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에 ‘3B’라는 말이 있다. 아기(baby), 동물(beast), 미녀(beauty)를 일컫는 것으로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 소재들이다. 3B에서도 미녀의 파워가 독보적이다. 주요기업의 신제품 홍보용 보도사진만 해도 늘씬한 미녀들이 제품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기업 홍보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모델들이다. 때로 기업과 제품보다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지면을 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코노미플러스>가 사진에서만 보던 미녀들에게 말을 걸었다.

무생물 신제품에 섹시 ‘드레싱’

제품 PR 위해 ‘변신 또 변신’

지난 10월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산업대전. LG전자 부스에서 만난 도우미 정주미씨(28)는 몹시 분주했다. 유명인이라서다. LG전자의 간판모델로 스마트폰, LED TV, 에어컨 등 주력제품의 홍보 사진마다 등장하며 얼굴을 알렸다. 정씨를 알아본 관람객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다양한 포즈를 요구해도 그의 표정에 귀찮은 기색은 없었다. 환한 미소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한마디로 예뻤다.

모델은 ‘홍보의 꽃’이라 불린다. 기업 홍보와 판촉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제품, 생활가전, 자동차, 식·음료 등 생활과 밀접한 업종이 주 무대다. 신제품 홍보 사진과 런칭 행사, 가두판촉전에서 기업과 제품의 ‘얼굴’로 소비자와 대면한다. 서울·부산모터쇼, 한국전자전, 국제게임전시회 같은 대규모 기업 전시에서 진행을 도맡는 도우미로도, F1·CJ슈퍼레이스 등 자동차 경주대회의 ‘레이싱모델’로도 현장을 빛낸다.

모델이 특정 기업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프리랜서로 기업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동원된다. 활동 중인 모델은 대략 4000명가량. 일거리와 보수는 지명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모델 에이전시 엠앤피의 강혜진 대표는 “인지도가 높은 상위 3~4% 모델은 일반모델의 4~5배 수준인 월수입 1000만원은 거뜬히 번다”며 “기업의 ‘0순위’ 섭외대상으로 전속모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모델의 자격은 뭐니 뭐니 해도 눈길을 사로잡는 외모. “165cm 이상의 키, 늘씬한 몸매, 예쁜 얼굴”이 필수라고 강 대표는 강조한다. 한편 기업과 업종마다 선호하는 모델의 이미지는 조금씩 다르다. 일례로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회사들이 세련되고 이지적인 인상을 요구한다면, SK텔레콤·KT 등 통신사들은 개성이 강한 외모를 선호한다. 세탁기·에어컨 등 생활가전 품목은 미시 인상을 풍기는 모델을, 자동차는 섹시한 모델을 우선시한다.

<이코노미플러스>가 만난 모델들은 눈 밝은 독자라면 익숙할지도 모를 얼굴들이다. 본지가 다룬 전자, 자동차, 유통 등 소비재 분야 기사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사진에 등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유명 모델들답게 카메라 앞에서 당당했고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했다. 무생물인 제품과 기업에 따뜻한 표정을 입혀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LG전자 8년차 전속모델 정주미

IT지식으로 무장한 ‘LG 얼굴’, 전시마다 VIP 전담


정주미씨의 매력은 단연 시원한 웃음이다. 새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는 미소가 말을 거는 사람까지 웃게 한다. 지적인 면모도 정씨의 강점. 반도체의 종류 및 공정, CRT·PDP·LCD·LED 디스플레이별 특성, 3D TV의 구동방식과 원리 같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LG전자의 전속모델로 활동한 햇수만 8년으로 휴대전화, TV, 컴퓨터, 세탁기, 에어컨 등 주력제품들을 홍보하면서 쌓은 내공이다. 전시회 부스를 방문하는 고위공무원, 경영진 등 VIP 응대를 도맡는 이유다.

“LG전자의 주력제품과 핵심기술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죠. 기본적으로 전시 때마다 A4용지 4~5매 분량을 암기하지만 평소에도 신제품·신기술 정보들을 공부해요. 도우미가 방문객의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거든요.”

정씨는 모델업계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은 케이스다. 쉴 새 없이 일거리가 쏟아진다. 신제품 화보만 해도 많을 때는 하루 3~4건의 촬영 스케줄이 잡힌다. 연중 크고 작은 전시회·박람회마다 도우미로 참가하며 틈틈이 화장품, 자동차, 게임회사의 런칭행사나 판촉전도 거든다. 케이블TV의 스포츠·게임 방송 VJ로, 지상파의 한 예능프로 고정출연자로도 등장했다.

“유명세를 타면 곳곳에서 일감이 들어와요. 20대에도 비교적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데다 다양한 경력을 쌓을 수 있어서 모델을 희망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죠.”

정씨가 ‘우수 모델’의 요건으로 강조하는 것은 무엇보다 성실함이다. 특히 철저한 준비다. 길어야 1시간 내외인 화보촬영에서도 마찬가지. “코디도 제품에 따라 직접 할 수 있어야 해요. 에어컨이라면 시원한 색감의 원피스, 노트북이라면 가볍고 편안한 캐주얼을 입는 식이죠. 카메라맨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시선과 팔, 얼굴 각도를 서로 다르게 연출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연습해야 하고요.”

