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기업의 진가는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아무리 지독한 불황의 파고가 덮쳐도 일류 기업들은 침몰하는 법이 없다. 올 한 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심각한 경기 침체 속에서도 뜻밖의 실적을 낸 국내 대표 기업들이 좋은 사례다. 일류 기업들의 또 다른 진면목은 한발 앞선 미래 예측과 과감한 투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다수 기업들이 경기 변동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때 일류 기업들은 그 다음 경기 사이클을 능동적으로 대비한다.
최근 각국 정부는 ‘출구전략’(경기 침체기에 경기 부양을 위해 실시한 정책 수단을 거둬들이는 조치) 실행 시기를 한창 저울질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어느 정도 바닥을 찍었다는 진단에 따라 재정 및 통화금융 정책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기업들도 마냥 위기 극복에만 전념할 상황은 아니다. 이제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영환경에 맞춰 사업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말하자면 기업들도 나름의 출구전략을 마련할 시기라는 것이다.
<이코노미플러스>는 2009년 송년호에서 ‘국내 간판 기업들의 출구전략’이라는 특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현재 경기 상황 인식과 향후 경기 회복기 경영 전략을 점검함으로써 글로벌 경기 변화에 대한 판단과 대응, 승부수를 살펴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불투명한 전망 속에 갇혀 있는 기업들이 향후 사업 방향을 검토하는 데도 요긴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설문조사는 총 15개 문항으로 설계됐으며, 모두 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긴긴 침체 터널 밝히는 두 개의 불빛

그린 이코노미’와 ‘팍스 차이나’가 답이다

20개 주요 기업 긴축 기조 우세하지만 전략적 투자 확대도 병행해

녹색산업과 중국 시장에 역점 두고 경영 자원 투입하는 기업 많아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글로벌 경기가 여전히 안개 국면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직 글로벌 경기 침체가 끝나지 않았다’고 응답한 기업들과 ‘바닥 혹은 회복기’라고 답변한 기업들이 50대 50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한 것이 단적인 근거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 읽을 수 있다. 20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이미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회복기에 진입했느냐는 물음에는 4분기로 응답한 기업들이 4개로 가장 많았고, 3분기(2개)나 1분기(1개)로 답한 기업들도 있었다.

특히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업종은 3개 기업 중 2개 기업이 이미 회복기에 들어섰다고 응답해 눈길을 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 정부가 실시한 자동차 산업 지원책이 상당한 약효를 발휘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침체가 끝나지 않았다고 답변한 기업들도 대부분 2010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중에서도 내년 하반기를 경기 회복 시점으로 보는 견해가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로 미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수년간에 걸쳐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가 더블딥(경기 침체 이후 잠깐 회복세를 나타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을 겪을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식지 않고 있다. 국내 간판 기업들 역시 더블딥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더블딥에 빠질 확률을 낮게 보는 견해가 좀 더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11개 기업이 더블딥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했고, 2개 기업은 단정적으로 더블딥은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현재 기업들의 경영 기조를 살펴보는 것도 경기 진단의 실질적 지표가 될 수 있다. 만약 경기 전망이 낙관적이라면 공격적 경영을 펼칠 것이고, 반대로 비관적이라면 수세적 경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다수 기업들은 올 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될 때 비상경영 체제로 돌입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결론적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 다수는 아직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경영’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경영 기조에 대한 물음에 13개 기업이 긴축기조라고 답변한 것이다.

하지만 평상 기조로 돌아왔거나 확장 기조로 전환했다는 기업들도 7개나 됐다. 특히 확장 기조에 들어선 기업들은 경쟁자들이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치고 나가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 현대모비스, 대우인터내셔널, LG화학, 대한항공 등 5개사가 확장 기조라고 답변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와 롯데쇼핑 등 2개사는 평상 기조를 회복했다고 응답했다.

현재 기업들의 긴축경영 기조는 내년 투자 및 고용 확대 계획을 물은 질문에도 반영됐다. 11개 기업이 투자나 고용 확대 여부를 아직 결정짓지 못하고 있고, 3개 기업은 계획 자체가 없다고 답변했다. 특히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 업종의 2개사가 투자 및 고용 확대 계획이 없다고 응답해 얼어붙은 조선업 시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긴축 기조가 우세한 가운데서도 기업들의 80%(16개)가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사업이 있다고 답변한 점이다. 또한 신규 진출했거나 신규 진출을 계획 중인 사업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들도 80%에 달했다.

