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림 2018 봄·여름 컬렉션(왼쪽)과 가을·겨울 컬렉션. 수프림은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보드와 옷,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으로 시작한 패션 브랜드다. 사진 수프림 공식 페이스북
수프림 2018 봄·여름 컬렉션(왼쪽)과 가을·겨울 컬렉션. 수프림은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보드와 옷,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으로 시작한 패션 브랜드다. 사진 수프림 공식 페이스북

8월 13일(현지시각) 아침, 미국 뉴욕 가판대는 뉴욕포스트를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번화가에선 오전 7시 30분쯤 신문이 다 팔렸고, 9시 30분엔 뉴욕 전역에서 신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23만 부 인쇄되는 신문이 출근길에 ‘완판’된 것이다. 한 청년은 7시 15분쯤 41번가 신문 가판대를 찾아 뉴욕포스트 50부를 한 번에 사 갔다.

이날 뉴욕포스트가 동난 이유는 ‘수프림(Supreme)’이라는 패션 브랜드 때문이다. 이 신문 1면에는 헤드라인과 주요 기사 대신 빨간 직사각형 모양의 수프림 로고가 덩그러니 실렸다. 1.5달러인 이 신문은 이날 중고 거래 사이트 이베이에서 12~20달러에 거래됐다.

품귀 현상을 빚은 13일 자 신문은 수프림과 뉴욕포스트의 협업 제품이다. 수프림은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 홍보를 위해 뉴욕포스트 1면에 브랜드 광고를 실었다. 수프림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신문이 인쇄되는 동영상을 올렸고, 이 게시글엔 18만2000개의 ‘좋아요’와 17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수프림이 도대체 뭐기에 하루 23만 부 인쇄되는 신문이 출근길에 완판된 것일까. 수프림은 1994년 미국 뉴욕에서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보드와 옷, 액세서리를 파는 매장으로 시작한 ‘스트리트 패션(길거리 패션)’ 브랜드다. 뉴욕포스트 완판 사태에서 보듯, 수프림은 ‘품절 신화’로 유명하다. 2016년 수프림이 벽돌에 로고를 찍어 30달러에 내놓자 품절됐고,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1000~2000달러에 팔렸다. 지난해엔 뉴욕 교통국과 협업해 지하철표에 수프림 로고를 새겼더니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지하철역으로 몰려 경찰이 출동했다.

수프림은 루이뷔통, 꼼 데 가르송, 톰 브라운, 나이키, 노스페이스 같은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700건의 협업을 진행했다. 2017년 수프림과 루이뷔통이 협업해 만든 트렁크가 지난 5월 프랑스 미술 경매 회사 ‘아트큐리얼’이 진행한 경매에서 1억1280만원에 팔렸다.

수프림의 매출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 수프림 매장에 줄지어 늘어선 행렬과 몇 배의 마진이 붙어 수프림 제품이 재판매되는 현상 등을 보면 수프림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글로벌 투자 그룹 칼라일은 지난해 수프림의 브랜드 가치를 약 10억달러(1조1000억원)로 평가하며, 지분 50%를 사들였다.


성공비결 1 |
극소량 생산해 제품 가치 높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패션 브랜드가 매번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한정된 수량으로 제품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이는 한정판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이다.

수프림은 거의 모든 제품을 극소량만 생산한다. 적은 수량만 팔고, 한 번 판매한 것은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원칙적으로 다시 만들지 않는다. 신제품 출시 시점도 철저하게 지킨다.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온·오프라인에 신제품을 내놓는다.

매주 목요일 뉴욕 맨해튼 라파예트 거리 수프림 매장 앞은 한정판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전날 밤부터 노숙하는 사람도 상당하다.

수프림 온라인 매장에서도 치열한 구매 경쟁이 벌어진다. 출시와 동시에 매진되다 보니,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카드 결제 빨리하는 법’과 같은 팁이 공유되고, 자동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거래되기도 한다. 이날 팔린 제품들은 몇 시간도 안 돼 비싼 값이 매겨져 이베이에 올라온다. 18만원에 출시된 ‘박스 로고 후드 티셔츠’ 가격이 120만원까지 뛰기도 한다. 수프림 한정판 제품의 재판매로 수익을 보는 ‘수프림 테크’란 말까지 생길 정도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수프림 제품을 산다. 일단 사면 이베이에서 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 수량과 시간의 제약뿐 아니라 판매 장소도 제한했다. 수프림은 전 세계적인 인기에도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4개국에서만 공식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진인 미국에도 매장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단 두 곳뿐이며, 유럽에도 런던과 파리에 각각 1개 매장만 두고 있다. 파트너가 운영하는 일본에만 도쿄, 나고야 등 6개의 매장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프림과 다양한 브랜드가 협업해 만든 제품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아트큐리얼이 지난 5월 수프림의 한정판 제품들로 진행한 경매에서 피규어 브랜드 ‘카우스’와 협업한 피규어 제품이 1억284만원, 루이뷔통과 협업한 스케이트보드 트렁크는 약 8000만원에 팔렸다. 2016년 파리 매장 개장을 기념해 만든 박스 로고 티셔츠는 약 725만원에 낙찰됐다.

수프림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품 600개를 팔 수 있다고 해도 400개만 만들 것”이라고 말해왔다. 희소성에 기반한 수프림의 유통 모델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수프림 로고가 들어간 뉴욕포스트 신문. 사진 유튜브 캡처
수프림 로고가 들어간 뉴욕포스트 신문. 사진 유튜브 캡처

성공비결 2 |
스케이트보더 문화 흡수해 충성 팬 확보

수프림은 원래 스케이트보더를 위한 브랜드로 시작했다. 제비아는 1990년대 후반 뉴욕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던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층이 이용할 만한 패션 매장이 없다는 데 주목했다. 이들은 멋을 내고 싶었지만 당시 스케이트보더용 의류가 많지 않아 볼품없는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비아는 보더들을 위한 패션을 만들기로 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매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매장 문턱을 없앴다. 또 중앙에 움푹 파인 볼(bowl)을 설치해 실내에서도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은 보드를 탈 줄 몰랐기 때문에 뉴욕 뒷골목의 스케이트보더를 매장 직원으로 채용했다. 뉴욕 매장 개점 첫날부터 스케이트보더들이 몰려왔고, 매장은 곧 뉴욕 스케이트보더들의 아지트가 됐다. 직원들은 보드를 탄 채 매장을 돌아다녔고,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고객을 대했다. 이런 직원들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이는 불편함보다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이들의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직원과 고객이 보드 기술을 공유하며 문화를 만들어 갔고, ‘수프림’이라는 이름으로 스케이트보드팀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데크(스케이트보드 판), 티셔츠 등 보더를 위한 패션 아이템 판매가 늘어났다.


성공비결 3 |
판매 수량 줄이는 대신 품질에 주력

수프림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 단지 한정 판매 전략이나 스케이트보더를 중심으로 한 문화 마케팅 때문만은 아니다. 수프림은 마케팅 이전에 기본에 집중했다. 고객은 수프림의 장점으로 ‘품질’을 꼽는다. 제비아는 ‘스트리트 패션 아이템은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판매 수량을 줄이는 대신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동시에 가격은 합리적인 수준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수프림은 스웨트셔츠(땀을 발산하기 쉽게 만든 셔츠) 한 장을 만들어도 두툼하고 좋은 품질의 원단에 로고를 튼튼하게 박아 제대로 만든다. 그리고 경쟁 브랜드보다는 조금 더 비싼 값에 판다. 고객은 품질에 만족하고 가격을 받아들인다.

제비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딱히 비결이랄 것은 없다”며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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