정씨가 가장 애착을 두는 활동은 무엇일까. LG전자 홍보 역할이란다. 모델이 된 게 이 회사를 통해서였다. “저를 키워준 회사나 마찬가지죠. 팔에 깁스를 감고도 화보를 찍은 적이 있을 만큼 LG전자 일정은 꼭꼭 챙깁니다. 반대로 같은 전자 업종의 경쟁사에서는 활동하지 않아요. 의리랄까요.”

SK엔크린·한국타이어 전속모델 이성화

선하고 수수한 이미지 강점, 광고주 인기 ‘독차지’


이성화씨(25)는 선하고 수수한 인상이 강점이다. 광고주들이 특히 선호하는 이미지로 전방위적이라 할 만큼 다양한 업종의 모델로 활동했다. 전자제품에서 휴대전화·TV·디지털카메라·모니터·넷북, 생활가전에서 세탁기·청소기·에어컨·냉장고. 그밖에 자동차·타이어·휘발유·이동통신·의류·할인마트·식품·음료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경력은 올해로 5년. SK엔크린의 전속모델이며 한국타이어 소속 레이싱모델로도 활동한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해요. 새로 나온 전자제품, 옷, 신발, 쿠폰을 남들보다 먼저 써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고요. 누구보다 빨리 얼리어답터가 될 수 있는 직업이죠.”

이씨는 본래 패션디자이너가 목표였다. 대학 시절 지인의 아르바이트 권유로 모터쇼에 참여한 게 모델이 된 계기였다. 처음에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기업 모델은 따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없어요. 아카데미가 활성화된 패션모델과도 다르죠. 포즈 잡기, 관람객 응대 등 일에 필요한 요령은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 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도 견뎌야죠.”

모델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섣불리 도전했다가 금세 떨어져 나가는 지원자도 많단다. “프리랜서라 항상 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지도가 낮으면 원하는 만큼 수입을 못 올리는 경우도 많죠. 전시회 도우미나 레이싱모델은 종일 서 있는 경우가 많아서 피곤한 직업이기도 해요.”

이씨는 모델업계가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별이 뚜렷하다고 설명한다. 신제품 출시나 전시회가 몰리는 6~8월이 가장 바쁜 시기라면 옥외행사가 적은 겨울은 비교적 한가한 시기다. 피부·체형관리, 운동, 여행 등 그간 미뤄뒀던 자기투자에 집중할 휴지기다. 이씨는 이번 겨울 외국어 공부에 집중할 계획이란다. “해외에 나갈 일이 많아요. 올해만 해도 북경모터쇼와 상하이엑스포에 도우미로 참가했죠. 해외 국제전시에서 활동할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레이싱계 ‘톱 모델’ 황미희

톡톡 튀는 ‘섹시함’ 자동차 섭외 ‘0순위’


‘제품보다 튀어서는 안 된다.’ 모델업계의 불문율이다. 그러나 황미희씨(28)는 다르다. 주 무대는 자동차로 신차 화보와 모터쇼의 인기모델로 활동하지만 차보다 더 튀는 모델이라는 평가다. 37-24-35의 볼륨감 넘치는 몸매로 등장하는 무대마다 카메라의 시선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황씨는 레이싱계의 ‘톱 모델’이다. ‘2007 레이싱모델 대상’, ‘2010 CJ슈퍼레이스 어워드 공로상’ 등 레이싱모델에게 돌아가는 권위 있는 상을 휩쓸었다. 현대자동차·르노삼성·GM대우·혼다·아우디·페라리 등 국내 출시되는 주요 자동차 브랜드의 메인모델로 활약하며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 레이싱모델 출신의 연예인 오윤아, 구지성처럼 그를 따르는 팬도 많아서 팬클럽 등록 회원만 7500명이다.

“비키니·속옷 차림의 성인화보를 찍자는 요구가 종종 들어와요. 목돈을 받을 수 있지만 기업 관계자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서 거절하죠.”

황씨의 모델 경력은 9년이다. 고등학생 시절 거리에서 캐스팅된 후 한동안 패션모델로 활동했다. 자동차 업계로 전향한 것은 2006년. 레이싱모델이었던 지인의 대타로 나서면서다. 본래 탐탁지 않은 업무였다고 한다. 노출을 꺼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일 곧바로 팬클럽이 생길 만큼 황씨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레이싱모델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게 매력이에요. 간혹 특정 부위에 과도하게 카메라를 집중시키는 남성 관람객들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지만 최근에는 관람문화가 많이 성숙해져서 일하기 편해졌어요.”

모델의 수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짧은 편이다. 대개 7~8년으로 20대 초반에 입문, 30대 접어들며 은퇴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일찌감치 재테크와 창업에 눈뜨는 이유다. 황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골드뱅킹으로 꽤 재미를 봤단다. 1년 전 한 돈(3.75g) 14만원하던 금 시세는 11월 현재 22만원가량이다.

“은퇴 후 고객서비스(CS) 전문가, 모델 에이전트로 활동하거나 창업하는 모델 선배들이 많아요. 저도 틈틈이 창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당분간 지금 활동에 올인할 계획입니다. ‘레이싱모델’ 하면 ‘황미희’가 연상될 정도로 지금보다 유명해지고 싶어요.”

조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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