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지만 잘 모르는 세계가 있다. 바로 각종 식품, 생활용품 등에 적용된 포장재들이다. 매일 먹고, 마시고, 바르고, 만지며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는 제품들을 담고 있는 포장재들인 만큼 그 뒤에 숨어 있는 기술이 결코 가볍지 않을 법하다. 이와 같은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소비재를 중심으로 포장재에 숨어있는 첨단 기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식품과 생활용품을 막론하고 포장 분야에서는 친환경 소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안전성과 편리성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포장재와 관련한 최신 트렌드와 함께, 포장재에는 어떤 기술이 숨어 있는지, 그 가치는 어떤 것인지, 이제부터 포장재의 세계에서 확인해 보자.

추석선물 포장재엔 어떤 비밀있나?

“친환경·안전·편리성 고려한 첨단기술 숨어있다”

식품류 포장재 분야

문상권 CJ제일제당 포장기술팀 과장 moon@cj.net

식품 회사들의 최고 성수기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이다. 이번 추석에 선물세트를 준비한 식품업계에서 예년과 다른 차이점을 꼽는다면 선물세트 포장재에 다양한 친환경 패키지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쌀겨 트레이

쌀겨와 플라스틱 섞어 수천 번 실험 끝 개발

대표적인 예가 선물세트 속 상품을 담는 그릇 역할을 하는 ‘트레이’. 트레이는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플라스틱 100%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쌀겨를 넣은 ‘친환경 트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햇반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오던 쌀겨와 무기질 성분 등을 섞어 플라스틱 함유량을 절반 정도로 줄인 쌀겨 트레이를 개발했는데, 올 추석 선물세트의 절반 정도 분량에 적용했다.

쌀겨 트레이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구수한 곡물향기가 나고 기존 플라스틱 트레이에 비해 인공 재질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선물세트의 고급스러운 느낌도 한결 잘 살려낸다.

특히 자연분해가 되지 않는 기존 플라스틱 트레이에 비해 자연분해가 빠르고,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포장기술의 대표 사례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쌀겨 트레이는 개발까지 2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쌀겨와 플라스틱 수지를 섞었을 때는 쌀겨가 고루 섞이지 않고 뭉쳐 다니는 문제점을 해결해야 했고, 트레이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고온에서 굽자 쌀겨가 새카맣게 타기도 했다. 쌀겨 트레이는 이를 해결하고자 2년 동안 수천 번의 실험을 거친 끝에 탄생한 눈물겨운 작품이다.

이지 필·찜포장 기술

햇반 등 간편식 용기에 적용 “개봉 쉽고 빨리 데워져”

친환경 포장재 외에 요즈음 식품 포장의 큰 화두라면 안전성과 편리성을 들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식품 포장은 이 두 가지 화두를 필두로 놀라울 정도로 진화 중인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기술이 ‘이지 필(easy peel)’, 즉 포장을 쉽게 개봉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예전처럼 제품을 개봉하기 위해 칼이나 가위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간편한 한 끼 식사를 도와주는 무균 밥에서부터 두부, 고추장, 된장, 가정에 통닭과 함께 배달되는 무절임 등 용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제품에 적용된다.

어린아이들도 손쉽게 제품을 개봉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놀라운 기술은 여러 가지 구현 방법이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폴리머 간의 상용, 비상용성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용기와 용기를 덮는 필름에 사용되는 재질은 용해도 상수가 같거나 비슷한 재질끼리 만날 경우 접착력이 강해지고, 용해도 상수가 전혀 다른 물질끼리 만날 경우 접착력이 약해진다. 이 원리를 이용해 필름 재질을 구성함으로써 적정한 개봉 강도를 부여하는 것이다(그림1 참고).

최근에는 제품 보호를 위해 유통 중 받는 충격에는 잘 개봉되지 않다가, 소비자가 개봉할 때는 적은 힘으로도 열리는 기능을 적용한 제품도 많이 볼 수 있다.

