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렌터카 업계 큰손인 ‘허츠(Hertz)’가 5월 22일(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사진은 허츠 렌터카 사업장. 사진 블룸버그
글로벌 렌터카 업계 큰손인 ‘허츠(Hertz)’가 5월 22일(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사진은 허츠 렌터카 사업장. 사진 블룸버그

102년 역사의 글로벌 렌터카 업체 ‘허츠(Hertz)’가 영업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5월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자동차 리스(lease·장기 임대) 대금 상환 기한을 연장하지 못한 탓이다. 1918년 미국 최초의 렌터카 회사로 시카고에서 설립된 허츠는 미국·유럽·아시아 등 150개국에서 영업망 3만 개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알라모·엔터프라이즈 등의 브랜드를 가진 ‘엔터프라이즈(Enterprise)’에 이어 2위 업체다.

주요 외신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파산 보호 신청의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됐다고 보도했다. 올해 3월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경제 봉쇄 조치가 시행되면서 여행·출장 인구가 급감한 것이 허츠에는 막대한 타격이 됐다는 것. 허츠 매출의 상당 부분은 공항에서의 차량 대여 서비스에서 나온다. 이 회사는 지출을 줄이고, 차량을 매각하고, 직원들을 해고하고, 지점들을 통폐합했지만 모두 허사로 끝났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허츠 주가는 코로나19 대규모 확산 전인 2월 20일 주당 20.29달러에서 5월 29일 주당 1달러로 추락했다. 허츠의 파산 보호 신청은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해 허츠 파산의 세 가지 진짜 원인을 살펴봤다.


원인 1│무리한 사업 확장

첫 번째 원인으로는 무리한 사업 확장이 거론된다. 허츠는 2012년 미국 내 경쟁 렌터카 업체 ‘달러 스리프티(Dollar Thrifty)’를 23억달러(약 2조8000억원)에 인수했는데, 시장 가치보다 지나치게 비싸게 사 내리막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대세다. 이 인수 가격은 2년 전인 2010년 허츠가 제시했던 최고 가격 약 10억달러(약 1조2200억원)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2012년 당시 ‘달러 스리프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5% 수준에 불과해 잘못된 판단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 경쟁사 ‘에이비스(AVIS)’의 경우 ‘달러 스리프티’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인수 계획을 바로 접었지만, 허츠는 인수를 강행했다. 이후 2016년 말이 되자 허츠 주가는 2012년 말보다 85%나 폭락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허츠는 2017년 글로벌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에 정보기술(IT) 컨설팅을 의뢰했으나 이는 2019년 4월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송전으로 연결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허츠 측은 “액센추어가 기존 허츠 시스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도입하게 해 ‘달러 스리프티’로 시스템을 확장할 수 없었다”고 소송 제기 사유를 밝혔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수년간 경영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원인 2│본업보다 금융업에 몰두

두 번째 원인은 본업보다 금융업에 몰두했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허츠는 표면상으로는 렌터카 사업과 중고차 판매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회사지만, 사실상 금융업의 일종인 리스 회사였다”라며 허츠를 ‘자동차를 빌려주는 은행’이라고 칭했다. 미국 완성차 회사 포드는 허츠 창립 당시부터 관계를 맺었는데, 가지고 있던 허츠 지분을 2005년 사모펀드(PE·Private Equity, 비공개적으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기업을 사고파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펀드)인 ‘클레이튼 더블리에 앤드 라이스(Clayton Dubilier & Rice)’ 등에 매각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서서히 회사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회사의 본업이 렌터카가 아니라 리스 등 금융업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PE들이 투자금 회수를 위해 무리하게 금융기법을 써서 핵심 가치를 망가뜨렸다고 평가한다. 특수목적회사들을 설립해 자산 유동화 채권을 마구 발행한 것.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최근 “허츠는 2005년 이후 사실상 PE들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원인 3│시대 변화에 뒤처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허츠가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Uber)’와 ‘리프트(Lyft)’ 등의 등장으로 렌터카 산업의 지형 자체가 변화하면서 렌터카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으나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재무적으로 허츠보다 탄탄했던 경쟁사 ‘에이비스’나 ‘엔터프라이즈’는 이런 변화를 이겨내기 위해 최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차량을 대거 교체하는 등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허츠는 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는 허츠가 본업에 소홀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현재 허츠는 부채가 190억달러인데 현금성 자산은 14억달러에 불과한 상황”이라며 “부채는 대부분 자산 유동화로 발생했기 때문에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추가 부담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허츠의 운명은 법원 판단에 달렸다. 법원이 기업을 청산하는 것보다 존속시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파산 보호 신청을 받아들이면 채무 상환이 일시적으로 연기되면서 회생 절차에 들어간다. 그러지 않으면 폐업한다.


plus point

전설적인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도 체면 구겨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허츠 파산 사태로 손해를 보게 됐다. 사진 블룸버그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허츠 파산 사태로 손해를 보게 됐다. 사진 블룸버그

허츠의 파산 보호 신청으로 전설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통하는 미국의 억만장자 칼 아이칸(84)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행동주의 투자란 일정한 의결권을 확보하고 자산 매각, 구조 조정, 지배 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 단기간에 수익을 내는 투자를 뜻한다. 아이칸은 20년 넘게 글로벌 대기업들의 지분을 취득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면서 주가를 올린 뒤 막대한 차익을 챙겨 왔다.

미국 방송사 CNBC는 5월 26일 시장조사업체 ‘팩트세트’를 인용해 “아이칸이 2014년부터 허츠 주식을 대규모로 매입하기 시작해 현재 40%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허츠는 아이칸의 보유 지분 상위 10대 종목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기업이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 주식 투자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칸은 허츠 투자 주식 모두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처지가 됐다.

WSJ에 따르면, 아이칸은 2014년 허츠 주식을 처음 사들였다. 당시 그가 사들인 주식의 평가액은 총 15억달러(약 1조8300억원)에 달했다. 그가 주식을 매입하던 2014년 7~8월 허츠는 주당 90달러를 호가했지만, 최근 주당 1달러로 급락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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