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햅틱 아몰레드폰과 LG전자의 님버스 냉장고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팔리는 이유는? 인텔이 중국 가정용 PC 시장을 휩쓸 수 있었던 배경은? 렌터카 업체 AVIS가 고객만족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에 대한 해답을 경제학 및 경영학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인문학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을 넘어 아예 경영에 깊숙이 접목시키는 기업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인문(人文)경영’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인문경영 현장을 상세히 취재했다.

인문학자 핵심부서에 대거 투입

삼성전자 아몰레드폰 매달 20만 대 팔려…유럽 선주문량 200만 대

LG전자 인도 판매용 님버스(야채칸) 냉장고…수익률 10배 올라

삼성전자가 지난 6월 말 국내에 출시한 ‘햅틱 아몰레드’. 이는 매달 20만 대가 팔려 국내 ‘풀터치스크린(FULL TOUCH SCREEN)’ 시장의 70%를 점유했다. 이보다 보름 앞서 유럽에 선보인 ‘제트 아몰레드’는 내놓기가 무섭게 매주 판매량이 20%씩 늘어나고 있다. 벌써 선주문량이 200만 대에 이를 정도다.

지난해 말 LG전자가 인도에 출시한 님버스 냉장고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회사에 ‘수익률 10%’라는 놀라운 실적을 안겨다 줬다. 일반적으로 냉장고의 평균 수익률이 1%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률이 10배나 오른 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몰레드폰과 님버스 냉장고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뭘까.

휴대전화의 신문화, ‘보고 즐기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삼성전자의 햅틱 아몰레드는 작년 3월 출시된 햅틱폰의 2세다. 햅틱폰에 햇빛에서도 선명한 화면을 감상할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아몰레드(AMOLED: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햅틱폰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User Experience)팀이 개념에서부터 모양, 벨 등에 이르는, 즉 첨단기술을 제외한 모든 것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이 팀의 구성원들은 기존 수리경영 방식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우선 팀을 총괄 지휘하는 장동훈 상무는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시각정보디자인 교수 출신이다. 그는 2006년 삼성전자로 합류했다. 구성원들도 음악,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등 경제 및 경영학과 상관없는 다양한 학문을 전공했다.

경력 또한 프로듀서부터 웹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뛰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휴대전화로 애완견을 기르는 서비스를 만들 때는 사무실에서 직접 강아지도 키웠다.

이런 다양한 구성원들이 인문학 및 예술적인 감각을 총동원해 만든 게 촉각으로 승부수를 던진 햅틱폰이다. ‘만져라, 반응하리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햅틱폰은 기계와 교감하는 새로운 경험(촉각)을 사용자에게 제공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LG전자의 인사이트 마케팅팀은 2007년 초 인도의 한 마을을 찾았다. 집집마다 양해를 구하고 카메라를 설치해 3주 동안 인도인들의 냉장고 사용 실태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야채 칸의 사용빈도가 높은데 맨 아래에 위치해 인도인들이 불편해 하는 사실을 알아냈다. 야채 칸을 인도 고객들이 사용이 편한 곳에 설치할 수 있도록 이동식으로 만들고 야채의 신선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이온 기능을 추가한 게 인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님버스 냉장고다.

인사이트 마케팅팀을 지휘하는 최명화 상무는 “고객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불편과 욕구를 찾아내 해소하고 만족시키는 게 인사이트(INSIGHT: 통찰) 마케팅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 팀 또한 다른 기업에서 볼 수 없는 유치원같이 꾸며진 ‘이노점프’라는 룸에서 최대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구한다. 인사이트 마케팅팀은 기존 경영학의 정량적인 조사가 아닌 문화인류학, 심리학 등을 접목시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정성적 조사방식을 이용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삼성전자 ‘아몰레드폰’과 LG전자 ‘님버스 냉장고’의 성공비결은 경제겙嚥되隙?아닌 인문학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데 있다. 