즉,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전반적인 경영 기조는 수세적이지만 특정 사업에서는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들 사업은 각 기업들이 어디에 경영의 방점을 찍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로 주목된다. 바꿔 말하면 경기 회복기 이후를 대비하는 기업들의 출구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국내 간판 기업들의 출구전략에서는 기업환경의 변화를 추동하는 ‘메가트렌드’도 읽을 수 있다. 바로 ‘그린 이코노미(Green Economy)’가 그것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이른바 녹색성장이나 친환경과 연관된 사업들을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거나 새로 사업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친환경자동차 사업 등이 그런 사례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지역을 ‘출구’로 삼고 있는지 여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국내 간판 기업들의 80%는 아시아 지역에 표를 던졌다. 사실상 ‘몰표’라고 봐도 될 정도다. 아시아를 출구로 지목한 이유는 대동소이했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한 ‘엔진’이 건재하다는 점이다. 다른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빠른 성장세와 풍부한 잠재력도 표를 얻는 데 한몫했다.

현재 경영자원을 대거 투입하는 전략시장에 대한 질문에도 아시아 지역이 뚜렷한 우위를 보였다. 중국이 8표를 받았고, 인도 역시 4표를 얻었다. 또 다른 브릭스 국가인 브라질도 4표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은 조선업계 빅3 기업이 모두 전략 시장으로 꼽았다. 이는 브라질의 대규모 해양 플랜트 발주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전략시장으로 꼽은 기업들도 있었다.

향후 경영자원을 계속 투입할 미래 전략시장에서도 브릭스 국가들이 강세를 나타냈다. 중국이 8표, 인도와 브라질이 각각 3표와 2표를 얻었다. 러시아도 2표를 받아 저력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당장 내년에는 어떤 시장이 출구전략의 대상으로 가장 유망할까? 국내 간판 기업들은 ‘2010년 딱 한 곳의 유망시장’은 어디냐는 물음에 역시 중국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설문대상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9개(아시아 포함) 기업이 중국의 손을 든 것이다. 이 밖에 각 기업의 사업 내용이나 특성에 따라 유럽, 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중동 등을 꼽은 경우도 있었다.

결국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21세기 초입의 세계 경제환경을 압축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자연스레 도출된다. 즉, ‘그린 이코노미’와 ‘팍스 차이나(Pax China)’가 그것이다. 기업들은 늘 경기변동이라는 변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녹색산업과 중국 시장은 기업들에게 가장 유력한 안전판이자 출구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간판 기업 출구전략 / 포스코

내일을 만드는 용광로 쉬는 법이 없다

글로벌 철강 생산 네트워크 구축과 녹색기술 확보에 적극 투자

세계 철강 산업 구조조정 국면 발판으로 글로벌 빅3 도약 노려

 “지금의 불황은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프로세스와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열린경영, 창조경영, 환경경영의 3대 경영 방향을 설정했다. 포스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전통이 있기 때문에 도전과 창조정신으로 재무장하면 불황의 터널을 가장 먼저 탈출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정준양 제7대 포스코 회장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던 지난 2월 말 취임했다. 그는 취임 첫 일성으로 ‘열린경영, 창조경영, 환경경영’이라는 자신의 3대 경영철학을 선포했다. 정 회장의 3대 경영철학은 당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동시에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적 비전을 담은 것이다.

정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포스코는 지난 1년간 숨 가쁘게 뛰어왔다. 일반적으로 경기 확장 국면에서나 볼 수 있는 공격적 행보가 특히 눈에 띈다. 포스코 관계자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이라고 마냥 소극적인 경영 전략을 세우기보다 철강 경기 회복기를 대비해 미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설명이다.

사실 포스코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하는 기업 전통을 갖고 있다. 2차 오일쇼크로 세계 철강 업계가 휘청거리던 1980년대에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건설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추진해 글로벌 철강 업체로 도약하는 디딤돌을 놓았다. 또한 거의 모든 국내 기업들이 움츠러들었던 외환위기 때도 포스코는 신규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한복판을 지나온 올해 역시 포스코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꾸준하게 단행했다. 세계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 국면을 적극 활용해 빅3 철강 업체로 올라서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해외 전략시장 중심의 양적 팽창을 가속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포스코는 지난 10월 신흥시장인 베트남에 연산 120만 톤 규모의 냉연공장을 준공했다. 베트남 냉연공장은 2010년 이후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현지의 냉연 제품 공급 부족 현상에 대응해 시장을 선점하는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동남아 시장 진출의 탄탄한 전초기지 역할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뿐이 아니다. 포스코는 올해 40만 톤 규모의 멕시코 자동차 강판 공장, 미국 API(American Petroleum Ins-titute; 미국 석유협회가 공인한 에너지 수송용 고급 강관제품) 강관 공장을 잇달아 준공했고, 일본, 태국, 인도 등지에도 7개의 가공센터를 신설했다.

