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위기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정작 본질적인 진단은 도외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67) 이사장은 한국 경제의 본질적인 위기구조를 얘기했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기력이 빠져버린 경쟁력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심각한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10년 전 ‘환란’ 역시 누적된 위기구조 때문이었고, 현재의 경제난도 구조적 결함에 따른 필연적 위기라고 김 이사장은 강조했다. 2008년 12월1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시장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나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해법에 대해 대담했다.

“인적쇄신이요? 대통령의 경제철학 문제지 각료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단언했다. 현재의 위기 원인을 글로벌 금융위기 탓으로 돌리려는 안이한 생각은 한국 경제를 더욱 수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도 했다. 

현재의 위기는 IMF 관리체제 때의 외환위기상황과 종종 비교된다. 때문에 10년 전과 현재의 외환보유고를 놓고 위기니 아니니 하는 분석까지 대두되곤 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문제는 외환보유가 아니라 외환시장 자체의 불안”이라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외환보유고가 충분함에도 외환시장이 이토록 불안한 이유에 대해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와 글로벌 위기의 영향이 맞물리면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경제의 경제 기초 여건(fundamental)에 대해 국내외 시장 참가자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문제 접근을 위한 4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의 성격, 본질, 배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정확한가. 둘째,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갖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셋째,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는 무엇인가. 넷째, 지금의 글로벌 위기의 성격과 심각도는 어떠한가.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를 정확히 진단하려면 이 같은 전제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는 ‘시장의 신뢰 저하’로 설명된다. 한국 경제는 왜 신뢰를 잃었을까. 징후는 곳곳에서 이미 충분히 감지되고 있었다.

한국 경제의 신뢰 하락 원인에 대한 그의 진단은 이렇다. 우선 경쟁력 구조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분기별 성장률이 꾸준히 하향추세를 보였다. 교역조건도 계속 악화됐다. 경상수지가 어느새 적자구조로 전환된 점도 신뢰 하락의 원인이다. ‘부채 경제’ 구조로 바뀐 점도 주요 원인이다. 특히 가계부채가 과다하게 늘어난 점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제반의 문제는 2001년부터 서서히 드러났다. 가계가 종전의 금융자금의 공급자 입장에서 수요자로 전락하기 시작하면서 불안한 구조가 이어졌다. 현재 가계부채 규모는 7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1998년부터 지금껏 약 450조원이나 증가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약 126% 규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유발한 미국보다 훨씬 더 빠른 증가율이다.

금융부채가 과다한 점은 심각성을 더 키웠다. 은행의 예대 비율은 약 140%다. 부족분은 은행채나 CD, 외화차입 등으로 충당했다. 은행의 단기차입도 과다하다. 가처분소득 대비 148%나 된다. 미국보다 훨씬 더 빠른 증가율이다. 순채무국으로 전환된 점은 신뢰 하락의 직접적인 이유다. 게다가 직전 정부에 이어 현 정부까지 문제해결은커녕 문제인식 능력도 없어 보인 점 등은 시장 신뢰를 빠르게 떨어뜨렸다.  

‘충분한 외환보유고’의 함정

김 이사장은 이어 ‘달러의 수급 균형 붕괴’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위기가 오기 전 이미 고유가, 고자원 가격 등으로 달러 수요가 급등했고, 또 유학 송금 등 일부 계절적인 요인도 있었다. 2006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달러 환전도 같이 진행됐다. 빠져 나간 달러는 매월 35억달러 규모나 됐다.

경상수지 적자 전환으로 외환 공급은 감소세를 벗어나기 힘들었고, 위기를 감지한 수출 기업들은 달러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내놓지 않았다. 세계 경제 침체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환차익에 대한 기대 때문에 달러를 움켜진 이유도 있었지만 불안한 시장 때문에 돈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기관들의 신용이 하락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달러 차입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금융기관들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확보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외환 수급 불균형은 심각한 지경으로 빠져들었다.

