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달아오르고 있다. 정부도 민간도 다문화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들의 시야에 농촌은 그다지 들어오지 않는다. 멀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농촌은 다문화사회의 최전선이다. 열 쌍 중 네 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 곳이다. 10년 후면 농촌 젊은이 중 절반이 다문화가정 자녀로 채워질 전망이다. 이에 대한 대비는 곧 우리 농촌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농협이 먼저 눈을 떴고 앞서 발걸음을 뗐다. 각종 지원사업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000여 명의 담당직원들과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논둑과 밭길을 뛰어다니고 중앙의 전담부서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재원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농업인들과 돈독한 친밀감 특유의 성실함으로 농촌의 다문화가정에 소중한 변화를 일궈내고 있다. 민간 부문에서 농촌 다문화가정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곳은 농협이 유일하다.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앞으로 수백 수천 년을 함께 살아가야 할 다문화가정에 대한 농협인들의 따뜻한 가슴에 귀를 기울여봤다.

초기 정착에서 자생력 확대까지

물심양면 알뜰살뜰 후견

“당신도 우리입니다”

농촌은 지금, 농협은 지금

열 쌍 중 네 쌍이 국제결혼

농협, 다문화가정 지원 총력전

지난 11월18일 서울 홍은동의 그랜드힐튼 호텔에 200여 명의 여성농업인들이 모였다.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농협)가 마련한 ‘이민여성농업인 농업교육 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농식품부와 농협이 지난해부터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민여성들을 위한 농업교육에 참가, 우수한 성과를 낸 이민여성농업인들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모두 한국의 주부, 한국의 농업인으로 거듭난 이들이었다.

최근 들어 농촌의 이민여성들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날로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대응의 일환이다. 농식품부는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이 저마다 부처의 역할에 어울리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다문화사회는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고 있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정부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원이 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습니다. 농촌보다는 도시에 다문화가정이 많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 도시 우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농촌은 어떻습니까. 정부의 정책 수혜가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안타깝게도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한 박자 빠르고 한 걸음 가까운 지원

 양점남 농협중앙회 복지여성팀장은 농협이 농촌의 다문화가정 지원에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농촌 다문화가정의 증가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비중은 2006년 이후 8~9%대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농림어업 종사자들의 국제결혼 비중은 40% 안팎에 이른다. 열 쌍 중 네 쌍이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혼의 비중이 높아지면 농촌의 인구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단 여성농업인들의 연령이 낮아진다. 국내 여성농업인의 평균 연령은 62세, 39세 이하는 2.8%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비해 이민여성들은 대개 30대 이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문화가정의 자녀까지 셈에 넣어보자. 한 가정당 2명의 자녀를 낳는다면 2020년, 농촌의 19세 이하 인구 중 절반 가까이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된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전망이다. 농촌의 주역이 다문화가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라는 얘기다.

농협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농협은 농업인들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다. 농촌 다문화가정의 증가는 농협 입장에선 주인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뀐 주인이 농촌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농협으로선 당혹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다문화가정이 하루라도 빨리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농협의 앞날을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농협은 농촌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 부문에선 정부를 앞지르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농촌 지역사회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촘촘하면서도 광범위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농업인 대부분이 조합원인 데다 시중은행은 수익성 부족 탓에 들어가지 않는 시골까지 지역농협이 설립돼 있다. 설립 이후 축적한 농업인과 신뢰도 큰 재산이 된다.

농협은 일찌감치 농협 조직의 강점을 살린 농촌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갈수록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방향은 이민여성의 안정적인 정착에 기여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만 꼽아 봐도 이민여성과 그 가족들을 무료로 고향에 보내주는 ‘모국 방문 지원’, 한국사회의 이해를 돕는 ‘다문화여성대학’, 여성농업인 양성을 위한 각종 농업교육 등이 있다.

효과는 이미 가시적이다. 사람들이 변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성과다. 이민여성들의 표정이 밝아졌고 자신감이 붙었다. 한국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한국말과 문화, 농업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는 게 지원을 받고 난 소감이다.