특히 멕시코 자동차 강판 공장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북미 지역과 성장 잠재력이 높은 브라질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공장은 자동차 외판용으로 사용하는 고급 철강재를 연간 40만 톤 생산해 멕시코를 비롯한 미주 지역에 판매할 계획으로, 포스코가 글로벌 자동차 강판 메이커로서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데 톡톡한 기여를 할 전망이다.

포스코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전략은 철강 수요가 있는 산업 클러스터 현지에서 고객의 요구를 신속하게 수렴하고 대응하는 적극적 현지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요 자동차 메이커와 가전 업체들의 ‘메이드 인 마켓(Made In Market; 현지 생산 및 현지 판매)’ 전략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품 생산은 시장 근처에서’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포스코는 철강 산업에서 축적한 핵심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환경 및 에너지, 그리고 소재산업이 바로 그 타깃이다. 지난 7월에는 ‘글로벌 녹색성장의 리더(Global Green Growth Leader)’라는 비전 아래 녹색성장 사업 추진과 환경경영 구현을 위한 핵심 기구인 ‘범 포스코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큰 마스터플랜을 세부적으로 다루기 위해 저탄소 철강기술, 기후변화 대응, 신재생에너지, 녹색신성장사업 등 4개 분과위원회를 산하에 뒀다.

포스코의 신성장 동력에는 폐기물에너지, 연료전지, 합성천연가스, 태양광발전, 수소환원법 개발 등이 포함돼 있다. 아울러 고강도, 초경량의 혁신 소재와 미래 신소재를 개발하는 종합소재 사업도 추진 중이다.

특히 쓰레기를 에너지화하는 사업이 눈길을 끈다. 포스코는 폐기물에너지 사업 중에서도 ‘생활폐기물 연료화(RDF: Refuse Derived Fuel)’ 및 발전, 하수 슬러지 연료화 사업을 중점 추진하기 위해 지난 10월 전담회사인 포스코이앤이(POSCO E&E)를 설립했다.

생활폐기물 연료화 및 발전은 그 동안 소각 후 매립되던 가연성 폐기물을 연료화해 전력을 생산하는 사업이며, 하수 슬러지 연료화 사업은 매립 혹은 해양에 버려지던 하수 슬러지를 가공해 화력발전소에서 석탄보조연료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포스코는 현재 부산, 포항시와 생활폐기물 연료화 및 발전 사업을 추진 중이며, 향후 전국 광역도시로 확대할 예정이다.

SK에너지와 함께 추진 중인 합성천연가스 제조사업도 눈길을 끈다. 이는 값싼 저급 석탄을 고온, 고압에서 가스화한 후 여러 공정을 거쳐 합성천연가스(SNG: Synthetic Natural Gas)를 생산하는 청정 연료화 사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미국에서만 상용 플랜트 1기가 운영되고 있다.

포스코는 2013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석탄 가스화 플랜트를 건설, 연간 50만 톤의 합성천연가스를 생산할 계획이다. 합성천연가스는 기존 천연가스보다 30%가량 저렴하다. 고가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대신 저가의 석탄을 활용함으로써 연간 약 2000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본업인 철강 산업의 기술 고도화에 초점을 맞춘 ‘수소환원법’ 개발 사업도 주목할 만하다.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철광석 내의 산소를 제거하는 이른바 ‘철광석 환원반응’ 단계를 거치는데, 이때 환원가스로 사용되는 일산화탄소(CO)가 철광석에서 분리되는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CO₂)를 부산물로 발생시킨다. 포스코가 개발 중인 수소환원법은 일산화탄소 대신 수소(H₂)를 환원가스로 사용하는 것으로서,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환경 미래 제철기술인 셈이다.

