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번역 기능이 접목된 부킹닷컴의 AI 메신저. 사진 부킹홀딩스
자동 번역 기능이 접목된 부킹닷컴의 AI 메신저. 사진 부킹홀딩스

‘업무에 치어 결혼 10주년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비하려 한 여행 예약을 깜빡했다. 다급한 마음에 옆에 있는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비서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예산과 원하는 숙소 종류, 날씨 등을 알려주니 잠시 후 조건에 맞는 추천 일정을 스마트폰 앱으로 보내준다.’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이 지금처럼 급속도로 발전하면 머지않아 이런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될지 모른다.

사실 여행 산업만큼 AI 기술 접목이 중요한 분야도 없다. 숙소와 음식 등 주요 항목마다 취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여행 경험과 선호도, 불만 사항 등에 관한 엄청난 양의 고객 정보를 AI를 통해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정보 기업 부킹홀딩스(옛 프라이스라인그룹)의 성공도 AI 기술 경쟁력을 빼면 설명이 어렵다. 미국 코네티컷주 노워크에 본사를 둔 부킹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126억8000만달러(약 14조2200억원)로 12년 연속 증가했다. 같은 해 순이익은 23억4100만달러(약 2조6400억원)로 10년 사이 17배 가까이 늘었다. 시가총액(19일 종가 기준)은 804억6000만달러(약 91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부킹닷컴과 아고다 등 부킹홀딩스 소속 기업을 통해 이뤄진 숙소 예약은 총 6억7310만 박(泊)에 달한다.

부킹홀딩스는 미국 뉴욕 출신 사업가 제이 워커가 1998년 ‘프라이스라인’이란 이름으로 창업했다. 아이비리그 명문 코넬대 출신인 워커는 18건에 이르는 인터넷 비즈니스 특허를 보유해 ‘새 시대의 에디슨’으로 칭송받던 인물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프라이스라인의 운영 방식이었던 ‘역(逆)경매’였다. 일반 경매는 팔려는 쪽이 물건을 내놓고 값을 올려가는 반면 역경매는 사려는 사람이 가격을 제시하면 공급업체들이 경매에 응하는 방식이다.

혁신적인 역경매 방식으로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 예약 판매 사업에 뛰어들면서 창업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뉴욕증시(나스닥: PCLN)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한때 그의 보유 주식 가치는 50억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들어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주가는 폭락했고, 워커도 회사를 떠나야 했다. 현재 이 부킹홀딩스 지분은 T로위프라이스와 뱅가드그룹, 블랙록 등 여러 기관투자가가 분산 소유하고 있다.

한때 닷컴버블 붕괴의 상징처럼 회자되던 부킹홀딩스가 매출 14조원의 세계 최대 온라인 여행정보 기업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성공비결 1│
효과적인 인수·합병과 파트너십

워커가 물러난 뒤 회사를 키운 건 제프리 보이드였다. 법률고문 출신으로 인수·합병(M&A)에 밝았던 그는 2002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뒤 공격적인 M&A로 경쟁사들을 사들이며 외형을 키우는 동시에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현재 최대 수입원이자 지주회사의 이름이 된 부킹닷컴도 2005년 7월 1억1000만유로(약 1416억원)에 사들인 것이다. 그 밖에도 숙박업소 예약서비스 회사 아고다(2007년), 렌터카 서비스 회사 트래블직소(현 렌털카스닷컴·2010년), 여행 검색엔진 카약(2013년), 식당 예약서비스 회사 오픈테이블(2014년), 항공권 비교·예약서비스 기업 모몬도그룹(2017년) 등 현재 그룹 내 주력 업체 대부분을 M&A를 통해 사들였다. 지난 7월에는 호주 시드니에 본사를 둔 호텔 검색 엔진 호텔스컴바인도 인수했다.

해외 여행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에서는 현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용자를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디디추싱에 5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중국 최대 음식 배달 앱 메이퇀뎬핑, 아시아 최대의 온라인 여행사 C트립과도 파트너십을 수립했다. 디디추싱과 메이퇀뎬핑 가입자 수는 각각 5억5000만명, 3억1000만명(6월 기준)에 달한다. 이들 앱에 부킹닷컴과 아고다 등의 링크만 걸어두어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성공비결 2│
스케일이 다른 AI 기술 접목

빅데이터 기반의 AI 접목을 통해 최적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느새 여행정보 전문 기업의 기본이 돼버렸다. 부킹홀딩스가 앞선 부분은 기술 접목의 스케일과 깊이다.

일례로 부킹닷컴 홈페이지(booking.com)에서는 요일과 시간대 관계없이 최소 1000건 이상의 AI를 이용한 고객 반응 테스트가 늘 진행된다. 웹페이지상의 작은 변화에 고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니터해 이를 서비스에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고객 리뷰도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한국어를 포함해 총 47개 언어로 서비스하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권별 데이터 분석도 용이하다.

M&A를 통해 규모를 키운 것도 AI 기술 접목 경쟁에 유리한 점이 있다. 수집∙분석 가능한 고객 데이터도 외연에 비례해 늘었기 때문이다. AI 분석 관련 업무를 외부 전문업체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행한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행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자체 기술로 해결이 어려우면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자연어 처리(읽는 능력)와 AI 챗봇 개발에 앞선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이베이처(Evature)를 지난해 9월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성공비결 3│
‘모바일 퍼스트’ 로 신흥시장 공략

부킹닷컴을 비롯한 부킹홀딩스 수익의 약 90%는 미국 밖에서 발생한다. 특히 중산층 인구 증가로 해외 여행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부킹홀딩스가 ‘모바일 퍼스트’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흥국 시장의 경우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접속이 전체 인터넷 이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인터넷 이용자 중 데스크톱 PC 이용 비율은 53%에 불과할 만큼 모바일 의존도가 높다.

모바일로 접속할 경우 PC에 비해 스크린 크기가 작아 광고 연계에 제약이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부킹홀딩스 수익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6.6%에 불과해(나머지는 호텔 등에서 받는 수수료) 큰 문제는 아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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