김 이사장은 “충분한 외화보유고는 수급 안정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외환보유고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당시 정부는 외환보유고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IMF 관리체제하에서 빨리 탈출하자는 전 국민적인 캠페인이 있었고, 이 캠페인의 가시적인 성공은 외환보유고를 빨리 채우는 것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는 수출이 급선무였다. 이 과정으로 인해 ‘경쟁력 악화’라는 심각한 결과가 발생했다. 일단 팔고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값 받지 못하고 물건을 세계 시장에 내놓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외환보유고 채워 넣기에 급급했던 이 과정 때문에 구조적 왜곡이 뒤따랐는데 이로 인해 내·외수의 불균형이 초래됐고 원화의 저평가에 따라 소득이 저하됐을 뿐만 아니라 소비가 감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며 “결론적으로 외환시장의 정상적 성장 기회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외환 수급 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면 “궁극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에 대한 본질과 배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이른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의 유동성 위기의 본질은 국내적으로는 구조적 위기, 국제적으로는 신뢰의 위기였다. 하지만 정부는 ‘빨리 빨리’ 외환보유고를 채워 넣었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고 샴페인을 터트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는 잘못된 인식에서 초래된 외환정책의 총체적 실패였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한국 경제는 고성장 경제와 고확장 경영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규모의 경제에 집착했기 때문에 내실을 다지는데 소홀했다. 자연스럽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괴리, 중견기업 출현 미미, 고 생산성 부문과 저생산성 부문의 괴리, 인적자원 양성 시스템의 미비, 창조적 기업의 출현 가능성 한계 등 한국 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인 경쟁적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환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가 초강력 금융시장안정종합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때와 외환보유액을 비교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다, 아니다’는 논란까지 있었습니다. 시장 불안 심리가 악화되고 있는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국가부도 상태의 나라들을 제외하고, 한때 우리나라는 가장 심한 절하율을 보였습니다. 2008년 12월 현재 약 50%까지 하락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불안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때 최고 2600억달러의 높은 외환보유고 수준을 보였고 이는 단기채 약 1600억달러를 감안할 때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채 비중을 60% 수준으로 가져갈 수 있어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인정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의 불안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수급상의 요인에 더해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원인과 배경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찾고 정면으로 대응한다면 중장기적으로 문제해결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먼저 수급상의 요인부터 설명하자면요. 

 위기가 구체화되기 이전에도 유학경비 같은 계절적인 요인과 고유가 고자원가에서 오는 수입가격의 급격한 상승 등의 요인이 있었습니다.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순매도를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거죠. 환전을 위한 외환 수요도 증가했습니다. 1996년부터 이미 시작한 이런 현상으로 1997년 6월부터는 월평균 36억달러가량이나 빠져나갔습니다. 이미 과다한 단기채를 가진 금융기관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달러 차입이 어려워지자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확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출 기업들은 수출로 벌은 달러를 외환시장에 내놓지 않고 계속 보유하려고 했죠. 2008년 들어와서는 경상수지조차 적자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국 경제의 신뢰 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봅니까.

 신뢰 위기는 수급상 요인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첫째는 아마도 현재의 한국 경제의 경제 기초 여건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 상실과 이를 수습해 갈 현 정부의 경제운용 능력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인 시각일 것입니다. 다음으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초래된 세계 경제의 위기의 조기 수습과 경기의 조기 회복 가능성에 대해 범세계적으로 경제주체들이 불신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초래되는 신용경색의 영향 때문에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참가하는 국내·외인들이 외환을 보유하려고만 하지 내놓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뢰 상실은 이런 현상으로 설명되겠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나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환시장 규모가 너무 작습니다.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의 경우 시가총액 규모는 세계 11위고 외국인 비중은 세계 8위쯤 됩니다. 이에 비해 외환시장은 비슷한 주식시장 규모를 보유하고 있는 호주, 싱가포르, 홍콩의 3~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렇게 된 데는 1997년 외환위기의 본질과 배경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이유가 큽니다. 외환위기를 단순한 유동성 위기로 이해하고 외환 유동성의 확보를 위기에서 탈피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방안으로 생각했던 거죠. 국제수지 흑자에 따른 외환의 대부분을 정부가 보유고 형태로 확보했기 때문에 외환시장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외환보유고 확보에 집착한 나머지 이에 따라 수많은 경제 구조적 문제를 배태했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외환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합니다.

