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
카니예 웨스트.

“‘이지’는 매년 10억달러(약 1조2150억원) 이상씩 벌어들일 거야.” 지난해 4월 미국의 인기 래퍼이자 프로듀서 카니예 웨스트(42·이하 카니예)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말이다. ‘이지(Yeezy)’는 카니예의 별명이자 그의 사업 전체를 아우르는 브랜드명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과장을 즐기는 그의 성격을 잘 아는 3억 명의 팔로어들은 카니예의 트윗을 허풍으로 치부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카니예는 자신이 말한 것들을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다. 아디다스와 협업해서 만드는 운동화 ‘이지부스트’는 내놓자마자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켤레당 500달러(약 6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새 디자인을 내놓을 때마다 매진 행렬이다. 미국 매체가 ‘올해의 신발’로 선정한 2016년판 ‘이지부스트 350’은 1분에 4만 켤레가 팔리기도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인 카니예의 사업 욕심은 유명하다. 루이비통, A.P.C 등 유명 패션 기업들과 협업하고 자기 이름을 딴 신발·의류 브랜드, 건축사무소까지 차렸다.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인물’로 두 차례 선정되기도 한 카니예의 강점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포인트 1│운동화에 패션 열정 투영

이지부스트는 카니예가 아디다스와 협업해 2013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운동화다. 처음 카니예는 나이키와 협업해 운동화 ‘에어 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카니예가 나이키에 로열티 지급을 요구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카니예는 나이키의 경쟁사 아디다스로 갈아탔다.

사람들은 이지부스트를 못 구해 안달이다. 출시일이 정해지면 며칠씩 줄을 서서 구매하고, 극소량을 판매하는 탓에 중고 가격은 치솟는다. 30만원대에 판매된 이지부스트는 중고 시장에서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일본 스트리트 패션 회사 베이프와 합작한 스니커즈부터 나이키 에어 이지 시리즈를 거쳐 아디다스 이지부스트가 히트작이 된 건 카니예의 패션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수업 시간에 운동화를 그릴 정도로 오래전부터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 패션에 대한 관심은 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와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카니예는 아블로와 함께 2008년 이탈리아 로마로 건너가 패션 브랜드 펜디에서 월급 500달러(약 60만원)를 받으면서 인턴으로 일한 적도 있다.

그가 디자인한 일부 초창기 모델은 중고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이다. 카니예가 루이비통과 컬래버레이션해 2009년에 내놓은 운동화는 중고 시장에서 3000만원 이상에 판매될 정도로 인기다. 우리나라에서 빅뱅 멤버 지드래곤이 신은 것으로 유명한 이 운동화의 출고 가격은 색상과 디자인에 따라 최저 840달러(약 102만원)에서 최고 1140달러(약 138만원). 가격이 100만원이 넘지만, 출시 당시에도 매진 행진을 이어 갔었다.


포인트 2│이슈를 만드는 영리한 ‘관종’

카니예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트러블메이커’다. 그의 이탈은 2016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카니예는 그해 2월 새 앨범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를 ‘디스(사람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것)’했다. 신곡 ‘페이머스(Famous)’의 가사가 문제였다. 그는 “테일러가 내 덕분에 유명해졌어”라며 그녀를 조롱했다. 카니예는 “테일러와 통화해 허락받은 내용”이라고 했고 테일러 측 변호인은 “사전에 들은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아무튼 카니예는 대중의 관심을 끌면서 신곡을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두고 영화배우 헤일리 더프는 “모두가 카니예 이야기만 하니 카니예로선 대성공”이라고 평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카니예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5300만달러(약 643억9500만원)의 빚이 있다”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지목해 “내가 역대 최고의 음악가라고 생각한다면 10억달러(약 1조2150억원)를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 ‘포브스’가 힙합 뮤지션의 수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카니예는 2015년에만 300억원을 벌면서 그해 ‘수입 왕’ 7위에 올랐다. 그런 그가 막대한 빚을 갖고 있다는 소식은 믿기 어려웠지만 화제를 모으기에는 충분했다. 이는 카니예가 만든 운동화를 비롯해 그의 의류 사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판매로 이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카니예는 지난 1년 동안에만 1억5000만달러(약 1822억5000만원)를 벌었다. 3년 전에 막대한 빚이 있었다 해도 갚고 남는 액수다.

그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포옹을 했을 때 역시 사람들은 경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부터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아 왔기 때문이다. 모든 흑인 예술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외면할 때도 카니예는 그를 지지했다. 결국 그는 트럼프의 선거운동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만났다. 카니예의 의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슈 메이커라는 인식을 다지기에는 충분했다.


포인트 3│본업 놓치지 않는 천재 음악가

카니예는 21세기에 가장 핫한 음악가 중 한 명이다. 그는 3200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고, 그의 음원은 1억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20개가 넘는 그래미상을 받았다. 많은 평론가는 카니예를 ‘21세기의 밥 딜런’ ‘21세기의 지미 헨드릭스’로 부른다.

카니예는 비욘세의 남편이자 래퍼인 제이지(Jay-Z)의 2001년 앨범 ‘블루프린트’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자신의 첫 정규 앨범을 2004년에 선보였다. 이 앨범은 300만 장이 팔렸다. 기존 힙합 앨범들과 달리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실제 악기를 사용해 기존 음악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고, 가족과 종교 등 다양한 사회 이슈를 가사에 담은 것이 큰 역할을 했다. 힙합 하면 폭력과 마약을 떠올리게 하는 여타 래퍼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줬던 것. 카니예는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랩앨범 상’을 받았다. 1·2집 앨범을 성공으로 이끈 카니예는 전자 음악을 도입하고 세계적인 록밴드 U2·콜드플레이가 즐겨 쓰던 코드와 멜로디를 자신의 음악에 끌어오면서 평단과 대중의 취향을 잡는 데 성공했다. 카니예 덕분에 흑인 음악가들이 전자 음악을 도입했고, 힙합과 팝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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