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경영에서 잡음은 불가피한 것일까. 얼마 전 오너 형제 경영인의 동반퇴진으로 뒷말이 많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 얘기다. 그러나 한때 잡음이 있었으나 잘 극복하고 여전히 형제 경영으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두산그룹을 보면 형제 경영의 결말이 꼭 비극적인 것은 아닌 듯하다. 사업을 할 때는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협력과 우애를 잊지 않는 아름다운 형제 경영인들을 모아봤다.

“우린 경쟁하면서 협력한다” 

  형제들의 ‘환상 팀워크 경영’

국순당 & 배상면주가

‘한 지붕 경영’글쎄?…

별도 기업 차려 독립

“국순당에 근무할 당시 브랜드의 포트폴리오를 요구한 나와, 백세주 단독 브랜드를 강조한 형과의 의견 차이가 커 결국 배상면주가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

국순당의 배중호 사장(55곀?과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사장(49겣옐?은 원래 부친 배상면 회장이 설립한 국순당에서 함께 일했다. 국순당의 ‘백세주’라는 히트상품은 아버지와 형제가 함께 일군 것이다. 그러나 1996년 국순당 전무였던 동생 배영호 사장은 독립을 선언하고 배상면주가를 창업했다.

기업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 두 형제는 한 기업에서 싸우는 대신 별도의 기업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경영하는 길을 택했다.

부친 배상면 회장은 형제가 함께 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쟁이 심하면 때로는 싸움도 나겠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지, 경쟁자를 망가뜨리자는 것은 아니다”며 작은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후 두 형제는 각자의 힘으로 회사를 키웠다. 국순당은 백세주를 중심으로 전문화와 고급화를, 배상면주가는 산사춘, 대포, 자청비 등을 앞세운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으로 전통주 시장을 이끌고 있다. 가족 기업 안에서 갈등하는 대신 각자의 영역을 개발하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한 것이다. 두 형제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형 배중호 사장은 연세대 생화학과를 나와 배한산업(옛 국순당) 연구소장을 지낸 ‘전통주업계의 테크노 CEO’다. 그는 백세주 출시 이듬해인 1993년에 대표이사가 됐는데, 남한산성 같은 서울 근교의 외곽업소부터 공략한 게릴라 마케팅, 업소에 맞춤형 메뉴판과 앞치마를 만들어 제공해 주는 맞춤형 마케팅으로 소주·맥주·위스키가 주도하던 주류 시장을 뚫은 것으로 유명하다.

동생 배영호 사장은 새로 회사를 설립한 후 제품개발, 유통망 확보, 마케팅 등에 대해 국순당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모두 맨땅에서 새로 시작했다. ‘다품종’의 열망이 컸던 그답게 사업 초기에 전통주를 복원한 백하주·활인 18품·천대홍주·흑미주 및 신규 개발한 산사춘 등 5종을 한꺼번에 출시, 소비자의 반응을 지켜봤다. 이 중 산사춘의 반응이 좋아 여기에 포커스를 뒀는데, 시음용으로 귀여운 꼬마 병을 수만 병 증정하는 마케팅을 고안해 큰 효과를 봤다. 덕분에 전통주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

두 형제의 실적은 어떨까. 매출 규모는 국순당이 배상면주가의 2.5배 정도 크다. 2008년 국순당의 매출은 541억원, 배상면주가의 매출은 202억원이었다. 

형제는 요즘 고전하고 있다. 경쟁 주류인 소주가 도수를 낮춰 순해지면서 전통주가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 크다. 한때 인기였던 ‘오십세주(소주+백세주)’가 ‘소폭(소주+맥주)’을 찾는 소비자들로부터 밀리는 양상도 관측되고 있다. 백세주가 한창 잘 나가던 2003년에는 매출이 1319억원에 이르며 정점을 찍었지만 그 후 5년째 매출이 내리막길이다.

배상면주가도 마찬가지. 2004년에 매출이 472억원으로 최고점에 닿은 후 4년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에 국순당은 올 들어 불어 닥친 막걸리 열풍을 업고 내놓은 생막걸리와 외식 사업인 백세주마을 확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배상면주가도 대포 막걸리를 비롯해, 복분자 탄산주인 빙탄복 등을 출시하며 대응하고 있다. 

