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 능력이 정권 출범 채 100일도 되지 않아 낙제점이라는 평가와 함께 실망으로 돌변했다. 경제 회복은커녕 각종 거시경제 지표가 오히려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민간경제연구소는 물론 한국은행과 KDI 등 국책 기관 및 경제연구소 등에서까지 올해 경제성장률을 4%대로 하향 수정 전망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6%대를 외치며 환상에서 깨어나질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쫓다 물가에 추월 위기

당연히 경제정책 운용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법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아마추어 우파 정권’, ‘우파 노무현’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참여정부보다 더 아마추어’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위기상황 돌파를 위한 해법은 여전히 난망하다. 어디에서 위기가 발생했는지 진단조차 하질 못하고 있다. 거시적인 정책적 밑그림 없이 주먹구구식 정책 운용이 지난 3개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경제정책 운용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초반기임에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능력에 대한 종합진단이 필요한 이유다.

물가 상승 우려에도 성장 집착

정권의 성패는 집권 초반 6개월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다. 어느 정권이든 집권 6개월 안에 가시적인 개혁과 개혁의 성과물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6개월 안에 뭔가 성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들은 정권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결코 오래 기다려주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대입해 보면, 밀턴 프리드먼의 말은 수정돼야 한다. 6개월이 아니라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두 달을 갓 넘긴 지난 5월초, 서울 한복판에서 탄핵이라는 기막힌 구호를 접해야 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이 배경이었지만 속내는 각 분야 안팎의 실정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중심에 선 친박연대 복당 갈등은 그나마 집안싸움으로 치부됐다. 정작 대선 당시부터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꺾인 것은 이명박 정부가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까지 잃게 했다. 지지율 20%대 초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지지층 이탈을 부채질한 결과다. 또 역대 정권 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운용에 있어 지지층 이탈을 가져온 가장 큰 오류는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IMF(4.2%), UBS와 씨티은행(3.9%) 등 해외기관은 물론 한국은행(4.5%이하), KDI(4.8%), 금융연구원(4.5%), 삼성경제연구소(4.7%) 등 국내 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한결같이 3~4%대에 머물러 있는데도 유독 정부만 6%대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올해 초 6% 성장을 전망했는데 그 이후 세계 경제나 미국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우리 경제도 당초 얘기한 6% 성장이 어렵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을 5% 후반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작년 1분기 성장률이 4%로 워낙 베이스가 낮아서 그런 것이다. 2분기 이후는 성장률이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4월15일 취임 후 첫 브리핑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처음으로 6% 성장률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1%포인트 이상의 갭이 발생한, 여전히 환상에서는 깨어나지 못한 전망이었다.

성장에 대한 강 장관의 집착은 경제 현실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다. 물가 상승 우려에도 한국은행을 압박하며 금리 인하를 간접적으로 주문했고, 추경 편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한 강 장관-최중경 제1차관 라인의 외환 당국이 고수한 고환율정책으로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만 나 홀로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경기부양과 시장 개입을 통해서라도 6%대에 근접한 성장률을 보여주겠다는 고집에 따른 것이다.

공공의 적이 돼버린 강만수 장관

특히 이 같은 성장 일변도의 정책 운용은 추진 과정에서 잡음과 함께 당-정-청 갈등으로까지 비화되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또 발표부터 하고 보자는 보여주기 식의 정책 추진으로 부처간 갈등도 노출시켰다.

지난 4월1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는 이 같은 갈등이 표면화된 첫 번째 공식 자리였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이 참석한 이날, 강만수 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저하될 것으로 우려되고 내수와 고용 부진이 심화되는 등 경제지표가 좋지 않다”며 “내수 진작을 위해 세계 잉여금 4조9000여억원을 추경예산으로 편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세계 잉여금으로 국가 채무를 갚아서 금리 인하를 통해 내수를 진작하는 게 낫다”며 “경제정책은 단기적 안목이 아니라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추경 편성이 아니라 감세가 올바른 정책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통화정책에 있어서도 강 장관은 한국은행과 해법이 달랐다. “통화지표를 보면 유동성 과잉 수준이 아니다”는 강 장관은 줄곧 “금리 인하를 통한 내수 부양”을 주장하며 한국은행을 압박해왔다. 물가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한 결과다.

2전2패. 추경 편성과 금리 인하 모두 강 장관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경제정책의 야전사령관격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 상황 인식과 정책 운용 해법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 역시 당연했다. 급기야 지난 5월12일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하반기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경제정책의 모순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비단 강 장관만 갈등과 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경제 부처들도 경제 현실 인식과 대응 방법에서 기획재정부와 대동소이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1주일 만에 효과는커녕 세수 손실만 떠안게 된 유류세 10% 인하 조치와 MB물가지수 역시 보여주기 식 정책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생활필수품 50개 집중관리를 대책으로 지시한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에 실효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일주일여 만에 52개 품목을 선정한 것이 MB물가지수다. 그러나 집중 관리한다던 MB물가지수는 발표도 하지 못하고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4월 4.1%나 올라 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식료품 등 152개 장바구니 품목의 생활물가지수 역시 5.1% 상승해 대통령의 지시를 무색케 했다.