이처럼 기업경영에 대한 인문학의 접목시도는 국내 기업들보다도 해외 글로벌 기업들이 먼저 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PPR(People and Practice Research)그룹은 고객 경험과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둔 제품 개발을 목적으로 심리학자, 인류학자, 마케팅 담당자, 개발 담당자, 재무 담당자들을 한 팀으로 구성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그룹이 중국 중산층을 겨냥해 개발한 자물쇠 달린 가정용 PC가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중산층이 PC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만다린어 학습 등 자녀 공부에 방해 된다’는 점을 우려해 구매를 기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 이 그룹의 일부 연구팀은 10대, 신세대 가족, 알래스카 어부, 인디언, 브라질 빈민들과 섞여 지내며 미래의 하이테크 잠재 시장 개척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렌터카 업체인 AVIS는 1990년대 중반 고객만족도가 떨어지자 미래학자, 심리학자, 문화인류학자들로 연구팀을 구성해 조사한 결과, 고객들이 빠른 서비스, 깨끗한 자동차보다 여행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 해소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환차 장소에 운항 상황표를 설치하고, 고객특별보호원의 인도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직원 유지율도 9%포인트나 높아졌다고 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경우 가장 성공한 자동차 모델로 꼽히는 PT 크루저 디자인에 프랑스 출신의 저명한 인류학자 G.클로테르 라파엘을 참여시켰다.

마케팅 리서치 조직의 효시인 P&G와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도요타는 최근 아예 문화인류학자 및 심리학자를 리서치 팀장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CEO들의 인문학 학습 ‘열풍’

고객 중심 대량 맞춤 시대 도래…수리경영으론 안 통해

8월13일 오전 7시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으로 많은 기업인들이 몰려들었다. 이장한 종근당 회장, 최동주 현대아이파크몰 사장, 허정범 현대하이카다이렉트 사장, 윤점식 푸르덴셜생명보험 부사장, 장기봉 마스터자동차 사장 등 150여 명에 달했다. 이들 CEO는 KMA(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하는 ‘지혜의 향연’ 조찬강좌를 듣고자 서둘러 왔던 것. 이 강좌는 ‘철학적 사유 속에서 창조경영의 모티브를 찾는 창조경영 아고라 시즌 2’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인문강좌다. 강웅구 KMA 상무는 “이른 시간에 열리는 조찬강좌인데도 매번 150여 명에 이르는 각계의 CEO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인문강좌들도 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대한상공회의소의 ‘CEO 독서 아카데미’, 삼성경제연구소의 ‘메디치 21’, 성공회대의 ‘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 인문공부’ 등에도 많은 CEO들이 몰려들고 있다.

아예 기업 안에 인문강좌를 개설하는 곳들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6월 ‘서울대 AFP(Ad Fontes Program)―롯데백화점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강의 주제로 철학과 문학, 역사, 예술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두루 담았다.

포스코는 지난 5월 임원과 그룹 리더, 외주 협력사 임원 등을 대상으로 한 ‘수요 인문학 강좌’를 신설했다. 올해는 소크라테스, 니체, 칸트, 괴테, 마키아벨리 등 서양 철학자들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내년엔 동양 고전과 역사학도 강연할 예정이다.

인문강좌가 봇물 터지듯 여기저기서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2006년 고려대 인문학과 교수들을 시작으로 촉발된 전국 인문대학 학장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 직후다. 당시 학장들은 선언문을 통해 ‘오늘날 세계는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와 윤리의식이 실종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의 삶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 채 폭력적인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인종과 이념 및 종교의 갈등과 생태계 파괴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인문학 경시풍조와 맞물려 있다. (중략) 인간의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은 경제적 가치나 계량적 수치로만 평가될 수 없다. 인문학의 기초 환경을 제공하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대학은 근시안적 시장 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하며,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조력이야말로 미래의 비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상아탑의 인문학 위기 선언이 있기 전부터 인문학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단지 ‘관심’ 차원을 넘어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몸부림이었다.

이와 관련, KMA 인문강좌 ‘지혜의 향연’의 리딩멘토인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고객 중심의 대량 맞춤 시대가 오면서 공급자 중심의 통계나 평균으로 재단해온 수리(數理)경영이 더 이상 시장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는 공급 부족 시절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이론적인 배경이 수리경영이었다면, 공급 과잉 시대를 맞아 고객들을 끌어 모으는 이론적 배경은 인문경영이라는 얘기다.

고객욕구 정밀 분석하는 인문학적 틀

인간 사고의 95% 무의식을 알면 ‘대박행진’

패스트푸드 전문회사인 맥도날드는 1991년 고객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이어트버거인 ‘맥린’을 출시했지만 실패했다.

