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소문난 맛집을 물려받는 2세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휴일에 한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빡세게 일해야 하는 3D 업종인 탓에 자식들은 맛집을 가업으로 물려받는데 주저했다. 부모 역시 심정은 비슷했다. 자녀들이 번듯한 대학 나와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 식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바뀌고 있다. 부모가 운영하는 맛집을 가업으로 이어받는 2세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들 2세들은 부모의 ‘손 맛’에 현대적 경영 시스템을 접목해 어엿한 외식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등 성공 스토리를 엮어내고 있다. 신선설농탕, 또순이, 모박사 부대찌개가 대표적인 사례다. 맛집을 가업으로 이어받아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는 2세들의 경영 노하우를 들여다봤다.

검증된 ‘맛’이 ‘경영’ 만나

번듯한 외식기업으로 점프

 ‘맛집 가업’성공사례 1 신선설농탕 오청 사장

3개 브랜드 거느린 외식 기업으로 키워내

 ‘신선설농탕’이 SBS 주말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드라마의 높은 인기 못지않게 메인 협찬기업인 신선설농탕도 싱글벙글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매출이 20% 이상 늘어났다. 가맹점 문의도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극중 배경이 되는 촬영 장소는 신선설농탕의 공장과 매장이다. 드라마에서 선우환(이승기 분), 고은성(한효주 분)이 함께 일하는 곳으로 나오는 ‘2호점’은 신선설농탕 김포점이다.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해당 점포는 매출이 ‘찬란하게’ 뛰었다. 

드라마 PPL(간접광고)로 입소문이 증폭됐지만 신선설농탕은 외식 업계에선 이미 주목 받는 기업이다. 2세가 조그마한 식당을 기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신선설농탕 대표는 1992년 가업을 이은 오청(44) 사장. 당시 2개의 매장을 물려받은 그는 신선설농탕을 주력삼아 (주)쿠드라는 큰 외식 기업으로 키워냈다. 쿠드는 신선설농탕을 비롯해 고기구이 전문점 ‘우소보소’, 건강 한정식 ‘수련’ 등을 런칭했다. 서울 잠원동에서 기사식당으로 출발한 신선설농탕이 어엿한 외식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오 사장은 “최상의 품질, 최고의 정성”이 사업 확장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은 후 음식 맛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바꿔 나갔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점원, 점장, 공장업무 등을 두루 거치며 최고경영자에 올라선 그는 가장 먼저 부모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부모들은 점포 확대를 원하지 않았고 안정적으로 영업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기사식당이 성공하기 이전까지 수없이 망했던 아픈 경험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 오 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변화와 모험 없는 근본 한계를 설파하며 일대 혁신에 나섰다. 특히 주변의 친척과 지인들 중심의 주먹구구식 운영을 과감하게 바꿔나갔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맺고 끊음의 부족으로 규율의 무질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규모로 할 땐 가족 경영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이 되려면 가족 경영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가족 경영의 장점도 있다. 그러나 그 장점 못지않게 단점이 많아 과감히 메스를 가했다.

오 사장이 꼽은 신선설농탕의 경쟁력은 총 7가지다. 첫째, 중앙공급식 시스템(CK)을 갖추고 당일 생산 당일 배송을 통한 모든 매장의 맛과 품질에 대한 경쟁력 확보다. 유통기한이 단 하루인 셈이다. 둘째, 위생을 바탕으로 최첨단 주방 시스템을 도입, 항상 일정한 맛과 품질이 나올 수 있도록 관리한다. 셋째, 통일된 조리 매뉴얼과 서비스 매뉴얼에 의한 매장 운영 시스템이다. 넷째, 업계 최초로 포장 판매를 통한 테이크아웃 도입.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섯째,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판매의 다각화다. 여섯째, 획일화된 매장 형태 지양. 각 점포별로 특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외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실내는 자연주의 웰빙 인테리어를 통한 공간의 고급화에 앞장섰다. 이는 서민적인 설렁탕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마지막은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과감히 바꾸는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추진력이다.      

