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디자인된 홀리데이 세트는 레녹스의 대표 제품이다. <사진 : 레녹스>

101년 전인 1906년 4월, 한가롭던 도시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공포에 휩싸였다. 인근 해안에서 발생한 7.7~8.2 규모의 강력한 지진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도시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붕괴됐고 가스관이 파괴되면서 도시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대지진으로 3000명이 사망했고 30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도시가 이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

샌프란시스코 소매업체 ‘슈리브’ 역시 파괴된 가게 내부를 복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슈리브는 복구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망가지고 부서진 집기들 사이에서 도자기 그릇 하나가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그릇은 슈리브가 얼마 전 도자기 전문 업체 ‘레녹스’에서 주문한 물건이었다. 이 사실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며 레녹스 도자기는 지진에도 깨지지 않는 튼튼한 그릇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이 사고 직후 레녹스는 명품 보석 업체 ‘티파니’에 장식용 그릇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레녹스가 만든 단단한 도자기가 아름다운 티파니 다이아몬드 옆에서 빛나게 된 것이다.

1889년 월터 스콧 레녹스가 설립한 ‘레녹스’는 고급 도자기 생산 업체로, 맞춤형 고급 식기는 물론 가정용 그릇과 화병, 도자기 장식품 등을 만들고 있다. 회사 설립 128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도자기 제조 회사로 꼽힌다. 회사 설립자 레녹스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 품질의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나의 의지이자 바람”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사진 맨 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이 2013년 두번째 임기 시작 축하 오찬에서 레녹스가 5개월 동안 제작한 크리스털 잔을 보고 있다. <사진 : 레녹스>


레녹스 연간 매출 2700억원 추산

레녹스는 1859년 미국 뉴저지 트렌턴에서 태어났다. 트렌턴은 도자기의 재료인 진흙이 많은 데다 교통이 발전해 19세기 미국 도자기 산업을 이끈 중심지였다. 당시 200여명의 도예가가 그곳에서 활동했다. 여기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레녹스도 자연스럽게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과 점토 작업에 재능을 보였고 16살부터는 도자기 공방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레녹스는 실력을 인정받는 훌륭한 디자이너였지만, 그가 일하는 공방은 늘 적자에 시달렸다. 당시 미국 상류층은 물론 일반 가정에도 값비싼 유럽 도자기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미국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도산하는 공방이 속출했다. 레녹스는 결국 스스로 도자기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세운다.

레녹스는 1889년 ‘세라믹 아트 컴퍼니’라는 회사를 열었는데, 일반 도자기 공방이라기보다 예술 스튜디오와 같은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레녹스는 윤기 흐르는 아이보리의 고급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그는 아일랜드의 명품 도자기 ‘벨릭’의 기술과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회사 설립 초기 레녹스는 18명의 직원과 함께 일했다. 이들이 단단하게 빚어 아름답게 채색한 도자기 그릇과 항아리, 티세트는 고급 연회에 사용됐고, 보석과 시계 등을 판매하는 고급 매장에 전시됐다. 1897년에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컬렉션에 포함돼 전시됐고, 프랑스 유명 박물관에도 진열됐다. 지금과 같이 ‘레녹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06년이다. 당시 유명한 예술가 윌리엄 몰리가 디자인한 접시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레녹스는 도자기 예술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세라믹 아트 컴퍼니’라는 기존 회사명을 버리고 자신의 성을 딴 ‘레녹스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바꿨다.

레녹스는 1918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백악관 공식 식기로 레녹스를 선정해 1700개의 그릇을 주문한 것이다. 백악관은 이전까지 유럽에서 생산된 고급 도자기를 공식 식기로 사용했는데, 미국 내 도자기 생산을 육성하기 위해 레녹스에 생산을 의뢰했다. 영부인이었던 에디스 윌슨 여사가 직접 골랐다고 한다. 레녹스는 아이보리 접시에 고급스러운 금 테두리를 두르고 가운데 미국을 상징하는 마크를 넣어 백악관 도자기를 만들었다. 이후 레녹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해리 트루먼,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6개 행정부의 백악관 공식 식기를 만들었다. 레녹스는 클래식한 테두리와 화려한 꽃장식, 금과 백금을 활용해 대통령의 권위와 취향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도자기를 만들었다. 2013년 재임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축하 오찬에도 레녹스가 등장했다. 5개월에 걸쳐 제작된 레녹스 크리스털 잔에는 백악관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레녹스 도자기는 백악관뿐 아니라 전 세계 미국 대사관의 만찬 테이블에도 사용된다.