국내 여성잡지 <마리안느>는 창간에 앞서 주부 대상 설문조사를 근거로 ‘무섹스’, ‘무스캔들’, ‘무루머’ 등 ‘3무(無)정책’을 표방했지만 창간 17호만인 1991년 1월 부도를 내고 말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연구원은 “기업들이 낮은 비용, 이해용이성, 의사결정 기준의 명료성 때문에 수치화되고 통계적 검증이 가능한 정량적 조사 방법을 선호한 나머지 정작 고객들의 숨겨진 심리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맥도날드의 경우 계량적인 내용에만 치중해 다이어트가 패스트푸드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맥도날드 및 <마리안느>와 달리 P&G는 세탁세제를 구입하는 고객들로부터 ‘P&G 제품에 아무 불만이 없다’는 조사내용을 얻어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객의 집에 가서 세제 사용 모습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정반대의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단단한 세제 포장을 드라이버로 힘겹게 뜯거나, 세제가 물에 잘 녹지 않아 막대기로 세제를 푸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에 따라 P&G는 제품 패키지를 개선하고 물에 잘 녹는 세제를 개발, 지속적으로 시장을 선도해나갔다.

고객들은 왜 설문조사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하버드 경영대 잘트만 교수는 “인간 사고의 95%는 무의식에서 일어나고 나머지 5%도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기업들이 고객들의 무의식을 제대로 알면 ‘대박 상품 퍼레이드’를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기업들은 고객들의 무의식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LG전자의 LSR연구소는 미국 고객의 ‘홈 인테리어 변화에 따른 LCD TV에 대한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적 접근법을 활용했다. 직접 고객의 집을 방문, 그들의 생활을 관찰했던 것. 그 결과 고객의 가옥 구조가 기존에는 거실, 침실 등이 분리된 공간이었으나 최근 구조 변경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넓혀지고 있고, 이로 인해 가족들이 거실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대형 TV에 대한 니즈가 더욱 커지고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1995년 잘트먼 교수가 고객 조사기법으로 개발, 많은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지메트(ZMET: 잘츠만 은유 유도기법)는 제품 브랜드 등과 관련된 고객의 인식, 사회적 관계 등을 탐색하기 위해 인류학, 사진학, 신경생물학. 심리분석학 등이 주로 이용되고 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리더십개발원 원장

“소득 2만 달러 이상이면 인구의 20% 탈물질화”

인문학에 대한 기업인들의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첫째는 고객 중심의 ‘대량 맞춤 생산 시대’의 도래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닌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팔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고객(사람)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인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갑작스러운 ‘방향(지향점)의 상실도 이유일 것이다. 삼성 등 일부 국내 기업들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면서 자신들이 벤치마킹 대상(지향점)으로 삼아왔던 글로벌 기업들을 뛰어넘었다. 이들 기업이 갑자기 나가야 할 방향을 잃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을 위해 인문학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경영이 바로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기업들이 인문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는가.

그래야 한다고 본다. 소득이 1만달러가 넘으면 인구의 10%가 탈물질화된다고 한다. 즉, 이들 인구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돈이 아닌 자기만의 가치를 찾는 데 주력한다는 얘기다. 소득이 2만달러에 달하면 탈물질 인구가 20%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다양한 욕구에 대해 연구를 해온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처음 인문학에 도전하는 기업인들에게 조언한다면.

동문수학(同門受學)이라는 말이 있듯이 혼자보다 직원 등과 함께 공부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공부는 함께하고 결과물은 혼자 얻는 게 인문학이다. 철학의 경우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관하여>, JS밀의 <자유론>, 플라톤의 <국가>, 루소의 <에밀> 등을 권하고 싶다. 

인문경영 핵심 학문으로 부상하는 ‘인류학’

‘참여관찰’ 통해 무의식적 행동 분석

인류학이 인문경영의 핵심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들이 고객들의 ‘진짜 욕구’를 찾아내는 데 인류학의 조사방법론이 다른 사회과학 방법론보다 한수 위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아예 인류학자들을 마케팅팀장으로까지 영입하고 있다. 과연 인류학이 마케팅의 뉴 프론티어로 급상승할 수 있을까.   이창희 기자 twin92@chosun.com

