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의 참석자가 볼보의 고성능 하이브리드 전기차 ‘폴스타1’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의 참석자가 볼보의 고성능 하이브리드 전기차 ‘폴스타1’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중국 소작농과 결혼했다.’ 중국 지리(吉利)자동차가 2010년 볼보를 인수했을 때 리수푸(李書福) 지리자동차 회장이 한 말이다. 사진관과 냉장고 사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리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건 1990년대 말이었고, 인수 당시 볼보 매출이 지리의 20배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볼보의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2009년 회계연도 기준 영업손실이 6억5300만달러(약 7260억원)에 달했다. 1970년대 인기 팝그룹 ‘아바(ABBA)’와 함께 ‘스웨덴의 자존심’이었던 볼보는 이에 앞서 1999년 미국 포드자동차에 인수됐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린 포드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게 된다. 당시 포드가 내놓은 매물에는 인도 타타그룹으로 넘어간 재규어·랜드로버도 있었다.

포드의 볼보 인수 가격은 65억달러였지만 11년 뒤 지리의 인수 가격은 18억달러에 불과했다. 1927년 창업 후 줄곧 ‘안전한 차’의 대명사로 인식된 볼보였기에 골수팬들이 적지 않았지만 애매한 포지셔닝이 문제였다. 벤츠·BMW·아우디 등 럭셔리 브랜드와는 큰 격차가 있었고, 그렇다고 폴크스바겐·도요타·GM과 경쟁하자니 생산 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볼보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2009년 33만 대였던 승용차 판매가 지난해 57만 대까지 늘었다. 매출은 같은 기간 약 13조8000억원에서 25조5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1년 약 200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조8000억원으로 9배나 뛰었다.

성공에 고무된 지리는 볼보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가 예상하는 볼보의 기업가치는 최대 300억달러(약 34조원)에 달한다. 인수 당시보다 15배 넘게 몸값을 불린 셈이다.

지리의 성장세도 놀랍다. 지리는 작년에만 볼보의 상용차 부문(볼보AB) 등 4개 자동차 회사를 사들였다. 올해 초에는 다임러 지분 9.69%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2010년 41만6100대였던 지리의 중국 판매는 지난해 120만2900대로 세 배가 됐다.

지리와 볼보는 지난해 11월 ‘링크앤드코(Lynk & Co)’라는 합작 브랜드를 출범, 생산과 판매에서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첫 모델 ‘링크앤드코01’은 출시 4개월 만에 3만여 대가 팔리고 예약이 밀리면서 큰 화제를 낳았다. 퇴물 취급받던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중국 소작농의 행복한 결혼 생활 비결은 뭘까.


성공비결 1│독립경영 보장·적극적 투자

리 회장은 인수 초기부터 볼보를 벤츠나 BMW 같은 명실상부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80여 년 역사의 ‘스웨덴’ 자동차 기업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이나 생산 분야에서 협력하되 브랜드 이미지는 따로 독립적으로 구축했다. 볼보 경영진의 자율권도 보장했다.

지리는 볼보 인수 후 5년간 R&D에만 120억달러가량을 쏟아부으면서 공장 증설 등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3년 중국 청두에 한 해 12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이와 함께 스웨덴과 벨기에 공장에서 생산을 계속하겠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된 자율 경영은 기존 볼보 브랜드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세계 최대 소비 시장 중국에서 급성장하는 이상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S90의 경우 지난 4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2만565대가 팔렸는데, 이 중 56%에 해당하는 1만1564대가 중국에서 판매됐다. 중국에서는 친숙한 자국 업체로, 중국 밖에서는 스웨덴 기업으로 포지셔닝 하는 ‘투트랙 전략’이 결실을 본 것이다.


성공비결 2│미래 지향적인 인력 구성

지리로부터 자율권을 보장받은 볼보 경영진은 볼보가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인력 구성부터 달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스테판 자코비 당시 최고경영자(CEO)와 비외른 살스트롬 인사 총괄 사장(CHRO)을 중심으로 ‘새로운 피’ 수혈 작업에 돌입했다. 2011~2015년 R&D 인력만 3000명을 충원했고 영업 인력도 확충했다.

당시 인사의 특징은 비(非)자동차 업계 출신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다. 구글의 세일즈와 마케팅 담당자 출신도 있었고 전직 노키아 엔지니어도 포함됐다. 살스트롬 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자동차는 1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며 “예전에는 기계공학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했지만, 요즘은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가 더 도움된다. 자동차가 컴퓨터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새로운 인재에게 자동차 산업 변화와 볼보의 비전에 대해 교육하는 일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300명의 핵심 인력을 선발, 이들을 대상으로 개별 코칭을 실시해 변화의 촉매로 삼았다.

자코비의 후임인 하칸 사뮤엘손 현 CEO도 직원과 정기적으로 화상채팅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에 임하고 있다.


볼보와 지리가 합작 생산하는 중형SUV ‘링크앤드코01’(위)와 소형SUV ‘링크앤드코02’. 사진 블룸버그
볼보와 지리가 합작 생산하는 중형SUV ‘링크앤드코01’(위)와 소형SUV ‘링크앤드코02’. 사진 블룸버그

성공비결 3│안전, 안전, 또 안전

지리가 볼보를 인수했을 당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 업체로 넘어간 볼보가 ‘안전한 차’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볼보는 창업 초기부터 스웨덴의 춥고 거친 기후와 열악한 도로 사정을 견딜 수 있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지리는 볼보 인수 이후에도 지속해서 혁신적인 안전 기술을 선보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201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뉴 V40’을 출시하며 선보인 보행자 에어백과 2015년 ‘올 뉴XC90’을 출시하면서 소개한 세계 최초의 도로 이탈 보호 시스템(Run-off Road Protection)이 대표적이다.

보행자 에어백은 차량이 보행자와 충돌했을 때 보닛에 설치된 에어백이 작동해 보행자가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시속 20~50㎞로 주행하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보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더라도 차량 전방에 있는 7개의 센서가 보행자의 다리를 감지해 차량 외부의 에어백을 순간 팽창시킨다.

도로 이탈 보호 시스템은 차량이 급제동과 긴급 회피 행동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를 감지해 작동된다. 안전벨트를 통해 탑승자의 상체를 충돌이 일어나는 반대 방향으로 고정하며, 좌석에 장착된 충격 흡수 장치가 작동된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볼보의 스포츠세단 ‘올 뉴 S60’은 2012년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한 종합 안전성 검사에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획득했다. 최근 출시된 콤팩트 SUV인 ‘더 뉴 볼보 XC40’은 얼마 전 유럽의 차량안전도 평가기관 유로앤캡 안전성 평가에서 역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획득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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