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9일 우리금융지주의 실적이 발표되자 시장의 평가가 확 달라졌다. 한 증권사가 종목 분석 보고서 제목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라고 잡은 것이 단적인 예다. 대부분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올해와 내년 실적 전망치를 일제히 올려 잡았고 목표주가를 2만원 안팎으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 주가는 지난 11월17일 1만6650원을 기록했다. 이팔성 회장 취임 직전 고점이었던 지난해 5월 무렵의 1만8000원에는 미치지 못한 수준이지만 취임 후 최저점이었던 지난해 11월13일 5300원보다 3.14배나 튀어 올랐다.

금융산업 재편 주도 선언

‘액션플랜’ 본격 가동

이 회장이 취임한 시기는 우리금융 출범 이래 경영 여건이 가장 나쁠 때였다. 지난해 하반기엔 반기 기준 5070억원의 적자가 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기마다 순이익 규모를 늘리는 성과를 거둔 끝에 3분기 4840억원의 순익을 남겼다. 시장의 달라진 시각과 주가 회복은 이 같은 경영 성과에 대한 대답이다.

자산건전성 지표도 점차 개선되고 있는 데다 은행 이익의 최대 기반인 순이자마진(NIM) 회복 기대감이 치솟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는 순이자마진이 올해 1.94%에서 내년엔 2.24%까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금융이 거둘 순이익이 20~30%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증권사도 다수다.

면모를 일신한 우리금융의 원동력은 이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되는 면이 많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우리금융의 실적 개선은 조직의 중흥을 이끌어 최상으로 도약시키는 이 회장의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회장의 진가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민영화 구상 마무리…‘50% 집착 않는다’

우리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금융산업 판도가 예측 불허의 요동을 칠 때 오히려 그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 힘을 비축했다”며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전략 역시 치밀하게 세울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난 리더”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과장은 아닐까. 이 회장이 생각하는 ‘대응전략’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지난 10월 이 회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향후 금융산업 재편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더라도 우리금융그룹이 그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 최고의 선도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취임 1주년 인터뷰조차 서면으로 진행하며 속내 드러내기를 자제했던 그가 모처럼 적극적으로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이 회장이 던진 메시지는 적어도 두 가지 포석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향후 우리금융을 둘러싼 인수합병(M&A)과 민영화에 대한 전략이 그것이다.

지난 10월 증권가 주변에서는 우리금융그룹 분할 매각론 등 우리금융맨들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가 난무했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한 입장정리가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근거조차 박약한 설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사실 왜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이 직접 나선 까닭은 조직 동요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역공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금융권 M&A에 대한 우리금융의 액션플랜이 실행될 것이며 이미 물밑에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구상은 어떤 것일까. 기실, 이 회장은 금융산업 재편이라는 거대하고 난폭한 풍운을 오히려 반기는 입장이다. 거센 풍운 속에서 천변만화의 조화를 부리는 용(주역)으로 우리금융그룹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미 민영화와 금융계의 M&A 바람을 주도할 수 있는 구상을 마쳐 놓은 상태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예금보험공사 소유 지분 매각 말고도 전략적 파트너나 재무적 투자자 등에 블록세일 등 다양한 분산 매각을 추진하되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해 경영권 행사가 충분히 가능한 수준에서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자체안이 있다는 시늉만 해도 정부와 언론매체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가총액이 13조원(주당 1만6000원 기준)을 웃도는 국내 선두권 금융그룹 지분을 파는 일인데 50%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국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초대형 금융그룹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보다 적은 비중의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판단이다. 이를 테면 지분 30% 안팎을 경영권과 함께 넘긴다면 인수자는 50% 이상을 인수하는 것보다 적은 부담으로 경영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민영화가 급진전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인 것이다. 

다행히 제반 여건도 우리금융이 도약을 추진하는 데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금융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 회장과 우리금융의 운신 폭을 제한했던 ‘정세’ 또한 거의 해결됐다. 이 회장이 향후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런 변화가 있어서 가능했다.

우리금융은 한창 논란을 빚고 있는 출구전략에 정부가 본격적으로 나설 만큼 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날 때 곧바로 성장·발전전략을 가동할 수 있도록 채비를 이미 끝낸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이 크다. 이 회장은 과포화된 국내 시장을 둘러싼 덩치 키우기 경쟁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소신이 확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신에 해외 진출이야말로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믿고 심모원려(深謀遠慮; 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를 거듭해 왔다. 현재의 전 세계 15개국 총 60개 글로벌 영업 네트워크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서구 글로벌 금융기관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보다는 한국식 경영기법의 장점을 최대한 발전시키면서 글로벌 전략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경륜과 인맥을 두루 갖춘 ‘준비된 CEO’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관 퇴출을 거쳐 1차 빅뱅이 있었고 추가 M&A를 포함한 대형화 겸업화를 진행하긴 했지만 2차 빅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감독기구 관계자들 중에는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은행의 (숫자가) 너무 많다”고 서슴없이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격변의 때가 곧 닥칠 것이라고 일반 시민들도 인지할 정도로 대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회장은 우리금융그룹 임직원들이 조직에 대한 애정을 결집시킬 구심점 노릇을 하기에 충분한 경륜을 갖고 있는 CEO다. 단순히 ‘최초의 내부인사 CEO’ 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이 회장은 은행과 증권사를 모두 경험해 본 흔치 않은 CEO다. 그는 고려대 법대를 나온 뒤 한일은행에 입행해 약 31년간  뱅커로 근무하다 지난 1999년 통합 한빛은행 자회사인 한빛증권 사장을 맡았고 우리금융지주사가 그룹 체제를 확립한 뒤 이름이 바뀐 우리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우리증권 사장 시절엔 증권사 경쟁력을 일신시켰다는 평을 얻었다. 특히 복합점포와 복합금융센터의 원조로 꼽힌다. 요즘엔 흔한 영업점 모델이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점포 내 이업종 점포(Branch in branch) 도입은 그가 일본 근무시절 눈여겨봤던 선진기법이었다.