지원을 한 사람들도 전과 달라졌다. 무관심과 편견 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옅어졌다. 부대끼며 겪어 본 이민여성들은 선량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네들이 없었다면 이 적막한 시골에 아기 울음소리가 웬 말이겠느냐,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마음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번져나갔다. 여기까지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농협중앙회의 지원과 1000여 명의 지역농협 복지담당자들이 휴일을 잊고 뛰었고 그보다 많은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대가 없는 희생을 치른 결과다. 교통 편의, 교육 중 육아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라는 공감대가 탄탄했던 것이다.

경영진부터 직원까지 한마음 동참

최근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담당자들의 역량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한 전문교육 과정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경영진의 배려와 직원들의 열의가 만났다. 회사는 이민여성들을 위한 교육에 직접 강사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교육과정을 개설했고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문화사회 2급 전문가 과정이 그것이다. 꼬박 2주 동안 8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회사가 배려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이수하기 어렵다. 농협은 이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 자격증을 획득한 150명 중 105명이 농협 직원들이다. 

농협은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해를 거듭하면서 농협의 사업은 한층 다양해져 왔다. 심지어 최근엔 국제결혼 중개도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예비남편과 아내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해 불행한 결혼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비용 부담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적 제도적 개선과 정부부처와 협력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정책적 지원을 하면 농협이 손발이 돼 뛰겠다는 자세다. 농협의 땀과 진심이 농촌 곳곳의 다문화가정에서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낯선 조국’에 말 걸기

한글 교육부터 이름 바꾸기까지

다양한 적응 프로그램 “고맙습니다”

“시집올 땐 장밋빛 희망을 꿈꾸며 좋은 생각만 했고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시부모님이랑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고 무척 놀랐습니다. 또 한국말도 잘 모르는데다가 여러 가지 닥쳐온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눈앞이 깜깜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어머니께선 말도 통하지 않고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는 며느리가 답답해서 늘 큰소리로 야단치셨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주눅이 들고 시어머니가 무섭고 서러워서 많이 울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출신 이민여성인 이까 꾸수마와띠 씨의 수기 중 한 부분이다. 어디 그녀뿐일까. 농촌의 이민여성들 대부분은 한국생활 적응에 심한 어려움을 느낀다. 결혼 초기 상황을 물으면 ‘매일 울었다’, ‘늘 고향이 그리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문화 차이가 워낙 큰 데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가슴만 칠뿐이었다.

하지만 돌파구는 찾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말을 배워야 하는데, 도시에도 흔하지 않은 한국어 교습소가 농촌에 있을 리 만무했다. 가족들이 도와주면 좋으련만 농촌의 정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 며느리의 바깥출입을 막기 일쑤였다. ‘바람들까 봐’, ‘도망갈까 봐’였다. 부끄럽다고 결혼 사실도 알리지 않는 가정도 숱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뿌리내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다문화여성대학 ‘한국을 가르칩니다’

“농촌에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데,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때?”

2008년 어느 날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불쑥 아이디어를 냈다. 기존의 주부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주부대학처럼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짜서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이민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여서 큰 효과는 없었다. 이왕 하는 지원이라면 실질적인 효과가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된 것이 현재 농협이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여성대학’이다.

다문화여성대학은 한글과 한국문화 이해 등 초기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3단계로 짜여 있는데, 각 단계당 주 1회, 1일 3시간, 15회차 이상으로 운영된다. 3단계까지 소화하려면 꼬박 1년이 걸리는 장기 교육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농번기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1년에 3단계를 모두 수료하기는 쉽지 않다.

다문화여성대학을 담당하고 있는 농협중앙회 농촌자원개발부의 양점남 팀장은 “조사 결과 이민여성들의 우리말 실력이나 교육 수준에 적잖은 차이가 있었다”며 “단계별 교육을 통해 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첫 운영은 2008년에 있었다. 전국 13개소에 276명이 이 과정에 참여했다. 조사 결과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 이듬해인 2009년엔 20개소 422명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지금에야 만족도도 높고 참여자도 늘고 있지만 초기엔 사정이 딴판이었다. 양 팀장은 “처음 할 때만 해도 가족들의 인식 부족으로 여성들을 교육장에 불러내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며 “담당자들이 지역의 대상자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가족들을 설득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가족들이 농협의 다문화여성대학을 마뜩잖게 여긴 것은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불신 탓도 있었지만 물리적인 한계도 있었다. 집에서 교육장까지 거리가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고 대중교통인 버스는 하루 2차례가 고작인 곳이 부지기수였다. 바쁜 농사일과 육아 등도 걸림돌이었다. 이에 대해 농협 직원들의 집요한 설득이 이어졌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 농협입니다. 못 믿으세요? 교통편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태워가고 태워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기도 걱정하지 마세요. 수업 시간 동안 저희가 잘 돌볼게요. 허락만 해주세요. 한국말도 알고 우리 풍습도 익혀야 일도 잘하고 어머니 봉양도 잘하죠.”

