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금융권 최고의 이슈는 M&A(인수 및 합병)다. M&A 시장이 성립하려면 매물과 사냥꾼이 있어야 하는 법. 금융권에는 지금 속속 매물이 등장하고, 사냥꾼들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 가고 있어 여건도 무르익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금융권 관계자들은 저마다 유리한 셈법으로 시나리오를 짜보며 다가올 대회전(大會戰)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M&A 시나리오들을 점검해 봤다.

우리금융·외환은 매물 놓고

KB·하나금융 ‘구애공세’

시중에 나도는 금융권 M&A 시나리오에는 여러 배우들이 등장한다. 주연급으로는 KB금융그룹·하나금융그룹·우리금융그룹·외환은행 등이 있으며 조연급으로 산은금융그룹 등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사냥꾼 역할을 맡은 이들을 보자.

KB금융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대표적인 사냥꾼이다. KB국민은행·KB투자증권·KB자산운용·KB생명 등 계열사를 두고 있지만 그룹 내 은행의 비중이 너무 크다. 90%가 넘는다. 한시바삐 다른 계열사를 키워야 할 입장이다. 특히 은행의 경우 고객층이 개인고객 위주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기업금융이나, 해외 네트워크 강화 등에 대한 욕구가 절실한 것이다. 1위 금융그룹이라 하지만 2위 금융그룹과 자산 규모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도 불안한 요소다. 따라서 KB금융은 기업금융이나 해외 부문이 강한 은행, 덩치가 큰 증권사 등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하나금융그룹은 절박함을 지닌 사냥꾼이다. 하나은행·하나대투증권·하나UBS자산운용·하나카드 등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금융그룹 중 자산 규모 4위다. 3위와 한참 격차가 벌어져 있다. 현재 자산 기준 국내 금융그룹 순위는 1위 KB금융(331조원), 2위 우리금융(328조원), 3위 신한금융(311조원), 4위 하나금융(160조원) 순이다(2009년 9월 말 기준).

하나금융은 그 동안 금융권 내 큰 장이 설 때마다 번번이 매물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덩치 격차가 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밀렸다가는 매물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조급함이 있다.

이번에는 매물 후보군이다. 우선 외환은행을 들 수 있다. 외환은행의 대주주 론스타가 1년 안에는 팔겠다며 손님을 모으고 있다. 외환은행은 강력한 해외 네트워크와 외환, 기업금융이 강점이라 군침을 흘리는 이들이 많다.

이어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금융그룹·산은금융그룹·IBK기업은행 등이 있다. 이들에 대한 민영화가 진행 중인데, 그 과정에서 M&A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이들은 한편으로 독자적인 생존을 구상하고 있기도 해 때에 따라 매물이 될 수도, 사냥꾼이 될 수도 있어 묘한 입장에 있다. 만일 정부에서 이들을 통합해 메가뱅크 전략을 쓰겠다고 한다면 세 금융회사가 합병해 출범할 회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금융회사로 떠오를 수도 있다.

시나리오 1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인수

예보, 우리금융 지분 66% 전량 민영화 예정

하나금융 가장 적극적… 8조원 자금 마련 변수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는 2009년 말 현재, 보유중인 66%의 우리금융 지분을 2011년까지 전량 매각해 민영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금융권에서는 여러 금융그룹들을 우리금융과 짝지어 보며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합해 보고 있다.    

LG카드 인수전의 승자였던 신한금융은 당분간 M&A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는 분위기라 상대적으로 금융권 M&A 논의에서는 조용한 편이다.

하나금융은 금융지주 가운데 우리금융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요즘 업계에서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시나리오 중 하나가 이것이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M&A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금융에 집중하겠다”는 말도 했다.

합병이 이뤄질 경우 하나금융은 생존의 위협을 떨칠 수 있다. 두 금융그룹의 자산을 합하면 총 488조원(하나 160조원+우리 328조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에는 몇 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는 ‘돈’이다.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M&A하는 것이라, 하나금융이 인수자금을 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금융 경영권을 가지려면 지배지분(50%+1주)을 사야 하는데, 업계에서는 지분 가치와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해 약 8조원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나금융의 자금 동원력은 어느 정도일까. 증자를 하고, 일부 계열사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컨소시엄까지 구성해 본다면 인수자금 마련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나금융은 컨소시엄을 짤 경우 국민연금, 일부 산업자본 등과의 제휴를 염두에 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하나카드와 SK텔레콤의 지분 제휴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SK그룹이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는 ‘우리금융의 거부감’이다. 우리금융그룹의 이팔성 회장은 2009년 10월16일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M&A 관련 루머(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M&A한다는 설)가 있지만 동요하지 말라, 우리가 중심역할을 할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금융이 매물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움직이겠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회장은 100조원 이상 차이 나는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언짢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다. 하나금융의 김승유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다. 우리금융과 M&A가 이뤄질 경우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 부담이다.

