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우리 기업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이번 위기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그것과 다르다. 우선 외환위기가 아시아 몇 개국이 대상이었다면 이번 경기 침체는 지역과 산업을 가리지 않는 총체적 글로벌 위기라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은 기업 내부적으로 체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옴으로써 기초체력이 과거보다 많이 강해졌다. 또 채용 중단 및 명예퇴직과 같은 인적 구조조정 외에 적당한 방법을 찾기 어려웠던 과거에 비해 HR(인적 자원) 스킬이 매우 향상됐다.

잘못된 채용·인적 구조조정 더 큰 위기 부른다

그럼에도 불황이 닥치면 구조조정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지나오면서 우리 기업들은 위기 시 인재 관리에 실패하면 기업 문화가 파괴되고 결국 조직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인위적 감원 자제 움직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불황을 인재 확보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기업마다 위기의 감도가 같지 않기 때문에 인재 확보 전략도 동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애플은 2001년 IT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기에 오히려 R&D 예산을 증액하는 공격적 경영을 추구했다. 이에 상응해 기술 인력의 적극적인 확보가 인사관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반면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많은 중소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으며 생존을 위한 인력 효율화가 지상 과제였다. 이하에서는 기업이 처한 여건과 위기 대응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불황기 인재 확보의 포인트를 살펴보자.

● 적극적인 사업 확대를 노리는 기업

기업에 따라서는 불황으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거나 혹은 핵심 역량에 대한 과감한 투자만이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위기를 인적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경쟁사 대비 역량 차이를 벌리고 호황기에 비약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최근 도요타의 와타나베 사장은 “모든 비용을 줄여도, 기술개발비는 절대 줄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신기술 개발은 하루가 달리 급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 번 경쟁에서 밀리면 따라잡는 게 점점 불가능해진다. 이번 금융위기로 대부분 자동차 회사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고 있어 향후 도요타의 선두 지위가 더욱 굳건해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공격적인 확대 경영을 통해 불황을 극복하려는 기업이 주목해야 할 인재 확보 전략은 무엇일까.

확보 대상의 재조준

불황기를 인재 확보의 기회로 삼으려는 기업에게는 고도로 다듬어진 선택과 집중의 채용 전략이 요구된다. 흔히 불황기에는 고용 사정이 악화돼 인재 확보가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 HR 임원들 대부분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확보는 신입사원급을 제외하면 불황기라고 더 쉬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업률이나 급여 통계와 같은 자료에 의거해 인재 확보의 여건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업종과 직무에 따라 고용 시장의 사정이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황기일수록 잘못된 채용은 호황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큰 기회 손실을 안겨주게 된다. 따라서 회사의 채용 전략을 우선순위 관점에서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경력사원 중심의 확보 전략을 취하는 기업은 채용 대상자가 기업의 여건 악화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노동 시장에 나온 인재인지, 아니면 역량 미달로 조직에서 떠밀려 나온 사람인지 잘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제약 개발 회사인 아이시스(Isis Pharmaceuticals)는 평소 생명공학 업계의 우수 과학자에 관심을 두고 상시 모니터링을 하다가 불황기가 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 근무 계약을 맺는다.

한편 불황기라는 거친 시기를 신입사원 육성의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된다. 어려운 시기에 현장에서 단련된 직원은 높은 로열티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게 돼 호황기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보험 회사인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Insurance)는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캠퍼스 채용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해 취업 열망이 강한 졸업생들을 선별, 훈련시킴으로써 열정과 능력을 잘 활용하는 기업이다. 

 

기보유 인재의 단속 고삐 강화 

고용 사정이 악화되는 불황기에는 인재 유지 역시 상대적으로 용이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력 있는 인재는 예외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프로야구 선수의 예상외의 이적 사건은 좋은 사례다. 회사로부터 존중 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인재는 조직에 대한 애정을 거둔다. 이들은 경기가 회복되기도 전에 헤드헌터들의 말 한마디에 미련 없이 조직을 떠난다. 고성과 인재들은 불황에 상관없이 경쟁사들의 표적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인재 유출이 회사의 공격적 경영 전략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내부 인재에 한 번 더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M&A를 통한 인재 확보 선행적 대비

M&A 등 조직 확대가 예상되는 기업이라면 인수 대상이 되는 조직의 인재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인재 확보의 포인트다. 이를 위해서는 인수 기업의 인재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 사전에 통합 시스템을 점검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도 준비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M&A 사례의 80% 정도는 수익 창출에 실패하고 있다고 한다. 또 조직 융합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은 문화적 갈등, 핵심 인력의 유출, 생산성 감소, 의사 결정의 지체, 관리 방식의 충돌 등 주로 사람과 관련된 이슈라고 한다. M&A의 주체가 되는 기업일수록 HR 이슈의 선행적 대비가 인수 대상 조직의 인재를 놓치지 않는 핵심 포인트다.

현상 유지가 최우선 목표인 기업

불황기에 기업의 존망이 위태로울 정도가 아니라면 현상 유지 전략이 바람직할 수 있다. 당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직의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향후 재도약에 필요한 최소한의 채용, 유지, 활용이 불황 극복을 위한 인재 확보의 주요 포인트가 된다.

