혼합한 소재로 만들었다. 압축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트리스를 반으로 접어 돌돌 만 뒤 소형 냉장고만 한 종이 박스에 넣어 주문자 집으로 배송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더 캐스퍼’ 매트리스 트윈 사이즈(가로 99㎝, 세로 190㎝, 높이 25㎝, 한국의 ‘싱글’ 사이즈에 해당)의 가격은 595달러(약 66만원)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대기업 제품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성공비결 1│변화 없던 업종에 도전장

필립 크림(Philip Krim) 캐스퍼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2013년, 매트리스 시장 상황이 과거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유명 매트리스 업체 템퍼페딕이 다른 매트리스 업체 실리를 인수해 탄생한 템퍼실리 그리고 경쟁사 서타시먼스홀딩스가 업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마진율은 무려 50%에 달했다. 판매량에 비례해 수수료를 받는 영업사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로 소비자를 현혹시켜 돈을 뽑아내는 데만 치중하고 있었다.

크림은 ‘포천’ 인터뷰에서 “모든 점이 형편없는 이 업계에서 참신하고 새롭고, 혹은 즐거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 기업 아이디오(Ideo)에서 대형 매트리스 브랜드와 협업하던 제프 채핀(Jeff Chapin)을 영입했고, 세 명의 공동창업자를 더 모았다. 매장과 영업사원을 없애고 박스에 넣은 매트리스를 웹사이트에서 직접 판매하기로 했다.

2014년 4월 22일 캐스퍼 홈페이지가 열렸다. 창업자들은 첫날 매트리스가 1~2개쯤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사람들은 실물을 보지도 않고 온라인으로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6주 동안 판매하려고 준비한 매트리스 40개가 다 팔리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크림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일어나서 기사를 읽고 ‘그래 매트리스 하나 사지 뭐’라는 반응을 보이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자 대기업도 캐스퍼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템퍼실리는 박스에 포장한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코쿤바이실리’를 출시했다. 템퍼실리의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캐스퍼를 ‘위험 요소’ 중 하나로 언급했다.

캐스퍼는 매트리스를 돌돌 말아 로고가 그려진 종이 상자에 넣어 배송한다. 사진 캐스퍼
캐스퍼는 매트리스를 돌돌 말아 로고가 그려진 종이 상자에 넣어 배송한다. 사진 캐스퍼

성공비결 2│D2C로 유통 혁신

‘다이렉트 투 컨슈머(D2C·Direct-to-Consumer)’는 요즘 뜨고 있는 판매 방식이다. 제조업체가 백화점과 같은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이다. 유통 단계가 줄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해 니즈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읽는 데에도 유리하다. 마케팅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매트리스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한 번 사면 몇 년간은 계속 써야 한다. 그래서 침대를 사러 매장에 가면 매트리스에 누워보곤 한다. 캐스퍼는 이 부분에 약점이 있다. 누워보지 않고 매트리스를 사면 얼마나 편안한지, 잠은 잘 올지 알 수 없어서다. 아무리 저렴해도 불편하면 소용없는 게 매트리스다. 그래서 100일간 사용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료로 환불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고객이 매장에서 매트리스에 누워보더라도 길어야 몇 분간이다. 100일 동안 실제로 써보는 게 훨씬 낫다. D2C로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 만족은 높인 셈이다.


성공비결 3│만족스러운 경험 주는 마케팅

100일 무료 사용은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대중의 이목을 끌기는 어렵다. 그들은 이미 어딘가의 회사가 만든 매트리스에서 아침에 일어났고, 잠자리에 별 불만이 없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캐스퍼는 소비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고 소셜미디어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마케팅을 펼쳤다.

2015년 9월, 캐스퍼는 뉴욕에서 고객들을 초대해 선상파티를 열었다. 고객들은 무더운 날이었지만 칵테일을 마시며 신이 나서 보트에 놓인 캐스퍼의 매트리스 위를 돌아다녔다. 보트가 자유의 여신상 주변을 지날 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캐스퍼는 트럭을 개조해 4개의 침실 공간을 갖춘 ‘냅모빌(Napmobile)’을 만들었다. 2016년 가을, 냅모빌은 120일 동안 미국 전역 36개 도시를 돌아다녔다. 캐스퍼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들은 이 트럭에 탑승해 도로 위를 달리며 낮잠을 자는 ‘냅 투어’를 즐겼다.


성공비결 4│수면을 과학으로 만들다

캐스퍼는 매트리스의 품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창업한 후 첫 번째 겨울, 고객들은 매트리스가 전보다 단단해진 것 같다고 했다. 회사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메모리폼 수소결합 문제로 매트리스가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캐스퍼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체 메모리폼을 개발했다. 현재 30여명의 엔지니어와 산업 디자이너 등이 ‘캐스퍼 연구소’에서 매트리스를 연구한다.

항공기에도 캐스퍼의 침구류가 쓰인다. 아메리칸항공은 지난해 12월부터 국제선 장거리 노선과 미 대륙 횡단 노선의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와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캐스퍼 프리미엄 기내 침구 세트를 선보였다. 매트리스를 비롯하여 이불, 베개, 담요, 등받이 쿠션, 잠옷, 슬리퍼 등이다. 캐스퍼는 긴 시간 비행기에 탑승하는 승객에게 최상의 기내 수면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수개월간 항공 여행 환경을 연구했고, 캐스퍼의 수면 엔지니어들은 항공 여행에 최적화된 아메리칸항공 전용 기내 침구 세트를 만들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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