무리해 보일 수도 있는 조건이었지만 결국 농협은 약속을 지켰다. 교통편을 제공했고 아이도 돌봤으며 어김없이 귀가를 시켰다. 며느리의 한국말 실력이 늘수록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렇게 1단계를 마친 며느리들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다음 단계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농협이 가족들과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자원봉사단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협이 육성하고 있는 (사)농가주부모임과 (사)고향주부모임 등의 회원들이 자원봉사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은 농협의 직원들과 함께 이민여성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고 아이들을 돌봤으며 생활상담에도 응했다.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인식을 바꾸는 홍보맨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올 들어 농협은 또 하나의 초기 정착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법무부와 협력하여 ‘이민자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개소에 문을 열어 252명을 교육했다. 교육 과목은 한글과 한국사회이해다. 교육 이수자에겐 귀화 신청 시 국적심사대기 기간을 2년 이상에서 6개월 이내로 단축해준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도 면제시켜준다. 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 탓에 당하는 설움 없애드립니다’

이민여성들에게 이름은 또 하나의 굴레가 된다. 피부색이나 이목구비가 다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차별이나 따돌림을 이름 때문에 한 번 더 당할 수도 있다. 이름에 따라서는 기억하고 부르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회에 녹아드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가 있다. 자녀들이다. 본격적인 이주의 역사를 2000년대 초반으로 잡으면 이제 이민여성들의 자녀가 취학연령에 접어드는 시기가 됐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여 이름에서 드러난, 출신국이 다른 어머니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을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보낼 시기가 된 어머니들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 받은 냉대와 차별, 무관심이 자녀들에게 이어질까 노심초사다. 그렇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은 애초에 처리해놓는 것이 좋다는 심정이다.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면 이 모든 걱정에서 조금 놓여날 수도 있을 것이다. 2008년 농협의 개명지원 사업은 어머니들의 심사를 헤아린 사업이었다.

농협의 개명 지원 사업은 귀화한 여성들이 원할 경우 무료로 관련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련 서류를 농협에 제출하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법적 절차를 대행한다. 농협은 대한법률공단에 139억원을 출연해 농업인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개명 지원 사업은 그 중 한 프로그램이다.

농협의 개명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준법지원부의 오희준 과장은 “이름을 바꾸고 싶어도 200만~300만원이 드는 법률 서비스 비용은 농촌에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 사업이 알려지면서 수혜인원이 2007년 22명에서 2009년 66명, 2010년 10월 현재 146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농협은 더 많은 사람들이 개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출입국관리소, 각 지역의 다문화가정센터 등에 사업 내용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또 농협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동상담실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려나간다는 방침이다.

오 과장은 “최종 결정까지 절차가 2~3개월 정도 소요되지만 귀화자의 경우 대부분 통과되고 있다”며 “비용도 들지 않고 서류만 농협에 제출하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주므로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명자들은 스스로 새 이름을 정할 수 있다. 대부분 해당 거주 지역을 본으로 삼는다고 한다.

더욱 굵어지는 뿌리

체계적 농업 교육으로 자생력 강화

‘당신이 농촌의 내일입니다’

 “처음 이곳에 시집와서 정말 많이 울기도 하고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농업교육을 통해 어머님 같은 선생님을 만나 너무너무 좋아요. 제가 한국말을 잘 몰라 이해를 못하는데도 화도 안 내고 설명도 잘 해주시는 든든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 제 든든한 선생님.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되어서 꼭 성공하여 사장이 되어서 보답할 것입니다.”