이는 신선설농탕의 성장과 쿠드라는 덩치 큰 외식 기업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물론 2003년 광우병 파동 때 고된 시련을 겪기도 했다. 당시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의 아픔을 감내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쿠드의 대표 브랜드는 역시 신선설농탕이다. 현재 35개의 매장 가운데 가맹점은 10개에 불과하다. 직영을 우선시하며 가맹점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았다. 오 사장은 “절제하지 않고 검증하지 않은 무모한 가맹점 확장은 가맹점을 관리하는데 뒷감당을 어렵게 한다”며 “관리가 가능한 범위에서 가맹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맹점은 2004년부터 모집했다. 가맹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광우병 파동으로 어려워진 내부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일부 가맹점에서 관리상의 문제점이 적지 않게 드러나 한때 15개였던 가맹점을 철저한 검증을 통해 10개로 줄였다.

신선설농탕은 가맹점을 희망한다고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는다. 오 사장은 “앞으로는 양적 확장을 위한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과 동일한 질적인 성장과 발전이 가능한 위탁 가맹점만을 내겠다”고 분명히 했다. 때문에 희망자의 이력부터 성향, 자질 등을 꼼꼼히 살펴 본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는지 분석한다. 그 과정을 통과해도 매장의 실질적인 운영권은 없다. 단지 투자 가맹점의 점주가 될 뿐이다. 오 사장은 “맛과 서비스의 최고 유지 및 발전 정책에 대한 통일된 적용을 위한 방편”이라고 밝혔다. 

쿠드의 경영 이념은 인간중심의 경영과 배움, 나눔 그리고 행복이다. 특히 나눔은 오 사장의 경영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근간이다.

본사 차원에서 ‘사랑의 밥차’를 운영해 매주 3~5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찾아가 따뜻한 설렁탕을 무료로 배식한다. 각 매장은 자체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이 직접 지역사회의 시설기관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설렁탕을 무료배식하거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신규매장 ‘오픈 당일 매출, 지역사회 전액 기부’는 쿠드의 전통이다. 지난 4월30일 오픈한 서울대역점은 당일 매출 전액인  630만7000원을 ‘관악구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에 기탁했다. 인천 작전점은 7월3일 문을 열어 그날 매출 전액인 1289만2900원을 ‘계양구청 주민생활지원과’에 갖다 줬다.

오 사장 역시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커서 절대 식당은 하지 말고, 월급쟁이가 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기사식당을 도운 것이 외식업의 산교육이 된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1981년 잠원동에 설렁탕집으로 정착하기 전까지 부친의 식당이 수십 번 실패했기 때문에 본인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꿈꿨다. 한양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도 했지만 부모가 어렵게 정착시킨 가업의 더 큰 성공과 기업화를 위해 대를 잇기로 결심했다.

그는 ‘부모와 다르게’를 사업 모토로 삼았다.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경쟁 외식 기업과 다르게’로 나아갔다. “외식업은 돈만 되면 경쟁 기업을 똑같이 모방해 상도의가 실종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망하고 맙니다.” 그는 “우리나라 외식업이 발전하려면 창조적인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맛집 가업’성공사례 2 또순이 장대규 사장

“장사와 사업은 다르다”…전국 8도 입맛 맞춰 소스 개발

외식업체 ‘또순이’는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서울 신림동 또순이순대가 모체다. 장대규(33) 또순이 사장은 창업자의 2세로 2003년 경영권을 맡았다. 창업주인 모친이 본점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1976년 생계를 위해 신림동 4.95㎡ 가게에서 순대장사를 시작했다. 기존 순대와 차별화하기 위해 야채를 넣은 순대볶음을 판매한 것이 인기몰이를 했고 그 일대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순대볶음 타운이 됐다. 모친이 그곳의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장 사장은 태어나면서 모친의 등에 업혀 신림동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 일찍이 이 길이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곧바로 가업을 이어 받았다.

