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카드가 분사를 선언했다. 국민·우리·기업은행도 카드 부문 분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대세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은행의 그늘에서 얻은 과실이 적지 않다는 이유다. 카드업계에 불고 있는 ‘분사 바람’의 이해득실을 따져봤다.

은행계 카드 ‘독립선언’…

카드업계 지각변동

SKT·하나카드 밀월관계,

보고펀드는 BC카드 인수 가시화

요즘 카드업계는 조용하지만 날선 스카우트 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가을에 카드사업 부문 분사를 계획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 때문이다. 하나카드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카드설립기획단’ 내부에 별도의 인력 충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삼성·현대·롯데 등 전업계 카드사 직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인재 사냥에 나서고 있다. 분사 후 조직이 커질 것에 대비해 주로 마케팅이나 전산 쪽 경력직을 타깃으로 인력 수혈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나은행의 카드사업본부 임직원 수는 현재 전산 인력을 포함해도 500여 명 정도다. 2000~3000명에 이르는 삼성·현대·롯데 등 전업계 카드사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하나카드는 분사 후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기 위해 그룹 내 유휴인력을 활용하거나 외부 인력 수혈 등을 통해 최소 1000명 이상의 조직 규모를 갖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570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하나카드는 분사 후 업계 선두권 수준인 회원 수 900만 명을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하나카드가 우수 인력을 싹쓸이할 태세를 보이자, 전업계 카드사들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내심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지난 2001년과 2002년 현대카드와 롯데카드가 설립됐을 때도 삼성·LG·외환·우리 등 당시 전업계 카드사 직원들 상당수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카드업계 판도를 뒤바꿀 이슈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SK텔레콤(SKT)이 하나은행과 손잡고 신용카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복안을 밝힌 데 이어, 토종 사모펀드(PEF)인 보고펀드는 비씨카드 인수를 가시화한 상태다. KB금융, 농협, 기업은행, 우리금융 등도 카드사업 분사를 확정했거나 혹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카드업계는 이 같은 지각변동 조짐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은행, 수익구조 다변화 효과 기대

2003년 신용카드 부실사태 이후, 국민·외환 등 대다수 카드사들은 은행의 우산 아래로 속속 들어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들은 카드 부문을 떼어내 독자적인 신용카드 회사로 만들고, 적극적인 영업과 마케팅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은행을 주축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들이 카드나 증권, 보험 등 계열사 수를 늘려 구색을 맞추려는 경향이 짙어지는 추세다.

정부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은행계 카드사들의 분사를 물밑에서 조용히 지원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업계 카드사가 늘어나면 그만큼 업계 경쟁이 치열해질 테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가맹점 수수료가 내려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카드 부문 분사를 통해 지주회사 체계에서 은행에 치우쳐 있는 금융그룹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것 역시 숨어 있는 목적이다. 은행계 카드사들은 여행업이라든가 보험판매 등을 직접 하지 못하고 대행을 주고 있다. 이들 업무는 은행의 부대업무 범위에 속하지 않아 직접 영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계 카드사들은 이런 고수익 업무를 직접 관리할 수 없어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푸념한다.

카드 부문이 은행 내 하나의 사업부로 있을 때와 독립법인으로 존재할 때를 비교해 보면 각각 장단점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유리하다고 어느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선 카드 부문은 독립법인으로 있으면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에 집중하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사실 카드 부문은 은행 지붕 밑에서 작은 사업 부문으로 있으면 비(非)주류 범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은행에선 예금이나 대출, 외환 등이 중요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카드 부문은 크게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독립법인이 되면 은행 내 하나의 사업부로 있을 때보다 의사 결정이 신속해지기 때문에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데에 훨씬 유리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들은 거대 조직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별도 법인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카드를 전문으로 하는 전업계 카드사에 비해, 은행계 카드사들은 영업을 할 때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지난 6월부터 대다수 전업계 카드사들이 증권사들과 손잡고 자산관리계좌(CMA) 신용카드를 속속 내놓고 있는 것과 달리, A은행 산하 A카드는 여전히 CMA 신용카드를 출시하지 않고 있다.