제품 포장재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소비자들이 음식물이 조리되는 전자레인지 앞에서 인내력을 보일 수 있는 한계를 대략 3분 정도로 보고 있다. 제품의 조리 시간이 3분을 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힘들어지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 ‘찜 포장’이다.

말 그대로 전자레인지에서 제품을 조리할 때 포장재가 압력솥이나 찜솥처럼 제품에 적절한 증기압력을 가해 빠르고 균일한 조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포장 기술이다.

찜 포장 기술은 전자레인지에서 제품을 개봉하지 않은 채로 조리할 때 내부에서 발생하는 증기 압력에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설계된 포장재를 사용해 구현한다(그림2 참고). 안전한 조리를 위해, 압력밥솥과 같이 일정한 압력이 되면 포장재의 일부가 개봉되어 증기를 배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기술 덕분에 이전에는 10분 가까이 걸리던 냉동제품의 전자레인지 조리시간이 3분 이내로 단축됐고, 일반적인 조리 방법보다 훨씬 좋은 맛을 구현할 수 있어 전자레인지 조리 제품의 혁신을 이루어 가고 있다.

이 기술은 현재 야채나 볶음밥 등 냉동 제품에 적용됐다. 카레 등 레토르트 제품 포장에 적용하기 위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조만간 상품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부제 없이도 장기간 유통할 수 있는 안전한 식품 개발도 포장이 돕고 있다. 외부에서 산소나 수분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 포장재가 그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캔이나 유리병이다.

캔이나 유리병은 공기 중에 존재하는 각종 세균은 물론이고 산소나 수분까지 완벽하게 차단해 내용물이 장기간 유통될 수 있게 해준다. 무겁고 가공성이 떨어져 통조림이나 음료, 주류 등 한정된 식품 영역에만 사용되어 왔다.

EVOH 재질

수분·산소 침투 원천봉쇄…맥주 PET병에 적용

최근에는 캔이나 유리병처럼 산소나 수분 차단 기능을 가진 다양한 재료들이 개발되어 제품 포장에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EVOH’라는 포장재질이다. EVOH 재질은 수분이나 산소가 제품으로 침투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줄 뿐만 아니라, 가볍고 열에도 강하며, 전자레인지에서도 안전해 식품 포장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1리터가 넘는 맥주를 가벼운 PET 용기에 담을 수 있는 것도 PET 용기의 중간층에 있는 EVOH가 탄산가스의 유출과 산소의 유입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갓 지은 밥을 아무런 첨가제 없이 6개월 이상이나 상온에서 유통할 수 있는 것도 포장재가 밥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외부의 산소가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해서다.

이외에도 최근에는 제품이 생산되어 유통되는 동안 어느 정도의 온도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냉장식품용 라벨, 제품이 변질되면 색이 변하는 라벨, 조리된 제품을 다 먹을 때까지 먹기에 알맞은 온도로 유지시켜주는 용기, 전자레인지에서 마치 프라이팬으로 구운 것처럼 바삭한 느낌으로 조리할 수 있는 포장 등 그 동안 꿈꿔왔던 소비자 안전과 편의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포장재들이 개발 중이어서 어린아이부터 고령의 소비자까지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날을 조만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생활용품 포장재 분야

서중일 애경 이노베이션 디자인팀 연구원 sito5104@aekyung.kr

최근 생활용품 포장재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친환경과 편리성’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포장재 개발 및 디자인의 트렌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친환경 콘셉트인데, 친환경 콘셉트의 포장재는 실로 다양하다.

친환경 PLA

옥수수점분 이용한 분해되는 플라스틱, 생활용품에 사용

최근 많이 등장하고 있는 포장재는 친환경 플라스틱인 PLA를 사용하여 만든 것들이다. PLA란 전분을 발효시켜 만든 플라스틱인데, 보통 옥수수 전분을 많이 사용한다. 외국의 경우 화학물질인 플라스틱보다 인체에 무해하며, 폐기 시에도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물병이나 식품 포장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일부 생활용품에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포장재의 트렌드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생분해성 수지로 만든 트레이도 사용이 늘고 있다. 트레이는 선물세트 포장 등에 활용되어 제품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판을 말한다.