에이스침대 & 시몬스침대

부친이 교통정리…원자재

공동구매 등 경쟁하면서 협력

에이스침대의 안성호 사장(41곀?과 시몬스침대의 안정호 사장(38겣옐?은 국순당 형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국순당 형제의 분가는 동생이 스스로 독립한 결과였다. 그러나 에이스침대 형제는 부친이 일찌감치 후계 구도를 설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에이스침대 창업자이자 형제의 부친인 안유수 회장이 일찌감치 형제에게 두 기업을 나눠서 맡겼던 것이다.

시몬스침대는 부친 안유수 회장이 1992년에 라이선스를 따서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던 회사다. 동생 안정호 사장은 1998년에 시몬스침대 기획실장으로 입사해 경험을 쌓은 후 2001년 사장에 올랐다. 형 안성호 사장은 1991년에 에이스침대에 입사해 2002년에 대표이사가 됐다. 형제는 각각 자신의 회사 최대주주로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형인 에이스침대 안성호 사장은 생산계획과 원가관리 등 생산관리 쪽에서 일을 익힌 탓인지 우직하게 침대라는 한 우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다. 반면 동생인 시몬스침대의 안정호 사장은 주로 기획과 영업 등에서 경험을 쌓았는데, 사업 다각화 쪽에 관심이 많다. 두 회사의 전략도 다르다. 에이스침대는 고급화, 시몬스침대는 젊은 이미지로 시장에 어필하고 있다.

“두 형제가 침대 시장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일하며 경쟁을 해오다 보니 형제 경영이라는 테마로 한 데 묶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회사 관계자는 말했다. 이들은 그러나 원단·목재·스프링 등 원자재 공동구매, 이탈리아 현지법인 ‘자나(ZANA)’의 공동출자 등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협력하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두 형제는 국내 침대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침대업계에서는 국내 침대 시장 규모를 4500억원으로 추정하는데, 에이스침대가 32%, 시몬스침대가 13%를 차지하고 있다. 형제의 점유율을 합하면 45%이니, 침대 사용인구 둘 중 하나는 이 두 형제가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형제는 침대 사용인구가 늘어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두 회사의 실적이 해마다 쑥쑥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에이스침대의 매출은 1428억원, 영업이익은 218억원, 시몬스침대의 매출은 574억원, 영업이익은 80억원을 기록했다.

동화홀딩스 & 코린도그룹

목재 산업 대표주자들…

형은 해외, 동생은 국내 우뚝

국순당 형제와 에이스침대 형제가 동종업계에서 별도의 기업을 운영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종합목재 기업 동화홀딩스의 승은호 회장(67곀?과 승명호 부회장(53겣옐?은 국내와 국외(인도네시아)로 나눠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한다고 볼 수 있다.

동화홀딩스는 지난 5월 작고한 부친 승상배 회장이 1948년에 동화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해 두 형제와 힘을 모아 키웠다. 두 형제는 모두 사업 수완이 남다르다.

동화기업은 1975년에 회사 문을 닫는 불운을 만났다. 자원민족주의의 대두로 인도네시아의 원목 수출 금지, 오일쇼크 등의 여파가 컸던 것이다. 형 승은호 회장은 당시 원목개발 사업을 하러 1969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본사의 부도로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가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백방으로 뛰어다닌 승 회장은 원목 제공을 담보로 일본 기업으로부터 자금 조달에 성공하며 극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벌채를 위해 밀림을 누비며 현장에서 갖은 고생을 한 그가 현지에서 맨주먹으로 일군 것이 오늘날 인도네시아 재계 10위권인 코린도그룹이다. 조림, 펄프, 제지, 바이오에너지, 자동차 조립, 금융 등을 아우르는 약 30개 계열사로 이뤄진 코린도그룹은 연 매출이 약 10억달러, 직원 수가 2만5000여 명에 이른다.

