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민영화에 따라 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분리한 산은금융지주와 정책금융공사가 출범한 뒤 산은금융그룹은 2020년까지 글로벌 톱20내의 CIB로의 질적 도약을 제시하며 ‘비전 20-20-20’ 프로젝트를 추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수신기반 확충이 취약한 현재 산업은행으로서 이같은 비전은 이행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민영화 일정 자체에 대한 우려까지도 나온다. 글로벌 CIB 도약으로의 비전을 위한 산은금융그룹의 노력과 과제는 무엇일까.

수신기반·해외진출 ‘잰걸음’…

정부와 엇박자 ‘넘어야 할 산’

 “환골탈태의 변화와 혁신으로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시너지 극대화로 기업가치를 높여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완결하는 한편, 한국 금융의 대표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지켜 나가겠습니다.”

지난해 10월 산은금융지주 출범에 맞춰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다진 의지다.

산업은행(이하 산은) 설립 이후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를 보다 높이고, 개발금융을 벗어나 효율성을 근간으로 한 상업금융으로의 전환을 위해 일부 기능을 민간으로 이전하자는 논의가 흘러나왔고, 그 결과가 민영화 추진이었다.

산은의 업무가 이미 다른 시중은행들과 경쟁적 선상에 위치하고 있고,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을 떠나 산은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민간에서 보다 도약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구상에 이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 공기업의 혁신은 국책은행으로서의 설립 목적 달성 여부와 기능 전환 후 얻게 될 목표,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산은 민영화가 걸어가야 할 길에는 많은 내·외부적 기회와 장애물이 동시에 상존할 것으로 보인다.

도이체방크 같은 글로벌 CIB 청사진

지난 6월 임기 3년째에 접어든 민유성 회장은 그동안 민간 금융그룹으로의 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체질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민 회장은 과거의 관료적인 분위기를 쇄신하고, 민간 금융그룹으로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글로벌 상업투자은행(CIB)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톱20’의 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 청사진도 밝혔다. ‘비전 20-20-20’이 그것이다. 10년 후 세계적인 CIB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복안도 짰다.

그동안의 성장 속에서 산은을 비롯해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한국인프라자산운용, 산은캐피탈 등 5개 자회사를 둔 지주사로 변화했다. KDB생명도 오는 2013년까지 자회사로 편입, 보험·증권·자산운용 등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복합점포를 운영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글로벌 CIB로의 도약을 위해 1단계로 아시아 지역 대표 CIB를 거쳐 2단계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한다는 포부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정치권 등 일각에서 산은 민영화 자체에 대한 연기 및 철회론이 부각될 때, 첫 번째 고비가 닥쳐왔지만 결국 끈질긴 설득과 노력으로 산은금융그룹과 정책금융공사가 설립될 수 있었다.

윤만호 산은지주 부사장은 최근 글로벌파이낸스 포럼에 참석해 “우리나라 글로벌 스타는 제조업에 국한돼 있다”며 “글로벌 금융 스타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윤 부사장은 “한 차례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은행의 낮은 국제화 수준과 해외 점포의 현지화 진척 미비, 지주 중심의 금융그룹 간의 경쟁 심화라는 현상 속에서도 투자은행(IB) 산업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며 “은행과 금융투자사를 결합한 CIB가 결국 한국형 IB 육성으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증시 상장, M&A 통한 해외 진출 의지

이미 산은은 올해를 수익중심경영의 원년으로 삼아 민영화 체제로의 탈바꿈을 위한 기반을 확충하고, CIB 핵심사업 역량 강화와 병행 성장 전략을 통한 수신 기반 확보, 아시아 중심의 해외 사업 기반 확보, 정책금융 공조를 통한 경제 안정화 등을 추진전략으로 내걸고 동분서주 해왔다. 정책금융공사(KoFC)로 8조원 규모의 정책성 여신자산을 넘기고, 위탁경영도 마쳤다. 민영화를 위한 출발선에 선 것이다. 정책여신 처분 등 재무구조 개선으로 해마다 이자이익만 1조원 이상 거둬들일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겨냥했다.

민 회장은 지난 6월15일, 내년 국내 증시 상장과 2012년 해외 증시 상장,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동안 국책은행으로서 기업들의 설비자금 장기 지원,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등의 국내 금융뿐만 아니라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한 자본시장 업무를 해오는 등 IB로서의 역량과 노하우를 축적한 강점을 살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민영화와 함께 금융 수출이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지난 4월19일 이집트 최대 상업은행과 상호 공동 업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개발금융기관인 IDC와 업무협약을 맺었고, 올 3월에도 알제리 개발은행과 협약을 맺었다.

산은은 올해 안에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은행 한두 곳과 우즈베키스탄 은행 한 곳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뉴욕, 런던, 도쿄, 홍콩,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등을 비롯해 세계 주요 중심지에 12개의 지점과 현지법인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본부와 영업점, 독립 경영체제 강화

민 회장은 취임 이후 내부적으로도 변화를 이끌며 개인고객 대상 수신기반 확대를 위해 조직 체계를 재구성해 개인금융본부를 비롯한 11개 본부로 전환했다. 기존 44개의 점포에 올 초 수석부행장 직속의 개인금융PB센터도 신설했다. 과거 성장금융지원실도 소매금융 영업을 겨냥해 고객지원실로 이름을 갈아치웠다.