A카드 관계자는 “카드 부문에선 다른 증권사와 제휴해 적극적으로 CMA 신용카드 상품을 내놓고 싶지만, 은행 눈치를 봐야 하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증권사의 CMA가 은행 월급통장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A은행의 살을 도려낼 수도 있는 CMA 신용카드를 A카드가 내놓을 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업계 카드 등 다른 경쟁사들은 이 같은 신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A카드 입장에선 답답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카드사가 독립해서 활동할 때의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별도 회사로 은행에서 분리되면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가 어려워진다. 또 공격적인 영업에 따른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지 때문에 지난해와 같은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 상황이 오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영업비용이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은행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면, 은행 영업점 직원들에 대한 영향력이 아무래도 예전처럼 크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은행 영업점 평가를 할 때 카드가 일정 부문 차지하는 게 보통인데, 분사하면 자회사의 일을 해주게 되는 것이어서 한 지붕 밑에 있을 때처럼 공격적으로 영업을 도와주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립 카드사가 되면 부족해진 영업력을 채우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영업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나카드·SKT 밀월 ‘시선집중’

글로벌 금융위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4월 말 카드 부문을 분사시켜 오는 8월 독립법인인 하나카드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시장을 상당히 당황시킨 전격적인 발표나 다름없었다. 시장에서 하나금융이 카드 부문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하나금융은 카드사 분사 방안에 대해 오래 전부터 구체화하고, 카드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와 관련한 컨설팅도 받고 실제 전산작업도 진행해 왔다. 다만 카드 부문 분사 시기가 이렇게 빨리 확정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하나금융은 당초 카드 유효회원 수가 500만 명이 넘으면 카드 부문 분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었다. 유효회원은 최근 6개월 내 한 번 이상 카드를 사용한 회원을 말한다. 지난 3월 말 하나은행의 카드 회원 수는 570만 명, 유효회원 수는 350만 명으로 카드사 분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이 신용카드 부문을 분사하기로 확정한 것은 과감한 역(逆)발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내부적으로 결론을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카드의 회원 수 기준 시장 점유율은 약 4%로, 카드업계에선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과감한 시장 공략이 없으면 시장 판도를 흔들기가 어렵고, 공격적으로 시장을 선점해 가려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라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모든 카드사들이 최근 들어 소극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위험 관리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카드 사업에서 후발주자인 하나은행으로서는 선두권을 추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평소 “카드는 금융업과 유통업의 중간 영역”이라며 카드만의 독자적인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카드사들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하나카드 분사 문제에 유독 신경 쓰는 까닭은, 바로 SKT 때문이다.

‘SKT는 파이낸스 사업과 관련해 하나카드의 지분 취득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SKT가 내보낸 이 한 줄짜리 공시는 카드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나카드가 지금은 업계 하위권이지만, OK캐쉬백 등으로 국내 최대 수준의 고객(3000만 명) 데이터베이스(DB)를 보유한 SKT와 결합하면 단숨에 판도를 뒤집는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SKT와 짝짓기하면 하나카드는 양질의 고객 정보와 유통망, 그리고 방대한 마케팅 노하우 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나금융 측은 공시를 통해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했지만, SK 측은 “하나카드 지분 취득을 포함한 금융 사업을 검토 중”이라면서 한 발 앞선 입장을 보였다.

SK그룹은 사실상 국내 최대 규모 고객 DB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부가가치가 큰 금융 부문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왔다. 이 때문에 수년 전부터 SK가 금융 쪽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금융시장 직접 진출을 추진해 오고 있다는 뉴스가 단골처럼 언론에 등장해 왔다. SKT는 지난 2002년 전북은행 카드 부문을 인수하려다 포기하기도 했다.

