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닥터자르트 광고(왼쪽). 닥터자르트의 히트작 세라마이딘 세럼. 사진 닥터자르트
지난 9월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닥터자르트 광고(왼쪽). 닥터자르트의 히트작 세라마이딘 세럼. 사진 닥터자르트

에스티로더, 맥(MAC), 바비브라운, 클리니크, 달팡…. 전 세계 여성이 사랑하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컴퍼니(이하 에스티로더)’ 군단에 한국 토종 브랜드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11월 18일 에스티로더는 BB크림으로 유명한 K뷰티 브랜드 닥터자르트를 보유한 해브앤비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5년 에스티로더가 사들였던 기존 지분(33.3%)을 제외한 창립자 몫의 지분(66.7%)을 모두 인수하는 방식이다. 인수 대금은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 해브앤비의 기업 가치는 17억달러(약 2조20억원)로 알려졌다. 에스티로더가 아시아 화장품 브랜드를 100%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글로벌 화장품 업계 전체를 놓고 보면 유명 기업이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그룹은 의류 브랜드이자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는 ‘스타일난다’와 화장품 브랜드 ‘쓰리컨셉아이즈(3CE)’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난다의 지분 100%를 6000억원에 인수했다. 앞서 2017년에는 네덜란드·영국계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K뷰티 브랜드 AHC를 보유한 카버코리아를 22억7000만유로(약 3조원)에 인수했다. AHC는 ‘홈쇼핑 아이크림’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3사는 K뷰티 브랜드를 하나씩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게 됐다. 화장품 업계 전문가들은 “K뷰티가 세계 화장품 산업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음을 방증하는 사례”라며 “유통 확대에 따른 브랜드 파워 강화로 K뷰티 위상이 올라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에스티로더, 로레알, 유니레버에 각각 인수된 K뷰티 브랜드의 저력은 무엇일까. 글로벌 기업 포트폴리오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에스티로더의 닥터자르트 인수를 통해 본 글로벌 화장품 업계 상황을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포인트 1│고성장 중국 시장 영향력 막강

AHC와 닥터자르트는 올해 중국 광군제에서 가장 많이 팔린(거래액 기준) 한국 브랜드 1위, 6위를 차지했다. 특히 AHC는 행사에 참여한 세계 20만 개 브랜드 중에서도 종합 판매 순위 4위를 기록했다. 알리바바에 따르면, AHC의 히트 상품인 ‘히아루로닉 스킨케어’는 11월 11일 하루에만 14만2000병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닥터자르트도 올해 광군제 매출 177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 시장에서 인기 좋은 닥터자르트 마스크 제품군은 사전 예약 판매 마스크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이 K뷰티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한 것은 성장세가 가파른 중국 시장에서 해당 브랜드가 가진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다. 영국의 시장 조사 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621억달러(약 74조원)로 미국(약 896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 시장은 규모만큼 성장 속도도 빠르다. 같은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12%대로 시장 규모 상위 10개국(0.5~9.29%)을 크게 앞질렀다. 실제로 파브리지오 프레다 에스티로더 회장은 최근 실적 발표 이후 “중국을 비롯한 다른 신흥 시장에서의 선전이 그룹 매출을 이끌었다”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K뷰티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K뷰티는 2000년대 한류 열풍을 타고 중국 시장에서 탄력받기 시작해 쿠션팩트, 마스크팩, 앰플로 이어지는 연속 히트작으로 대륙 팬을 사로잡았다. 홍희정 유로모니터 수석연구원은 “최근 J뷰티(일본 화장품)의 공세와 C뷰티(중국 화장품)의 추격에 K뷰티가 다소 위축되기는 했지만, 중국 뷰티 시장에서 K뷰티의 위치는 여전히 높다”면서 “닥터자르트는 에스티로더에 인수된 후에도 K뷰티 정체성을 유지하며 중국 시장에서 강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인트 2│중저가·더마코스메틱·스킨케어 삼박자

이번 인수는 모회사 입장에서 부족했던 포트폴리오를 채워 넣었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다. 닥터자르트는 병원·약국에서 유통되는 스킨케어 화장품을 일컫는 ‘더마코스메틱’ 콘셉트의 화장품이다. 회사는 피부 고민별 제품을 노랑·초록·분홍 등 연고·약병 모양의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색상 용기에 넣어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화장품 편집숍에서 팔리는 중저가 K뷰티 스킨케어 브랜드로 포지셔닝해 창업 13년 만에 연 매출 4900억원(2018년 기준)대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꾸준한 화장품 브랜드 인수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가던 에스티로더 입장에서는 닥터자르트가 최적의 매물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로 클리니크, 에스티로더, 오리진스 등 미국 스킨케어 브랜드만을 갖고 있던 에스티로더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색조 화장품 브랜드 맥·바비브라운과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라메르를 인수하면서였다. 이를 계기로 에스티로더는 연 매출 10억달러대의 글로벌 화장품 기업 반열에 올랐다. 에스티로더가 보유한 29개 브랜드 중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 있는 중저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는 아직 없다.

미국의 투자 전문 매체 모틀리풀은 에스티로더의 닥터자르트 인수에 대해 “매출의 절반 정도가 스킨케어 제품군에서 나오는 데다, 아시아 시장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지역”이라며 “이번 인수 결정은 ‘노 브레이너(no-brainer·뇌를 쓸 필요도 없이 쉬운 결정)’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포인트 3│밀레니얼 사로잡은 젊은 사장들

글로벌 기업 품에 안긴 K뷰티 브랜드의 특징은 밀레니얼(1981~96년생) 소비자를 사로잡은 신생 브랜드라는 점이다. 닥터자르트는 건축 회사에 다니던 이진욱 대표가 자신의 여드름 고민을 덜기 위해 2004년 피부과 의사이던 매형과 함께 설립한 회사다. 이 대표는 설립 당시 브랜드명 닥터자르트를 ‘닥터 조인 아트(Doctor Join Art)’에서 따왔다. 에스티로더는 “피부 과학과 예술의 조합이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미국과 아시아 밀레니얼 세대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소희 대표가 2005년 창업한 3CE·스타일난다 역시 동대문 의류 온라인쇼핑몰에서 시작해 온라인쇼핑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바람을 타고 성장한 1세대 인플루언서·온라인쇼핑몰이다. 특히 3CE·스타일난다는 독특한 스타일과 콘셉트로 밀레니얼 세대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 명동에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핑크호텔’에 가보면 관광객이 투명한 공들로 가득 찬 분홍색 욕조에서 ‘인증샷’을 찍어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도 밀레니얼 세대가 열광하는 소규모·니치(niche·틈새) 브랜드 인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실제로 에스티로더는 2016년 투페이스드, 베카 등 SNS를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장품 스타트업 관계자는 “니치 향수가 유행하며, 화장품 브랜드 사이에서도 취향 중심의 소규모 니치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다”면서 “이런 소비 패턴 변화에 글로벌 기업도 발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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