제주 애월에 사는 롱찬니 씨는 농협과 농림수산식품부의 협력사업인 ‘이민여성농업인 1:1 맞춤 농업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후견인이라 불리는 전문여성농업인을 만났다. 그녀는 후견인으로부터 취나물에서 상추, 브로콜리, 양배추, 파프리카 재배법을 배우고 있다. 아직은 서툴지만 언젠가는 어엿한 전문 농업인으로 거듭나 돈도 많이 벌고 싶다. 그녀의 소망 중 하나는 이민여성들을 위한 농업 교육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단계별 농업교육 만족도 최고

농촌의 이민여성농업인은 대부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온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본 부유하고 풍요로운 모습을 동경하며 입국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대개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의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코리안 드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원한다. 자신의 가정을 윤택하게 꾸리고 고국의 가족들에게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방법이 마땅치 않다. 어눌한 한국어와 서툰 농사 실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대부분이 한국에 오기 전에는 농업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농사를 짓기는 쉽지 않다. 가족이 알려주면 좋겠지만 가족이 다른 가족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다가 결국 부부싸움으로 교육을 끝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상황은 이민여성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지속 가능한 농촌을 지향하는 농협으로서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농협은 지난해부터 이민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농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민여성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우수한 농업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다.

프로그램은 3가지다. 여럿을 대상으로 한 집합교육인 ‘여성결혼이민자 기초농업교육’과 전문여성농업인 1명이 이민여성 1명을 전담 교육하는 ‘이민여성농업인 1:1 맞춤형 농업교육’, 심화학습 과정인 ‘농업후계이민여성 전문농장실습’ 과정이 그것이다. 기초농업교육은 올해부터 시작됐다. 25개소에서  500명을 교육했다. 농업일반과 기초농업교육, 농기계사용법, 현장체험을 교육 내용으로 한다. 1:1 맞춤형 교육은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628쌍에서 올해 655쌍으로 대상이 소폭 증가했다. 올해 시작된 전문농장실습은 시범적으로 20명을 교육하고 있다.

양점남 농협중앙회 복지여성팀장은 “기초농업교육이 1단계 교육이라면 1:1 맞춤형 농업교육은 2단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며 “2단계에선 씨를 뿌리는 것부터 수확과 포장, 유통까지 농업의 전 과정을 가르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여성의 농지에서 교육이 이뤄졌다면 수확 후 유통과 판매를 농협이 책임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농업 책임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농협의 농업교육에 대한 만족감은 상당히 높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올해 농업교육을 이수한 이민여성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만족’하고 있었다. 다른 이민여성에게 농업교육을 추천하겠다는 의견은 기초농업교육이 97.6%, 1:1 맞춤형 교육이 85.1%로 역시 높은 지지를 받았다. 기초농업교육 이수자의 92.8%가 그다음 단계인 1:1 맞춤형 교육에 참여할 의사를 밝혀 우수한 농업인력을 양성한다는 교육 취지가 달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민여성, 농촌 적응에 큰 도움 ‘한목소리’

농업교육의 효과는 비단 농사를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영농기술 외에 사회적인 적응력을 높이는 효과도 상당히 큰 것으로 조사됐다. 1:1 맞춤형 교육에 참여한 이민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후견인에게 개인적인 상담을 해서 좋았다(35.2%), 가족관계나 자녀양육 등 농촌생활에 도움이 되었다(29.6%), 농촌정서와 농업문화 등 농촌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22.2%) 등의 반응이 나왔다. 농촌에 내려진 뿌리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졌다는 얘기다. 특히 후견인과는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됐다. 이민여성의 95.0%가 현 후견인을 다른 이민여성에게 추천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가족처럼 알뜰살뜰 보살펴 준 노고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강원도 횡성에 거주하는 삼렛 프롬텟씨는 “시어머니와 의견 충돌 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아이가 피부에 종기가 생겼는데 어느 병원을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차도 하루에 2번밖에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전화를 했더니 장화를 신은 채 달려와 함께 병원에 가줬다”며 후견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 충북 보은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지영옥(개명 전 지래나)씨는 후견인인 유춘자씨를 알게 된 것을 농업교육 참여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7년 동안 한국생활을 하면서 늘 외로웠으나 농협의 소개로 후견인인 유춘자 언니를 알게 돼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젠 우즈베키스탄의 부모들도 제 걱정을 하지 않아요. 다른 이민여성들도 농사일을 해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양 팀장은 “농촌의 이민여성들은 대부분 연령대가 30대 이하이기 때문에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사회에서 소중한 노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실제로 상당수가 농사짓기를 원한다”며 “교육 이수자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후속 조치가 있다면 미래 농업을 이끌어갈 여성농업인 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아, 또 하나의 가족