카드사들은 SKT가 카드 상품 자체로 정면승부하기보다는 통신과 신용카드 연계 등 SKT 자체의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하나카드를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업계 카드사 관계자는 “초기엔 아무래도 통신비 대폭 할인 또는 SKT 멤버십과 연계한 제휴 부가서비스로 치고 나올 확률이 높은데, 그럴 경우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존 전업계 카드사들의 상품 설계 노하우가 부족하거나 부가서비스 혜택을 부실하게 주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나카드의 예상치 못한 빠른 분사 진행 소식에, 카드사들은 적잖게 부담스러워하고 또 한편으론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하나금융의 분사 소식을 듣고, IBK카드의 분사 시점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향후 경기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점과 회원 수가 550만 명 정도로 많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내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농협은 10~11월쯤 독자 브랜드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신한 등 전업계 카드사들은 은행들의 카드사 분리 움직임에 대비해 통신회사나 유통회사들과 제휴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보고펀드, BC카드 인수 ‘안개 속’

하나카드가 시장 진입 초기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면, 카드업계간 경쟁이 지금보다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카드 사용이나 카드 가입을 독려하기 위한 무리한 마케팅이 횡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따먹기’식 경쟁이 불가피해 회원 수가 많은 카드사일수록 타격이 클 것이란 지적이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경제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신용카드를 적어도 서너 장씩 갖고 있는데, 이런 고객을 뺏어 오려면 단순히 대대적으로 광고만 한다고 해선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과감한 할인 혹은 포인트 적립 혜택 등을 제공해서 꽁꽁 닫혀 있는 고객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혈투’가 벌어질 것은 불을 보 듯 뻔하다는 예상이다. 카드 모집인을 대거 모집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밀어내기식으로 카드 회원들을 모집해 외형 확장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분사 초기, 하나카드의 과감한 공격 마케팅에 맞서려면, 경쟁 카드사 입장에선 지금보다 수익이 많이 줄어들고 비용은 더 많이 써야 하는 역(逆)마진형 상품을 내놔야만 고객 눈길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하나카드는 지난 2006년 초 대중교통 요금 할인 혜택을 푸짐하게 탑재한 ‘하나 마이웨이 카드’를 처음 출시해 2개월 만에 100만 명의 회원을 유치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출혈경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자, 1년여 만에 신규 가입을 중단한 바 있다.

하나카드 측은 “무리한 할인경쟁보다는 금융과 유통, 통신 서비스를 융합한 복합 상품을 개발해 카드 시장 전체를 키워나가는 전략을 펼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며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출혈 경쟁 우려를 일축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카드사별 특성이 분명해지면서 카드 시장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금융 당국에서 시장이 건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토종 사모펀드(PEF)인 보고펀드의 비씨카드 인수도 카드업계의 재편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변양호씨가 대표로 있는 보고펀드는 최근 비씨카드의 2대, 3대 주주인 하나은행, SC제일은행과 지분 매매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이 보유한 비씨카드 지분은 각각 16.83%, 14.85%. 보고펀드는 이를 합한 31.68%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두 은행과 합의한 상태라고 한다.

보고펀드가 비씨카드를 점찍은 이유에 대해, 카드업계 관계자는 “비씨카드는 주인 없는 회사인 데다 국내 최대의 카드 결제망과 가맹점 등 탄탄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비자나 마스타카드와 같은 네트워크 사업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모펀드가 눈독을 들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고펀드는 비씨카드를 인수하더라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카드 프로세싱 대행업무 쪽으로 업무범위를 제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카드나 신한카드처럼 자체 카드를 발급하는 식의 금융업은 하지 않고, 프로세싱 대행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쪽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비씨카드는 현재 11개 은행 및 카드사가 99%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비씨카드는 자체 영업이나 회원관리는 하지 않고 회원 은행에 대한 카드 발급, 결제 처리, 가맹점 관리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다만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9개 주주은행들이 지분매각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보고펀드의 비씨카드 인수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비씨카드의 독특한 주주 구성 특성상, 보고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잔여지분을 동시에 매입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 채널을 구축할 예정인 농협이나 기업은행의 경우, 비씨카드와 관계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지분 매도보다는 보유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이경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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