지난 4월에는 모든 본부와 영업점의 독립 책임경영 체제 강화를 위한 ‘본부장, 점포장 CEO제도’를 도입, MOU를 체결했다.

앞서 2월 열린 상반기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민 회장은 “모든 본부장과 점포장들이 관할 본부 및 점포의 CEO라고 생각하고 책임경영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재량과 권한의 폭을 넓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말에 철저한 평가를 거치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민 회장은 지난 4월 11개 본부장 및 국내외 점포장과 MOU를 체결했다.

국내·외 점포별로 국내는 송재용 성장기업금융본부장이 점포를 직접 방문, 협약을 체결하고 경상이익, 대출 평잔, 예수금 평잔 등 계량적 이익목표와 마케팅 기획, 영업 기반 확대 등 비계량적 전략추진과제를 점검하고 독려했다.

국외 점포는 황원춘 국제금융본부장의 주도하에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아주점포 전략회의’를 연 데에 이어 미주와 유럽 지역에서도 점포장 회의를 개최했다.

자금 조달과 인력 운용 및 자산 운용의 현지화를 통해 글로벌 CIB로서의 기반을 다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직적인 노력의 결과 수신 규모는 올 들어 21조2400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10%가량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kdb Smart+정기예금’과 ‘kdb 프리미어 정기예금’의 수신고가 판매 후 10영업일 만에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성과를 냈다. 6월 초에는 민영화에 대비해 부족한 점포망이란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활용한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고수익 ‘ⓤbest인터넷산금채’를 출시했다. 산은 수신상품개발팀 관계자는 “저금리 등으로 갈 곳을 잃은 투자금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대우건설을 인수하고,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 등 기업 구조조정 부문도 순조롭게 진행돼 왔다. GM대우, 대우조선해양 문제도 조만간 해결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지부진 우리금융 전철 밟나

그러나 산은의 민영화를 위한 분주한 준비작업과 글로벌 CIB로의 도약 프로젝트가 앞으로 순탄한 길만 예고되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산은금융그룹이 세워둔 상장, 해외 진출, M&A 전략 등에서 정부 측과 적지 않은 거리가 체감되기 때문이다. 또한 여타의 시중은행들의 막강한 영업점 네트워크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점포망은 수신기반 확대에 최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는 지점망을 대폭 확대할 처지도 못된다.

일각에서는 민영화 추진 이전에 민영화 대상 은행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민영화 후의 실제 민간주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기 때문에 구조변화가 자칫 민영화 자체의 진행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각가치 극대화와 시장 친화적인 CIB로 전환해야 한다는 산은금융그룹 측의 방향과는 배치되는 지점이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산은의 해외 진출이나 적극적인 M&A, 증시 상장 등을 놓고 이견을 드러냈다.

산은금융그룹이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회사의 매물이 나오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기에 M&A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얘기할 때 이장영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M&A보다 현지법인 강화, 합작, 업무분장 등 리스크 부담을 줄이는 쪽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태국 시중은행인 시암시티은행 인수를 타진하던 산은은 올 초 이에 대한 최종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G20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금융산업 규제 논의 속에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점증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증시 상장 추진일정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지난해 5월 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의 틀 안에서 새로운 민영화 방식과 절차를 수립하기 위한 실무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이전까지 산업은행의 역할은 ‘민영화를 위한 체질 개선’에 국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면이 상장에 대해 언급할 단계가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오랫동안 공석으로 비워뒀던 KB금융지주 회장에 어윤대 전 국가브랜위원회 위원장이 내정되면서 우리금융 민영화를 둘러싼 ‘메가뱅크론’의 재부상 등 금융권 전반의 급격한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14년 5월 이전에 산은 최초 지분 매각을 예정하고 있지만, 자칫 12년을 끌어온 우리은행 민영화처럼 지지부진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이런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다.

외신들도 한국의 은행 민영화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정책금융공사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에 대해 800억달러 규모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은행의 정책적 역할이 축소되기보다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우리금융그룹 지분 매각 계획을 재차 되풀이했지만 현재의 KDB금융그룹의 경우처럼 실제로 매각이 진행되는지 여부를 기다려 봐야 투자자들은 이를 믿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산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 그것도 외국계 금융회사에서만 업력을 쌓아온 민 회장과 정부 관료 간에는 여러 면에서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의 글로벌 CIB 도약은 이 같은 외적 여건 이외에도 내부적인 과제도 안고 있다. 민영화와 미래 비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내부 직원들의 동요도 어루만져야 한다.

최근 민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광주 지역 소재 기업 현장 마케팅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내외부적 난관을 넘기 위한 의지를 담은 행보로 풀이된다.

배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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