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쌓여 있고, 믿었던 펀드도 금융 위기 발생 후 아직도 까먹은 수익률을 회복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이런 최악의 투자 상황 속에서도 고액 자산가들이 ‘사모펀드’라는 투자의 틈새에서 쏠쏠한 수익을 내고 있다. 강남 부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사모펀드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부자를 위한 계 ‘사모펀드’ 전성시대

PB 가 ‘계주’수십억 규모 조성…

치고 빠지는 날렵한 투자 ‘매력’

지난 5월 중순, 서울 청담동에 사는 자산가 A씨는 거래하고 있는 은행 PB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의 유전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조성 중인데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하고,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증시 탓에 펀드 수익률도 신통치 않아 관망 중이던 A씨는 다음날 그 은행의 PB센터를 찾아갔다. 해당 사모펀드의 내용을 좀 더 상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들어보니, 미국 내 생산 유전과 가스전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에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였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펀드라고 했다. 

“작년 4월에 그 뮤추얼펀드에 투자했던 기존 사모펀드(설정액 62억원)가 올 5월10일에 누적수익률 22.5%를 냈고, 배당수익까지 합하면 누적수익률이 32.9%에 이릅니다.”

PB의 설명을 듣고 난 A씨는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를 한 후 가입을 결정하고, 이틀 후 이 사모펀드에 2억원을 맡겼다. 지난 5월20일부터 25일까지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이 사모펀드는 A씨를 비롯한 서울 강남지역 자산가 49명이 약 70억원을 맡기며 인기리에 마감됐다.

사모펀드를 향한 부자들의 투자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최근 1~2년간 불안정한 자산 시장 흐름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 고민하던 자산가들이 사모펀드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PB가 책임지는 일종의 계모임

‘사모펀드’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금융권의 PB센터들이 일종의 ‘계주’가 되어 부자들을 위해 적당한 테마의 계모임(사모펀드)을 만들고, 곗돈을 굴려서 계원이 된 고객들에게 수익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모펀드는 49명 이하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개월 정도 짧게 운용된다. 자산운용사가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 대상과 방법, 시기 등을 차별화해 사모펀드를 기획하여 금융권 PB센터에 제안하면 PB들이 자산가들에게 소개한다. 거꾸로 PB들이 특정 주제의 사모펀드 개발을 요청해서 운용사들이 만드는 경우도 있다.

사모펀드의 투자 방향과 목적이 마음에 들면 투자자들은 원하는 금액만큼 해당 사모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최소 가입금액은 대개 1억원 이상으로,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 규모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되는 공모펀드는 수천억~조원 단위로 설정되다 보니 엄청난 덩치로 인해 움직임이 꽤 둔하다. 이와 비교해 사모펀드는 수십억원 규모의 날렵한 몸매로 빠르고 유연한 투자가 가능하다. 특히 공모펀드가 한 종목 편입 비중이 전체의 10%를 넘을 수 없어 다수의 종목을 들고 가야하는 것과 달리, 사모펀드는 자산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큰 자산에 집중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자산가들의 사모펀드 사랑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6월18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사모펀드에는 6851억원이 순유입 됐다. 같은 기간 공모펀드에서는 4조1245억원이나 빠져나가 대조를 보인다. 전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날로 커지고 있다. 연초 10.03%였던 사모펀드 비중은 6월18일 현재 11.39%로 불어났다.

우리은행 대치남지점의 PB인 하태영 부지점장은 “사모펀드는 대개 13~15% 정도의 수익률을 목표로 설계해 운용되는 편”이라며 “정기예금 금리에는 만족하지 못하지만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망설이는 자산가들이 사모펀드를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남대치지점은 현재 20억~3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들을 몇 개 운용하고 있다.

자산가들을 유혹하는 사모펀드는 유형도 점점 다양화하는 추세다. 초기에는 ELS(주가지수연계증권)에 투자하는 ELF(주가지수연계펀드) 형태가 주류였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주식의 주가 추이에 따라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한 파생상품이다. 그러나 금융위기 발생 후 증시가 급등락하면서 ELS와 ELF의 성과가 부진한 경우가 늘자 점차 진화된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은행 남대치지점의 하 부지점장은 “올 들어 남유럽 재정 위기가 나타난 후 단순한 구조의 ELF 수익이 부진해 대안으로 스텝다운형 상품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텝다운형 ELS는 기초자산 종목의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 혹은 이상을 넘지 않으면 원금을 보장하는 식으로 설계되는데, 종목을 둘 이상 묶어 위험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코스피 20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함께 엮는 식이다.

공모주, 부동산 등 투자처 다양

올 상반기 증시 최고의 이슈였던 삼성생명 상장과 관련, 삼성생명 공모주 투자로 대박을 터뜨린 사모펀드도 있었다. 이 사모펀드는 작년 하반기에 일찌감치 장외시장에서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5만2000원(액면분할된 가격으로 환산)에 사들였다. 펀드의 절반은 삼성생명, 나머지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다른 삼성그룹주로 이뤄진 구조였다. 유진자산운용이 만들어서 국민은행에서 판매했다.