가족과 함께 친정나들이 전액 지원

‘한국·가족사랑 더 깊어졌어요’

지난해 겨울의 일이었다. 태국에서 강원도 인제로 시집온 지 10년이 된 캐냔 쟁사노씨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농협이 태국행 항공권을 그녀에게 준 것이다. 그것도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갈 수 있었다. 캐냔 쟁사노씨의 눈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항공권 위로 눈물이 떨어졌지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끝도 없이 되뇌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국에서 돌아오는 길, 또 다른 고향인 강원도 길을 지나면서 그녀는 다짐했다. “창밖으로 눈 덮인 산과 들을 바라보니 새삼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어머님과 아주버님께 그동안의 일을 말씀드리면서 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내 아이들이 태어난 이 땅, 내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이 땅, 내가 살아가야 할 이 땅,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나는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 제 남편과 아이들이에요’

농촌의 이민여성들은 대부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애초의 희망과 달리 가정 형편은 빈한하고 말은 통하지 않아 경제적·심리적으로 불안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한국에 정착하려는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이들이 마음을 다잡고 정착에 대한 의지를 되살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는 없을까. 농협중앙회가 설립한 농협문화복지재단의 ‘농촌 다문화가정 모국 방문 사업’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심재건 농협문화복지재단 기획사업부장의 설명이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경제적 이유로 고향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이민여성들이 매우 많습니다. 친정 식구가 위독해도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죠. 이들에게 모국 방문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한국생활 적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방문 후 소감을 조사해보면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협의 모국 방문 지원 사업은 2007년 시작돼 지금까지 모두 641가정, 2508명이 친정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이 기회를 통해 장인 장모에게 첫인사를 드린 사위와 태어나 처음으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품에 안긴 외손자들이 숱하다. 새로 꾸린 가정을 반갑게 맞는 제 부모의 모습에서 딸자식의 마음은 뿌듯해졌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새로 돋아났다. 고향 다녀오라고 무료로 항공권을 내미는 나라가 한국 말고 세상에 또 어디 있으랴, 한국에 대한 애정도 굼실거리기 마련이었다.

농협이 지원하는 대상은 이민여성이 한국국적을 취득한 가정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도 포함되며 동반 가족 수는 제한이 없다. 누굴 빼놓고 가겠는가. 방문 시기와 기간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지원 내용은 왕복항공권과 50만원의 체재비다. 연간 약 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연 200가정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심 부장은 “더 많은 가정에 혜택을 주고 싶지만 재단의 예산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1개 시·군 당 1가정을 원칙으로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올해는 대한항공이 이 사업에 동참, 항공권을 최대 40%까지 할인해줘 당초 계획보다 36가구나 더 많은 가정을 지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정엄마 결연, 정서 안정에 도움

농협문화복지재단은 모국 방문 후의 후속 지원 사업도 모색하고 있다. 모국 방문을 계기로 심기일전한 정착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심 부장은 “올 초 모국 방문 가정의 여성 9명에게 친정엄마 결연을 맺어줬는데 상당한 감동이 있었다”며 “예산을 좀 더 늘려 모국 방문 여성 전원으로 친정엄마 결연을 확대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정엄마와 유기적 관계를 맺은 모범 사례를 발굴, 시상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친정엄마 결연 맺기 사업은 진작에 시행되고 있었다. 2005년 처음 시작해 지난해까지 모두 750쌍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농협이 육성하고 있는 (사)고향주부모임과 (사)농가주부모임의 회원들과 이민여성을 모녀 관계로 이어준 사업이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돈독한 유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8년 다문화여성대학 수료식에서 친정엄마 결연을 진행한 경북 문경 산동농협의 서순애 이사는 “요리도 가르치고 경조사도 챙겨주고 출산을 할 때는 미역국도 끓여다 주면서 각별한 정을 나누는 친정엄마와 딸들이 많다”며 “딸들도 좋은 것이 생기면 친정엄마에게 하듯 선물을 한다”고 전했다.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진짜 딸처럼 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이민여성농업인 1:1 맞춤 농업교육’도 이민여성들의 정서적 안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교육자인 ‘후견인’들이 농업기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고민상담까지 농촌문화 전반에 대해 조언을 하면서 둘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국경과 나이를 초월해 여성 특유의 정서적 친화력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이민여성 가족들 내부에서의 관계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농업문화체험’ 행사가 그것이다. 2박3일 동안 이민여성과 남편, 시부모 등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이 행사를 통해 그동안 언어와 문화 차이로 충분히 소통할 수 없었던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 행사의 취지다. 지난해 807명에서 올해 1200명으로 참여자가 증가하고 있다.