장 사장은 우선 “장사와 사업은 다르다”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본점인 신림동 또순이순대는 여느 중소기업보다 나은 매출을 올릴 만큼 그 맛을 인정받고 있지만 전국 프랜차이즈 사업 확대를 위해서 변화를 추구했다. 소스의 표준화가 그것이다. 지역에 따라 고객의 호불호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전국 8도의 입맛을 잡는 소스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모든 사람들 입맛에 맞게 순대볶음을 표준화하는 작업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어렵게 표준화된 소스 개발에 성공한 것. 장 사장은 고객 다변화를 위해 가맹점에서 내놓을 메뉴를 개발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쾌적하게 만들었다. 이는 적중했다. 그간 순대 전문점들의 남성 중심의 한계를 극복해 젊은층과 여성층, 가족단위 고객의 발걸음이 늘어난 것이다.

장 사장은 또순이가 외식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맛과 메뉴의 표준화라고 밝혔다. “시장의 맛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표준화한 것이 성공 포인트입니다.” 또순이 순대는 현재 육수에서부터 소스를 비롯한 주요 품목을 공장에서 표준화해 배송하고 있다. 사업 초기에는 표준화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다. 사실 이전 순대 전문점들은 순대만 배송하면 끝이었다. 나머지는 각 가맹점이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맛이 제각각 일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순이 순대는 모든 재료들을 세심하게 본사에서 전량 공급한다. 문제는 처음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다보니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던 것. 이제는 그런 과정이 노하우로 축적돼 경쟁 업체를 멀찍이 따돌리는 경쟁력이 됐다.

그는 기업화에 앞서 작은 조직이지만 전문화된 팀제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CEO답게 조직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천한 것. 조직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고 규모를 키우다 모래성이 될 것을 우려해 각 부서를 전문화해 운영한 것이다. 초기에는 부서 구분이 되지 않고 뒤엉켜 시간과 비용이 낭비됐지만 정착된 이후에는 팀제로 회사가 돌아가고 있다. 전문개점팀과 메뉴개발팀은 또순이의 핵심부서다.

“가맹점은 처음 오픈할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전문개점팀이 상권에 맞는 개점 전략을 세워 각 가맹점의 초기 마케팅과 판촉, 서비스의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메뉴개발팀은 지속적인 신메뉴 개발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전문개점팀과 메뉴개발팀의 활약 덕분에 또순이는 2006년 한국프랜차이즈대상 연구개발부문 대상을 받았다. 또순이는 직영점을 통해 슈퍼바이저(점장)를 적극 양성하고 있다. 슈퍼바이저는 직영점에서 7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성공 경영 비법을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장사 마인드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를 접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는 안목을 키웠고, 직접 체험을 통해 현장의 노하우를 쌓았다. 둘째는 도전정신이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통해 성장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순이는 순대 전문점으로서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가 됐다”고 강한 자부심을 나타낸 그는 “이제 물류 매출만으로도 회사는 안정적인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의 경영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미리 변화와 모험을 준비하고,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또순이의 가맹점은 82개다. 가맹점 희망자는 수차례 심층 인터뷰를 거쳐야 하며 운영 능력을 평가받아야 한다. 인터뷰를 통과한 뒤에도 엄격한 교육을 받은 후 가맹점을 오픈할 수 있다. 그는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창업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장 사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두레정가보쌈’ 브랜드는 올해 10호점 이상을 출점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다른 보쌈 브랜드와는 맛과 메뉴에서 충분히 차별화 돼 승산이 있다”면서 “순대에 이어 보쌈 브랜드에서도 국내 최고가 되는 것이 현재 당면 과제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맛집 가업’성공사례 3 모박사 부대찌개 주효석 사장

어머니는‘맛’동생들은‘조리’…분업화된 가족경영으로 성공

경기도 안성의 소문난 ‘모박사 부대찌개’는 창업주의 아들 주효석(44) 사장이 본격적인 경영 시스템을 도입, 외식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때 청주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안정적인 생활을 때려치우려 하자 부인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주 사장은 2000년, 경쟁력 높은 가업을 전국 규모로 키우는 것도 의미 있다고 판단, 뛰어들었다. 여기엔 창의적인 사고가 먹혀들지 않는 관료조직의 답답함도 한몫 톡톡히 했다.

