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민첩한 조직을 뜻하는 애자일(Agile)이 화두다. 작은 스타트업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애자일을 선언하지 않은 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정보기술(IT)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은행, 보험사 같은 금융회사나 전통적인 중후장대 산업의 대기업까지 애자일을 도입하고 있다. 너도나도 애자일을 도입하고 있으니 한국 기업이 혁신의 장이 됐을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애자일을 선언하고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는 기업이 많다.

기업 문화에 애자일을 성공적으로 접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실제로 애자일을 가장 성공적으로 기업 문화에 접목한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업체 레이니스트를 통해 애자일 성공 전략을 알아봤다. 레이니스트는 금융 플랫폼 뱅크샐러드를 운영하는 회사로 회원만 700만 명이 넘는다. 뱅크샐러드는 ‘내 돈관리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자산관리 서비스 회사다.


성공전략 1│쪼개고 맡겨라

뱅크샐러드에는 9명의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대외적인 CEO는 회사를 설립한 김태훈 대표다. 하지만 김 대표가 뱅크샐러드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이끌지는 않는다. 뱅크샐러드에는 자산관리, 신용관리, 투자, 건강관리, 자동차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 뱅크샐러드는 각각의 서비스를 하나의 스쿼드(squad)에 맡기고 이를 PO(Product Owner)라고 부르는 ‘미니 CEO’가 관리하게 한다. 뱅크샐러드에는 모두 8명의 PO가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서비스나 제품에 관해서는 김 대표와 같은 권한을 가진다. 회사의 대표 한 사람이 모든 서비스와 제품을 직접 챙기면 의사 결정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뱅크샐러드는 PO라는 ‘미니 CEO’ 제도를 도입해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마이데이터인프라그룹장을 맡은 권준호 PO는 “우리는 제품을 잘게 쪼개고 PO에게 완전한 오너십을 준다”고 말했다.

PO 한 명 한 명이 ‘미니 CEO’라는 건 각각의 스쿼드가 뱅크샐러드라는 하나의 회사 안에서도 끊임없이 경쟁과 협업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뱅크샐러드는 분기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액션 플랜을 짠다. 이때 얼마만큼의 리소스를 투입할지도 결정한다. 조욱진 PO는 “각각의 PO는 분기마다 어느 정도의 리소스를 투자해달라고 회사를 설득해야 한다. 스타트업 대표가 투자자를 만나서 펀딩을 받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리소스가 분배되면 그 이후에는 모든 일이 PO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스쿼드는 8명 내외의 인원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PO를 포함해 서버 개발자, 클라이언트 개발자, 디자이너, 오퍼레이터, 마케터까지 들어간다. PO는 이들을 관리하고 리소스를 분배하면서 제품 출시를 위한 우선순위를 정한다.

일반 기업은 브랜드본부, 사업본부, 재무, 개발, 디자인 등 기능별로 조직이 나뉘어 있고, 애플리케이션에 기능 하나를 추가하는 데도 4~7개 결재 라인을 거쳐야 했다. 기능 조직별로 칸막이가 있어서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일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구조다.

반면 뱅크샐러드의 PO 체제에서는 전 팀원이 팀의 비전·미션 수립부터 고객에게 내보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빠른 수정이 가능하다. 조욱진 PO는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디자이너가 개발팀에 여러 피드백을 제공할 수도 있고, 개발팀이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진태 PO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PO의 커뮤니케이션이 전 과정에서 어우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공전략 2│빠르게 실험하고 폐기하라

대기업이 애자일을 선언하고도 별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 애자일을 도입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애자일을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이냐는 확실한 목표 의식이다. 뱅크샐러드의 목표는 고객의 불편을 찾는 것이다. 양세훈 PO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편을 어떻게 해결해줄 것인지 고민하는 게 PO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뱅크샐러드는 고객의 불편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기 위해 ‘실험 플랫폼’을 운영한다. ‘실험 플랫폼’은 뱅크샐러드가 서비스를 정식으로 출시하기 전에 이용자의 일부를 대상으로 먼저 서비스를 노출한 뒤에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기업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출범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론칭하는 데는 보통 3~6개월이 걸린다. 문제는 새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몇 개월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뱅크샐러드의 ‘실험 플랫폼’은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실험 플랫폼’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것도 PO의 역할이다. PO는 자신이 맡은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언제든 ‘실험 플랫폼’을 가동할 수 있다. 권준호 PO는 “실험 결과가 맞는다면 다음 것을 만들고 틀리면 얼른 폐기해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성공전략 3│최고의 인재를 영입하라

많은 스타트업과 기업이 PO제도를 도입했지만 뱅크샐러드만큼 경쟁력 있는 PO 라인업을 갖춘 회사를 찾기는 어렵다. 

뱅크샐러드의 마이데이터인프라 부문을 맡은 권준호 PO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삼성페이를 만든 주역이다. 삼성페이 프로젝트 매니저(PM)를 맡아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만들었다. 내자동차관리 부문을 이끄는 이진태 PO는 티켓몬스터, 카카오모빌리티를 거쳤고, 소식·서비스설정 부문을 이끄는 조욱진 PO는 현대카드에 몸을 담았었다. 김완주 PO는 KT와 케이뱅크를 거쳤고, 류경석 PO는 D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 에이스손해보험 등 여러 보험사를 거친 베테랑이다. 박원영·양세훈·정선재 PO도 글로벌 IT 기업과 컨설팅 회사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PO의 개인 역량이 중요한 건 PO가 곧 애자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PO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조직은 아무리 조직 문화를 바꿔도 의사 결정이 속도를 내기 힘들다. PO는 자신의 스쿼드 안에서는 개발자, 디자이너와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문제의식을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회사 내의 다른 PO나 CEO, CTO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다른 부문과 보조를 맞추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이종현·박소정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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