올해 4월28일 상장된 삼성생명의 공모가는 11만원. 상장 후 주가는 6월18일 현재 10만1500원으로 공모가보다 떨어졌지만, 장외에서 워낙 싼 값에 물량을 잡아뒀던 터라 상장 후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한 이 사모펀드는 결성된 지 약 7개월 만에 약 60%의 수익률을 확정하며 투자자들을 만족시켰다.

부동산 경기 침체 와중에도 부동산 시장의 틈새를 노려 인기리에 팔린 사모펀드도 있었다. 부동산 펀드 운용에 강점을 지닌 P자산운용이 만든 이 사모펀드는 지난해 말 총 166억원 규모로 두 개가 설정됐다. 4년 정도 서울 도심의 대형 오피스빌딩에 투자하는 리츠(부동산투자신탁)에 투자하는 재간접펀드였다.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인송빌딩(옛 대한전선 사옥)을 사들여 초반에는 임대 수익을 올리고, 리모델링으로 가치를 높여 재매각해 수익을 확정하는 구조였다. 목표수익률은 13%대.

이 펀드를 취급했던 국민은행 청담PB센터의 정성진 PB팀장은 “개인이 직접 빌딩 임대 사업을 할 경우 관리가 쉽지 않지만 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경우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해당 빌딩에 대기업이 몇 년 동안 입주해 있는 조건 등으로 안정적인 임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 자산가들이 많은 호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사모펀드 조성에 적극적인 국민은행은 작년에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표시채권, 물가연동 국채, 생산 유전 및 가스전, 미국 금융주, 한국과 중국의 우량 핵심주, 인플레이션 지수 연계 상품, 국내외 부동산 펀드 등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부자 고객들에게 상당한 수익을 안겨줬다.

자산가들이 사모펀드에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은행 청담PB센터의 정 PB팀장은 “자산가들이 전에는 주로 국내외 공모펀드에 투자했었는데 금융 위기 이후 기존 펀드들의 수익이 회복되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다 보니 다른 투자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며 “이를 사모펀드가 충족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올해의 경우, 작년에 선보인 사모펀드들이 대부분 목표 수익률을 달성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모펀드에 반복 가입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자산가들이 처음부터 사모펀드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산가들은 대개 보수적이라 검증된 투자를 선호하는데, PB센터의 소개에 몇몇 용감한 이들이 응했고, 이들의 성공이 알려지며 서서히 확산되어 갔다고 한다.

우리은행 남대치지점의 하 부지점장은 “PB센터가 정기예금 금리의 2~3배가량을 낼 수 있는 대안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사모펀드의 기본 개념부터 일일이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먼저 ‘사모펀드 더 하지 않느냐’고 문의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모펀드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1인 단독펀드도 인기

한편, 소수 투자자를 위한 사모펀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자산가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1인 단독펀드에 투자하기도 한다. 바로 투자자문사들이 운용하는 일임형 랩어카운트에 가입하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개별 금융 상품이라면, 일임형 랩은 투자 서비스다. 고객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우량주·가치주·성장주 등 투자 범위를 정해 자문사에 돈을 맡기면 사전 계약에 따라 자문사의 펀드 매니저가 그 범위에 맞춰 굴려주는 방식이다. 투자 대상은 주식,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망라한다. 사모펀드 고객층에 비해 보다 공격적인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 가입 금액은 통상 3억원 이상.

증권사들이 브레인, 케이원, 인피니티 등 두각을 보이는 자문사들의 자문을 받아 운용하는 자문형 랩에는 매주 수백억원씩 자금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2008년 말 10조원 안팎이던 랩어카운트 전체 시장 규모가 올 6월 중순 30조원을 돌파했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도 50만 명이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투자자문사들이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면 성과급을 더 받는 구조여서 성과보수가 없는 운용사의 공모펀드에 비해 동기부여 측면에서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최근 몇 년 사이에 실력 있는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자문사를 설립하며 업계의 수준도 업그레이드 됐다는 평가다.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의 전병국 센터장은 “작년부터 부쩍 자문사 랩 상품에 대한 문의와 가입이 늘었다”며 “자문사의 자문을 받는 증권사 랩어카운트에 가입하거나, 증권사 PB지점에서 검증된 자문사를 직접 소개받아 랩 계좌를 트는 고객들이 많다”고 밝혔다. 자산가들은 자문사 랩으로 단독 펀드에 돈을 맡기면 매니저와 고객이 자주 얘기하며 투자 내역을 조정할 수 있다는 부분에 점수를 많이 준다고 한다.

자문사 랩의 인기는 사모펀드 상품을 찾는 요인과 동일하다. 위기에 잘 대응하지 못한 공모펀드에 실망한 이들이 대안을 찾아 나선 결과라는 것. 자산가들은 자문사의 일임형 랩어카운트에 대개 1년 계약으로 가입하는데, 투자 성과가 괜찮으면 재계약을 이어간다고 한다.

전 센터장은 “금융 위기 이후 자산가들이 신중해지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틈새를 찾아 투자하려는 욕구도 높다”고 전했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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