특히 연비 1등급 차량 고속도로 통행료 및 공용주차장 주차료 할인을 둘러싼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의 엇박자는 이명박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극명하게 노출시켰다.

지식경제부는 4월25일 국무총리주재 국가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에서 “연료소비율 1등급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요금을 50% 깎아주겠다”고 보고했지만 이튿날 국토해양부가 “협의된 적 없다”고 뒤집어버렸다. 당연히 지식경제부의 발표 내용이 백지화됐다.

이 같은 일련의 불협화음에 대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의 기능은 마비상태다. 지시만 있을 뿐 조정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경제정책을 조율해야 할 경제수석실의 역할과 기능에 각 부처의 관계자들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민정부 시절 경제수석을 지낸 김인호 전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당시의 경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하면 대체로 부총리가 경제수석과 사전에 조율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을 경우 “경제장관 회의를 하기 전에 경제장관 간담회라는 자리를 통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러한 조율과정 없이 각 부처별로 경제정책이 수립되고 발표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와 여당간의 엇박자는 차치하더라도 부처간 정책 수립과 운용에 따른 혼란은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경제 가치관이 공유되지 못함으로써 각 부처별 인식과 판단에 따른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경제정책의 방향이 성장과 물가 안정 중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말하는 사람들마다 내용이 다르다”고 토로했다. 성장우선론을 들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는 것이다.

원대한 목표 부실한 성과

지난 3월10일 과천 정부청사를 내방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획재정부가 보고한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 - 2008년 실천계획’에 따라 정부는 올해 거시경제 목표를 6% 내외 성장, 일자리 35만 개 내외 창출, 물가 3.3% 내외 억제로 잡고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6월까지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를 최소화하는 한편, 법인세를 현재보다 3~5%포인트 인하하는 등 세율을 최대한 낮춰 지속 성장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GDP의 3%대 수준인 R&D 투자를 2012년까지 5%로 확대하고 신성장산업 육성전략을 9월까지 마련하는 등 장기 성장기반 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유류세 10% 인하 방침을 담은 서민생활 안정대책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올해 4조8000억원에 달하는 중앙정부 세계 잉여금을 감세 재원 및 경제 활성화 사업 등으로 활용하는 등 경기 회복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특히 이날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 임기 내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현재 4%대인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기초 법·질서 준수로 1.0%포인트 끌어올리고, 규제 개혁을 통해 0.5%포인트, 정부 혁신과 인프라 확충을 통해 1.0%포인트 올려 7%대로 만든다는 목표다. 다만 최근 우리 경제가 역동성이 저하되고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대외 불안 요인도 확대되는 상황인 점을 감안해 올해 성장목표는 6% 내외로 잡고 경제정책 방향을 경기 회복, 지속 성장, 장기 성장이라는 3가지로 설정, 세부 과제별로 구체적인 날짜를 명시해 실천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하고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가운데 조기 규제 개혁·감세 등을 통해 투자·소비 등 내수기반 확충을 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 등 3고(L) 현상과 저성장·저고용·저소비 등 3저(N) 현상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의 이 같은 해법은 발표 당시만 해도 기업과 경제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야심에 찬 계획과는 달리 각종 거시지표들은 정부의 전망과는 반대의 길로 치달았다. 지난 5월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9.7% 상승해 1998년 11월(11.0%)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생산자물가상승률도 1월 5.9%, 2월 6.8%, 3월 8.0% 등으로 오름 폭이 확대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값도 2년 반 만에 1040원대로 올라섰다. 유가 급등으로 달러화를 사들이면서 달러 부족 현상이 초래돼 원화 가치를 하락시켰다.

게다가 정부의 경제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던 경제주체들도 삐걱거리는 정책 운용과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겹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전봇대 뽑기로 대표되는 규제 개혁은 기업들이 요구하고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됐지만 초기 성과가 다소 지지부진하다. 기업 관계자들도 “규제 완화에 대한 여러 가지 발표만 있었을 뿐 현장에서 실감할 만큼의 후속 조치들이 나오질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감세를 통한 소비 촉진으로 내수기반을 확충한다는 정부의 당초 계획도 기획재정부가 추경 편성으로 선회하면서 오히려 한나라당과의 갈등과 역공으로 이어져 지금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내수기반 확충의 처방책으로 추경 편성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의 감세 주장에 밀린 강만수 장관이 감세를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해 이마저도 추진이 불투명하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기획재정부의 경제 현실 인식과 운용 방식에 한국은행과 KDI가 반기를 들면서 시장의 신뢰까지 떨어지고 있다.

지난 5월12일 국책연구기관인 KDI는 “단기적인 거시경제정책은, 중기 물가 안정 목표 범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이내에서 내수 둔화를 일부 완충하는 정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민심을 읽지 못하는 기획재정부의 현실 인식과 정책 운용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금리 인하, 추경 편성 등을 통한 경기부양보다는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안정을 통해 거시경제 전반의 안정을 유지하는 게 선결 조건이라는 내용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 상황 인식과 해법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KDI에 따르면 최근 우리 경제는 하강 국면에 진입했고, 추가적인 경기 위축이 우려된다는 기획재정부의 분석과 달리 작년 말까지의 경기 확장 추세를 마무리하고 완만한 경기 둔화 추세로 전환되는 국면에 있다.

