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연예인 3인의‘엎치락 뒤치락’경영 이야기

과거 연예인들은 가수는 노래, 배우는 연기를 하는 등 한 우물을 팠다. 하지만 요즘 연예인들은 가수와 배우, MC 등 여러 가지를 겸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나아가 CEO 직함을 단 연예인도 적지 않다. 식당, 카페, 레스토랑, 의류매장, 온라인쇼핑몰, 심지어 번듯한 기업체도 설립하고 사업에 나서고 있다. 성공 사례도 꽤 알려졌다. 모델 겸 DJ 홍진경은 (주)홍진경을 설립하고 김치로 호평을 받고 있다. 가수 이세준(유리상자)은 안경 체인 글라스박스로 패션 안경이라는 틈새를 공략해 시장에 안착한 상태다. 가수 김태욱의 웨딩컨설팅회사 아이웨딩네트웍스는 코스닥 상장을 추진할 만큼 자리 잡았다. 배우 홍석천은 서울 이태원에서 레스토랑 4개와 바 1곳 등 총 5개의 외식업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외식경영 전문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모든 연예인들이 이렇게 사업가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시작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연예인들이 어느 날 슬그머니 사업을 접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사업이란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비로소 궤도에 오르는데, 그 과정이 그리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연예인들은 연예 활동과 병행해야 해 사업에 100% 몰입할 수 없다는 한계까지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들이 꾸준히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연예인의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서다. 잘 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어느 날 인기가 떨어지고 불러주는 곳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백수가 따로 없는 직업인 것이다. 

초반 홍보는 쉽지만 지속이 문제

아무튼 연예인 사업가들이 갖고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인 만큼 시작할 때 홍보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연예인 누가 무슨 사업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보가 수월하다는 점을 빼면 이후에는 더 혹독한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스파게티 프랜차이즈 스게티를 운영하는 탤런트 선우재덕씨는 “초반 홍보는 쉽지만 이후에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며 고개를 젓는다. “고객들이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을 못 하더라”는 것이다.

어린이 뮤지컬 제작사 유미디어를 운영하는 가수 유열씨는 “사업상 첫 만남에서 상대에게 친밀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장점이었다”면서도 “내가 2004년부터 뮤지컬을 제작했는데도 공연계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 최근의 일”이라고 말했다. 같이 뮤지컬을 제작하는 공연계 사람들도 ‘가수가 뮤지컬 제작을 한다고? 좀 하다 말겠지’ 하는 의구심을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업의 기본이 거래상대방·고객과 주고받는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일 경우 가맹점 관리가 만만치 않다. 자동차 외형복원업 프랜차이즈 세덴을 운영하는 탤런트 박용식씨는 “가맹점주가 나태해져 매장 문을 늦게 열거나 서비스가 별로라면 본사가 아무리 잘해도 고객이 등을 돌리기 마련인데, 그런 가맹점주들도 늘 본사 탓을 한다”고 지적했다.

초반에 잘 되던 사업이라도 그 성과를 지속시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에 연예인 매장을 찾는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림도 없다. 음식 맛, 제품 품질, 서비스 등에서 실망을 하면 발길을 끊는다. 처음 찾아갈 때는 팬이지만 곧 냉정한 소비자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코노미플러스>는 그래서 연예인이어서 더 험난했을지 모를 그들의 비즈니스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10여 년 이상 장기간 사업을 해왔다면 비즈니스 세계의 명과 암을 속속들이 보았을 터. 이에 탤런트 선우재덕(사업 20년), 가수 유열(사업 10년), 탤런트 박용식(사업 30년) 등 3명의 중견 연예인 CEO를 만나봤다. 그들이 전하는 ‘연예인 비즈니스 잔혹사’를 들어보자.

사례분석  01

외식 프랜차이즈 스게티 사장 - 탤런트 선우재덕

“스파게티로 울다가 수산물로 웃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탤런트 선우재덕 스게티 사장은 20년차 사업가다. 그의 사업경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장사를 했던 1990~2002년까지다. 1990년 서울 성신여대 앞에 떡볶이 전문점을 열었는데 매장을 카페처럼 멋지게 꾸민 아이디어가 통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어느 날 친누나가 제안해 떡볶이 전문점을 정리하고 1998년에 광릉수목원 근처에서 카페를 시작했다. 이 사업도 잘 됐지만 선우 사장이 바빠지면서 몇 년 후 누나에게 넘겼다. 제2기는 그가 장사 차원을 넘어 기업을 경영한 시기다. 2003년 8월부터 현재까지다. 지금의 ‘CEO’ 선우 사장을 만든 경험의 8할은 바로 이 시기의 몫이다.