우수농협탐방 - 산동농협

빠듯한 경영환경에도 복지 최전선

‘외국인 새댁은 우리 가족’ 공감대
 

“제니퍼 할머니”     네 살배기 지민이가 이병우 나누미봉사단 단장을 불렀다. 양팔을 벌린 이 단장의 품에 뛰어든 지민이는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둘의 모습은 영락없는 할머니와 손자의 그것이었지만 사실 남남이다. 지민이는 필리핀에서 온 로에나 씨의 큰아들이고 이 단장은 농협의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이들을 만났다. 둘을 바라보는 로에나 씨의 표정엔 편안함이 흘렀다.

이 단장은 “지민이가 젖먹이일 때부터 돌봤기 때문에 친손자 같다”며 “외국인 며느리들이 없었다면, 이 시골에서 아이들 웃음소리 듣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웃었다. ‘제니퍼 할머니’란 별칭은 이 단장이 제니퍼라는 이민여성과 친정엄마 결연을 맺으면서 붙은 것이다. 

주부봉사단 희생 ‘성공 견인차’

경북 문경의 산동농협은 작은 시골 농협이다. 규모가 작다 보니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다. 황혁주 조합장의 말마따나 “땟거리 걱정이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복지에서만큼은 농협 전체에서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다문화가정 지원은 선도적이며 모범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산동농협은 농협중앙회의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거의 모두 운영하고 있는 전국적으로 매우 드문 곳이다. 올해만 해도 농협이 처음으로 시작한 이민자 사회통합프로그램과 기초농업교육을 모두 도입했다. 농협중앙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결혼중개 사업의 시범 농협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산동농협이 자랑할 것은 신용사업도, 경제사업도 아닌 복지사업”이라고 황 조합장은 털털 웃었다.

지금이야 전국적으로도 앞선 다문화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지만 2008년 다문화여성대학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한 당시만 해도 사정은 지금과 달랐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현황 파악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미애 산동농협 상무는 “실태 파악에 나서면서 ‘어머, 저 집에도 외국인 며느리가 있었네’라고 놀란 경우가 적잖았다”며 “워낙 산재해 있는 데다 이웃에도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아 현실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해당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다문화여성대학 참여를 권유했지만 설득은 쉽지 않았다. 아내와 며느리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허락한다 해도 교통이 불편해 다문화여성대학 참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교통과 양육 제공을 약속하고서야 가족들의 마음을 겨우 돌릴 수 있었다. 이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이 내보내지 않으니 제 발로는 못 나와요. 자꾸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산동농협이 교통과 교육 기간에 양육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에 주부봉사모임인 ‘나누미 봉사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110여 명의 봉사단원들은 이민여성들의 손과 발을 자처했다.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약속된 날에 어김없이 차를 가지고 가 이주여성들을 통학시켰고 교육 시간 중에는 아이들을 들쳐 업었다. 이 단장은 “친 가족이라면 바쁠 때 ‘알아서 가’라고 퉁을 놓을 수 있지만 이민여성에게 그럴 수 없는 노릇 아니냐”며 “다문화여성대학을 우선순위에 놓고 농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농협과 봉사단의 성실한 약속 이행에 가족들은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4개월, 다문화여성대학의 첫 수료식에 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쉬쉬하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오고 남편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아내를 태우고 학교에 나왔다. 다문화여성대학에 참여한 가정들은 이젠 학교가 아니라 1박2일 여행이라도 농협이 한다면 두말없이 보내줄 정도로 신뢰가 쌓였다. 