한편,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결합 시나리오에는 두 그룹의 계열사 중에서 필요 없는 회사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내용이 부록으로 딸려 있다. 예를 들면 하나금융의 하나대투증권과 우리금융의 우리투자증권 중 한 곳은 매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대투증권의 경우 하나금융이 M&A 자금 마련을 위해 매각할지 모른다는 설도 회자된다.

시나리오 2  KB금융이 외환은행 인수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 KB가 ‘1순위’

강 회장 대행 인수의사 표명, 산은도 기회 노려

외환은행은 강력한 해외 네트워크와 외환, 기업금융이 강점이다. 그래서 시중은행들과 합병할 경우 일반 여수신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을 피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외환은행을 원하는 사냥꾼 1번은 KB금융이다. 외환은행의 강력한 해외 네트워크가 KB국민은행과 합쳐지면 소매금융에 치중됐던 KB금융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KB금융은 인수자금도 넉넉하다. 외환은행 인수가격은 대략 4조~5조원선으로 추정되는데, KB금융은 자사주 등 내부에서 동원 가능한 자금만 4조원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자산을 담보로 끌어올 레버리지까지 합하면 KB금융이 7조원대의 자금 동원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은 외환은행을 향한 KB금융의 짝사랑은 꽤 됐다. 무위로 돌아가긴 했지만 KB금융은 2006년에 외환은행의 대주주 론스타와 M&A 인수 본계약에 사인까지 했던 적이 있다. 또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대행이 11월17일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할 것이며 본격적인 시기는 2010년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공개 발언을 했다. 하지만 난제가 있다. 우선 외환은행 사람들이 KB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 외환은행 노조는 2009년 11월18일 성명서를 내고 “외환은행이 KB지주에 인수될 경우 국민은행으로 일방적 흡수합병이 불가피하며, 외환은행 조직과 정체성은 흔적도 없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외환은행에 관심 있는 사냥꾼 2번은 산은금융그룹이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은 2009년 11월20일 “외환은행 등 국내외 은행들의 인수 가능성에 대해 오픈돼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개적으로 외환은행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외환은행 임직원들은 산업은행과의 합병에는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금융도 외환은행에 대해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4위 탈피가 시급한 지금, 외환은행을 인수해도 여전히 4위인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시나리오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시나리오 3  우리금융 독자 생존형 민영화

이팔성 회장, 독자 생존 선언으로 가시화

올해 예보 지분 16% 매각 뒤 행보가 변수

시나리오는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수정되며 완성도를 높이기 마련이다. 우리금융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최근 들어 방향을 바꾸는 분위기가 포착된다.

우리금융은 당초 매물의 입장에서 논의되는 편이었다.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보는 당초 우리금융 지분 66% 중에서 경영권에 별 영향이 없는 16%를 2010년에 증시에서 매각하고, 2011년 이후에 50%+1주를 매각해 민영화를 끝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 ‘어느 금융그룹이 우리금융과 짝을 지을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지속적으로 독자 생존형 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안팎에 천명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2011년 이후에나 구체화할 것으로 보였던 우리금융의 민영화 논의는 최근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2009년 12월15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 지분 매각에 속도를 내겠다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이다. 진 위원장은 “정부가 합병 등 모든 방안을 놓고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예보가 우리금융 소수 지분(16%)을 가능한 빨리 팔아 몸집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이와 관련해 “예보의 소수 지분 중 8%를 우리금융에서 자사주로 매입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예보는 “생각해보자”고 답했다. 우리금융은 지분 8% 인수에 들어갈 약 1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다. 이 안이 현실화하면 우리금융이 매물 대신 사냥꾼으로 역할을 바꿀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우리금융을 매물로 간주하고 전개됐던 업계 M&A 시나리오들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진통 끝에 합병이 이뤄지더라도 ‘금융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승인이 날 것인지’의 여부도 M&A 시나리오의 향방을 가를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 은행 경영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이 다른 시중은행에 합병되면 상위 3개 은행의 총자산기준 시장 점유율이 75%를 넘어선다”며 “시장 집중도가 상승함에 따라 경쟁 심사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Tip   금융권 M&A 대회전 약사

퇴출은행 M&A 거쳐 금융지주 출범…

이제 금융지주 간 M&A 임박

▷▶▷ 머지않아 펼쳐질 금융권 M&A 대회전은 이른바 ‘금융권 M&A 제3차전’으로 명명할 수 있다. 제1차전은 1997년 외환위기 후 부실은행 퇴출 과정에서 벌어진 은행들의 합병전이었다. 그 결과 열린 것이 7대 시중은행 시대다. 제1차전 당시에는 금융권 전체가 아니라 은행들만의 리그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지주사를 중심으로 금융그룹들이 출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러 금융기업들이 짝을 지어 금융그룹들이 줄줄이 출범한 10여 년간의 시기가 바로 제2차전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제 곧 다가올 제3차전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판이 커졌다. 금융지주 간의 합병이 논의되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 수백조원짜리 금융그룹이 움직이는 거대한 거래인 것이다. 지주사 간 합병이 이뤄질 경우 합병 후 계열사 중에 군살(중복되는 부분)을 떼어내는 추가 M&A 거래가 이어질 전망이라 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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