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의 지점은 보통 칸막이형 창구를 중심으로 직원과 고객이 분리된 구조다. 고객은 입출금, 대출 등의 업무를 마치면 바삐 떠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을 거부한 새로운 모습의 지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런 선택의 결과는 어떨까.

카페야, 파티장이야? …

튀는 점포 찾는 고객 덕에 실적 ‘쑥쑥’

#1. 붉은 색의 아늑한 파라솔 밑에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사람들은 의자에 둘러놓은 따뜻한 담요와 쿠션의 안락함 속에 몸을 맡긴 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창가에 길게 설치된 바에 앉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차를 마시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심심해지면 옆에 마련된 컴퓨터로 웹서핑을 해도 좋다.

#2.새하얀 벽과 천장에서는 따뜻한 조명이 내리쬐고 있다. 둥근 벽을 따라 만든 서재에는 각종 신간 서적들이 꽂혀 있다. 책장 옆 원목마루에는 둥글고 깊은 홈을 파고 유리 테이블을 설치했는데, 깔아놓은 푹신한 방석에 앉아 책장에서 꺼내온 책을 읽기에 그만이다. 

내부 공간은 모두 투명하게 유리로 구획을 지었는데, 공간 내에 비치된 사무용 책상, 테이블, 의자, 소파, 조명 등은 마치 최신 인테리어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 감각적인 디자인의 제품들뿐이다. 흰 벽면에는 군데군데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분위기를 돋운다.

대형 LCD TV와 비디오게임기가 있는 ‘게임방’이 있는가 하면, 냉장고, 오븐, 조리대, 와인 잔들이 자리 잡은 넓은 공간도 있다. 시원하게 트인 창을 끼고 있는 이 공간에는 주방 옆에 멋진 테이블과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있고, 한쪽 벽의 큼직한 스크린에서는 연신 뮤직비디오가 돌아간다. 소규모 파티를 열면 제격이겠다 싶다.

첫 번째 사례는 시내의 어느 카페 풍경이 아니다. 엄연한 시중은행 일선 지점이다. 바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IBK기업은행 수내역지점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은행 내 카페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데, 고급 원두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원두커피 기계 옆에는 인스턴트커피까지 비치해 원두커피가 싫은 고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는 짐작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카페 같고, 디자인 회사나 게임 회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체를 알고 나면 더 당황스럽다. 이곳은 바로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 즉 증권사 지점이다.

대개 금융회사들의 일선 지점은 창구를 중심으로 직원들과 고객을 분리한 구조가 대부분이다. 금융회사는 지점을 찾아온 고객에게 각종 금융 상품을 팔고, 입출금과 대출 등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은 용무가 끝나면 재빨리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보수적인 금융권의 문화 탓에 점포 모습도 어느 회사를 가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많다.

하지만 위 두 곳은 다르다. 평소 익숙하던 은행이나 증권사와는 영 다르다.

IBK기업은행 수내역지점 내 카페는 작년 7월에 부임한 배용덕 지점장이 직원들과 함께 의욕적으로 기획한 작품이다. 십시일반으로 공사비 500만원을 모아 두 달간 공사를 했고, 작년 9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이 지점 직원들이 ‘休(휴) 수내1호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지은 카페 사진을 기업은행 내부게시판에 올렸을 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다른 지점들에서 걸어오는 문의전화가 북새통을 이뤘고, “우리 지점에도 이런 카페를 만들어 달라”고 본사에 요청하는 이들까지 있었던 것. 본사의 지원으로 만든 카페인줄 오해했던 것이다.

카페 들른 고객, 5000만원 예치도

한쪽에 자리 잡은 카페를 제외하면 수내역지점은 평범한 일반 은행과 다를 바 없다. 입출금 업무를 처리하고 대출상담 등을 하는 창구에서는 직원들이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고, 한쪽 벽에는 그날의 환율을 보여주는 전광판도 빛을 낸다. 하지만 은행 한쪽에 마련된 카페의 한가롭고 편안한 분위기와 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향긋한 커피향기는 은행을 쉼터처럼 바꿔놓는 힘을 발휘했다.

수내역지점이 위치한 곳은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인근으로, 주위는 빌딩과 카페, 식당들이 밀집한 오피스타운이다. 은행의 고객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기업들이다. 하지만 지점 안에 카페를 만든 후에는 부쩍 주부 등 개인 고객들이 늘어났다. 시내에 일을 보러 나왔다가 일부러 들른다는 얘기다. 어떤 고객은 카페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가 5000만원을 예치하고 간 적도 있다고. 

수내역지점에서 지점장 생활을 처음 시작한 배 지점장은 “지점장이 되기 전부터 ‘언젠가 지점장이 되면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은행을 만들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었다”며 “나와 직원들이 열심히 뛰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지점에서 고객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준다면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카페의 힘이었을까. 수내역지점은 배 지점장 부임 후인 2008년 하반기에 IBK기업은행 전체 지점(PB센터 포함) 순위에서 1위로 올라선 뒤로 지금까지 월별 순위에서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오픈한 지 올해 4년차인 수내역지점은 원래 기업은행의 3위권 지점이었다. 수내역지점의 성과를 지켜본 기업은행의 동탄남지점과 반포자이지점도 벤치마킹을 해갔다는 후문이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도 ‘튀는’ 인테리어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센터의 독특한 인테리어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고,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기획됐다.