따라서 작년 재정정책 기조가 긴축적이었던 데 반해 올해에는 거시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확장 기조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금년에는 세계 잉여금 중 지방교부세·교부금 정산 및 국가 채무 상환분을 제외한 여유 재원(4조9000억원)이 있어 감세 등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작년과 같은 세수 호조세로 인해 초과세수가 발행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감세 등의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재정기반 마련을 위한 노력을 강조한 것이다.

통화정책 역시 물가 상승세가 더욱 확대돼 통화 당국의 물가 안정 의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당분간 조심스럽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KDI는 분석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억제를 위해서는 통화 당국의 물가 안정 의지에 대한 경제주체의 확고한 신뢰가 전제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향후 통화정책은 물가 상승세의 안정 여부와 내수 둔화의 추이를 주시하면서 신중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에 따라 KDI는 경제성장률을 2007년에 비해 소폭 하락한 4.8%로 전망했다. 상반기에는 5%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한 후 하반기에는 전면의 높은 성장률에 대한 기술적 요인으로 인해 4%대 중반으로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민간소비는 유가 및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부담 및 고용 여건 악화 등으로 인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상당 폭 하회한 3% 내외의 증가세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투자 역시 원화가치 하락 및 소비 둔화에 따라 2007년에 비해 상당 폭 둔화된 2%대의 증가세를 예상했다.

경상수지는 상반기에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서비스 수지의 개선 등에 따라 하반기에 흑자로 반전되면서 연간으로는 균형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게 KDI의 전망이다. 실업률 역시 2008년 내수경기의 둔화에도 최근의 비경제활동 인구 증가세를 감안할 때 2007년과 유사한 3.2%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7년의 2.5%에서 2008년에는 4.1%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이 공업제품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지난해의 내수 호조로 인한 가격 인상 요인이 개인 서비스를 중심으로 서비스물가에 점진적으로 반영되면서 물가 상승률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부양 대책 수립의 한계

이처럼 경제 현실에 대해 상이한 인식과 처방을 굳이 정부의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그만큼 현재의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적인 악재가 중첩돼 있다.

정남기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통한 여러 가지 경기부양 방안에도 한계점이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감세 및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지난 10년간 재정 지출의 확대로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으며 물가 상승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또 감세를 통한 민간소비 증진 및 기업의 투자 촉발은 의사결정 절차상 단기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으며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 역시 추경 편성 등 절차상의 어려움이 있다.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책도 최근 외부로부터 가해지고 있는 물가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기업의 경영환경 개선 등을 통한 경기부양책도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최근 경기 불안의 주요 원인이 수입물가 상승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정책을 통한 재정 지출 및 통화의 증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부담이 따른다.

이같은 대내외적 경제여건에 의한 불확실성으로 그동안 한나라당과 한국은행 그리고 KDI 등은 물가 안정에, 기획재정부는 성장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물가 안정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경제는 심리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불안심리는 오히려 성장에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경제성장이나 안정 모두 불안하게 할 여지가 많다”며 “섣부른 경기부양책은 물가 상승만 초래할 뿐”이라고 정부의 성장 일변도 정책을 비판했다. 특히 그는 “내수 부진의 주요 요인이 물가 불안이라면 물가에 불을 지르는 금리 인하는 하면 안 된다”면서 “화끈하지는 않지만 감세가 적절한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이후 줄곧 공언해 왔던 7%대 경제성장률과 3%대 물가가 국내외 국책 및 민간 경제기관에 의해 모두 4%대로 수정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의 경제성적표가 자칫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물가라는 치욕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한편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과정에서의 혼선과 관련, 10년간의 야당생활로 경제주체들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과거와는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 있다. 기업 경영의 패턴은 물론 소비자의 구매 행태, 개개인의 사고가 완전히 달라졌고 다양한 NGO의 등장으로 정권의 통치 방식에서까지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10년 전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청와대의 한 마디가 곧 법이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정책 수립은 물론 추진 방식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여기에는 CEO 출신으로 상명하달에 익숙한 이명박 대통령의 스타일도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건설업체 CEO 출신으로 우월적 위치에서 권위로 지시하고 밀어붙이던 방식에 익숙한 리더십 보유자라는 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제왕적 리더십은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환경적 요인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각종 이익단체가 아니라도 인터넷 등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조성돼 있어 가능한 통치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고 정치 평론가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국책기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가 지금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잘못을 알면서도 정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시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 참여했던 최모씨는 “통치철학의 부재에서도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는 인수위에서 통치 이데올로기 수립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단 한 명도 청와대 입성을 하지 못했다며 철학보다는 실용이란 이름으로 모든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된다고 덧붙였다. 통치이념에 따른 정책 공유는 고사하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엇박자는 오히려 ‘이명박 정부스럽다’고 일갈했다.

한정곤 기자 / 사진 : 전기병,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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