만약 포스코가 수소환원법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이산화탄소 대량 배출 산업으로 낙인 찍혀 있는 철강 산업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포스코의 가열찬 용광로는 ‘내일을 만들어 가는 쇳물’을 지금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 선제투자로 세계적인 업체 도약

공장 증설로 수요 대응하는 한편 LCD용 유리기판 사업도 나서

LG화학의 질주가 눈부시다. LG화학은 최근 2차전지 시장에서 신흥 강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성공 요인은 남들보다 앞선 선제투자와 지속적인 연구개발 노력이다. 최근엔 LCD용 유리기판 사업에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LG화학은 지금 불황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chosun.com

지난 1월 초 LG화학은 미국 디트로이트로부터 날아온 낭보에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미국 GM의 전기자동차용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는 업체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GM은 2010년 하반기에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를 출시할 예정이다. 시보레 볼트는 순수하게 배터리의 힘만으로 구동되는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다. 배터리를 보조동력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하이브리드차보다 훨씬 더 진화된 궁극의 미래형 차량이다.

전기자동차의 상용화에 가장 큰 관건은 바로 배터리 성능이다. 배터리의 출력과 안전성 등이 확보돼야 실질적인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GM 전기자동차에 어떤 업체의 배터리가 장착될 것인지가 세계적인 관심사가 돼 왔다. 그런데 LG화학이 그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LG화학이 전지 사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국내 시장은 일본 업체들에게 2차 전지를 전량 의존하고 있었다. 새로운 미래 전략사업에 전폭적으로 역량을 투입한 LG화학은 1998년 국내 최초로 소형 리튬이온 전지 양산에 성공했다.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전지 사업에 대한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특히 전기자동차에 사용되는 중대형 전지의 잠재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2000년부터 이 사업에 착수했다.

LG화학은 중대형 전지 연구개발 2년 반 만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02년 7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파익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 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에서 LG화학 리튬폴리머 전지를 이용해 개발한 전기자동차가 우승을 차지한 것. 다음 해인 2003년에도 LG화학은 전년도 기록을 갈아치우며 2년 연속 우승을 거두는 개가를 올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LG화학은 2007년 현대겚蓚팃殆?리튬이온 배터리 단독 공급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고, 급기야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인 GM 시보레 볼트에도 자사 제품을 장착하게 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과시하게 됐다.

LG화학은 현재 배터리 사업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 등 선진국을 뒤따라가는 ‘재빠른 추종자(fast follower)’였다면, 이제부턴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 앞서가는 ‘선두주자(first mover)’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야심이다.

우선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설비 증설에 적극 나섰다. 지난 6월 충북 오창테크노파크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가진 게 신호탄이다. LG화학은 2013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오창 테크노파크를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메카로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공격적 행보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다. 전기자동차 시장은 현재 약 90만 대 수준에서 2015년에는 460만 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시장 규모도 10조원 이상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LG화학은 2015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 2조원의 매출과 2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해 글로벌 배터리 업체로 도약한다는 포부다.

LG화학 배터리 사업이 성공을 거둔 데는 최고경영자인 김반석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그는 취임 이후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인 전지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만큼 전지 분야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김 부회장은 “남보다 먼저 준비하고, 남보다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핵심에 집중하며, 남보다 자주 점검하는 스피드 경영 방식”을 전지 사업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고 한다.

LG화학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로 대박을 터뜨린 데 이어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섰다. LCD용 유리기판 사업이 그것이다. LCD용 유리기판은 LCD를 구성하는 부품 중 20% 이상의 원가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세계적으로 단 4개 업체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국내 LCD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국산화가 시급한 분야로 꼽혀 왔다.

LG화학은 2018년까지 3조원을 이 사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거점은 지난 9월 경기도 파주 월롱산업단지 안에서 기공식을 가진 ‘LG 파주 첨단소재단지’다.

LG화학은 이곳에 총 7개의 LCD용 유리기판 생산라인을 건설해 연간 5000만 평방미터 이상의 유리기판을 생산할 계획이다. 우선 2012년 초에 1개 라인을 먼저 완공해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2014년까지 1조2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3개 라인을 완공하는 등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생산라인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은 LCD용 유리기판 사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 내에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8년 매출 2조원 이상을 달성함으로써 세계적인 유리기판 제조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LG화학의 LCD용 유리기판 사업은 LG그룹 전체의 경영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LG는 현재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정보전자 부품소재 산업을 집중 육성 중인데, ‘LG 파주 첨단소재단지’가 최대 생산거점 구실을 하게 된다. 계열사인 LG이노텍도 이곳에 LED 패키지 생산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여기에 이미 9조원 규모의 생산라인 투자를 단행한 LG디스플레이까지 합치면 파주는 명실상부한 LG그룹 디스플레이 사업의 본산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이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파주 첨단소재단지에 과감한 선행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불황 이후를 대비하자는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LG화학은 바로 그 한 축을 떠맡아 또 다른 미래를 도모하고 나섰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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