위기에 대한 교훈을 전혀 얻지 못했다는 이야깁니까.

 물론 여러 가지 교훈도 얻었지만,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전반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도 적절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위기의 본질과 배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면이 제일 중요하고, 또 위기 수습과정에서 구조개혁의 우선순위를 잘못 책정했던 과오도 있습니다. 위기발생과 극복에 대한 책임문제에 편견 없는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위기로부터의 적절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위기 가능성에 대응하는 경제의 구조적 건전성과 이를 운용하는 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계속 누적돼 온 현상이 금번 위기를 계기로 크게 증폭돼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를 글로벌 위기라고 하는 외풍 탓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고 구조적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자생적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그만 두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의 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보다 더욱 불확실하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위기상황이 예전보다 더 심각하는 진단이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외형상 외화 유동성 위기(달러 부족)로 나타났지만 이는 결과 내지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에 불과했고 그 본질은 국내적으로는 구조적 위기였고, 국제적으로는 신뢰의 위기였습니다. 이런 본질에 대한 규명 없이 단순히 외환보유고의 과다를 가지고 양 위기를 비교하려고 하는 데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 경제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것에 더해 금번 글로벌 위기가 갖는 문제점 내지 심각도를 감안한 한국 경제의 문제점도 고려돼야 합니다.

 지금은 분명히 1997년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그때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깊이를 가진 세계적 규모의 위기에 한국 경제가 편입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위기는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에서 발단된 점이 특징입니다. 1929년의 대공황 때 보였던 미국발 세계적 위기의 지속기간과 침체의 규모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도 이와 비슷합니다. 위기의 공조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비교적 괜찮겠다고 본 EU국 대부분과 일본까지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아시아 신흥경제권 중국도 큰 침체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유동성 위기에서 신용 위기로, 또 신뢰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도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신뢰의 회복이 없이는 근본적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또 금융위기에서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모습도 심각합니다. 설사 내년 중 금융위기가 일단락되더라도 실물경제의 회복은 그로부터 짧게는 1~2년 길게는 2~3년 걸릴 것 같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한편 저금리, 유동성 과잉이 초래한 위기인데 이를 다시 저금리와 추가 유동성 공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외형상 문제에 더하여 금융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을 불러올 정도의 복합적 성격을 가진 위기입니다.

정부, 기업, 가계, 너, 나 없이 금융권이 돈을 풀어주기만을 쳐다보고 있는 듯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융권은 ‘내 코가 석자’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습니다.

 금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외환위기 후 금융개혁과 금융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 금융에 엄청난 외형적 변화가 있었고, 규모도 대폭 확대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시장 기능이 확충됐습니까. 산업으로서 금융의 경쟁력이 향상됐습니까. 시장에 대한 정부 역할이 제대로 설정됐습니까. 본질적 측면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금융의 국제 경쟁력의 본질적 향상과 국내·외 신뢰의 확보에 미흡했다는 얘기입니다. 금번 위기를 맞아 그 실상이 만천하에 노출됐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적절한 교훈의 습득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금융권의 대응 능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금번 위기를 맞아 우리 금융기관들은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응을 하고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도 대출 증가는 미미했습니다. 지난 9월 중순 세계 금융위기 본격화 이후 30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이 있었습니다. 정부의 외화자금 지원, 유동성 비율 완화,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 지급준비예치금에 대한 이자 지급 등이었죠. 하지만 금융권은 대출을 늘리는 시늉만 한 채 실제로는 시중자금을 계속 빨아드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은행들이 BIS자지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14조원 이상의 잉여자금을 대출에 활용하지 않고 한국은행에 맡겨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수준의 신용경색에 대응하고 각종 리스크 요인에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뢰의 위기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금융권의 확장 위주 경영이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과거 약 5년 동안 시중은행들이 상당부분 차입, 특히 외화차입에 의존한 무모한 확장경영과 유동성 잔치를 벌이다가 결국 유동성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금융 감독 당국의 건전성 감독의 적절 여부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유동성 잔치의 실상이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주택담보대출 경쟁으로 주택담보대출 비율이 47%에서 51%로 상승한 점 그리고 본업인 예대업무보다 펀드와 보험 판매를 통한 수수료 챙기기, 사실상 140%에 달하는 예대 비율을 갖고 있는 점 또 중소기업 대출 경쟁으로 중소기업 대출 잔액의 급증 등의 현상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 어떻게 봅니까.

