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시코커스에 있는 ‘렌트 더 런웨이’ 물류창고. 사진 렌트 더 런웨이
미국 뉴저지주 시코커스에 있는 ‘렌트 더 런웨이’ 물류창고. 사진 렌트 더 런웨이

미국 패션 중심지 뉴욕 맨해튼 ‘5번가’가 비어가고 있다. 2018년 9월 기준 리테일(소매점) 20%가 공실이다. 의류 브랜드 갭(GAP)은 이곳에 있던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를 폐점했고, 폴로(Polo)도 플래그십스토어 문을 닫았다. 타미힐피거(TommyHilfiger), 캘빈클라인(CK), 베르사체(Versace) 등의 브랜드도 이곳 매장을 이미 폐쇄했거나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우울한 5번가의 분위기와는 달리 패션 업계의 ‘넷플릭스(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로 불리는 미국 의류 렌털(대여) 업체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9년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동기인 제니퍼 하이먼과 제니퍼 플라이스가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온라인 의류 대여 사업에 넷플릭스와 비슷한 월정액 구독제를 도입하면서 5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모집하고, 2016년 연간 매출액 1억달러(약 1130억원)를 돌파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패션 유통 생태계의 일면이다.

렌트 더 런웨이는 가입자로부터 30~159달러(약 3만4000~18만원)를 월정액으로 받고 유명 브랜드의 최신 의류를 대여해 준다. 월정액 규모에 따라 대여 횟수는 무제한까지 가능하다. 월정액이 부담스러울 경우 각각의 옷마다 다른 대여비를 지불하고 일회성으로 빌리는 것도 가능하다. 졸업·결혼·파티 등 각종 이벤트에 필요한 의류부터 일상복까지 카테고리별로 갖추고 있다.

최근 기업가치를 10억달러(약 1조1370억원)로 평가받으면서 1억2500만달러(약 1421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이 2000만달러(약 213억원)를 투자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동 창업자 제니퍼 하이먼은 “우리는 ‘옷장 없는 미래(Closetless Future)’를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이는 여성들이 매일 무제한의 옵션에서 본인이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있는 세상”이라고 했다. 이 회사의 성공비결을 짚어본다.


비결 1│제조사 수익 채널 다변화

렌트 더 런웨이의 성공비결은 우선 의류 브랜드(제조사)의 수요를 충족시켰다는 점이다. 의류 제조사들은 렌트 더 런웨이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납품하면 기존의 ‘판매’와는 다른 ‘대여’라는 새로운 수익원이 생긴다. 실제 클럽모나코(Club Monaco) 등 유명 브랜드들은 렌트 더 런웨이에 제품을 공급하고 대여 수익 중 일부를 가져간다. 또 제조사들은 ‘경험 마케팅’의 플랫폼으로 렌트 더 런웨이를 활용한다. 고객이 대여한 옷이 마음에 들 경우 향후 실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물론 브랜드의 신흥 디자이너 신제품을 대중에게 미리 소개하는 창구로도 활용된다. 양사 간 구축한 데이터베이스(DB) 플랫폼을 통해 제조사는 렌트 더 런웨이의 소비자 DB를 신상품 개발로 연결할 수도 있다.


비결 2│밀레니얼세대 타깃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여를 통해 다양한 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세대는 같은 옷을 반복해서 입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SNS에 업로드하는 사진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사의 주 타깃은 밀레니얼세대(1981~2000년생)로 이들은 같은 옷을 여러 번 입지 않고 충동적인 구매도 잦다. 대여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셈이다. 또 대여는 밀레니얼세대가 가진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대여가 일상화되면 옷장에 쌓인 오래된 옷을 버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세대는 사치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특성이 있어 자연 친화적인 소비에 대한 포용성이 높다.


비결 3│빅데이터와 구독경제 효과

렌트 더 런웨이의 주 타깃은 밀레니얼세대를 포함한 20~40대 전문직 종사자다. 이 회사는 고객이 회원가입 시 직접 입력한 신체 정보를 토대로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의류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추천한다. 여기에 스마트 운송물류 시스템을 도입해 당일 반환받은 의류를 즉시 검사하고 세탁한 후 같은 날 다른 고객에게 발송하고 있다.

아울러 구독경제 효과도 누리고 있다. 앞서 2009년 이 회사는 여성들이 특별한 날 입을 만한 드레스나 사무실에서 입을 의류 중 고가로 분류되는 제품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출범했다. 이 회사는 2016년, 현재와 같은 구독제(Subscription) 서비스를 도입한 후 연매출 1억달러를 돌파했다.


2023년 2조원 시장…한국은 아직 걸음마

미국 온라인 리세일(재판매) 업체 ‘스레드업’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화점과 소매점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통한 의류 판매 비중은 2018년 82%에서 2028년 68% 수준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의류 대여 비중은 2%에서 4%로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의류 대여 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약 12억달러(약 1조3400억원)에서 2023년 약 18억달러(약 2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한국의 의류 대여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16년 관련 업체들이 문을 열었다가 수익성이 악화돼 줄줄이 폐점했다. 2015년 SK플래닛이 론칭한 ‘프로젝트앤’과 스타트업 업체인 ‘윙클로젯’ ‘원투웨어’ 등이 대표적인 회사다. 이들 업체들은 패션에 관심이 있는 20~4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고 월정액을 받아 해외 명품 브랜드부터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최신 유행 아이템까지 대여해줬지만 실패했다. 당시 소비자들은 필요한 날 필요한 옷은 항상 ‘대여 중’이었다는 점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았다. 이미 월정액을 지불한 회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옷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탈퇴로 이어졌다. 이처럼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지 못한 건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투입이 있어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plus point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서 한 남자가 상점에 진열된 옷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서 한 남자가 상점에 진열된 옷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3월 27일(현지시각) 미국 폭스비즈니스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의류업계의 플래그십 매장이 사라지고 있다. 타미힐피거(TommyHilfiger)는 2040㎡(약 617평) 규모의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 플래그십 매장의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다니엘 그리더 타미힐피거 최고경영자(CEO)는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캘빈클라인(CK) 역시 플래그십 매장의 문을 닫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미 문을 닫은 갭(GAP), 로드앤드테일러(Lord&Taylor) 등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2017년 폴로(Polo)가 5번가 매장의 문을 닫을 계획이라고 발표하고 폐점한 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패션피플’들이 모이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나 청담동, 가로수길 등에서 임대 포스터가 붙은 빈 가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조명숙 패션칼럼니스트는 “세계적인 트렌드가 재편되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지고 있어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으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라며 “현재 10~30대인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생각을 읽지 못하면 노련한 기업도 언제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향후 10년 이내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결합한 ‘신유통’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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