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월트디즈니 센터 내 레고 AS센터에서 한 어린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월트디즈니 센터 내 레고 AS센터에서 한 어린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볼트론 볼트론 볼트론 볼트론 오색 빛깔 다섯 사자 용감한 아이들, 우리는 하나, 뭉치면 평화의 사자.”

19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3040세대 중 많은 사람이 1993년 MBC(문화방송)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미래 용사 볼트론’의 주제곡을 기억한다. ‘용감한 다섯 사자’가 합체하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 만화영화가 레고(LEGO) 상품으로 이달 출시됐다. 

볼트론은 일본 도에이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백수왕 고라이온’을 미국 프로덕션에서 1984년 리메이크해 세계적 흥행을 거둔 애니메이션이다.

레고그룹은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변신 로봇 캐릭터를 소재로 한 ‘레고 아이디어 볼트론(LEGO® Ideas 21311 Voltron)’을 8월 1일 출시했다”고 밝혔다. 레고 관계자는 “이날 전 세계에서 동시에 레고 볼트론의 판매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레고는 또 오는 9월 1일 ‘해리포터 호그와트 성(LEGO® Harry Potter™ 71043 Hogwarts™ Castle)’을 출시한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호그와트(마법학교)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타워, 포탑, 마법의 방 등을 레고 블록으로 그대로 구현한다.

1932년 덴마크에서 문을 연 유명 장난감 회사 레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을 연달아 내놓는 것은 더 이상 어린이 고객만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한계에 왔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다. 길게는 30년 이상 전부터 검증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빌려 당시 어린이였던 지금의 성인 고객들의 지갑을 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 회사의 주 고객층인 어린이들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각종 테마파크 등 즐길거리들로 분산된 데다 오감을 자극하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차별점이 없는 레고블록으로는 더 이상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이미 레고그룹은 교육 시장, 영화 산업 등 무리한 사업 확장의 실패와 비디오‧PC 게임의 등장까지 맞물리면서 1998년 역사상 처음 적자를 기록한 후 2004년에는 파산 위기까지 몰렸었다. 이후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들을 정리하며 기존 블록 장난감에 스토리를 입히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또다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장난감 산업을 위협하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레고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350억크로네로 전년보다 8%(29억크로네)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16억크로네(17.02%) 감소한 78억크로네에 그쳤다. 

레고가 위기극복을 위해 들고나온 전략을 살펴봤다. 성인 고객들의 동심(童心)을 잡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위기극복 전략 1 | 믿을 건 역시 히트 캐릭터 활용한 상품

레고가 성인층까지 고객군을 넓히기 위해 들고나온 카드는 기존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와의 제휴다. 레고가 볼트론과 해리포터 등 다른 성공한 콘텐츠(애니메이션)의 손을 빌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여 년 전인 1999년 레고는 루카스필름과 라이선스를 맺고 ‘레고 스타워즈’를 출시했고 ‘스타워즈’ 영화에 나온 함선, 전투기 등을 레고 제품으로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초흥행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과 함께 출시된 레고 스타워즈는 그해 매출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1998년 1억9400만크로네의 순손실이 엄습한 가운데서도 ‘공격형 군함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레고에 도입할 수 없다’ ‘40년간 라이선스 없이 우리가 직접 제품을 개발해왔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며 반발해왔던 레고 임원들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공으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하게 됐다.

이후 레고는 배트맨, 인디애나 존스, 반지의 제왕 등 히트 콘텐츠와의 제휴로 블록에 스토리를 입히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위기극복 전략 2 | 아이디어 좋다면 아군·적군 안 가린다

레고가 이번에 출시하는 볼트론은 레고 팬들과 소통의 결과물이다. 레고 볼트론은 2016년 필리핀의 레고 팬 레안드로 타약이 제안해 ‘레고 아이디어’에 출품한 제품이다. 레고 아이디어는 레고그룹이 2009년부터 그룹 소속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만 13세 이상 고객이면 누구나 창작물을 출품하고 이 창작물이 실제 제품으로 사용되면 해당 제품 순매출액의 1%를 출품자와 나누도록 한 플랫폼이다. 볼트론은 일반 레고 팬의 투표 결과 1만 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상품화가 결정됐다.

8월 1일 출시된 레고 아이디어 볼트론. 사진 레고 아이디어
8월 1일 출시된 레고 아이디어 볼트론. 사진 레고 아이디어

레고그룹은 한때 폐쇄적 조직문화로 유명했다. 모든 신제품을 외부 콘텐츠의 도움 없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1997년 초 레고 미주 사업부장이던 피터 아이오(Peter Eio)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루카스 필름과 손잡고 레고 스타워즈 제품 라인 출시를 제안하자 레고그룹 고위 경영진들은 외부 협력 업체를 신뢰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해야 더 잘할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창립 당시부터 늘 내부 인력들의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출시해 성공해왔던 자부심과 자긍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자(1998년)와 파산 직전(2004년)까지 몰렸던 이 장난감 제국은 더 이상 내부 인력의 아이디어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대표적 예는 2005년 레고 마인드스톰 해킹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마인드스톰은 제어‧동력 모듈과 센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조립된 레고 제품을 원격 조종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제품이었다.

마인드스톰 제어 프로그램을 한 해커가 해킹해 인터넷상에 유포하자 레고는 법적 조치를 하지 않고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했다. 이런 조치를 하자 전 세계 해커와 프로그래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여러가지 마인드스톰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마인드스톰은 다양한 모습으로 공유됐고 큰 인기를 끌었다. 회사를 공격한 해커들에게까지 문을 열어 혁신의 발판으로 이용하고 있다.


위기극복 전략 3 | 근본적 변화 위해 중국 텐센트와도 손잡아

레고그룹의 콘텐츠 강화 전략은 중국 기업과의 제휴로도 이어지고 있다. 구매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중국 고객들을 공략하는 동시에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레고그룹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해 중국 콘텐츠 기업 텐센트(Tencent)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텐센트는 중국 콘텐츠 기업으로 모바일 메신저, 포털, 게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레고는 텐센트와 함께 △게임 △온라인 비디오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인 ‘레고 라이프(Lego Life)’와 컴퓨터 코딩과 실물 레고를 통합한 온라인 플랫폼인 ‘레고 부스트(Lego Boost)’를 중국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레고 부스트는 기존 레고에 모터와 센서를 탑재하고 태블릿PC용 앱과 연동하는 상품이다.

임규태 미국 조지아공대 연구교수는 “이번 신상품 출시는 성인 고객(키덜트)을 타깃으로 하는 기존 전략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강력한 콘텐츠와 연동해 키즈(어린이)가 키덜트(성인)가 될 때까지 레고 생태계(에코 시스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라면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가상세계와 현실의 레고 블록을 연결하고, 거기에 게임이나 스토리 등 콘텐츠를 집어넣어야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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