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가 상장한 9월 3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팔란티어가 상장한 9월 30일(현지시각)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가장 비밀스러운 빅데이터 기업’이라는 별명이 붙은 팔란티어(Palantir)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팔란티어는 9월 3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주당 10달러에 상장한 뒤 주가가 꾸준히 올랐다. 12월 1일 종가는 25.67달러로 두 달여 만에 무려 2.5배가 됐다. 이 기간 시가 총액은 158억달러(약 17조4037억원)에서 447억달러(약 49조2370억원)로 불었다.

팔란티어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과 현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스 카프 등 5명이 2003년 공동 창업한 회사다.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팔란티어는 창업 초기 미 중앙정보국(CIA)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인큐텔(In-Q-TEL)로부터 200만달러(약 22억원)를 투자받으면서 주목받았다. CIA를 비롯해 연방수사국(FBI), 국토안보부(DHS), 연방대테러국, 네이비 실(Navy Seal)과 같은 정부 수사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한 뒤 매출을 늘렸다.

팔란티어는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재무제표상 흑자를 낸 적이 없다. 팔란티어는 올해 3분기에도 매출 2억8900만달러(약 3184억원), 순손실 8억5330만달러(약 9401억원)를 냈다고 밝혔다. 상장 이후 첫 실적 발표였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52% 늘었지만, 적자 폭이 커졌다. 하지만 상장과 관련된 비용을 제외한 조정 영업이익은 7300만달러(약 804억원)로 사실상 흑자를 냈다고 회사는 밝혔다.

팔란티어는 신주를 발행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직접 주식을 거래하는 직상장 방식으로 상장했다. 직상장할 경우 의무보호예수(주식을 특정 기간 팔지 않고 보유하고 있어야 할 의무)가 면제되지만, 팔란티어는 임원 및 일부 주주를 대상으로 180일 동안 보유 주식의 80%를 매도할 수 없다는 의무보유 계약을 했다. 12월 30일 이후 의무보유 물량이 풀린 뒤의 팔란티어 주가 전망을 놓고 전문가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웨인 카프만 피닉스 파이낸셜 서비스 연구원은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팔란티어는 매우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이며,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기업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는 등 이때까지 사업을 잘해 왔다”며 “주당 20달러 미만으로 주식이 거래되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팔란티어 주주인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는 성명을 내고 “팔란티어가 반(反)이민 정책을 편 트럼프 정부 시절 세관국경보호국(CBP) 등 이민 당국과 협조한 것은 비난받을 일”이라며 “의무보유 기간이 만료되면 묶였던 주식을 바로 팔아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이민 당국이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는 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팔란티어가 개발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 펀드는 팔란티어 의결권 지분의 1%에 해당하는 1846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사업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사업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팔란티어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모두가 성장성을 인정하는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팔란티어가 경쟁사는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사업 영역을 구축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천리안 수정 구슬의 이름을 따온 팔란티어가 경쟁력을 갖춘 비결 세 가지를 들여다봤다.


경쟁력 강화 비결 1│맞춤형 제품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통합·분석하지만, 특정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공한 데이터를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둔다. 가공한 데이터가 이미지·그래프·맵핑 영상 등 다양한 시각적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팔란티어의 주력 제품은 ‘고담(Gotham)’과 ‘파운더리(Foundry)’ 두 가지다. 고담은 정부·기관용 소프트웨어로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회 부정행위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테러 조직 검거, 자금 세탁 방지, 밀수 적발, 질병 추적 등이다. 파운더리는 민간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고담보다 분석력이 뛰어나 의사 결정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소프트웨어 활용 영역 역시 생산·유통부터 인사·재무까지 광범위하다.

무엇보다 팔란티어는 고객별로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데이터 분석 도구로서 강점을 극대화했다. 기술과 컨설팅을 결합한 독특한 사업 모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사업 모델 탓에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팔란티어가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적자 폭을 줄여나가자 향후 성장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쟁력 강화 비결 2│VVIP 고객

팔란티어는 창업 초기 CIA·FBI·연방대테러국 등을 상대하는 B2G(기업 대 정부 간 거래) 사업에 주력했다. 회사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서양 국가를 중심으로 40여 개국의 정부 기관과 일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팔란티어의 매출 가운데 민간 기업과 거래를 통해 얻는 매출이 50%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B2G 사업에서 ‘보안’이 매우 중요하다. 팔란티어의 B2G 사업 경험은 소프트웨어 보안성에 대한 보증수표로 작용,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확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팔란티어의 민간 기업 고객은 JP모건부터 에어버스·FCA(피아트크라이슬러)·BP(브리티시페트롤리엄) 등 대부분 글로벌 톱 대기업이다. 회사에 따르면 민간 기업의 경우 타깃 고객층은 연간 매출 50억달러(약 5조5000억원) 이상 기업으로 전 세계 6000여 개가 있다. 시장은 좁지만 VVIP급 고객만 모시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은 유효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민간 기업은 한 기업당 연간 평균 500만달러(약 56억원)를 낸다. 팔란티어가 민간 기업 고객 대상으로 얻는 매출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상위 20개 기업과 거래에서 나온다.


경쟁력 강화 비결 3│애국 마케팅

팔란티어는 9·11 테러가 발생한 뒤 창업자들이 ‘미국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목표 아래 설립한 회사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9·11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 색출 과정에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스 카프 CEO는 공개석상에서 거리낌 없이 “팔란티어의 핵심 임무는 서양 국가, 특히 미국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최고의 애국 기업’을 자처하는 팔란티어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경쟁국인 중국과 거래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자 팔란티어는 코로나19와 전쟁에 동참했다.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개인보호장비 등 주요 장비를 보급하고, 이동 제한 해제 시기를 결정하는 데 팔란티어 소프트웨어가 사용된다. 미국 연방 정부와 협력해 백신 제조·유통·관리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팔란티어가 지나치게 많은 양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자 일각에서 정보 침해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팔란티어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찾는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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