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돈키호테 매장 전경. 사진 돈키호테
일본 도쿄 신주쿠에 있는 돈키호테 매장 전경. 사진 돈키호테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도,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의 확산도 돈키호테의 거침 없는 질주를 멈춰 세우지는 못했다.

짐작했겠지만 세르반테스 소설 ‘돈키호테’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동명의 일본 저가 쇼핑몰 이야기다. 돈키호테는 1989년 창업 이래로 지난해까지 매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상승했다. 일본 생활용품 전문점 ‘니토리(30년 연속 실적 상승)’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록이다.

2000년에 각각 800억엔, 50억엔 안팎이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약 8300억엔(8조3600억원), 455억엔으로 16년 사이에 약 10배씩 늘었다. 2005년 100여개에 불과했던 일본 내 돈키호테 매장 수는 지난해 370여개로 증가했다. 취급 품목은 식품과 일회용품을 비롯해 잡화, 패션 용품, 가전제품 등 다양하다.

돈키호테 창업자는 명문 게이오대 출신의 야스다 다카오(安田隆夫)다.

부동산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회사가 부도나면서 마작에 빠져 지내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1978년 당시 유행하던 할인 매장을 눈여겨보고 29세가 되던 이듬해 전 재산을 털어 ‘도둑시장(泥棒市場)’이란 상호로 가게를 시작했다. 초저가 상품 조달, 독특한 상품 진열, 야간 운영 등 오늘날 돈키호테를 설명하는 특징들이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1989년 도쿄 인근 후추(府中)에 돈키호테 매장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키호테는 신세계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운영 중인 ‘삐에로쑈핑’의 벤치마킹 모델이기도 하다. 돈키호테의 멈춤 없는 성장 비결을 분석했다.


성공비결 1│저가·야간 시장 개척

돈키호테는 이전까지 일본 유통회사들이 간과했던 저소득층 대상 초저가 제품 시장과 독신자, 20~30대 젊은이들의 잠재 수요가 많은 야간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다.

1989년 돈키호테가 설립됐을 때 일본은 20년에 걸친 장기 불황에 접어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근검절약이 몸에 밴 일본인은 더욱 저가상품 소비를 늘렸다. 또 1990년대는 일본에서 1인 가구 비중이 한창 증가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돈키호테는 ‘가장 저렴한 매장’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다.

돈키호테는 초기부터 덤핑 또는 반품 상품을 사들여 싼값에 파는 것을 핵심 사업 모델로 삼았다. 이른바 ‘현장구매’로 불리는 이 같은 판매 방식은 돈키호테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

독신자, 20~30대 젊은층의 심야 쇼핑 니즈를 포착해, 야간 영업을 강화한 것도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도둑시장’을 운영할 때 일손이 부족해 심야에 상품을 들여와 진열해야 했는데, 의외로 많은 손님이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편의점도 오후 11시에는 문을 닫는 곳이 많았지만, 도둑시장은 자정까지 문을 열었다.

대형 수퍼마켓과 쇼핑센터 등 자본력에서 크게 앞선 대형 소매업체와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심야 고객들은 낮에 방문하는 고객보다 쉽게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봤다. 지난해 기준 돈키호테의 야간 매출은 전체 매출의 6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하고 재밌는 디자인의 양말은 돈키호테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사진 돈키호테
다양하고 재밌는 디자인의 양말은 돈키호테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사진 돈키호테

성공비결 2│재미를 극대화한 상품 진열

가격 경쟁력만 앞세워서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할 수 없고, 이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돈키호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즐거움’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보통 일본 소매 회사들은 고객이 쇼핑에 들이는 시간을 가능한 한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원하지만, 돈키호테는 매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쓰길 원한다. “쇼핑은 즐거워야 한다”는 야스다 회장의 믿음 때문이다.

‘돈키호테에 방문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도록 독특한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것이 ‘압축진열’이라 불리는 상품 진열 방식이다. 돈키호테는 수많은 상품을 천장에 닿을 정도로 빼곡히 쌓아두기 때문에 소비자가 필요한 상품을 찾기 위해서는 한참을 진열대 앞에 있어야 한다. 식음료 다음에 전자기기, 전자기기 다음에 주방용품이 나오는 등 매장 구성도 불규칙적이다.

인기 있는 상품들을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두는 경우도 있다. 제품을 찾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다.

돈키호테 특유의 난잡한(?) 매장 운영 방식은 수십년에 걸친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이기도 하다. 가령 넓은 통로 앞부분 선반은 상품이 낮게 쌓여 있고, 안쪽까지 대략적인 상품 진열을 살펴볼 수 있게 돼 있다. 맨 안쪽에는 인기 상품이 놓인다. 고객이 돈키호테의 ‘상품 정글’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구매 연령층에 따라 진열대 높이와 배치를 조정하기도 한다. 가령 캐릭터 상품은 몇 단으로 나누어 진열된다. 부모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캐릭터 상품을 발견하고 바닥으로 내려와 물건을 집는 것을 고려한 결과다.


성공비결 3│매장 자율성 극대화

일선 매장과 현장 직원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해 고객 수요에 대한 반응성을 높이고, 점포가 위치한 지역 특색에 맞춰 상품을 갖추게 한 것도 돈키호테의 특징이다. 진열 방식도 점장이 결정한다.

도시와 지방, 교외 등 지역에 따라 고객의 특징과 선호 상품, 방문 빈도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점포에 권한을 위임하는 이유다. 전체 제품 가운데 60%는 본사에서 공급하지만, 나머지 40%는 매니저나 각 매장 책임자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 제품 가격도 점포마다 다르다. 심지어 운영 시간도 매장마다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이에 대해 야스다 회장은 ‘미세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점포마다 임대료, 주요 고객층, 지역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파는 일반적인 방식이 비정상적이라는 게 돈키호테의 철학이다.

심지어 아르바이트 직원도 상당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진열대 하나의 상품 매입이 통째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맡겨지곤 한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직원이 다른 매장 정직원에게 전화해서 재고 인수를 부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점장이라 해도 크리스마스 등 성수기에는 직접 매장 진열을 맡기도 하는 등 현장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돈키호테는 2020년까지 매출 1조원, 500호점 출점, 자기자본이익률(ROE) 15%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물가가 비싼 선진국에서는 저가 쇼핑몰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고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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