비용 절감은 목적이 아닌 수단

현상 유지가 관건인 기업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용 절감의 중요성이 커지게 된다. HR 비용 가운데 기업에 실제적 부담이 되는 것은 임금을 포함한 직접 인건비다. 이를 절감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이 채용 축소 및 감원이다. 그러나 이는 비용 절감에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조직의 인적 역량을 해치기 쉬우므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방안이다. 특히 감원을 고려하기에 앞서 무급휴직제, 인력 재배치, 임금피크제, 직무공유제(Work sharing 또는 Job Sharing) 등 다양한 제도의 실행을 검토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인재 확보 측면에서 볼 때 재무적 여건이 어려운 기업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비용 절감에만 매몰돼선 곤란하다. 적은 비용을 아끼려다 눈앞의 인재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용 절감이라는 전투에서 이기고 불황이라는 전쟁에서 지는 꼴이 된다. 비용 절감은 불황 극복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 중심적 인재 유지 전략 고려

재무 여력이 부족한 기업은 채용보다 인재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 이 경우 금전적 보상 외의 획기적인 대안으로 댐을 막는 형태가 아니라 댐의 수문을 열고 닫음으로써 물줄기의 방향과 스피드를 조절하는 방식의 시장 중심적 인재 유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업이 극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끝까지 유지해야만 하는 인재에 대해서는 수문을 굳게 닫아야 한다. 반면 짧게 혹은 일정한 기간에만 필요한 인력이라면 수문을 적절히 조절해 필요한 기간에만 활용하면 된다.

전혀 유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인력에 대해서는 수문을 활짝 열어 두면 된다. 시장 중심적 인재 유지에서는 이직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언제’,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게 된다. 따라서 주요 포지션의 승계 계획이 보다 중요해진다. 현상 유지가 중요한 기업일수록 인재 이탈에 따른 공백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최대한 활용하는 리텐션 방안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없어질 수 있지만 동료와의 관계는 쉽게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업무 범위나 자율권을 확대시켜 주는 것도 돈을 들이지 않고 인재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방안의 하나다.  

재배치를 통한 멀티플레이어 확보

인력 재배치를 통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은 채용에 상대적으로 큰 제약이 따르는 ‘현상 유지형 기업’에게 매우 유용한 인재 관리 방안이다. 이는 기업에 감원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재배치를 통해 보유한 인재는 호황기를 맞아 채용 및 교육 훈련에 들어가야 할 막대한 비용을 절감하게 해준다. 동시에 이들의 숙련된 업무 역량과 경험은 경쟁사보다 빨리 호황기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인력 재배치를 통한 인재 확보는 조직을 위기 대응형 체질로 바꾸어 주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양성된 멀티플레이어들이 조직의 변화 대응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비상 대책 강구가 절박한 기업

불황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온갖 노력을 다해도 생존 자체가 어려운 기업이라면 어쩔 수 없이 비상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이런 기업의 경우 채용보다 바람직한 구조조정을 통한 인재 유지가 더 중요한 관건이다. 구조조정은 어떠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잘못된 구조조정은 인재를 내쫓고 조직을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애플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1976년 설립된 애플은 높은 기술 역량을 가진 혁신적인 인재들로 이루어진 창의적인 조직이었다. 그러나 1985년 이후 실시한 네 차례의 인력 감원은 직원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어떤 직원들은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일부러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결국 인재의 손실에 더해진 열정의 소멸은 장기간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인간 존중의 원칙과 개별적 배려

어려운 때에 구성원들과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기업은 위기 극복 가능성이 높은 건강한 기업이다. 직원들의 신뢰를 잃게 되면 설령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더라도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이 불가능해진다. 외환위기 당시 노루표페인트는 직원 신뢰를 잘 보여준 기업이다. 회사의 어려움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도 위기 극복 시 최우선적인 재고용을 약속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대기업들로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P&G의 경우에도 떠나는 직원들이 회사에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한다. 매년 열리는 ‘P&G 퇴직자 사우회 모임’에 짧게는 1년 전에 길게는 30년도 더 전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모여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직원을 비용이 아닌 자산이자 ‘사람’으로 존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전체 대비 몇 % 인력을 잘라야 한다’는 숫자 놀음 식의 비상대책이라면 아예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직원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기고, 장기적으로 회사의 평판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의 경험을 공유하는 인재 확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기업들은 구성원들의 감성 관리에 무엇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국내 기업들의 CEO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0% 이상이 구조조정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종업원의 사기 저하와 인력 유출 등 인재 관리의 어려움을 꼽았다. 한 번 꺾인 사기는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M&A나 구조조정 등으로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구성원들 가운데는 적지 않은 수가 사기와 조직 로열티 저하, 체념과 불안감 등이 교차하는 소위 ‘생존자 신드롬(Survivor Syndrome)’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기업이라면, 구성원들이 새롭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처럼, 위기 극복의 경험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과 충성심을 가지는 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강진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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