2003년 8월 그는 후배와 함께 중저가 스파게티 프랜차이즈 ‘스게티’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보통 연예인들처럼 초상권 제공, 마케팅 협력 정도만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2004년에 선우 사장은 후배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후배와 저의 회사 경영 방침이 잘 안 맞았어요. 저는 가맹점과 본사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는 본사 위주로 영업을 하려고 해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개 연예인 쪽에서 손을 떼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거꾸로였다. 후배에게 “내가 회사를 맡겠다”고 제의, 아예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과거에 떡볶이 전문점과 카페 사업 성공 경험이 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인수를 하고 보니, 황당하게도 회사의 재무상태가 엉망이었다. 그가 모르던 빚도 상당했다. “인수할 당시에 그런 것도 확인을 안했으니 정말 준비 없이 시작한 거죠.”

하지만 초반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 매장 수가 빠르게 불어났다. 매장 수가 가장 많았던 2006년에는 최대 35개의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사업이 꺾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지며 사업 환경이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스게티가 공략했던 시장이 생각과 달리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스게티는 5000원대 스파게티로 대중화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경제력 있는 소비자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일반인들은 김밥, 라면 같이 아예 저렴한 음식을 선호하더라고요.” 5000원대 스파게티는 타깃 지점이 애매했던 것이다.

스게티에도 물론 장점이 있었다. 본사에서 반조리한 음식을 공급하기 때문에 조리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였다. 가맹점들로서는 상당한 인건비 절약 요소인 것. 하지만 기본적인 고정비 리스크는 어쩔 수 없었다. 스게티의 식자재를 전부 이탈리아에서 수입했고, 일반 건물에 입점한 가맹점의 경우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은 낮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불경기에다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자 견디지 못한 가맹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 스게티 매장은 전국에 22개가 남아 있다.

“일반 매장은 많이 없어졌는데,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푸드코트에 들어간 매장들은 거의 살아남았어요. 푸드코트는 대부분 일정 수 이상의 유동인구를 확보하고 있고, 인테리어비 등도 거의 들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더군요.”

관련 사업을 연구하다 홈쇼핑 시장을 개척, 포장 제품 공급도 하고 있다. 면과 소스를 30초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10~15% 정도를 차지해 비중도 작지 않다. 선우 사장은 이제 한계가 있는 중저가 스파게티 사업의 확장 대신, 다른 식당 체인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2007년 12월 분당에 한우전문 식당 ‘선우랑한우랑’을 직영으로 열고, 이 시장을 경험 중이다. 처음에는 한우구이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생각했는데, 2년쯤 운영한 지금은 방향을 약간 바꾸려고 한다.

“한우구이 식당은 리스크가 꽤 큰 사업 같아요. 믿을 만한 공급처 찾기도 어렵고, 투자비도 많이 들거든요. 한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원가를 맞추기도 쉬운 게 아니고요.”

대신, 그는 설렁탕·갈비탕·국밥·된장찌개 등 점심시간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우 관련 메뉴 위주의 체인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생존한 스게티 매장의 경험을 살려 푸드코트 위주로 출점할 생각이다.

스게티 본사 실적은 가맹점이 최대 수준이던 2006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8년 매출은 17억원, 영업적자와 순적자가 각각 3억원이었다. 2007년과 매출은 비슷했지만 영업적자 규모가 9000만원에서 3배 이상 확대됐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2009년 결산을 앞둔 지금은 “실적이 바닥을 찬 것 같다”며 희망찬 미소를 지었다.

수산물 유통으로 돌파구 마련

선우 사장의 명함에는 ‘대표 선우재덕’이라는 글씨와 함께 회사명이 두 개 적혀 있다. 하나는 스게티, 다른 하나는 새벽통상이다. 새벽통상은 새우살, 꽃게 등 냉동 수산물을 수입하는 회사다. 새벽통상이 수입한 냉동 수산물을 스게티가 웨딩홀, 호텔 등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008년 초부터 매출원 다변화 차원에서 시도했다. 스게티 실적의 반등을 이 냉동 수산물 유통 사업이 이끌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유통 사업이 다행히 잘 되고 있어요. 프리마호텔 등 큰 계약처를 여러 곳 잡았고, 2010년에는 거래처를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익 규모도 괜찮아서 2009년 매출은 더 커지고, 적자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선우 사장은 그 외에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2009년 들어 일본에 경북 상주 막걸리를 공급하는 사업권을 땄고, 또 분당 수내동에 ‘선우와사케와’라는 직영 사케(일본 술)바도 새로 열었다. 사케바 역시 경험을 쌓은 후 나중에 체인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6년차 식당 프랜차이즈 CEO가 된 선우 사장은 이제 뭣 모르고 스게티를 인수했던 그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 2004년에 스게티를 완전히 인수한 후 몸으로 부딪혀 익힌 경영의 교훈이다. 지금까지 월급도 없이 하루에 4~5시간 자면서 묵묵히 일해 왔다.