그의 경영능력은 서울시향 대표 시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음악인 출신으로서 예술 분야는 예술인에게 맡기고 경영 개선에 팔을 걷어붙여 흑자 전환과 함께 사상최대 수익을 실현했다.

폭 넓은 인적 네트워크도 강점이다. 그와 교유하는 인물의 면면과 이에 기반을 둔 금융 외적인 후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변에서는 지적한다. 이 회장의 인맥을 압축하면 차기 한은 총재로 거론되는 어윤대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고려대 출신 유력인사들과 강만수 전 장관, 윤증현 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통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증권 사장을 끝으로 우리금융그룹과 연이 끊어지는 줄 알았던 이 회장이 취임하자 그룹 임직원들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광스러운 도전보다는 위기와 위험들을 하나하나 극복해야 하는 시련기로 이 회장과 우리금융을 몰아붙였다. 이 회장이 선택한 대응책은 발등의 불을 최대한 빨리 끄면서도 스스로 제시한 비전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었다. 

자회사 경영에 간섭하는 대신에 지주사다운 지주사가 되기 위한 시스템을 확충하려는 정책도 이 같은 맥락과 잇닿는다. 규정 변경 등 마무리 작업 중인 가칭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와 올 하반기 들어 착수한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계 재구축 시도가 대표적이다.

자회사 CEO 추천위원회를 지주사 산하에 설치하도록 바꾸면 계열 은행 CEO를 선임할 때 은행 내부보다는 지주사 의중을 반영하게 된다. 그 동안 각 은행별로 구성했던 행장추천위원회를 지주사가 흡수해 모든 자회사 CEO 선임이 지주사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주사의 구심력이 강해질 것은 자명하다.

물론 경쟁상대인 신한지주와 하나금융처럼 그룹 전사적인 임원인사 배치는 먼 나중의 일이다. 은행 부행장과 주요 부서장 인사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우리금융은 회장이 행장을 겸직하지 않는 이상 지주사와 은행 인사가 단절적이기 십상이다. 주력 자회사인 은행의 집행임원 인사조차 협의할 근거나 통로가 마련되지 않았지만 은행장 추천위 구성권이라도 이동한 것은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주사 중심 리스크 관리 ‘통합’

황영기 전 행장과 박해춘 전 행장 등이 재임시절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왑(CDS) 투자와 관련해 지난 9월9일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중징계 당한 것을 계기로 그룹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제를 갖추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지주사 리스크 관리 담당 전무직을 최근 신설하고 우리은행 리스크 관리본부 김정한 부행장이 겸직하도록 했다. 지주사 중심으로 자회사 리스크 통합관리를 위한 해외 사례조사와 컨설팅 작업도 진행 중이다. 리스크 관리를 그룹통합형으로 꾀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지주사로서 제 역할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다.

취임 후 1년4개월 남짓 동안 극히 일부일지언정 우리금융그룹 내부에선 기대감이 희석되는 낌새가 감지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조직 안팎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만한 업적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감이 압도적이다. 해외 진출과 M&A를 통해 아시아 톱 10, 글로벌 톱 30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한다는 이 회장의 구상이 이제 실행에 옮겨질 단계라는 기대감이다. 

하반기 증자를 원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구조조정 등 경영 여건 변동을 돌파하고 M&A 빅뱅에 대비한 재무적 힘을 비축하는 것과 관련이 많다. 올해 수익 중심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지주사가 전략적 비용 절감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자임하는 등의 노력이 증자와 어우러지면 시너지는 급팽창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여기다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체제를 다른 지주사보다 앞서 갖춘다면 더블딥(경기 이중침체) 가능성에 고개를 들고 있는 실물경제 변동에 대한 선제적 변화 관리에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전망이다.

국내 시장의 과포화 상태를 극복하는 메가뱅크 전략과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도 긴요한 해외 진출이 잘 진행된다면 조직에는 활력을, 대외적으로는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도 식지 않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우리금융이 토종은행 필수론, 글로벌 대표주자 토종금융그룹론을 앞세워 민영화 과정에서 해외 진출과 M&A를 성장 축으로 삼느냐 마느냐는 무엇보다 이 회장의 역량에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정희윤 뉴스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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