PLA 외에도 여러 가지 친환경 생분해 플라스틱이 많이 있는데, 석유계 플라스틱에 비해 가격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강도, 물성 등이 많이 떨어져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가격을 낮추고 물성을 높이기 위해 키틴, 광물질 등을 혼합하여 만든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각 제조사마다 광분해성 수지, 에어로겔 수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애경의 경우 설과 추석 선물세트에 석유계 트레이를 사용해 왔으나 2008년부터 생분해성 수지로 만든 트레이를 활용하고 있다.

포장재와 관련해 지나쳐서는 안 되는 부문 중 하나가 바로 ‘인쇄’다. 패키지 인쇄에 친환경 인쇄를 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생활용품업체들이 콩기름을 이용한 친환경 인쇄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콩기름 인쇄도 50% 정도의 유기용제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친환경 인쇄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무용제 잉크는 용제 함량이 1% 이하이기 때문에 완전한 친환경 인쇄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생활용품업계에서 아직 실제 제품에 적용하지 않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나 곧 실제품에 쓰일 예정이다.

친환경과 함께 최근 포장재는 소비자의 사용 편리성을 고려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진공펌프 기술

펌프형 치약용기에 적용, 항상 ‘리필 가능’

애경에서는 얼마 전 국내 처음으로 리필을 할 수 있는 펌프형 치약을 선보였는데, 편리성 강화와 함께 알뜰한 사용까지 더한 효율적인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주름을 이용한 진공펌프 방식인데, 공기 압력에 의해 실리콘 밸브가 펌프 안에 있는 치약을 밖으로 밀어 내는 원리다.

기존의 튜브형 치약을 끝까지 다 사용했을 경우에 남아 있는 치약 잔량이 약 10g 정도가 되는데, 펌프형 치약은 잔량이 1g 정도밖에 되지 않아 끝까지 깨끗하게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올 추석 선물세트용으로 첫 선을 보인 프리미엄 치약세트에 도입, 소비자들과 대면하고 있는 최신 기술이다.

해외 사례들

해외 사례 가운데는 물에 녹는 PVA 필름을 이용해 세제를 1회 사용분씩 개별 포장한 제품이 눈에 띈다. 캐나다에서 선보인 이 제품은 식기용 세제 용도로 개발됐다. 식기세척기에 PVA 필름으로 포장한 1회용 액체세제를 넣으면 필름이 물에 녹으면서 세제가 흘러나오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이 매번 용량을 계량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고려해 개발된 제품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식기세척기용 세제 시장이 협소해서 관련 제품은 출시되어 있지 않다.

언젠가 이 원리를 세탁기용 세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싶어 아이디어를 내본 일이 있었는데 채택되지는 않았다. 세탁기용 세제의 경우 한 번의 세탁에 사용되는 세제 량이 적지 않아 1회용 세제를 담은 PVA 필름 용기가 너무 커질 수 있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국내 사용자들은 세탁기에 세제를 넣을 때 정량보다 많이 사용하는 편이어서 1회용 정량 제품을 출시해도 별로 좋은 반응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캡을 달아서 짜는 만큼만 내용물이 나오고 외부 압력이 없어지면 자동으로 닫혀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하는 실리콘 캡을 적용한 샴푸도 있다. 일명 ‘깔끔이 마개’로 불리는 이 실리콘 캡은 흔히 식용유·참기름·물엿 등 액체 용기의 마개로 사용되는 바로 그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선보인 정량 토출캡도 소비자의 사용 편리성을 극대화한 제품으로 주목된다. 캡 내부에 특별한 구조가 되어 있어 일정량 이상 내용물이 나오지 않도록 한 제품이다. 말 그대로 ‘정해진 분량만 내보내는’ 마개인 것이다. 정량 토출캡은 작년에 일본 패키지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제품으로,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신기술이다. 식초, 간장, 식용유 등의 액체 조미료 포장에 적용되면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생활용품 포장재는 소비자들의 사용 편리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으며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생활용품들에도 그 나름대로의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생활용품 포장의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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