인류학은 인간을 문화적인 측면과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사회과학들도 사람을 연구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방법론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인류학자인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회과학자들이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직접 보든지, 못 보면 물어보든지, 묻지도 못하면 자료를 모으든지 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자료를 모으는 것이고, 사회학자들은 물어보고, 인류학자들은 훈련된 사람들이 직접 보는 것이다. 이걸 전문용어로 ‘참여관찰’이라고 하는데 현상 파악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참여관찰’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서울대 인류학과 이문웅 명예교수의 설명을 빌리면 쉽게 이해된다.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학이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병원을 찾은 사람이 왜 우선 약방을 찾거나, 또는 점쟁이나 무당을 찾지 않고 병원을 찾아 갔는가’,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더 많은 주의를 집중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과 그의 행동의 준거기준이 되는 문화(culture) 간의 관계를 설정하게 되고, 인류학은 바로 후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해답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 기존 기업들의 마케팅과 인류학의 참여관찰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마케팅과 인류학 기법의 차이

최근 자전거 붐이 일면서 A라는 회사가 1315세대를 위한 자전거 신제품을 개발한다고 가정하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제품판매를 위한 목표 고객층을 설정하고 이들에 대한 설문 등 정량적인 조사에 충실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는 ‘왜 1315세대는 걷거나 버스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탈까’, ‘1315세대들이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등 고객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에까지 폭넓게 접근한다. 어느 쪽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제품이 고객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당연히 인류학의 참여관찰 쪽이다.

인류학을 전공한 이상철 펩시콜라 마케팅담당 이사는 “인류학 방법은 고객의 인사이트(Insight)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들과의 벽을 허물고,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관찰을 통해서 고객들조차 알지 못하는 어떤 행동 등에 대한 원인을 파악해 나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고객들의 비언어인 몸짓이나 제스처 등을 특히 잘 살피게 된다”고 전했다.

이런 인류학 방법을 기업에 가장 먼저 적용시킨 곳은 해외 글로벌 기업들이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미국의 인텔이 대표적이다. 인텔의 디지털 홈 그룹(Digital Home Group) 내 유저 익스피어리언스(User Experience) 담당 이사인 즈네비에브 벨 박사는 인류학자 출신이다. 벨 박사는 1998년 인텔에 합류하기 전 스탠포드 대학에서 인류학 강의를 했다. 벨 박사는 최근 2년 동안 IAP(Inside Asia Project) 팀을 이끌면서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 호주 등 아시아 7개국 100여 가정의 컴퓨터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벨 박사는 지난 6월 인텔 본사에서 열린 ‘인텔 업그레이드 이벤트(Intel Upgrade Event)’에서 ‘여성과 기술(Women & Technology)’에 대한 아시아 지역 조사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인도의 지방에서 사이버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80%가 여성이다.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IT 서비스 지원이 가능한 여성은 고임금을 받는다. 한국 게이머들의 70%는 여성인 반면 미국에서는 40%, 영국에서는 25%가 여성이다. 페이스북 사용자의 64%는 여성이다.’

인텔은 이 같은 조사를 바탕으로 각 국가마다 다른 기술을 적용한 컴퓨터를 개발한다.

최근 인류학자를 리서치 팀장으로 영입한 P&G는 고객 통찰을 위한 모토가 있다. 그것은 ‘정글로 가라’이다. 즉, ‘사자가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알고 싶으면 동물원으로 갈 게 아니라 정글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P&G는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고객들과 친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하도록 요구한다. 고객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에 동참해야만 고객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텔 등 해외 글로벌 기업 인류학 활용도 높아

GM은 1996년 인류학자 출신인 엘리자베스 브라이오디 박사를 영입했다. 기업인류학의 개척자인 브라이오디 박사에게 맡겨진 임무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자동차 공장 근로자들의 조직문화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품질 향상 프로그램이 기대했던 것보다 작동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브라이오디 박사는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작업반장들과 근로자들 간에 심각한 ‘책임 떠넘기기’ 문제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명품 모토 사이클의 대명사 할리데이비슨은 1990년 초반 인류학자 등으로 팀을 구성하여 마니아 집단 ‘바이커(biker)’의 독특한 문화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할리데이비슨을 구입하는 고객은 특별한 집단문화에 동조되려고 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 브랜드 로열티를 강화시켰다고 한다.  

국내에는 이들 해외 글로벌 기업들처럼 인류학자를 마케팅 팀장으로 영입하는 등 인류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없다. 김중순 한국디지털대 총장은 “오래 전 풍산금속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내게) 조언을 구한 이후 인류학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는 국내 기업은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불황을 극복하고자 고객의 니즈 파악에 안간힘을 쓰고 있어 앞으로 인류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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