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국민라면으로 자리매김 한 ‘데마에잇쵸(出前一丁)’ 라면. 사진 블룸버그
홍콩의 국민라면으로 자리매김 한 ‘데마에잇쵸(出前一丁)’ 라면. 사진 블룸버그

“인류의 발전을 기념하는 만신전(萬神殿·판테온)에서 불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일본 닛신(日淸)식품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가 2007년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에 언급된 내용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뭘까. 비행기와 휴대전화, 에어컨(끔찍하게 더웠던 올해 여름을 생각하면 수긍된다) 등이 떠오르지만, ‘라면’을 꼽는 이들도 많다. 이재민들을 위한 구호물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라면이라는 것을 보면 맛있는 간편식 정도로만 치부해선 안 될 것 같다.

올해는 인스턴트 라면 탄생 60주년이 되는 해다. 1958년 닛신(1948년 창업)이 개발해 판매한 ‘치킨라면’이 시초다. 닛신을 창업한 대만 출신의 안도는 아내가 튀김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면을 기름에 살짝 튀긴 후, 나중에 끓는 물로 조리하는) 인스턴트 라면을 고안했다.

치킨라면의 당시 판매 가격은 개당 35엔(약 340원)이었다. 그때 우동 한 그릇이 6엔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 고가였다. 그런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닛신의 지난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매출은 5164억엔(약 5조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34억엔(약 3300억원)으로 1.6% 늘었다. 참고로 국내 라면 업계 부동의 1위인 농심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2000억원, 964억원이었다. 닛신은 현재 브라질과 홍콩, 인도, 헝가리, 독일, 중국, 멕시코 등에 생산시설과 사무소를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침체기에 창업한 닛신이 매출 5조원인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비결 1│최고의 테스트베드는 ‘실전’

닛신은 일본에서만 매년 300종이 넘는 신제품을 출시한다.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장에서 자취를 감추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제품군은 그해의 주력 상품이 된다. 젊은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똠얌꿍(태국식 해산물 수프)’ 맛 컵라면과 지방 함량을 절반으로 줄이고도 진한 국물 맛을 살린 ‘나이스(Nice)’ 컵라면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4월 출시된 나이스 컵라면은 성인병에 대한 걱정이 일상화된 중·장년층 남성을 겨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제품 출시 이전의 시장조사 결과나 관련 데이터에 큰 미련을 갖지 않고 판매 실적을 바탕으로 냉정하고 기민하게 대응해 온 것이 꾸준히 히트상품을 내놓은 원동력이 됐다. 라면처럼 제조 단가가 낮은 소비재 제품군에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성공비결 2│현지화가 곧 국제화

닛신은 ‘미식 천국’ 홍콩의 ‘국민 라면’ 브랜드다. 홍콩 인구는 740만 명 정도지만 13억 인구의 중국 본토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로 의미가 크다. 홍콩에서 검증된 제품은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연간 약 370억 개의 라면이 팔리는 세계 최대 라면 시장이다.

2016년 기준으로 홍콩 라면 시장(컵라면 제외)의 60%를 닛신이 차지하고 있다. 1985년 현지 생산을 시작한 ‘데마에잇쵸(出前一丁)’ 라면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데마에잇쵸 단일 브랜드의 홍콩 라면 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비결은 현지화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데마에잇쵸 라면은 참기름, 간장소스가 수프로 제공되지만, 홍콩에서는 흑마늘 기름과 돼지고기, 해산물을 포함해 15가지 다양한 맛으로 출시된다. 나라마다 입맛이 각양각색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현지인 입맛에 따른 차별화 전략은 필수 조건일 수밖에 없다.


성공비결 3│젊은층 사로잡은 마케팅

홍콩과 중국의 연간 라면 판매는 2013년 462억 개로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이다. 이 지역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닛신도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중국의 중산층 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선택 가능한 먹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라면 판매 감소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닛신이 골프와 테니스 등을 매개로 한 스포츠 마케팅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쿨(cool)’하게 유지하는 것이 미래 고객 확보에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닛신은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세계 랭킹 7위)와 니시코리 게이(세계 랭킹 9위)의 후원사다. 닛신은 또 일본 프로골프투어 메이저대회인 ‘닛신 컵누들 컵’의 타이틀 스폰서이기도 하다.

TV 광고도 젊은층을 사로잡는 강력한 소통 도구다. 닛신 광고는 소위 ‘병맛’으로 불리는 엽기적이고 기괴한 유머 코드로 젊은층의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4월에 처음 공개된 광고에서는 사람으로 변한 컵라면이 “보여줄게. 매콤한 꿈을”이라고 말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plus point

최초의 컵라면은 미국 시장 공략용

닛신의 컵누들. 사진 블룸버그
닛신의 컵누들. 사진 블룸버그

치킨라면을 일본에서 대히트시킨 안도는 이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성공을 꿈꾸며 미국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인은 뜨거운 국물에서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먹는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스티로폼 컵에 건조된 면과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간편하게 조리해 먹는 컵라면이었다. 미국인이 한 손으로 들고 포크로 면을 건져 먹기 편하도록 용기를 디자인했다. 1970년 미국 지사를 설립했고, 이듬해에 ‘컵누들(Cup Noodles)’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컵라면을 선보였다. 컵누들은 이때부터 2016년까지 400억 개가 넘게 팔렸다.

미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 컵라면은 초기에 인기가 없었다. 값도 비쌌던 데다 누구나 집에 냄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 매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1972년 나가노현 아사마 산장(山莊) 인질극 현장에서 기동대원들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TV로 방영되며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편의점의 폭발적인 증가와 1990년대 1인 가구의 증가가 컵라면 인기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에서는 삼양식품이 1972년 컵라면을 출시했지만, 봉지 면보다 네 배나 비싼 가격에 고전하다 끝내 단종됐다. 이후 1981년 농심이 ‘사발면’을 내놓으며 부활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간편한 한 끼 음식으로 주목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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