“전에는 투자비만 맞춘 사람들이면 그냥 가맹점을 내줬는데, 그런 분들 중에 경영마인드나 성실성 부족으로 못 버티는 경우가 많더군요. 앞으로는 가맹점 계약을 할 때 열심히 장사를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 위주로 가맹점주를 엄격하게 선정할 생각입니다.”

사례분석  02

어린이 뮤지컬 제작사 유미디어 사장 - 가수 유열

11년 적자보며 뮤지컬에  뚝심 투자 “이젠 빛 본다”   

23년차 가수인 유열 유미디어 사장이 기업인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1999년이다. H.O.T·S.E.S 등 인기가수들을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담아낸 동영상 CD를 기획, 제작했다.

출발은 좋았다. 첫 작품이던 H.O.T 동영상 CD가 10만 장이나 나가며 히트를 쳤다. 당시 유 사장은 ‘이거 너무 쉽잖아’하고 생각했었다고. 그런데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때만 해도 그런 상품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어요. 저는 영화감독을 기용해 가수들의 감성을 담은 근사한 영상물을 만들었죠. 첫 작품 H.O.T 동영상은 성공적이었는데, 이후부터는 어렵더군요. H.O.T 동영상 CD가 나온 후 다른 가수들이 자기 음반에 유미디어 스타일로 보너스 영상 CD를 담기도 하고, 뮤직비디오 영상들도 이런 방향으로 변해갔거든요.”

연예인 유료 동영상물 시장을 개척했으나, 뜻하지 않게 무료 시장에 잠식당한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유 사장은 새로운 콘텐츠 사업에 나섰다. 2003년부터 개척한 오디오북 시장이 그것이다. 선진국 출판 시장에서 바쁜 사람들을 타깃으로 오디오북 시장이 형성된 것에 주목한 결과다.

“처음엔 너무 쉬워보였는데…”

당시 내놓은 것이 아나운서 손범수가 읽은 <비즈니스 협상론>, 배우 조승우가 낭독한 알퐁스 도데의 <단편선>, 아나운서 이금희가 녹음한 TV동화 <행복한 세상> 등이다.

오디오북 사업은 귀로 듣는 뮤지컬인 뮤지컬 동화 CD 제작으로 이어졌다. “평범한 구연동화를 진짜 뮤지컬처럼 만들면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을 거라고 본 거죠.”

유 사장은 뮤지컬 동화 제작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1편당 약 1억원의 비용을 써서 노래는 뮤지컬 배우들에게, 해설은 신애라, 김용만, 최수종 등 스타들에게 맡겼다. 그러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유통과 판매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귀로 듣는 상품을 서점에서 다른 책들과 나란히 진열해 놓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가 힘들었죠.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광고를 할 상황도 아니었고요.”

발상을 전환했다. 오디오북에 갇혀있던 뮤지컬 동화를 아예 무대에 올린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어린이 뮤지컬 <브레멘 음악대>다.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유 사장은 꾸준히 공연에 투자했다.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들이 신나게 타악기를 두드리는 장면 추가, 무대 위 효과를 높이는 동영상 활용 등 공연의 완성도를 계속 높여나갔다.

공연장 규모나 특성에 따라 공연 형식도 변주했다. 중극장 버전과 야외음악당 버전을 만들었고, 지금은 소극장 버전을 구상 중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브레멘 음악대>를 본 관객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객석 점유율 상승 추세도 뚜렷하다. 2006년에 공연을 했던 340석 규모 정동극장의 평균 객석 점유율은 65%였지만, 2007~2008년에는 75%선으로 올랐다. 2009년 극장 용 공연에서는 객석 점유율이 82%까지 치솟았다. 정동극장의 두 배가 넘는 750석 규모여서 더욱 의미가 컸다. 공연 시작 3년째인 2008년부터는 작게나마 흑자가 시작됐다. 2008년에 서울 정동극장과 지방투어 모두 소규모이긴 하지만 흑자로 돌아섰던 것이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2009년 극장 용 공연에 3만 명이 들면서 공연의 흑자 규모도 제법 커졌다. 그 동안 적자를 감내하며 지속했던 투자가 이제 회수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 사장은 “유미디어의 2009년 매출은 7억원 정도로, 수입과 지출 규모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2009년 하반기에 신종플루 유행으로 인해 취소된 공연들이 있었는데, 신종플루만 아니었다면 흑자 규모가 더 커졌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2010년에는 2009년보다 두 배쯤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 사장은 2009년에 독일과 일본에서 <브레멘 음악대>를 공연하며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도 타진했다. 반응이 좋아 기대가 크다.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고향인 독일의 초청으로 현지 공연을 하고 온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같은 대목에서 웃고, 감동을 받더라”며 세계에서도 통하는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2011년에 독일 투어를 해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2010년에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등에서 투어를 진행해볼 생각이다. 유 사장은 우리 전래동화를 영어 뮤지컬로 제작해 미국에서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현재 미국 브로드웨이 스태프와 제작을 협의 중이다.