승 회장은 작년에 제주도에서 열렸던 세계한상(韓商)대회의 대회장으로 행사를 이끌었을 만큼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로 인정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형인 승 회장은 여력이 없어 국내 사업은 동생인 승명호 부회장이 전담하고 있다. 승 부회장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승 부회장은 1984년에 동화기업에 입사해 이사, 부사장을 거쳐 1993년에 사장이 됐다. 그는 사양산업으로 꼽히던 단순 목가공업체 동화기업의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1995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의 변신을 주도하며 지배구조를 정비했다. 동화기업은 그때 지주회사인 동화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동화기업으로 분리됐다. 동화홀딩스그룹은 현재 중밀도 섬유판(MDF), 건축용 내장재(MFB), 강화마루 등 고부가 목질 인테리어 자재 전문그룹으로 멋지게 탈바꿈했다.

국내 목재 기업 1위인 동화홀딩스는 현재 국내에 7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파티클보드와 MDF를 생산하는 동화기업을 비롯해 대성목재, 동화리소시스, 동화자연마루, 동화엘리트도아, 동화SFC하우징, 동화디벨로퍼 등이다. 작년 그룹 전체 매출액은 4070억원이다(국내 기준). 말레이시아, 홍콩, 호주 등에 목재 관련 9개 해외법인과 지사도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형의 코린도그룹을 벤치마킹해 현지 기업을 육성하는 중이다.

두 형제는 2000년에는 법정관리 상태였던 대성목재를 공동 인수하며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코린도그룹 계열사 판웰인더스트리와 동화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유원건설로부터 대성목재의 지분 82%를 사들였던 것. 두 회사는 당시 지분을 각각 41%씩 인수했다. 경영은 동화기업에서 맡고 있다.

해외 기업들의 형제 경영

“형제간에 결속하라” 유언, 250년 동안 지켜

해외에는 형제 경영의 역사를 무려 수백 년이나 이어온 기업들이 있다. 세대를 이어 성공적으로 형제 경영을 지속한 비결은 무엇일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 소장 romai@naver.com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형제 경영’으로 5대, 150년을 이어가고 있는데, 스웨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다.

발렌베리그룹은 창업자의 5대손인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터 회장과 그의 사촌인 마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이 투톱으로 이끌고 있다.

발렌베리, 5대에 걸친 형제 경영

발렌베리그룹에서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창업자가 다닌 해군사관학교 졸업, 부모 도움 없는 명문 MBA(경영학 석사) 졸업, 국제적인 금융회사 경력이 필수조건이다. 여기에 애국심과 도덕성도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자기 절제, 극기력과 함께 애국심을 기르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는 것이다.

발렌베리는 특히 공익재단을 통한 수익의 사회 환원을 제도화함으로써 ‘리세스 오블리제(Richesse Oblige)’를 실천해오고 있다. 리세스 오블리제는 지도층 가운데 특히 부자들의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 개념이다. 발렌베리의 사회 환원은 형제 경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한 특혜를 부여해주었다. 스웨덴 정부가 발렌베리에 ‘차등 의결권’이라는 특혜를 주면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게 한 것이다. 여기서 성공적인 형제 경영의 조건 중 하나가 ‘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 즉 ‘리세스 오블리제 정신의 실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발렌베리는 친형제뿐만 아니라 사촌도 공동 경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심지어 이복형제도 후계 경영자로 투톱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후계 경쟁의 공정함과 개방성’이 성공적인 형제 경영의 또 다른 조건임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 사채업자로 시작해 런던과 파리를 거점으로 국제 금융황제로 군림해온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은 ‘형제간에 결속하라’는 창업자의 유언을 8대, 250년 동안이나 지켜오고 있다.

로스차일드, “형제간에 결속하라”

창업자의 유언을 좀 더 들여다보면 “아들만이 회사의 유일한 상속자이고, 딸과 사위들은 형제들의 사업에 어떤 지분을 가지거나 참견할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족의 화합을 위해 이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96년 영국 런던 로스차일드가(家) 저택에서 로스차일드의 후손인 암셀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암셀이 죽은 뒤 3개월 후 이사회 부의장이자 암셀의 프랑스 로스차일드 일가의 사촌 다비드가 해외투자업무를 조정하는 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성공적인 형제 경영의 조건을 읽을 수 있는데, 세대를 이어 공유되는 강력한 ‘원칙의 존재’ 여부다. 로스차일드가는 창업자가 유언으로 남긴 ‘형제간에 결속하라’는 원칙에 따라 250년 동안 형제 간 ‘파트너십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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