센터장인 전병국 이사는 “파티·세미나 등 장소가 필요한 이들에게 센터의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다 보면, 그런 행사 자체가 새로운 고객을 만나는 툴이 된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의료 산업 CEO 과정이 열리는데, 여기에 참석하기 위해 다양한 제약회사 CEO들과 병원장들이 이곳을 찾아오곤 한다. 창업투자 회사인 LB인베스트먼트(LG그룹 관계사)가 올 상반기 결산회의를 이곳에서 열었고, 프랑스의 한 와인 회사는 햇와인인 보졸레 누보 출시 행사를 위해 이 센터를 찾았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아티스트들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세계적인 뉴에이지 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조지 윈스턴의 내한공연 언론 인터뷰가 여기에서 진행됐는가 하면,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여러 번 쓰였다.

이런 과정에서 만난 새 고객 중 1000억원이 넘는 자산을 맡긴 고객도 있다고 한다. 이곳을 다녀간 내로라하는 톱스타들도 고객으로 여러 명을 확보했다.

이 같이 공간의 힘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은 실적으로 그 효과를 입증했다. 작년에 문을 연 이 센터는 올해 5월부터 하나대투증권의 103개 지점(PB센터 포함) 가운데 1위에 올라 현재까지 선두를 지키고 있다(보유 고객자산 기준). 출범 초기 1500억원이었던 이 센터의 고객자산은 11월 중순 현재 9000억원대로 불어나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근사한 인테리어의 효과는 돈만 들이면 쉽지 않으냐고 평가절하 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결과만은 아니다.

럭셔리한 인테리어? 비용은 오히려 덜 들어

우선 비용. 이곳의 인테리어 비용은 평범한 일반 지점보다 오히려 덜 들었다. 이 증권사의 지점 평균 인테리어 비용은 허술하게 해도 3.3㎡당 200만원은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의 인테리어 비용은 3.3㎡당 170만원 정도. 이쯤 되면 단순히 돈을 써서 얻은 성과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센터의 콘셉트를 잡고, 출범 전체 과정을 이끈 전 이사는 “몇 년 전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독특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금융회사 지점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며 “이런 콘셉트의 지점 아이디어를 CEO에게 내서 허락 받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를 고를 때 일부러 금융회사 지점 작업을 전혀 한 적 없는 곳으로 제한해서 계약을 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테리어의 기본 콘셉트와 세부적인 인테리어, 색깔, 집기 등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주문했다.

전 이사는 “각종 재료와 집기들에 대해서도 인테리어 업체와 여러 번 협의하면서 낮출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낮춰 알뜰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꾸몄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미해 내부는 오히려 더 럭셔리하고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됐다. 

IBK기업은행 수내역지점과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 사례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통해 실적을 끌어올린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두 사례의 핵심은 내부 인테리어의 변경이라는 하드웨어 부분이 아니다. 바로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하기 위해 지점 내에 카페나 파티장을 만들 정도의 ‘역발상’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극적인 마인드’에 있기 때문이다.

 tip   금융권의 또 다른 이색점포들

고객 모으거나 vs 찾아가거나 ‘실험 중’

금융기업들은 현재 점포 운영과 관련해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다.

먼저 IBK기업은행은 IBK월드 지점이라는 전략 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중소기업 전문 이미지를 탈피하고 개인 고객을 공략하기 위한 은행 차원의 전략 점포다. 현재까지 서울 은평뉴타운지점과 문정훼미리지점, 부산퀸덤지점 등 3곳에 출점했다.  

이 점포는 창구를 중심으로 행원과 고객이 분리된 일반적인 지점 형태를 완전히 파괴했다. 화사한 오렌지색으로 꾸민 이 지점은 카페식 테이블에 행원과 고객이 일대일로 마주 앉아 업무를 본다. 고객이 자신의 업무를 직접 처리한다. 테이블마다 입·출금 계좌이체·송금 등 기존 ATM(자동입출금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텔러ATM’기를 설치해 고액 수표 입출금, 통장 발급 등도 지원한다.

타깃 고객층을 특화하는 지점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현대증권은 여성특화지점을 운영 중이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부띠크모나코지점이 주인공. 이 지점은 여성 대상으로 메이크업, 와인, 수지침 강좌 등 소규모 세미나를 개최하며 여심(女心)을 사로잡고 있다. 출점한 지 이제 1년이 막 지난 상황으로,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현대증권이 고객 대상으로 실시한 직원 만족도 평가에서 전체 140개 지점 가운데 1위를 하는 등의 성과를 보여 기대를 모으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CEO특화지점, 공단 내 지점을 내고 있다. CEO특화지점과 공단 내 지점은 모기업인 IBK기업은행이 중소기업과 거래가 많다는 강점을 살린 아이디어다.

금융회사들은 고객이 찾아올 점포를 만들기도 하지만 고객이 많은 곳으로 일부러 가는 경우도 있다.

IBK투자증권의 전략 지점 중 공단에 들어가서 오픈한 공단 내 지점은 중소기업 대상 영업의 전진기지다. 증권사들은 보통 공단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데, 이 증권사는 공단 내 지점에서 기업은행과 연계해 IPO(증시 상장) 주관사 계약을 따오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할인점으로 진출한 금융기업도 있다. 하나은행, LIG손해보험, IBK투자증권이 그렇다. 

올해 5월부터 홈플러스 3곳에 출점한 하나은행은 할인점 출점 전략이 일단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설 지점은 보통 신규계좌 창출에 주력하고 이후 거래 확대를 한다. 일단 신규계좌 증가는 다른 점포들보다 많았다는 설명. 하나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지켜보고 잘 되면 할인점 내 점포를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IG손해보험은 올해 8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지점을 냈다. 이른바 ‘마트슈랑스(할인점과 보험의 제휴)’ 첫 사례다. 

IBK투자증권은 이마트 두 곳에 지점을 냈다. 처음에는 홍보 효과 쪽으로만 기대하고 영업 효과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나 막상 영업에 들어가 보니 단위면적당 지점 방문객 수가 다른 지점에 비해 월등히 많다고.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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