Tip  “처음엔 직원들 야단도 못 쳤어요”

▷▶▷ 오랜 기다림 끝에 도약의 초입에 섰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유 사장이 겪은 시행착오 과정은 멀고도 험했다. 지난 2007년까지 그는 가수 활동과 라디오 DJ로 정신없이 바빴다. 이는 사업 초기에 기반을 다져야 하는 기업인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작은 회사는 빠른 경영이 강점인데, 과거에 유미디어는 그렇지 못했어요. 사업이라는 게 의사결정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직원들에게 다 맡겨두고 제대로 챙기질 못해서 작은 회사답지 않게 둔하게 움직였지요.”

의사소통도 문제였다. “바쁜 나머지 전체적인 일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었고, 제가 저의 주장을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해서 의사소통도 잘 안 됐었죠.”

조직의 책임자는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따끔한 질책도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드러운 이미지의 그는 성격상 직원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혼을 내지 못했다. 특히 적자가 이어지는 동안 유 사장은 가수 활동으로 번 돈으로 적자를 메우며 회사를 꾸려나갔는데,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적자가 나도 ‘그러려니’ 하며 위기의식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12년간 진행했던 라디오 DJ 하차는 분위기 반전의 계기가 됐다. 매일 아침마다 두 시간씩 마이크를 잡아야 했던 그에게 사업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 유 사장은 매일 아침 집 근처 산에서 가볍게 등산을 하고 9시까지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래선지 사장이 늘 자리를 비워 느슨했던 사무실에 일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유 사장의 업무 스타일도 달라졌다. 이제는 따져야 할 사안은 꼼꼼히 체크한다.

3명의 직원들에게는 자기계발을 위한 학원비·책값 등 교육비와, 인맥을 넓히도록 교제비를 지원하며 활력도 불어넣고 있다.

사례분석  03

자동차외형복원 프랜차이즈 세덴 회장 - 탤런트 박용식

멧돼지구이 사업 실패딛고 차 사업 ‘복원혼신’

길을 걷다보면 작은 점포 간판에 걸린 중견 탤런트 박용식씨(64)의 얼굴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의 얼굴이 걸려있는 곳은 바로 자동차외형복원 전문 프랜차이즈 세덴의 가맹점들.

박용식씨는 세덴의 회장이다. 2002년 4월 지인과 동업으로 세덴을 창업했다.

박 회장은 세덴 창업 이전에도 사업 경력이 있다. 방앗간 운영이었다. 주로 참기름을 짜서 팔았다. 연예인들의 창업은 카페, 레스토랑 같이 겉보기에 그럴듯한 것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처음에는 연기와 병행하는 부업일 뿐이었다. 하지만 곧 생계형 사업이 되고 말았다. 1980년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에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방송 출연을 정지당했기 때문이다. 연기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직접 기름 배달을 다니며 혹독하게 사업을 익혔다. 하지만 그 시기에 그는 뜻하지 않게 자신의 사업 감각을 발견했다. 연예인이라는 체면을 버리고 저돌적으로 영업에 나선 결과, 대형 외식업소를 다수 포함해 거래처를 무려 400여 곳이나 잡았던 것이다. 동네 기름집을 기업형 기름 제조업체로 키운 셈이다.

동네 기름집을 기업형으로 키워 

정권이 바뀌자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출연 정지 사연이 화제를 모으며 그를 찾는 곳도 많았다. 수많은 행사·공연·방송에서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참기름 사업은 연예인 활동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정리했다. 한창 연기자로 바쁘게 살던 그가 세덴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불안정한 연예인의 미래를 감안해서 뭔가 사업을 해야겠다고 봤어요. 궁리 끝에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자고 결론지었어요. 수요가 계속 늘어나니 시장성도 좋고, 장래성도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 때 지인을 통해 세덴의 창업 동지를 소개받게 됐다.