 앞서 지적한 실상의 배경에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가 있습니다. BIS자지자본비율이 하락했습니다. 2008년 6월부터 약 0.57%포인트 하락해 10.79%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당기순이익도 하락했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우리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긍정적 측면으로 보자면 비교적 낮은 연체율과 무수익 여신비율의 안정성 그리고 정부의 유동성 지원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많습니다. 우선 과도한 단기 외화부채를 들 수 있습니다. 국내 은행의 외채 규모는 약 1300억달러로 2004년 말 대비 150%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중 장기외채 610억달러, 단기외채 660억달러로 단기외채가 장기외채보다 많습니다. 2008년 3분기 중 상환해야 하는 외화차입금은 약 224억달러로 추정됩니다.

 그 동안 금융기관은 외형 확대 위주로 성장해왔고, 중소기업·가계대출 리스크는 계속 확대됐습니다. 조선업과 건설업의 부실 위험도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지속됐습니다. 2008년 1월부터 11월21일까지 외국인 주식투자의 순매도 규모는 46조2626억원으로 사상 최대인 2007년의 27조2000억보다 19조원 이상 많은 상황입니다. 여기에다 추가적 악화 요인까지 덧붙습니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경기 악화와 내수 침체가 장기화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의 부실화가 추가될 경우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적인 대응책을 꼽는다면요. 

 수립해놓은 지원 대책들은 우선 신속하게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금융완화정책으로 주기적인 유동성 공급도 추진해야겠지요. 또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통한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해야겠습니다. 아울러 부실기업에 대한 효율적인 구조조정도 진행해야 하고, 금융 감독 강화로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철저히 방지하는 대책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간 갈등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양측의 엇박자를 어떻게 봅니까. 부처간 사전조율이 아쉽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접근의 차이가 있는 것은 기관의 속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이 유일·최고의 목표입니다. 이에 비해 기획재정부는 경제운용 전반에 대한 총괄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좀 더 정교한 정책조정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선 좀 더 중립적이고 상위기관의 성격을 갖는 조정기구가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같은 때엔 진정한 의미의 컨트롤타워가 요구된다고 보는데, 경제부총리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좀 더 크게, 넓게, 멀리, 시야를 외부로 보다 구조적인 관점을 갖는 기구나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경제부총리제도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부총리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통령에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외채 지급보증, 원화 긴급지원, 부동산·건설경기 대책 등 정부가 내놓는 처방들이 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글로벌 위기의 성격을 감안할 때 성과의 발휘를 너무 성급하게 기대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금번 위기의 성격이나 심각성은 이미 말씀을 드렸고요. 정치적으로 다른 대안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지만 정부의 개입이 가져올 문제점을 사전에 충분히 감안하면서 정부 지원 대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으로 초래된 문제를 저금리와 유동성의 추가 공급으로 해결해야 하는 모순성과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다음에 초래될 과잉 유동성의 문제와 구조적 왜곡의 문제점도 미리미리 고려하면서 처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정부의 지나친 대책이 가져올 후유증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범세계적으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다녀간 짐 로저스(Jim Rogers; 로저스 홀딩스 CEO, 퀀텀 펀드 설립자)는 ‘망할 기업 살려 놓아 이번 금융위기 오래 갈 것’이라고 했고, 마크 파버(Marc Faber; 마크파버 리미티드 창립자 겸 회장)는 ‘한국이나 미국 가릴 것 없이 현 국면에서 정부 개입은 득보다 실이 많다. 각국 정부의 부적절한 개입 때문에 세계적 경기 침체가 최대 10년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좋은 예입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모두 아홉 번에 걸쳐 총 123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정부의 처방이 불가피하다는 전제하에 고려돼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일관성과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이 해야 합니다. 실체는 존속하고 주인이 바뀌는 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됩니다. 우선순위의 문제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 기준이 참고가 될 것입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이 시장에 충분히 주지돼 있지 않은 경우, 그리고 문제가 다른 기업들과 복잡하게 상호 연관돼 있는 경우, 관련되는 시장 참가자들의 금융 전문성이 높지 않은 경우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금융위기 대처능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현 정부의 대처능력에 대한 평가는 보류하겠습니다. 현재의 정부구조하에서는 모든 공과가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 내지 현 정부 전체의 경제 정책의 원칙성, 일관성, 효율성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인적쇄신 목소리가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경제팀 전면교체, 연말·연초 개각설 등이 심심찮게 흘러나옵니다. 이 시점에서 BIS자지자본비율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시스템으로서 정부의 효율성, 대통령의 경제철학과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 문제가 핵심이지 각료 수준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컨대 좀 더 정교한, 권위 있는 정책조정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제기되지만 현재로서는 대통령 이외에 이를 수행하는 기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복잡한 경제문제를 어떻게 다 알아 조정하겠습니까. 이런 상태에서의 인적쇄신은 정치적 의미 이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2009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우선 IMF 세계 경제성장 전망이 9월 3.9%에서 10월 3%, 또 11월 약 절반수준인 2.2%로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얼마가 더 떨어질지 모릅니다. 미국의 경우 0.7%, 일본 0.2%, EU 0.5%, 영국 1.3%, 중국 8.5%,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경제권은 3.9%에서 2.1%로 하향 조정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는 얼마 전 4% 내외(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 효과)로 얘기하다 오늘(12월6일) 2009년 경제운용계획에서는 3% 내외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각 경제연구소들도 대체로 3~4% 수준을 전망했지만 곧 추가 하향 조정할 것으로 봅니다. UBS처럼 극단적으로 마이너스로 보는 국제 금융기관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 상태에서 정확한 전망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국내외적 가변적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경제고, 또 정치나 안보 같은 비경제 요인이 유난히 많은데 지금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계량적으로 얘기한다면 플러스 성장만 하면 다행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런 때 우리는 ‘불황의 효용’을 살려야 합니다. 시장의 선별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기회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시장기능이 본질적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저는 평소 한국 경제의 장래는 전망이나 예측의 대상이 아니고 선택의 대상이라고 얘기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선택입니까.