이민여성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이웃들과 만나면서 외로웠던 가슴에 활기가 돌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꼭꼭 숨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밖으로 내보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봄기운처럼 퍼져 나갔다. 필리핀에서 온 로에나씨는 “집에만 있다가 나와서 농사도 배우고 사람도 만나니까 외로움이 가시고 너무 좋다”며 “농협의 프로그램에 열심히 나오면 누구나 좋을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산동농협의 당면 과제는 더 많은 이민여성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현재 60여 가구 중 농협의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가구는 40% 내외다. 아직도 60%의 가정이 문을 걸어 잠궈 놓은 상태다. 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김 상무는 “농협은 지역 농업인들을 위한 기관인 만큼 이민여성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품에 안아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민여성과 그 가족들은 농촌의 귀중한 인력자원이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다문화가정은 농촌과 농협의 미래,

 정착 지원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촌의 다문화가정 현상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농촌의 다문화가정이 농촌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속히 고령화되는 농촌에 활기를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이민여성들이며 이들과 이들의 자녀들은 머잖아 농촌의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이런 현실 인식은 농촌 다문화가정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촌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은 대부분 농협의 조합원입니다. 이들과 결혼을 한 이민여성들은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은 고마운 존재들이며 미래의 농촌을 이끌어 갈 귀한 후계들입니다. 이분들이 농촌에 잘 정착해야 농촌과 농협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상의 긍정적 변화 촉진했죠”

최 회장은 농협의 농촌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은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선을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연관된 사업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화에 따라 붕괴되고 있는 농촌을 되살리고 지속가능한 농촌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은 분명 국가의 미래와 연관된 일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와 정부가 할 일이 아닌가. 왜 농협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가. 최 회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정부도 다양한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농촌 구석구석에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로 시·군·구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거리나 교통의 접근성에 제한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 다문화가족의 중요성과 확산 속도를 감안하면 언제까지 정부의 손길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문화 가족이 조금이라도 빨리 정착하게 하려면 농촌 구석구석까지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농협이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절박함은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과 행동을 낳게 마련이다. 농협중앙회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다문화대학을 시작으로 다양한 교육과정과 지원 사업이 앞다퉈 도입됐다. 농협중앙회는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도입과 함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전문인력의 양성에도 공을 들였다. 임직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기존 담당자들에 대한 전문 교육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지원 사업인 다문화여성대학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접 냈을 정도로 최 회장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농촌 지역의 시민단체들도 농협의 사업에 뜻을 같이했다. 농협이 육성하고 있는 농가주부모임, 고향주부모임 등 비영리 사단법인들의 회원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보육과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허드렛일부터 상담역까지 주부 특유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이민여성들을 보듬었다.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은 범 농협 차원의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최 회장은 그동안의 사업성과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문화가정의 가족관계가 돈독해지는 데에도 일조했으며 이민여성들의 대인관계 형성에도 기여했고 사회활동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 향상에도 힘을 보탰다고 판단한다. 전반적으로 자평한다면 “생활상의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최 회장은 흐뭇해했다.

“정부와 협력사업 지속 확대할 것”

농협의 지원 사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범 농협 차원의 열정적인 관심도 관심이었지만 그동안 축적한 농협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고 최 회장은 설명한다.

“농촌 현장을 다녀보면 아직도 이민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무관심이 적잖다는 것을 느낍니다. 심지어 다문화가정에서도 이민여성들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민여성들의 외부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죠. 하지만 농협이 나서니 빗장을 조금씩 열었습니다. 농협에 대한 오랜 신뢰 덕이었습니다. 이 신뢰관계는 다문화가정 사업을 진행하면서 점점 굳건해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은 농촌의 다문화가정 지원 사업에서 농협이 정부에 비해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보다 전문적이고 생활밀착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농협이 정부와 독립적으로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업의 실효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농협은 농림수산식품부, 법무부 등 중앙정부 부처와 공동으로 다양한 사업을 도입, 실시하며 정부와 협력사업을 넓혀가고 있다.

“정부는 정책 수립과 단계적인 지원을 담당하고 공공기관과 민간단체는 실제 사업을 수행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면 더 큰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농협은 전국 읍면 지역의 최 접점이라는 장점을 잘 살려서 정부와 협력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민여성들이 농촌 사회의 일원으로 잘 정착하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어려운 농촌 현실을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태 나가겠습니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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