“두 눈으로 확인을 하러 갔더니, 찌그러진 차를 감쪽같이 펴는데, 입이 딱 벌어집디다.”

동업자는 자동차외형복원 관련 기술 특허를 여러 개 보유한 전문가여서 그가 회사의 기술과 전반적인 경영을 담당하는 사장을 맡았고, 박 회장은 탤런트라는 친근함을 무기로 홍보와 마케팅을 맡는 분업 체제로 시작했다. 박 회장은 얼굴마담이 아니다. 자본금 수억원을 투자한 비중 있는 투자자인 데다, 가맹점주들과 상담을 해서 계약까지 맺는 실질적인 영업 책임자다. 2002년 창업 후 연기 생활과 병행하면서도 맨투맨 영업의 일선을 뛰었다. 한 달에 절반 이상 출근해 예비 가맹점주들을 일일이 만나곤 했다. 가맹점들이 오픈하는 날이면 잠을 줄여가며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그렇게 발로 뛰는 영업과 기술 지원 등에 힘입어 세덴의 가맹점은 창업한 지 몇 년 안 되어 최고 600여 개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잘 달리던 세덴이 어느 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운영을 해보니, 이 업종은 가맹점이 증가해도 본사의 수익이 크지 않아요. 식당 체인 같으면 가맹점에 식자재를 계속 공급하거나, 인테리어 변경 등을 통해 본사의 수익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동차외형복원업은 일단 가맹점 내줄 때 가맹비 받고 나면 이후 수익을 낼 것이 별로 없더군요. 기껏해야 복원용 약품, 페인트 정도를 공급하는데, 그게 별로 값나가는 물품도 아니고 필요한 양도 많지가 않거든요. 가맹점 한 곳당 월 10만원의 로열티를 받지만, 그래봐야 1년에 120만원 아닙니까.”

수익성을 고민하던 동업자 사장은 2006년경 멧돼지구이 프랜차이즈 투자를 결정했다. 박 회장은 “잘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지금 하는 일이나 집중하자”고 말렸지만 박 회장보다 10년 이상 젊었던 사장이 꼭 해보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실패였다. 결국 그때까지 세덴이 자동차외형복원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십억원을 다 까먹고,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꾸준하던 본업에서도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맹점주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세덴에서 기술을 배워 몇 년간 사업을 하면 단골손님들이 꽤 생길 것 아닙니까. 그런 가맹점주들이 생각할 때 ‘세덴 브랜드 없어도 일할 만하겠다’ 싶으니까, 월 10만원의 로열티를 아깝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안팎으로 위기에 몰렸다. 박 회장은 울화통이 터졌다. 투자한 자금을 날릴까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돈 없어도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일 연기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그때 투자금을 회수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얼굴과 이름이 생명인 연기자로서, 제 얼굴을 걸고 해온 사업을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업자 사장과의 결별 대신 끌어안는 쪽을 택했다.

“세덴 초기에 황무지를 개척하던 시기를 함께 겪어보니 동업한 사장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감이 있었습니다. 다 회사를 잘 키워보려다가 저지른 실수였고, 저도 예전에 방앗간 할 때 힘든 시절을 겪어봤거든요. 애써 키운 회사를 망가뜨린 사장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됐지요.”

잘 나가던 시절에는 한 달에 가맹점이 50~60개 이상 개점돼 월매출이 10억원을 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재 세덴이 보유한 전국의 가맹점 수는 총 271개. 최고 600개가 넘던 시절과 비교하면 사세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자동차외형복원 업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멧돼지구이 사업으로 생겼던 부채는 이제 거의 정리 단계에 있어요. 운이 좋았던 게, 가맹점들이 내는 로열티 수입이 매월 꾸준한 덕분에 현상유지가 가능했다는 것이죠.”

“내 얼굴을 건 사업… 회생시킬 것”

회사가 다시 성장하려면 가맹점 수를 다시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경쟁사가 가맹점을 200곳 가까이 확보하며 턱밑까지 추격해온 지금, 세덴은 회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

“멧돼지 사업 실패도 문제였지만 신규 가맹점이 줄어든 것은 마케팅 실패 탓이죠. 요즘 사람들은 창업 정보를 주로 인터넷에서 구하는데, 우리는 옛날식으로 창업박람회 참가나 지면 광고 정도만 했거든요. 하지만 2009년부터 주요 포털 사이트에 세덴 블로그와 카페를 여러 개 만들어서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어요. 확실히 전보다 가맹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덴은 브랜드 파워도 강합니다. 지금도 제가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어 세덴 회장님이시네. 사업 잘되세요?’라고 할 정도죠. 이제 바닥을 다졌으니 회생이 될 겁니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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