그는 창업주의 2남1녀 중 장남으로 가장 늦게 합류했다. 주 사장은 모박사 부대찌개의 성공요인은 형제 경영이라고 내세웠다. 교사인 자신의 부인을 제외하고 남동생 가족과 여동생 가족 등이 모박사 부대찌개에서 핵심 업무를 맡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즉, 철저히 분업화 됐다. 맛을 결정하는 육수는 여전히 모친이 손을 떼지 않고 있다. 육수를 결정하는 가마솥의 물 조절, 불 조절은 아직도 모친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조리를, 부친은 직영 농장 관리를, 가맹점 관리는 매제가 맡고 있다. 주 사장의 몫은 총괄경영이다.

모박사 부대찌개는 원래 기사식당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김치가 들어가지 않는 부대찌개로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소문난 맛집 반열에 올랐다.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차를 타고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들이 생기는 등  매출이 급성장했다. 특히 외환위기 불황에도 매출이 줄어들지 않고 성장세를 타자 그는 외식 기업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주 사장은 기사식당이 아닌 외식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본점의 규모를 더 확장하고 내부 인테리어와 주방 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맛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는 일대 혁신 프로젝트였다.

새말식당이라는 간판도 내렸다. 모친의 성(姓)과 손 맛,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모박사 부대찌개’로 바꿨다. 유사한 맛으로 장사에 나서는 경우를 막기 위해 ‘고유 맛’에 대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부모가 개발한 김치 없는 부대찌개에 대해 2006년 9월 특허청에 발명특허를 낸 것이다.

평소 풍수에 관심이 많은 그이지만 본점의 지리적 위치가 워낙 좋아 현 위치를 떠나지 않고 지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장사가 잘 된다 하더라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선 안 된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세심한 준비 없는 확장은 이전의 맛집 이미지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즉, 딴 짓하지 말라는 얘기다. 부모가 어렵게 성공시킨 맛집의 대를 이은 2세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대표적인 오류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즉흥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 사장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소문난 맛집이다 보니 매출이 많을 테고 그러면 주머니가 두둑하겠죠. 그것을 겸손하게 쓰지 않고 펑펑 쓰거나 럭셔리하게 사업한답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결과야 뻔하지 않겠어요.”

맛집으로 유명해질수록 고객을 중시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모박사 부대찌개가 강조하는 ‘1인분 철학’은 고객 응대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객이 1인분을 원하더라도 동일한 맛으로 먹을 수 있도록 정성껏 준비한다. 이는 자연스레 100명 고객, 100만 고객으로 확대된다는 믿음이 있다.

모박사 부대찌개는 2002년 첫 가맹점 오픈 후, 7년째에 접어들었음에도 현재 가맹점은 20개에 불과하다. 결코 많지 않은 숫자다.

이에 대해 주 사장은 “가맹 사업의 핵심은 2대째 축적된 경영 비법을 100% 전수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창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어발식 확장은 가맹점이나 본사 모두 위기를 맞을 수 있게 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숫자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간혹 2세들이 가맹점 숫자가 많은 것이 규모도 확대되고 대외적으로 보기 좋다고 무작정 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뭐합니까. 본사가 관리할 수준이 안 되면 가맹점과 서로 멱살잡이하고 싸우다 같이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주 사장은 “모박사 부대찌개는 가맹점 늘리기가 아닌 실패 없는 성공 창업을 추구한다”며 “맛 10년과 멋 10년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성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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