 경쟁력 구조에 대한 선택, 경쟁력을 가져올 수 있는 경제와 경제운용 시스템에 대한 선택을 말합니다. 바로 이 선택이 저희 연구원이 지향하는 이념인 ‘시장으로의 귀환’입니다.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우리 경제의 위기구조의 본질을 직시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이 위기인지 알아야 적극적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정부는 경쟁력의 위기, 시스템의 위기, 신뢰의 위기, 유연성·적응성의 위기 등 위기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김인호는 이런 사람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등 경제개혁 실무 경험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경남 밀양 출생(1942년)으로 경기중·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미국 시러큐스대 맥스웰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학위를 받고, 경제학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행정고시 4회 합격 후 1967년 1월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관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경제기획원에서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통 관료의 길을 걸었다. 기획원 차관보 시절, 당시 조순 경제부총리를 도와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등 경제개혁의 실무총책을 맡으며 실무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대외경제조정실장 재직 중에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남북경협 등의 굵직한 난제를 처리하기도 했다.

1992년 경제기획원을 떠나 환경처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어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을 연이어 지냈다. 철도청장 시절 국유철도 경영혁신 운동을 펼쳤다.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초대 위원장 때엔 정부 규제완화 정책의 미비점을 냉정하게 비판했다. 덕분에 소신파로도 불렸다. 1997년 11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끝으로 오랜 관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에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원장, (주)와이즈인포넷 회장, 법무법인 세종부설 시장경제연구원의 운영위원장, 중소기업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8년 4월 독립재단으로 발전한 시장경제연구원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시장원리에 입각해 한국 경제와 기업경영의 문제점의 본질을 규명하고, 대안 제시를 위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과 각종 기관에 대한 자문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경제 각 분야에 걸친 집필, 기고, 강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부인 이진자씨와의 사이에 1남1여를 두고 있으며, 고전음악 감상이 취미다. 아마추어로서 KBS교향악단을 지휘한 특이한 경력도 갖고 있다.

김동현 기자 / 사진 : 박문수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