물론 레녹스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83년 레녹스는 위스키 ‘잭 다니엘’을 생산하는 ‘브라운포맨’에 인수됐다. 브라운포맨은 그릇 디자인 업체 ‘덴마크국제디자인’과 ‘고람’을 인수해 레녹스와 합병했는데, 30년이 조금 지난 2005년에는 다시 크리스마스 장식품 제조업체 ‘디파트먼트56’에 레녹스를 1억9000만달러(약 2128억원)에 매각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어려웠던 2008년에는 파산 절차를 밟기도 했는데, 2009년 ‘클라리온캐피털’이 레녹스 자산을 인수해 레녹스 브랜드를 유지하며 도자기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 기업 정보 업체 ‘후버스’에 따르면 레녹스는 2억4236만달러(약 2714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녹스와 디즈니가 협업해 만든 ‘곰돌이 푸’ 도자기 장식품. <사진 : 레녹스>


성공 비결 1 |
장인들의 엄격한 품질 관리

레녹스가 128년 동안 미국 최고 도자기 브랜드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엄격한 품질 관리다. 레녹스는 모든 생산 공정을 미국 본사 공장에서 담당함으로써 브랜드 가치와 생산 과정,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레녹스는 또 도자기 공장 최초로 조직화 시스템을 도입해 디자인과 채색, 데커레이션 작업을 분류해 숙련된 장인이 디자인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레녹스 도자기가 탄생하기 위한 첫 단계는 디자인이다.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어떤 모양의 그릇에 어떤 디자인을 입힐 것인지 결정한다. 디자이너들이 섬세한 디자인을 완성하면 이를 컴퓨터로 옮겨 그릇에 담길 패턴을 프린트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그릇 모형에 액체 상태의 도자기 진흙을 넣어 15~20분간 굳혀 도자기를 꺼낸다. 컵이나 물병은 손잡이를 따로 붙여야 한다. 완벽한 디자인이 완성돼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공정에서만 90번을 다듬는다. 모양이 갖춰진 도자기는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지는데 이 첫 번째 굽기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온도와 시간을 잘 조절해야 깨지지 않는 좋은 품질의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구워진 도자기에 유약을 발라 말리면 앞서 결정한 디자인을 넣을 차례다. 컴퓨터로 뽑아낸 도안을 그릇에 붙이는 것이 디자인의 첫 작업이다. 깨지기 쉬운 도자기에 패턴을 단단하게 고정해야 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구워낸 뒤 금박 작업을 진행한다. 마지막 단계는 완성한 도자기에 레녹스 브랜드 로고를 넣고 에나멜 도트(점)를 찍는 단계다.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한 개 접시에 400개 에나멜 도트가 찍히는 경우도 있다. 이 에나멜 도트는 마치 그릇에 보석이 박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레녹스 도자기를 처음 산 소비자는 접시 아래 펜으로 쓰인 작은 숫자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레녹스가 생산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품질 보증을 표시한 사인이다.

레녹스의 공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킨스턴에 있는데,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특별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다. 레녹스 도자기가 다른 도자기와 차이를 만드는 비결이 바로 이 장인들이 수행하는 미세한 수작업이다.

팀 카튼 레녹스 수석 디자이너는 “우리의 높은 품질 기준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다루기 어려운 도자기 제품을 언제나 온전하게 전 세계로 수출하는 것을 우리 회사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 2 |
시대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

레녹스는 유럽 도자기 제품에 견줄 만한 미국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사업을 시작했다. 1906년부터 10년 넘게 독자적인 도자기 디자인 개발에 주력했는데,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16년 미국 최초의 디너세트 ‘베리크 자기’다. 전통적인 도자기 제조 기법을 따르면서 당시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이후 레녹스는 고전적인 디자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을 내놓으며 꾸준히 소비자의 사랑을 받았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상류층의 취향을 반영한 도자기가 대부분이었는데, 20세기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난다. 도자기 제품이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디자인의 도자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레녹스는 맞춤형 식기뿐 아니라 표준 패턴이 들어간 대중적인 식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17년 소개된 ‘만다린’과 ‘밍’ 패턴은 50년간 인기를 끌었고, 1950년대 와서는 다양한 패턴의 레녹스 식기가 혼수로 대중화됐다. 1960~70년대 나온 심플한 ‘솔리테어’와 크리스마스 장식이 들어간 ‘홀리데이’ 패턴은 지금도 사랑받는 레녹스 대표 디자인이다. 팝 아트가 유행하던 1970년대에는 ‘파이어송’ ‘판타지스’와 같은 혁신적인 디자인의 도자기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킨스턴 공장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직원들은 모두 기술 수준이 높은 장인들이다. <사진 : 레녹스>


성공 비결 3 |
끊임없는 혁신과 창조

레녹스는 소비자의 요구를 제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도자기에 크리스털이나 은박을 입히는 실험을 진행했고, 일반 가정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1972년 오븐이나 전자레인지, 냉동실에 넣어 사용할 수 있는 ‘템퍼웨어’라는 강도 높은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또 레녹스는 다양한 회사와 협업해 여러가지 제품을 발표했다. ‘겨울왕국’ ‘미녀와 야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곰돌이 푸’ 등 디즈니 캐릭터가 들어간 도자기 장식품을 판매하는가 하면 미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 ‘도나 카란’과 웨딩드레스 업체 ‘마르케사’, 모델 ‘캐시 아일랜드’, 유명 화가 ‘토마스 블랙쉬어’, 패션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한정판 도자기를 생산했다.

1910년대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레녹스는 전쟁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레녹스의 혁신과 창조 정신은 세대를 거쳐 회자되고 있다. 레녹스가 생산하던 반투명 아이보리 도자기 접시는 조명기구에 활용됐고, 레이더나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 레녹스 도자기는 1928년 미국 표준원으로부터 가장 내구성이 좋은 도자기로 평가됐지만,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 군대는 더 단단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레녹스는 ‘레녹사이트’라고 불리는 도자기 제품을 생산했고, 이 제품들은 군수물자에 유용하게 활용됐다.

레녹스는 “회사의 핵심 책임인 혁신과 창조, 실행은 레녹스 브랜드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생명선”이라며 “우리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가 하면 생산 과정을 개선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레녹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제품은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이 원하는 때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공하려는 거장과 같은 수행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직원의 책임 의식으로 이어져 레녹스 브랜드의 풍부한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plus point

레녹스 창업자 ‘월터 스콧 레녹스’

도자기 산업이 융성했던 트렌턴에서 태어난 레녹스는 어린 시절부터 도자기에 익숙했다. 16살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일했는데, 디자인과 데커레이션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 20대에는 이미 업계에서 레녹스의 명성이 자자했다. 레녹스가 30대에 동업자 조나단 콕손과 합작 설립한 세라믹 아트 컴퍼니는 미국산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고자 한 그의 의지를 최고 경영 목표로 삼았다. 레녹스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어려운 도자기 제조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마련하는 가운데 미국 도자기 제품에 대한 부유층의 편견을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 때문에 초기 세라믹 아트 컴퍼니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제품을 팔아도 버는 수입이 비용을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레녹스는 아일랜드의 고급 도자기 브랜드‘벨릭’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는데, 벨릭의 전문가 두 명을 영입해 제조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런데 1900년대 초 레녹스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쓰기 어려웠고 급기야 시력을 잃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레녹스는 매일 회사로 출근해 명품 도자기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해리 브라운이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06년 세라믹 아트 컴퍼니는 레녹스로 사명을 바꿨고, 레녹스 도자기가 그해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도 이겨냈다는 소식에 레녹스 판매는 크게 늘어났다. 레녹스는 1920년 세상을 떠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회사의 재정 상태가 크게 나아졌다.

연선옥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